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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의 공격명령에 졸개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
다가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우어어어~ 돌격! 돌격하라!”
“한 놈도 빠짐없이 사로잡아라!”
“반항하면 즉결 처분해라!”
“이놈들아~ 당장 항복하라!”
자신들이 지른 함성보다 더욱 큰 소리가 만찬장이 아닌 외부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 * *
앞서 말했다시피 칠성 시절의 팰리스는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을 탐독했고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 괜한 여유를 부리다가 위기를 자초하는 주인공 때문에 답답한 적이 많았었다.
[뭐여!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잡것들인디···]
그런데 그런 허접한 ‘잡것’들에게 주인공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아무리 소설의 초반이고 극적긴장감을 위해서라지만 읽는 내내 답답했다.
'손꾸락‘이 자꾸만 오그라들곤 했다.
그 때문에 팰리스는 아나톨리아의 사정을 알기 위해 괜한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다. 그냥 파이온 백작에게 정찰부대를 요청하여 부족한 정보문제를 해결했다.
[자유도시? 시장(mayor)? 시장은 무슨 개뿔··· 그냥 뭐 산적두목이었네?]
덕분에 위험하게 돌아다닌 것보다 훨씬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들을 얻었다.
팰리스는 이것들을 바탕으로 아나톨리아를 정상화시킬 계획들을 미리 고민했다.
그런데 오늘 주민들의 생활을 직접 확인해 보니 예상보다 더욱 열악했다.
[아나톨리아 주민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확인했고. 그럼, 잭슨과 그 일당들이 어떤 놈인지 견적이 딱 나오지 않아?]
정찰부대가 알아낸 정보와 이곳 주민들의 실상을 직접 살핀 것으로 잭슨과 그 일당들의 ‘처분’이 사실상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초장에 작살내야지! 설마, 병신같이 죽이러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줘야해? 아니면 가이아에서 정당한 절차와 재판이 어쩌고 인권(人權)이 어쩌고 따지는 건 아니겠지?]
참고로, 일제강점기와 두 번의 쿠데타로 인한 혼란한 사회를 경험했던 팰리스는 극소수 ‘범죄자들’의 인권보다는 대다수 ‘피해자들’의 권리가 훨씬 더 중요했다.
그것이 바로 팰리스의 정의(正義)였다.
21세기의 한국에서는 비판 받겠지만 중세의 가이아에서는 매우 적절한 행동일 것이다.
아무튼 팰리스는 드레이크와 기사들에게 미리 명령을 내려 잭슨 일당을 제압하고 아나톨리아를 접수하게 했다.
그리고 방금 전에 들려온 함성으로 사실상 아나톨리아 접수가 끝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젠장! 뭐하나, 빨리 공격하지 않고!”
“하지만 두목님! 병사들이 몰려올 것 같은뎁쇼?”
“좆까라고 그래! 애새끼와 늙은이만 잡아! 그럼, 우리가 이긴다.”
“저, 정말입니까?”
“당연하지. 더도 말고 호위로 따라온 기사 셋만 죽여라!”
기사의 무력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했던 잭슨.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무지(無知)는 졸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겁도 없이 숫자만 믿고 토머스와 기사들에게 덤벼들었다.
“그래 좆도··· 기사 새끼도 사람 새끼다.”
“맞아. 여럿이 덤비면 어쩔 거야? 갑옷 사이로 칼침이나 제대로 놓아 드리자! 가자~”
“죽여, 죽여 버려~ 이얍~”
졸개 20명이 한꺼번에 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무지의 대가는 처참했다.
“죽어라, 이 새···”
“어쭈구리~”
‘퍼퍽~’
“흡!”
“으아악~”
‘슈웅~ 쿵~ 퍽~’
토머스의 발길질에 두 놈이 날개도 없이 날아 머리로 벽과 천정을 들이받았다.
‘휘익~’
‘싹둑~’
다른 놈은 기사 로건의 검에 목이 잘려 죽었다.
잭슨이 늙은 귀족으로 치부했던 드레이크도 구경만 하지 않았다.
전투마법사 출신의 5서클 마스터답게 시동어만으로 졸개들을 제압해 갔다.
“홀드! 홀드! 홀드!···”
“어, 어? 모, 몸이 안 움직여!”
“나, 나도··· 하, 항복! 항복입니다요.”
홀드 마법에 당한 졸개들이 항복하겠다고 소리쳤다.
눈치가 빠른 녀석들도 재빨리 뒤로 물러나 검을 떨어뜨렸다. 그리곤 두 손을 들어 투항했다.
물론, 눈치 없는 놈들도 존재했다.
“이런 미친··· 야~ 이 새꺄~ 지금 뭐하자는··· 어, 어?”
