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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어떻게 그런 일이···"
"쳇~ 뭘 그렇게 놀랄만한 일인가? 평민은 원래 그렇게 사는 거잖아. 안 그래?"
정상적인 삶과 철저하게 유리되었던 막심이라 그런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안 그래요! 세상에 그렇게 사는 게 어디에 있소? 나야 겁 없이 까불다가 노예가 됐으니 그렇게 살았지. 원래는 그렇게 사는 게 아니우."
"그러···냐?"
"당연하죠."
"그건 그렇다 치고, 그나저나 이거··· 어떡하지?"
막심이 주급으로 받은 동전을 내보이며 테일러에게 물었다.
'피식~'
"형님, 갑시다!"
"가긴 어딜 가?"
"총독님이 차린 잡화점 말이오. 거기의 물건들이 잔뜩 쌓였으니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동전으로 사는 거요. 콜? 이해했소?"
"잡화···점? 그런데 맘에 드는 물건이 없으면?"
"그럼, 형수님이 좋아할 물건을 사던가! 형님은 마석도 없잖소! 늙어서 대우받으려면 그래야 한답디다."
"흥! 못생긴 마누라에게 사주긴 뭘 사줘? 그리고 마석이 없어도 아직 충분하거든?"
"뭐, 그래요? 그럼, 형님이 좋아하는 맥주나 사서 마시던가. 에이미가 요 앞에 술집을 차렸다고 하네요."
테일러의 말대로 홀로 두 아이를 힘겹게 키우던 에이미는 최근에 사정이 비슷한 아줌마들과 동업해 선술집을 차렸다.
"맥주? 맥주는 우리 집 지하실에 통으로 있는데?"
"···그럼, 맛난 요리를 사서 먹던가요. 존슨이 식당 차렸다고 놀러오랍디다."
평소 요리를 잘했던 존슨은 음식점을 차렸다.
참고로, 아나톨리아 최초의 술집이고 음식점이었다. 그래서 에이미의 술집도 존슨의 음식점도 소위 대박이 났다.
"요리를 왜 사먹어? 배가 고프면 내가 만들어 줄까?"
"···에이 씨~ 됐소. 난, 에이미네 술집에서 맥주나 마실라요."
답답했는지 테일러가 씩씩거리며 에이미가 차린 술집으로 향했고 막심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다가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막심의 경우처럼 공장 직원들은 동전을 지급받고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몰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나 사람은 본래 적응하는 동물이다. 일주일이 지나자 사정이 완전 달라졌다.
"야~ 테일러. 목이 컬컬한데 맥주나 마시러가자."
"됐네요. 형님네 집 지하실에 통으로 있다면서요? 그거나 마시던가."
"하하핫~ 이 새끼가··· 삐졌냐?"
"쳇~ 내가 무슨 애새낍니까? 삐지긴 뭘 삐져요?"
"야~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에이미네로 가자! 오늘은 내가 쏜다."
"오호~ 정말이우? 그럼 갑시다, 에이미네 술집으로!"
"짜쉭~ 진작 그럴 것이지. 가자~"
어께동무하고 선술집으로 향하는 막심과 테일러. 처음에는 어리바리했지만 이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맥주를 사먹고 (가죽이나 모직이 아닌)천으로 만든 옷도 사 입었다.
팰리스와 두 친구가 암행을 나왔다가 우연찮게 이 모습을 발견했다.
'피식~'
"어험~ 위대하시고 영명하신 우리 총독각하! 세상은 역시 한방입니다요."
이런 피리온의 실없이 농담을 노점상 음식에 정신 팔린 토머스가 잘못 알아들었다.
"뭐, 한방? 야~ 어디야, 어디! 어떤 놈이 '선빵' 날렸어?"
"···하아~ 됐다, 토머스."
"쳇~ 자꾸 나만 갖고 그래. 내가 무슨 마을 북이냐?"
"···동네북이겠지."
"마을 북이나 동네북이나 그게 그거네, 뭐."
"아니거든? 너 바보냐?"
"어쭈구리~ 요새 마법 좀 부린다고 막 기어오르네? 예전처럼 쌍코피 좀 흘려 볼텨?"
