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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기사단의 숙소.
피닉스기사단에 입단예정인 토머스도 커다란 봇짐을 짊어지고 급하게 달려 그가 앞으로 생활해야할 숙소에 도착했다.
앞날이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는 팰리스와 달리 예전부터 이곳을 자주 애용했던 토머스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새로운 각오’나 ‘크나큰 결심’ 따위를 바란다면 우리가 아는 토머스가 아닐 것이다.
“헉, 헉~ 제이콥 형··· 아니, 조장님! 저 왔어요. 헤헤헤~”
“하아~ 와, 왔냐? 잘··· 왔구나. 짐은 저쪽 아무 곳에나 던져두고···”
제이콥이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헐떡거리는 토머스를 환영했다.
“그런데 뭐가 급해서 뛰어왔어? 천천히 걸어와도 뭐라고 탓할 사람도 없는데. 누가 군기(軍紀)를 잡는 일도 없을 테고···”
제이콥의 말대로 어느 누구도 토머스의 신고식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참고로, 피닉스기사단은 특유의 조직문화로 인해 혹독한 신고식으로 유명했다.
조선시대의 초임관리들을 괴롭혔던 신고식, 면신례(免新禮)와 유사한 개념인데 몇 년 전의 제이콥도 토머스에게 장난삼아 군기잡기를 시도했었다.
그리고 그날 토머스에게 된통 당했다.
그때의 일화를 잠시 소개하자면···
“어허~ 신성한 이곳에서 까불다니··· 토머스라고 했겠다? 앞으로 뻗쳐!”
제이콥은 멋모르고 숙소에 들어와 까불던 토머스에게 전형적인 얼차려로 군기를 잡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토머스는···
“앞으로··· 뻗쳐요? 아저씨~ 그게··· 뭐예요?”
“어, 어? 그게 뭔지··· 몰라?”
“네! 당연히 모르죠. 그런데 그게··· 어떻게 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는 건지 시범을 보여 줘요.”
어이가 없던 제이콥은 어쩔 수 없이 대충대충 시범을 보였다.
그런데 토머스는 당시에도 ‘깨는’ 아이였다.
“에이 아저씨도 참~ 그렇게 대충하면 어떻게 알아요? 우리 아빠가 그랬어요. 뭘 배우려면 자세! 자세부터 아주 정확하게 에~ 또 뭐라고 했더라? 아~ 그래! 정확하고 확실하게 배우라고 했어요.”
과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제이콥은 다시 정확한 자세로 ‘앞으로 뻗쳐’의 시범을 보였다.
그런데 토머스는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았다며 장시간에 걸쳐 부분 동작을 요구했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아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하아~ 아직도 몰라? 제발 부탁인데 이번엔 꼭 제대로 배워라··· 알았지?”
제이콥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범을 보였는데 이 광경을 지켜본 동료들은 토머스가 제이콥에게 얼차려를 시키며 군기를 잡는 것으로 오해했다고 한다.
각설하고, 그런 토머스가 숨이 차도록 달려왔다는 건 군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라는 뜻이다.
“군기···요? 그런 건 잘 모르겠고요. 아직 안 늦었죠?”
“응? 뭐가?”
“배식이요. 간식 나눠줄 시간이 방금 전이었잖아요. 헤헤헤~”
“가~안식? 간식 때문에 이리 급하게 달려온 거냐?”
“그럼, 뭣이 그렇게 중한디요? 세상에 그것 보다 뭐가 중요하겠어요?”
언제부터인가 피닉스기사단은 간식이나 새참을 숨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언제는 토머스가 이곳을 들락거릴 무렵이라는 사실은 차마 밝히지 못하겠다.
“그러···냐? 하아~”
‘저런 또라이 새끼랑 앞으로 계속 생활해야 하다니··· 아~ 꼬였다.’
제이콥이 한숨을 쉬며 몰래 숨겨놓은 간식을 꺼내야 했다.
미래의 일이지만 이날부터 제이콥을 비롯한 피닉스기사단원들은 멍하니 한숨을 쉬는 횟수가 늘어났다고 한다.
“행님! 갑니다요. 에엣~”
“야 인마~ 살살··· 으헉!”
‘우당탕탕~’
“아이고야~”
토머스의 사선공격을 막던 로베르토가 연무장 구석으로 나가 떨어졌다.
괴물 같은 완력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검술이나 마나를 다루는 실력은 분명 로베르토가 훨씬 윗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목숨을 건 전투나 결투가 아닌 그저 일상적인 대련일 뿐이다. 당연히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다.
문제는 토머스의 순수한 완력!
