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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하면 잘살거 같지-36화 (3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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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존재가치를 증명하라.

1시간 후 팰리스의 방.

“괜찮나? 자네 정말···· 괜찮겠나?”

“드레이크 남작님이라고 하셨죠? 피리온의 스승님이신··· 반갑습니다.”

“그, 그래. 자리가 좀 이상하지만 나도 반갑네! 자네가 내 제자가 된 피리온의 친구라고?”

“네, 드레이크 남작님! 피리온을 잘 부탁합니다.”

팰리스가 인사하기 위해 침대에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드레이크가 급히 제지했다.

“계속 누워있게.”

“알겠습니다, 드레이크님.”

“그런데 정말··· 괜찮나?”

“네! 아주 멀쩡합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팰리스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릿속에 늙은이가 들어선 팰리스가 무엇을 몰라 이런 건 결코 아니었다.

팰리스도 자신이 마신 꿀물에 독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쯤은 충분히 짐작했다.

실제로 올리비아 2부인이 비명을 지르고 그녀의 딸 소피아가 검붉은 피를 토하지 않았던가!

“분명 자네가 사용한 잔에는 독이 들어 있었네. 그런데 자네 정말··· 괜찮나?”

드레이크가 자꾸 같은 내용을 묻는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독을 마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던 그는 무작정 해독마법부터 펼쳤었다.

팰리스가 아닌 소피아에게···

드레이크는 팰리스가 다른 사람들처럼 멀쩡하게 서 있어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신관이 도착한 (한참)후에야 팰리스도 독을 마셨다는 말을 겨우 전해 듣고 급히 해독마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팰리스는 아무런 중독증상을 보이지 않았었다.

참고로, 팰리스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단전을 만들었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신성력이었다.

그 때문에 팰리스의 단전은 (독과 상처치료에 특효라는)신성력의 성질을 일부 가지고 있어 팰리스가 마신 독을 해독시켰던 것이다.

단전이 꿈틀거린 것은 독을 해독하느라 움직인 것이고 기운이 솟아난 이유는 분해된 독기운이 마나로 화(化)해 단전이 살짝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천운(天運)인지 올리비아가 사용한 독이 고가의 마나독이란 점이었다.

흔하고 값싼 광물독, 혈액독, 신경독이 아닌 고급스런 마나독(마나독은 은(銀)을 검게 부식시키지 않는다)이라 팰리스에게 독이 아닌 보약(補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당사자인 팰리스도 이런 사정을 몰랐으니 드레이크가 진실을 알아낼 길은 요원했다.

“네! 이상할 정도로 상태가 좋습니다. 그런데 소피아는···”

“괜찮아졌네. 자네보다 먼저 그 아이부터 치료하지 않았겠나. 노아 신관이 계속 그 아이 곁에 붙어있을 테고.”

“신관님이요?”

“그렇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이런 일엔 나보다는 노아신관 쪽이 더욱 낫겠지.”

참고로, 부상이나 질병의 치료는 신관과 마법사 모두 가능하긴 가능하다.

그러나 마법사의 치료마법보다는 신관의 신성력 쪽이 치료에 더욱 특화되었다.

“하긴··· 그렇겠네요.”

팰리스가 지난 몇 시간 전을 모습들을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당시 어느 누구도 팰리스의 안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었다.

“방금 전에 시녀의 말을 들어보니 그 아이는 지금 안정을 취하고 있다더군.”

“다행··· 이네요.”

“그럼, 쉬시게. 나는 이만···”

“감사합니다, 드레이크 남작님.”

드레이크가 나가고 이제 팰리스 혼자만 남았다.

“하아~ 최소 한 달 정도는 가만히 지켜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방심한 건가? 첫날부터 독을 먹이다니···”

라이나의 경고처럼 2부인은 정말 무서운 여자였다.

팰리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빈틈과 시기를 노려 공격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상당한 의구심이 자라났다.

“이상하게도 너무··· 조용한데?”

‘이런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으면 분명 난리가 났을 텐데··· 아니, 폭풍전야 같은 분위긴가?’

팰리스의 짐작대로 난데없이 음독사건이 벌어졌다.

다행히 아무도 죽지 않았다지만 팰리스와 함께 귀염둥이 막내가 독을 마시고 죽을 뻔했다. 너무도 충격적인 사건임이 틀림없었다.

* * *

그 시간, 파이온 백작이 탁자를 내리치며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고 있었다.

‘쾅~’

“내가··· 잘못한 건가?”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그는 관리들과 함께 영지의 업무를 처리하느라고 바빴다. 그래서 팰리스와 가족이 만나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레온이라도 보냈더라면···’

자신의 곁에서 영지의 행정을 돕는 장남이자 소영주 레온. 그라도 참석시켰더라면 그런 참담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파이온 백작은 올리비아 2부인에게 엄중한 경고와 함께 근신을 명했다.