‘스윽~’
‘푸슈슈~’
기사 안토니아의 검에 목이 잘려 허공에 피분수를 뿜어내는 졸개 놈! 눈치 없는 자의 허무한 최후였다.
그자를 끝으로 더 이상의 만용이 사라졌다.
‘툭~ 투툭~’
“하, 항복입니다요.”
“사, 살려만 주십쇼.”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졸개 일곱이 모두 항복했다.
이제 무기를 든 자는 잭슨 하나만 남았다. 놈은 자신의 죄를 알기에 도저히 항복할 수가 없었다.
“잭슨! 지금 죽을래 아니면 항복할래?”
로건의 투항제의에 잭슨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차피 난··· 죽겠지?’
“칫~ 그래 이판사판이다. 이야아아~ 아?”
잭슨이 로건을 향해 달려들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목이 잘려 죽었다.
‘싹둑~’
'툭, 떼구르르~'
축구공처럼 방안을 굴러다니는 수급, 이로써 팰리스는 아나톨리아를 확실하게 접수했다.
팰리스는 총독답게 뒷짐을 지고 이 모든 과정을 차분하게 지켜봤다.
그러나 마음까지 차분할 순 없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몬스터도 아닌 사람의 목이 잘려 굴려 다녔다.
싹둑 잘린 절단부위에서는 고장 난 수도꼭지마냥 핏줄기가 마구 품어져 나왔다.
아무리 (칠성시절에)한국전쟁을 겪어봤다지만 당시에는 비교적 인도적인(?) 화약무기를 사용했었다.
원거리에서 총으로 인민군과 인민해방군(중공군)들을 사살했었다.
그런데 방금 이곳에서 팔다리가 그냥 막 잘려나가고 목까지 썰리는 광경을 제대로 지켜봤다.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으~ 토할 것 같아. 정말 잔인하군. 하지만 내색하면 안 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려면 오늘과 같은 살인과 야만에 익숙해져야 한다.
팰리스는 자꾸만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꾹 참고 적들을 제압한 드레이크와 기사들을 치하했다.
“드, 드레이크 남작님! 수고했습니다.”
“허허허~ 총독, 별일도 아니었소.”
“안토니아 경과 로건 경 그리고 나의 친우 토머스도 수고 많았소.”
“아닙니다, 각하! 저 스트롱 안토니아는 맡은 바 임무를 수행했을 뿐입니다.”
“우하하하~ 친구야~ 나 잘했지? 그런데 너무 시시해서 몸도 제대로 풀지····”
토머스가 눈치 없이 입을 나불거리자 로건이 급히 토머스의 명치에 팔꿈치를 냅다 꽂아 넣었다.
‘터엉~’
“어? 로건형님 왜 또. 간지럽···”
“죄송합니다, 각하! 토머스 너, 이 자식··· 나중에 보자.”
“쳇~ 나만 미워해.”
“저, 저런 또ㄹ···”
로건이 급히 뒷말을 얼버무렸으나 모두들 ‘또라이 새끼’라는 의미를 알아들었다.
“어험~ 그럼, 외부는 제대로 제압했는지 밖으로 나가 확인합시다.”
만찬장을 정리한 팰리스는 병사들의 피해상황을 점검하기위해 밖으로 나갔다.
팰리스가 현관을 나서자 현장을 지휘하던 제이콥 조장이 달려와 보고했다.
‘척, 처척~’
“총독각하! 자유도시 아니, 마을 전체를 완벽하게 접수 완료했습니다.”
“수고했소, 제이콥 경. 그런데 병사들의 피해상황은··· 혹시 사상자가 발생했소?”
‘아무리 유리한 상황이라지만 방금 전까지 전투를 벌였다. 사망자가 없을 수가 없겠지? 제발 사망자가 적게 나왔기를···'
팰리스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소설 속의 병사들은 대부분 그냥 막 죽어나가는 약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파이온의 병사들은 마냥 약하지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우 귀중한 존재들로 (연례행사처럼 주로 초겨울에 습격해 오는)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오랫동안 조련된 병사들이었다.
게다가 파이온 백작에서 ‘빌려’온 형식이라 만약, 사망자나 불구자가 발생하면 아나톨리아의 총독 즉, 팰리스가 유족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피식~’
“각하! 모두들 오합지졸이었습니다. 설마, 이런 조무래기들을 상대하면서 사망자가 발생했겠습니까?”
“오~ 그렇다면 병사 모두가 무사합니까?”
“넵! 각하, 23명을 사살하고 포로 105명을 포획하는 과정에서 경상자 5인이 발생했습니다. 그 인원을 제외하면 아무런 피해가 없었습니다.”
“경상자? 부상의 정도는 어떻소?”