보통의 ‘인간’이었던 로베르토가 버텨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퍽, 퍼퍽~’
“야~ 이 미친 새꺄~ 지금 결투하자는 거냐? 너··· 똑바로 안할래?”
버럭 성이 난 로베르토가 달려와 토머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토머스는 얻어맞으며 꼼짝도 않고 커다란 눈만 끔뻑거렸다.
“행님! 화가 났으면 말로 해요.”
“말로 하라고? 네 놈이 말로하면 알아 처먹을 놈이냐?”
“아무리 그래도··· 그런데 왜 배랑 옆구리는 왜 간지럽히는 건데요?”
맨몸으로 얻어맞아도 그다지 아프지 않아했던 토머스였다.
경갑을 착용한 지금은 로베르토의 주먹질이 그저 간지럽기만 했다.
“저런 저····”
“하아~ 불쌍한 로베르토··· 하필 저런 또라이 새끼에게 걸려가지고··· 하아~”
이런 상황이자 로베르트를 비롯한 몇몇 기사들도 어느덧 뒷목을 잡고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했으니, 토머스는 이제 겨우 11살짜리라는 점이다. 앞으로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다.
오늘도 이처럼 괴로운데 검술 실력까지 일취월장한다면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그런 상상만으로도 동료기사들은 너무 두려워졌다.
아무리 죽음과 친한 기사일지라도···
“하아~ 로베르토! 우리··· 어떡하지? 그 또라이 새끼 땜에 여길 나갈 수도 없고.”
알다시피 피닉스기사단은 파이온 백작이 자신의 자랑이라고까지 극찬하는 기사단이었다.
소속된 개개인은 모두가 선망하는 영지의 최고 엘리트였다.
“하아~ 글쎄 말이다. 천하에 없던 그런 또라이 새끼만 없으면 정말 천국일 텐데. 하아~”
영지의 모든 처녀들이 선망하는 일등 신랑감이었던 로베르토와 그의 동료들. 토머스는 이들의 죄다 지옥의 수감자들로 바꿔버렸다.
“하아~ 정말 답답하구나.”
“하아~ 정말 답이 없습니다, 부장님.”
마법부 소속의 마법사들이 생활하는 이곳에서도 똑같은 한숨소리가 흘러 다니고 있었다.
예상대로 낯가림이 심한 피리온과 인사를 나눈 마법사들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기사부와 달리 마법부는 상당히 이성적인 마법사들의 집단이었다.
“자자~ 아예 몰랐던 것이 아니잖나!”
“메이플 자작님이 미리 언질을 줬지만 이 정도까지는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파이온 영지의 수석마법사이자 마법부의 부장(部長) 드레이크 남작을 비롯한 마법사들은 이미 메이플 자작으로부터 피리온의 사정을 전해 들었다.
“차차 친해지면 나아진다고 했으니··· 그래, 피리온아~”
“···네··· 수석마···”
“이제부터 내가 너의 스승이란다. 앞으로 잘 지내자꾸나.”
‘꾸벅~’
“네··· 고마··· 스승·· 잘···”
몸을 배배꼬는 피리온은 정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피식~’
“메이플 자작님으로부터 내 너의 이야기를 들었단다. 헌데 네가 벌써 2서클을 형성했다고?”
“··· 네··· 스승··· 하지만··· 아직···”
“하지만 스승이 없어 마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그 때문에 아직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이겠지?”
‘끄덕, 끄덕~’
“호오~ 좋아, 아주 좋아~”
피리온이 고개를 끄덕여 그것을 인정하자 드레이크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이제 겨우 11살짜리가 스승도 없이 2서클을 만들었다면··· 정말 대단한 원석(原石)이다! 이런 대단한 녀석이 나의 제자로 들어오다니···’
“제자야~ 지금부터 1서클의 마법수식을 가르쳐주마.”
드레이크의 말에 다른 마법사들이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가르침 즉, 마법의 전수는 타인이 함부로 끼어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방안이 조용해졌다.
드레이크는 조곤조곤 마법수식에 앞서 기본적인 이론부터 가르쳤다.
“마법은 의지의 산물이라는 경구처럼 강력한 의지(意志)! 의지가 가장 중하하고 의지로써 마법을 실행시킨 단다. 허나, 그 의지가 약하면 마법실행은 아예 불가능 할까?”
“네? 그게···”
“그래, 그렇지 않단다. 3서클 이하의 마법은 꼭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진 않아. 이제부터 배울 마법수식이 초급마법사의 미약한 의지에 힘을 더해주게 되지. 즉, 마법주문을 영창하고 마법수식을 이미지와 시키는 것도 일종의 의지라고나 할까? 자~ 그럼 1서클 파이어볼의 마법수식과 주문은···”
드레이크가 피리온에게 마법수식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확실히 사칙연산도 모르는 메이플과 달리 드레이크는 그와 비슷한 수식을 암산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 만큼 드레이크가 천재였다.