그리고 오늘의 사건을 외부로 발설하지 못하도록 입단속 하라고 지시했다.

“아닙니다, 영주님! 이번 일은 영주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레온! 지금은 사적인 자리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오늘의 일은 아버님의 잘못도 작은어머님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리고 아버님의 잘못은 따로 있습니다.”

“응? 무슨 뜻이지?”

“팰리스~ 미천한 그런 녀석을 가족으로 삼다니요. 아버지가 실수하신 겁니다.”

“그 아이를 아들로 인정했다.”

“아버지의 결정이라 따르긴 따릅니다. 그렇지만 작은어머님처럼 저도 아버지의 결정을 납득하지 못하겠습니다.”

20살의 건장한 청년 레온은 올해 익스퍼트급에 오른 실력자였다.

차기 후계자라 피닉스기사단에 입단하지 않았을 뿐, 레온은 자신의 가치를 실력으로써 충분히 증명했다.

그런 자신만만한 레온인지라 자신의 뜻을 굽히려 들지 않았다.

파이온 백작은 부쩍 자란 장남을 통해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녀석··· 하긴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백작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파이온 영지를 이끄는 ‘로드(Lord)'로써 수많은 이들의 생사를 좌우하는 지배자였다.

전통적으로 파이온의 영주는 즐기고 탐하는 위치가 아닌 이끄는 자리였다.

때로는 가족에게까지 비정해야 한다.

파이온 백작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두려웠더냐?”

“네? 두렵··· 다니요?”

“팰리스 그 아이 말이다. 그 녀석이 너의 자리를 위협할 것이 두려웠냐는 말이었다.”

이것이 바로 파이온 백작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핏줄을 타고났고 능력까지 증명했다지만 팰리스는 미천한 시녀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런 아이라면 다른 영주들처럼 저택의 시종으로 삼거나 잡일을 시키면 그만인 신분이었다.

‘상당히 똑똑해 보이는 팰리스를 아들로 인정한다. 그럼, 자칫 나태해질 자식들에게 경고가 될 것이다.’

그런데 당초의 목적과 달리 2부인이 초를 치고 말았다.

가뜩이나 (그녀의 소생)오거스틴이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나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팰리스라는 새로운 경쟁자까지 나타나자 과잉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백작에게 오거스틴은 그저 한심한 자식이었지만 올리비아에게는 너무도 아픈 손가락이었다.

검술실력도 제법 뛰어났고 학문의 성취도 미진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사벨라의 소생인 레온에게 자꾸 비교가 되다보니 어느 순간에 엇나가버린 자식이었다.

파이온 백작과 레온 때문에 행동거지를 조심할 뿐, 만약 통제의 고삐가 사라지면 천둥벌거숭이가 될 소지가 다분한 그런 한심한 14살짜리 소년이었다.

‘피식~’

“아버님! 저··· 레온입니다. 욕심만 많았지 앞서 이끄는 자의 책임(責任)과 명예(名譽), 의무(義務)도 모르는 애송이! 오거스틴이 아닙니다.”

레온은 전형적인 기사였지만 파이온 영지의 차기 후계자이기도 했다.

그도 파이온 백작의 숨은 의도를 얼추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 그 말은 취소하도록 하마. 팰리스를 인정한 건 네가 아닌 오거스틴 때문이었다.”

“저도 그럴 것이라 얼추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어떡할 생각이지?”

“일단 녀석을 만나보겠습니다.”

“호오~ 그래? 그 아이를 만나면?”

“팰리스가 어떤 녀석인지 차분하게 지켜볼 생각입니다.”

레온에게 팰리스는 자신의 위치를 위협할 자가 아니었다.

아직 만나보진 않았지만 미래의 골칫거리에 가까웠다.

오거스틴처럼 파이온 가문의 일원이라는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고 고귀한 신분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괴롭히는 그런 미래의 골칫거리였다.

“만약, 그 아이가 파이온이란 이름을 가질 자격을 가졌다면? 귀족의 책임과 의무에 충실할만한 아이라면 넌··· 어떻게 하겠느냐!”

파이온 백작의 눈매가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당연히 인정해야지요. 저의 넷째 동생이자 파이온 가문의 새로운 일원으로요!”

레온의 대답에 파이온 백작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핫하하하~ 그래! 그래야 나, 브라이트의 장남이고 파이온의 차기 후계자겠지. 좋다. 그만 나가봐라.”

‘처척~’

“넵! 알겠습니다, 영주님!”

레온이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곤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는 시종과 경호기사를 앞세우고 팰리스가 쉬고 있던 방으로 움직였다.