12살짜리에게 소싯적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소싯적에 '쌍코피성애자'로 소문이 났던 토머스다웠다.
그러나 이젠 피리온도 예전의 그 허약했던 피리온이 아니었다. 2서클을 완전히 마스터한 마법 천재였다.
'절래, 절래~'
"됐네, 이 사람아. 홀드 마법에 한 번 당해봐야 '아~ 이게 아닌 갑다' 하고 후회하지."
"그럼 함 붙어볼까?"
"아, 됐고. 아무튼 팰리스. 도자기 한방에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피리온의 우스갯소리처럼 도자기 한방에 여러 문제들이 한꺼번에 해결되었다.
팰리스가 공공사업을 비롯한 노역을 시작하면서부터 아나톨리아에 만연한 기아(饑餓)문제가 크게 완화되었다.
도자기 공장을 가동시킬 무렵에는 곳간에 곡식이 남아돌았고 공장운영이 본궤도에 오를 즈음엔 잉여곡물로 필요한 생필품을 (물물교환 방식으로)사고팔았다.
그런 참에 팰리스가 임금인상과 더불어 주급을 곡물 대신 현금으로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에 에이미와 존슨 같은 자들이 얼씨구나 급히 식당이나 선술집을 차렸다.
그와 그녀들의 선택은 정말 탁월했다.
굶주렸던 주민들은 식량문제가 해결되자 물물교환으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더니 이젠 팰리스가 마련한 잡화점에서 동전으로 물품들을 구입했다.
이런 분위기에 도자기가 세상에 알려지면서부터 판매가 늘어났고 직원들의 소득도 함께 늘어났다.
예전엔 파이온의 주민보다 30%가량 덜 받았지만 이젠 30%를 더 받는 세상이 됐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많이 먹는다고, 처음에는 '동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번 돈을 쓰기 시작하자 억눌려왔던 소비욕구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자연, 술집이나 음식점도 돈을 때 아닌 호황으로 몸살을 앓았다.
[어머? 에이미랑 안나랑 그 잡년들이 술을 팔아 돈을 버네? 나보다 못생긴 것들이 돈을 왕창 벌었는데 나라고 못할까? 내가 더 예쁘니깐, 호호호~ 그래, 나도 할 수 있다.]
[오~ 공장 직원이 아니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네? 그래~ 가계를 차릴 돈이 없으니 일단은 노점에서 양꼬치를 팔자!]
[이런 늦었다. 저 약삭빠른 새끼가 먼저 양꼬치를 팔고 다니다니! 그래, 난 닭꼬치다.]
얼마 전까지는 뽑기(?)로 공장직원에 당첨된 자들을 부러워하기만 했었다.
하릴 없이 손가락만 빨던 주민들이 속속 가게를 차리고 노점에서 음식을 팔았다.
과거 아나톨리아의 경제는 오직 농사, 1차 산업위주였다.
그러나 이젠 경제의 중심축이 2차, 3차 산업으로 이동했다. 내년부터는 팰리스가 세금을 거둬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피리온. 네 말대로 여러 문제가 해결됐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해."
팰리스가 슬며시 고개를 내저었다.
2년 후에 파이온으로 복귀시켜야할 병사도 문제지만 가장 심각한 건 역시 턱없이 부족한 인구였다.
사람이 있어야 아나톨리아를 지키던 더욱 발전시키던 할 것 아니겠는가!
"하긴, 그렇겠지? 이곳의 기반이 워낙 부족했으니까. 그런 의미로, 팰리스 네가 총독이니깐 열심히 일해라"
'피식~'
"그래 열심히 일하마. 그런 의미로다 피리온~ 황도에서 아직도 소식이 없었냐?"
"황도라면 혹시 드레이먼드 지부장에게 의뢰한 그거?"
하급서기였던 드레이먼드는 어느새 파이온 상단의 올림피아드 지점을 대표하는 자로 성장했다.
도자기가 그만큼 잘 팔렸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래, 그거. 이런저런 사업을 하려면 연금술사가 꼭 필요하겠더라."
팰리스가 언급한 연금술사! 납으로 황금을 만들겠다고 연구하는 얼빠진 자들이다.