그러나 피리온도 드레이크 못지않은 천재인데다 팰리스로부터 전해들은 고차방정식과 함수 등의 각종 수학이론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파이어···”
1시간도 지나지 않아 피리온이 파이어볼의 시동어를 낭랑하게 소리치려고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때만은 말을 더듬지 않는, 매우 정상적인 모습이었다.
“잠깐!”
“네?···갑자··· 왜···”
드레이크의 제지에 피리온이 평소의 그로 다시 돌아왔다.
“제자야~ 너무 성급하구나. 아무리 1서클 마법수식이라지만 이해하는 데에만 일주일 이상이 필요한 수식이란다. 초심자들이 언뜻 이해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야. 머리가 아닌 자신의 몸으로 수식을 체화시켜야 한단다.”
드레이크 남작의 우려와 달리 피리온은 대단한 천재였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란다. 주문의 영창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킨 마법수식에 그 의지를 부여한다고 내 말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마법주문조차 영창하지도 않고 어찌 마법을 실행하겠다는 말이냐!”
“그냥··· 될··· 요.”
“뭐! 시동어만으로 마법이 실행 될 것 같아서라고?”
‘끄덕끄덕~’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가만! 호오~ 그래?”
시동어만으로 마법을 실행하려면 최소 3서클 익스퍼트 이상의 중급 마법사나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드레이크는 ‘아직은 절대적으로 안 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제자의 의욕을 꺾거나 재단하고 싶지 않았다.
“좋다! 그럼 어디 한 번 해보아라. 혹시 실패하더라도 지금 단계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니 실망하지 말고 자~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꾸벅~’
“···네··· 감사·· 스승··”
피리온이 고개를 꾸벅 숙여 스승의 배려에 감사했다.
그리곤 오른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곤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후우웁~ 후우~ 후우웁~ 파이어볼!”
‘샤르르르~’
‘화르륵~’
피리온이 시동어를 마치는 순간! 손바닥 10Cm 위에 성인 머리통만한 불덩이가 갑자기 생성되어 맹렬하게 이글거렸다.
‘샷!’이라고 소리치며 (의지로써)목표한 곳에 던지면 수류탄 2개에 맞먹는 폭발력이 발생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드레이크가 깜짝 놀랐다.
“어, 어?”
1시간도 안되어 마법수식을 체화시킨 데다가 마법주문의 영창도 없이 시동어만으로 마법을 실행시키다니···
그러나 놀람과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드레이크는 그런 감정을 힘겹게 억눌렀다.
“조, 좋구나. 제법··· 훌륭했다!”
“가, 감사··· 스승···”
‘화르르륵~ 피시식~’
피리온이 드레이크에게 고개를 숙이는 순간, 허공에 떠 있던 불덩이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신경이 분산되어 파이어볼을 유지할 마나와 의지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취였다.
“흠흠~ 잘했다. 아주 잘했어!”
‘오오~ 정말 대단한 아이다. 그러나 잘했다고 마냥 칭찬을 남발하면 안 된다. 나의 제자! 나의 소중한 제자가 잘못될 수도 있을 게야.’
드레이크는 일부러 엄숙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했다.
“흠흠~ 그럼 나의 제자야~ 이제부터는 아쿠아볼에 대한 마법 수식을 배워보자꾸나.”
‘꾸벅~’
“···감사··· 스승··요.”
피리온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그도 드레이크의 마음을 얼추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30분가량이 흘렀다.
“후우웁~ 후우~ 후우웁~ 아쿠아볼!”
‘샤르르르~’
‘꿀렁, 꿀렁~’
이번에는 허공에 물 덩이가 생겨나 이리저리 꿀렁거렸다.
드레이크는 30분 전의 결정도 잊고 다시 커다란 웃음소리를 터뜨리고야 말았다.
“우하하하~ 좋구나, 아주 좋아.”
* * *
“오호호호~ 좋아, 아주 좋아. 그래··· 어머니? 오호호호~”
팰리스가 앞으로 함께 지낼 가족들과 대면한 이곳도 올리비아 2부인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방안 곳곳을 굴러다녔다.
그러나 2부인은 드레이크 남작의 경우와 달랐다.
팰리스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올리비아가 지금 진정으로 즐거워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쯤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1부인 이사벨라는 팰리스가 어머니라고 호칭하자마자 차가운 얼음가면으로 갈아탔다.