“움직이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의 경상입니다. 부상자들은 단위 부대가 보유한 포션을 사용하기도 전에 토벌에 함께 참여한 마법사들이 말끔하게 치료했습니다. 현재는 정상적인 임무가 가능합니다.”
그 말인즉, 사상자가 전무하다는 뜻이었다.
팰리스는 믿기지 않는 전과에 크게 기뻐했지만 제이콥은 그런 팰리스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병사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건 바람직한 모습인데, 어째 좀 소심한 것 같고···’
제이콥의 생각대로 알고 보면 팰리스가 뭘 몰라 괜히 걱정했던 것이었다.
팰리스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사실 저택 외부의 전투(?)는 전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고 한다.
일단, 팰리스가 데려온 병사들의 수가 워낙 많았다.
여기에 잭슨과 지휘부 대부분이 만찬장에 있었던 까닭에 저항이 허무할 정도로 미약했다.
실제로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자 대부분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고 한다.
각설하고, 아나톨리아를 접수한 팰리스는 이곳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사전에 계획한 바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팰리스는 일단 식량을 잔뜩 가져온 수송부대를 파이온 영지로 돌려보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병사들이 급히 (상자로)쌓은 단상에 올랐다.
그러자 드레이크 남작이 팰리스에게 확성마법(Volume up)을 걸어줬다.
팰리스는 남작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에 큰소리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들어라!”
“충!”
팰리스의 일성(一聲)에 기사와 병사들이 일제히 오른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것과 동시에 가장 큰 목소리로 복창했다.
반면, 창문 틈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주민들은 불안한 얼굴로 오늘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고대했다.
이들에게 팰리스는 자신들을 착취하러온 또 다른 권력자였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나 팰리스 파이온이 아나톨리아의 총독으로써 선포한다! 하나, 이제부터 아나톨리아는 파이온 영지에 귀속된다.”
“충!”
“와아~ 파이온 만세~”
“우와아아~ 아나톨리아가 파이온의 영토가 됐다. 와아~”
함성소리가 다소 길어졌다.
팰리스는 한 손을 들어 병사들의 함성소리를 잠재웠다.
“조용~”
“···”
“둘! 나 팰리스 파이온은 총독으로써 아나톨리아에 대한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음을 선포한다.”
‘처척~’
“충!”
“셋, 현시간부로 아나톨리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처척~’
“충!”
계엄령!
한국에서는 주로 독재자들이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는 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시행했던 것과 달리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아나톨리아에서는 매우 유효적절한 명령일 것이다.
혹자는 중세시대의 영주나 총독의 권한이 워낙 강력한 까닭에 굳이 계엄령까지 선포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이곳의 현실을 고려하면 그런 의문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팰리스는 굳이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 이유는 계엄령을 통해 앞으로 강력한 규제와 처벌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데 이어지는 발표를 들어보면 다소 이해가될 것이다.
“넷, 계엄령 선포에 따라 아나톨리아 주민들은 본 총독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만일, 본 총독의 명을 어길 시에게 그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임을 강력하게 경고(警告)한다.”
‘처척~’
“충!”
“다섯, 현 시간부로 살인과 약탈을 비롯한 모든 범법행위를 불허한다. 혹, 범죄를 저지른 자가 나타난다면 평소보다 더욱 무겁게 처벌할 것임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이점 확실하게 숙지하여 불이익을 받지 않길 바란다.”
“충!”
“이상 중대발표를 마치며, 중한 환자를 제외한 아나톨리아의 모든 성인들은 내일 정오까지 이곳 중심마을에···”
마을의 이름이 없어 호칭하기가 상당히 애매했다.
아나톨리아는 5개의 부속 마을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팰리스는 중심이 되는 마을의 이름을 급히 만들었다.
“흠흠~ 이곳을 센트럴이라고 부르겠다. 아무튼 내일 정오까지 아나톨리아의 모든 성인들은 센트럴로 모두 집결해야 한다. 만일, 본 총독의 명령을 어길 시에는 외부로 추방하거나 노예로 삼을 것임을 경고한다.”
“충!”
“제이곱 경!”
“넵, 총독각하!”
“경이 책임을 지고 각 마을에 전령을 보내시오. 그리고 전령에게 방금 선포한 사항들을 모두 알리도록 조처하시오.”
“알겠습니다, 총독 각하.”
“잔소리 같지만 이곳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려야 합니다.”
“맡겨주십시오, 각하! 아나톨리아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는 사실! 이 사실을 이곳 모든 이들에게 똑똑하게 알리겠습니다!”
그랬다. 계엄령은 대한민국의 누구, 누구처럼 약자들을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새로운 세상!
팰리스는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아나톨리아를 구원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내일 정오에 시작될 것이다.
13. 새로운 아나톨리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