지금의 팰리스에겐 그저 (티아늄 부부처럼)전문 '노가다꾼'으로 통했다.
알다시피 연금술사는 '마법사의 돌'을 만들어 영원히 살겠다는 둥, 납으로 황금을 만들겠다며 설치는 그런 자들이다.
미친 연구자로 보이지만 화약이란 물건이 중국의 연금술사(연단술사)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로불사의 비약을 연단하겠다는 도사(도교의 승려)들이 만들어냈다.
현대 화학의 기초도 연금술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팰리스의 의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팰리스 네가 지시해서 의뢰하긴 했는데 뜬금없이 웬 연금술사야?"
팰리스와 피리온 둘만 이야기하자 토머스가 살짝 심통이 났다.
"야~ 피리온, 팰리스. 도대체 둘이 무슨 이야기하는 거야? 나 빼먹고 술 마시려고?"
"···하아~ 토머스. 술이 아니고 연금술 이야기다. 그리고 벌써부터 술타령이냐?"
"맥주가 어디 술인가? 아무튼, 연금술이 술이 아니었구나. 그럼, 밧줄로 몸을 꽁꽁 묶는 방법이었나? 흐음~ 그건 변태들이 좋아하는 건데."
토머스! 정녕 괴물 중의 괴물로 진화하는 것 같다.
"···야 인마! 그게 무슨 연금술이냐? 그건 포박술··· 헉!"
피리온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다만, 토머스와 다른 점이라면 두뇌회전이 아주 빨랐다는 점이다.
그는 이런 순간에 가장 효과 좋은 물귀신 작전을 구사했다.
"어험~ 그런데 포박술이 뭐였더라? 예전에 팰리스가 헨타이(へんたい, 변대)가 어쩌고 망가(マンガ, 만화)어쩌고 할 때에 좀 들어본 것 같은데, 그치?"
이젠 모두가 알았을 것이다.
누가 헨타이 망가를 비롯한 가이아의 변태문화를 최초로 개척했는지를···
팰리스는 즉각 청문회신공을 발휘했다.
"그게··· 뭐야? 기억이 않나. 나는 그런 기억이 전혀 없다."
'피식~'
"됐네, 이 사람아. 아무튼 팰리스, 연금술사를 왜 구하려는 거야?"
"히히힛~ 그거? 내가 연금술사를 왜 구하느냐 하면···"
비누를 만들다가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칠성시절에 탐독한 소설 속의 주인공 대부분은 비누를 만들어 돈을 벌며 주민들의 위생환경까지 개선한다.
팰리스 또한 주민들의 위생과 건강을 위해
···서는 개뿔! 솔직히 말하면 병에 걸릴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기적적으로 가이아에 환생했는데 병에 걸려 죽으면 그것처럼 허무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가이아에서도 유행한다는 천연두에 걸리면 꼼짝없이 죽을 수도 있었다.
뭐, 부자나 귀족들은 천연두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힐(heal, 치유마법)과 신성력 때문에 대부분 죽지 않는단다.
그러나 질병은 터진 후에 봉합하는 것보다는 미리 예방하는 편이 낫고 그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리고 마법사와 신관에게 가져다 바칠 돈이 없는 평민은 가난한 미국인처럼 그냥 맨몸으로 버텨야 한다.
팰리스는 비누를 만들어 깨끗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었다.
그 때문에 비누를 만들려고 했다. 물론, 처음부터 연금술사를 구하려고 하진 않았다.
팰리스는 머릿속의 폴더를 뒤져 비누를 만드는 방법들을 검색했다.
참고로, 팰리스는 무슨 일이지 전생 시절의 그가 보고 접했던 정보 대부분을 기억한다.
정보들이 너무 많고 난잡해 원하는 것을 찾아내기가 참 힘들지만 어쨌든!
[그래, 좋아! 비누를 만들려면···]
가장 먼저 원료가 되는 지방산을 준비해야 한다.
가축의 지방이나 식물성 기름도 가능하지만 가이아에는 그보다 훨씬 값싸고 양도 많은 지방산이 존재했다.
팰리스의 눈에 비친 걸어 다니는 비누덩어리. 가이아엔 몬스터가 아주 많았다.