이복형제 대부분도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써 팰리스를 매섭게 노려봤다.
‘찌릿~’
“나보고··· 어머니라고?”
“호호호~ 왜 그러세요, 언니! 영주님이 결정하신 일이잖아요.”
웬일인지 올리비아 2부인이 팰리스를 변호했다.
‘이상하네. 엄마가 1부인보다는 2부인을 더욱 조심하라고 했는데. 엄마가 잘못 본 건가?’
“아참~ 나는 영주님의 2부인으로 올리비아라고 한단다. 작은 어머니라고 부르면 되겠고··· 앞으로 잘 지내자꾸나.”
“네 작은 어머···”
“닥쳐라! 미천한 네놈 따위가 감히 어머니라고? 나는 아직 인정하지 못하겠다. 마님이라고 호칭해라.”
이사벨라의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팰리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언니도 참~ 저 아이가 얼마나 무안해 하겠어요? 저것 봐요. 아이가 긴장하잖아요. 그렇지, 팰리스?”
“네, 네? 조, 조금이요.”
‘뭐야! 저 아줌마··· 친절하잖아? 역시 사람은 실제로 경험해봐야 해.’
팰리스의 생각대로 올리비아는 참으로 친절했다.
올리비아의 도움을 받으면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호호~ 당연히 그럴 거야. 아, 그래! 에바야~ 내 방에 가면 내가 항상 마시던 꿀물이 있지? 그걸 팰리스에게 가져다주어라.”
“네, 마님!”
올리비아의 지시에 에바라는 시녀가 재빨리 그러나 아주 조용히 쟁반에 올려 가져왔다.
올리비아는 은잔에 직접 꿀물을 따랐고 에바는 은잔이 오른 쟁반을 팰리스에게 내밀었다.
“얘야~ 마셔 보아라. 몸에 아주 좋을 거란다.”
‘역시 귀족이라 은으로 만든 컵을 사용하네? 아마 독극물 때문이겠지?’
“네~ 작은 어머님! 그럼,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꿀꺽, 꿀꺽~’
팰리스는 사양하지 않고 잔을 들어 꿀물을 마셨는데 참으로 시원하게 잔을 비워버렸다.
달짝지근한 꿀물이 식도를 지나 위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단전이 꿈틀거리며 왠지 모르게 힘이 나고 뱃속까지 따뜻해졌다.
가이아판 보약(補藥) 같았다.
‘아~ 역시 귀족들이 먹는 음료라서 그런가? 힘이 불끈 솟는 것이 이곳의 보약인가?’
“맛있···니?”
“네, 작은 어머님! 정말 맛있게 마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팰리스가 입맛을 다시며 사의를 표했는데 어째 내부의 공기가 묘하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이사벨라를 비롯한 이복동생들도 슬며시 미간을 좁혀갔다.
더욱 무거워진 분위기가 팰리스를 압박했다.
“그, 그래? 그럼 한잔을 더 따라줄까?”
“한잔 더요?”
‘몸에 좋은 보약이니··· 그래, 기회가 있을 때 많이 챙겨먹자.’
“폐가 안 된다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올리비아가 다시 잔에 꿀물을 따르고 그걸 에바가 쟁반에 올려 옮기던 바로 그때였다.
헬레나 또래의 여자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와 잔을 낚아챘다.
“히잉~ 저 오빠만 맛난 거 먹었어! 이건 소피아가 먹을 거야!”
“어? 소피아 아가씨 그건···”
“소, 소피···”
‘꿀꺽, 꿀꺽~’
“햐아~ 맛있당~ 히히히~”
소피아는 누구에게 뺏길까 두려웠는지 급히 은잔을 비워버렸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올리비아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캬아아악~ 소, 소피아!”
“엄마 미안해. 하지만 소피아도 맛있는···”
“마, 마법사! 아니, 신관! 누가 아무나 빨리 데려와!”
그야말로 뜬금없는 비명에 너무도 비정상적인 행동이었다.
실제로 갑작스런 고함소리에 놀란 소피아가 울음을 터트리려고 했다.
“어, 엄마··· 히끅, 히잉···”
‘응? 왜··· 저러지? 서, 설마···’
스며드는 한기(寒氣)에 팰리스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던 바로 그때였다.
귀엽고 예쁜 소피아가 울음 대신 검붉은 피를 왈칵 토해냈다.
“우웩, 웩~ 피··· 엄마 나··· 입에서 피나요. 배도 아프고··· 히잉~”
그렇다. 황당하게도 팰리스와 소피아가 마셨던 꿀물에는 독약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11. 존재 가치를 증명하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