팰리스는 레온의 갑작스런 방문에 급히 일어나 손님들을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형님··· 아니, 대공자님!”

‘내가 무슨 길동이도 아니고··· 젠장~ 이게 무슨 일이래?’

의도적으로 시선을 내리깔고 어깨를 잔뜩 움츠린 팰리스. 이젠 알아서 기어야 했다. 당분간은 호부호형하지 못했던 홍길동처럼 행동해야 했다.

“시종도 시녀도 없어 좀 불편하겠군.”

“아, 아닙니다. 어제까지 평민이라서 그다지 불편한 점이 없었습니다.”

“흐음~ 그래?”

“네, 대공자님.”

“팰리스~ 나는 널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영주님의 결정이 있었다. 그러니 당연한 권리는 마땅히 누려야한다.”

“네, 네?”

의외의 말에 놀란 팰리스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레온을 똑바로 바라봤다.

예상대로 호의적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적대하지도 않았다.

팰리스의 눈에 비친 레온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엄마 친구의 아들’이었고 ‘싸나이’였다.

‘저런 타입은 비굴하게 행동하면 오히려 마이너스다.’

“그럼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팰리스는 더 이상 비굴하지 않게 어께를 펴고 고개와 시선도 본래대로 돌려놨다.

그러자 레온이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니다. 이런 일은 본래 가장 어른인 내 어머님이 처리했어야 했다. 그런데 흠흠~···”

하도 갑작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여 그럴 겨를이 없었다.

레온은 시종에게 차를 준비하라고 지시하며 팰리스를 시중들 ‘적당한’ 시종과 시녀를 골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참고로, 팰리스는 미처 몰랐지만 레온이 말한 ‘적당한’의 의미가 매우 중요했다.

레온은 다음 세대의 파이온을 지배할 후계자였다.

그는 오늘 같은 사건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2부인의 입김에서 자유롭고 귀족가에서 자주 애용되는 암살수법에 정통한 그런 하인을 골라 팰리스에게 붙여 보호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아무튼, 레온은 차가 준비될 때까지 조용히 팰리스를 탐색하다가 찻잔을 들었다.

그리곤 팰리스에게 차를 권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운을 뗐다.

“자~ 식기 전에 마시자.”

“네! 대공자님!”

팰리스는 (전생에서 마셨던)커피를 마시듯이 옅은 갈색 액체를 살짝 머금은 후에 향부터 즐겼다.

담백한 녹차보다는 허브 계열같이 향이 진하고 다소 텁텁한 맛이 났다.

그런데 가만히 팰리스를 살피던 레온이 이런 모습에 살짝 오해했다.

‘호오~ 타고난 기품인가? 평민이 차를 즐겼을 리는 없을 테고.’

“평소에 차를 즐겼었나?”

“평민이 어찌··· 아닙니다. 오늘 처음으로 마십니다.”

한동안 메이플의 조수로 일했으니 보통의 영지라면 차를 접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파이온 영지, 메이플 자작은 맹물이나 맥주를 마시면 마셨지 차는 질색했다. 그리고 가정교사는 차를 즐길 정도의 부자가 아니었다.

“호오~ 그래? 아무튼 제법 입맛에 맞는 것 같아 다행이구나.”

“감사합니다, 대공자님.”

“그런데 오늘 불미스러운···· 흠흠~ 몸은 좀 괜찮으냐?”

가족 중에서 처음으로 팰리스를 찾아와 안부를 물었다.

팰리스는 저도 모르게 마음의 벽을 살며시 허물었다.

“네! 평소처럼 아주 건강합니다.”

한동안 별다른 의미가 없는 내용들을 묻고 대답했다.

대화의 분위기는 팰리스의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레온의 반응도 호의적인 쪽으로 변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레온이 갑자기 얼굴을 굳혔다.

‘응? 무슨 심각한 내용을 말하려나?’

팰리스의 생각이 맞았다.

“팰리스~ 내부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오늘부터 넌! 귀족이 되었다.”

“···”

‘그리고 황당하게도 독을 마셨지요.’

“비록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지만··· 아무튼 외부적으로는 파이온 가문의 일원이 된 셈이다. 팰리스 넌, 그에 부끄럽지 않은 귀족이 되어야 한다. 알고 있겠지?”

“네! 대공자님.”

“그런데 팰리스~ 너에게 백성은··· 무엇이지?”

“네? 무슨 뜻인지···”

‘뭐야! 뜬금없이··· 설마 또 그··· 시험이냐? 어째 이놈의 집구석은 무슨 시험을 못 봐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자꾸 왜 이래?’

팰리스의 추측이 맞았다. 레온은 지금 팰리스를 시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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