비누사업을 추진해도 원료수급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다.
팰리스는 구하기 쉬운 몬스터 지방을 중탕으로 녹이고 가성소다(수산화나트륨)와 소금으로수지화 및 염석하여 비누를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가성소다가 무엇이지?
팰리스는 다시 머릿속의 폴더를 뒤졌다.
[가성소다가 뭐였더라? 그건, 그건··· 아하~ 엔에이 오에이치! 수산화나트륨(NaOH)이었네?그럼, 수산화나트륨은 어떻게 만들지?]
검정고시의 과학과목으로 화학을 선택했던 터라 주기율표를 비롯한 수산화나트륨에 관한 각종 화학반응식들을 금세 찾아냈다.
문제는 화학반응을 진행시키는 능력도 문제지만 화학반응에 필요한 원료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또 벽에 부딪혔다.
팰리스가 당장 필요한 정보는 교과서에 없었다.
화학은 상당히 전문적인 분야다. 좀처럼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운이 없으면 전생시절에 가성소다와 관련된 문건을 못 봤을 수도 있다.
다행히 이틀을 투자해 더욱 자세하게 검색하다보니 소금물을 전기분해하면 (-)극에 가성소다(수산화나트륨)가 만들어진다는 정보를- 전생에 읽었던 소설에서- 찾아냈다.
전기는 전격마법으로 어찌어찌 해결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론만으로 가성소다를 만들어낼 자신이 없었다.
[이론대로 다 되면 세상 살기가 편하게?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그래서 기술자가 대우받는 것이고.]
팰리스는 가성소다가 문제가 되자 다른 편법을 찾아냈다.
[그렇다면 잿물로 만들어볼까?]
잿물을 받아 이것을 이용해 어쩌고저쩌고해서 비누를 만든다.
이론은 참 쉽다.
문제는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점이다.
20여 차례에 걸쳐 실험해봤지만 원하는 품질의 비누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전생시절에 '한 노가다'했던 그가 비누를 만들기는커녕 대부분 까맣게 태워 먹었다.
[젠장~ 도저히 안 되겠다.]
팰리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솔직히 말해 그는 고급인력이었다.
[맞아! 나는 고급인력이야. 내가 직접 노가다를 뛰어야겠어? 그래, 이런 일에 전문가인 연금술사를 영입하자. 그들에게 화학 노가다를 시키는 거야! 티아늄 부부처럼 흐흐흐~ 그런데 연금술사는 어떻게 구하지?]
암흑가의 정보길드를 찾아갈 필요도 없었다. 드레이크 남작이 해답을 알려줬다.
[연금술사말이오? 당연히 황도에서 찾아 봐야지. 총독, 올림피아드에 없으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있다오.]
이렇게 해서 팰리스는 연금술사를 수배해 아나톨리아로 영입하라는 뜻을 드레이먼드에게 의뢰했던 것이다.
"대중목욕탕에서 사용하면 딱 이라는 그··· 비누?"
피리온은 팰리스와 오래 사귀었기 때문인지 비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물론, 이론으로만!
"응, 혼자서 몰래 만들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
"크크큭~ 그러셨습니까? 우리 총독각하께서 정말 열심히 일하시는 군요."
"어허~ 리저드 경! 자꾸 이럴 것이오?"
"고정하시지요, 총독각하! 어험~"
'피식~'
"야~ 재미없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뭐, 벌써 가? 먹고 싶은 것도 아직 못 먹었는데."
"토머스. 요리는 릴리에게 부탁하고, 이쯤 암행을 마치고 총독부로 돌아가야지."
'처척~'
"충! 알겠습니다, 총독각하! 제가 직접 모실 테니 저녁은 맛있는 고기로 부탁하겠습니다요. 히히힛~"
토머스가 장난스럽게 예를 보이곤 친구를 호위하기 위해 앞장을 섰다.
총독 집무실에 돌아온 팰리스. 아나톨리아를 더욱 발전시킬 방안들을 고민하다가 시종 트리스탄을 불렀다.
팰리스는 그에게 전체회의를 내일 오전에 개최할 것임을 통보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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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도자기를 판매하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