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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하면 잘살거 같지-34화 (34/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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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아버지 어떡해··· 우리 아버지 불쌍해서 어떡해.’

팰리스는 저도 모르게 아르펜을 흘깃거렸다.

그런데 자신 못지않게 괴로워해야할 그가 오히려 팰리스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엄마는 이렇게 착한 아버지를··· 이런 아버지를 배신한 건가?’

정황상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았다.

그 증거가 바로 자신이란 존재였다!

팰리스가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짐마차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산마루에 석양이 걸릴 즈음에는 어느새 마을 어귀에 도착해 있었다.

아르펜은 길가에 짐마차를 세우고 토머스와 피리온을 내리게 했다.

아무리 눈치 없는 토머스라도 부자(父子)간에 대화를 나눌 것이란 사실을 알아차렸으리라.

“아르펜 아저씨~ 그럼 모레 아침에 봐요.”

참고로, 토머스와 피리온은 각각 기사단에 입단하고 영지의 수석마법사의 제자로써 배움의 길을 걸어갈 예정이었다. 당연히 오늘 밤과 내일은 파이오니아로 떠날 짐을 싸야 한다.

“그, 그래~ 빼놓은 것 없이 꼼꼼하게 챙겨라. 모레부터는 파이오니아에서 지낼 테니···”

‘우리 팰리스처럼 너희들도 이젠 고향을 떠나 생활해야 한다.’

가 생략된 분위기였다.

아르펜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토머스와 피리온이 후다닥 자기의 집으로 달려갔다.

‘이히힝~’

사위가 어두워질 때까지 둘은 말없는 망부석이 되었다.

“놀랐··· 지? 미안하다, 아ㄷ···”

아르펜이 급히 뒷말을 수습했다.

팰리스는 이런 아버지가 너무도 불쌍했다. 한편으론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스레 짜증이 날 정도로··· 그래서 말투가 다소 딱딱해졌다.

“아버진 괜찮아요?”

“응? 뭐가 말이냐?”

“제가 영주님의 아들이라고 하잖아요!”

“하아~ 상황이 그렇게 된 걸 힘없니 내가 어떡하겠니. 그리고 너의 미래를 위해서는 내 아들이기보다는 영주님 아들인 편이 더욱 나을 거야. 뭐, 한편으론 잘 된 일인가?”

지금의 아르펜은 달관한 고승(高僧)을 보는 듯했다.

“그, 그걸···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요?”

“후후후~ 진정해라, 아··· 흠흠~ 팰리스야~”

“그럼, 엄마는 어떻게 되는 데요?”

막장드라마에서는 보통 이혼이 어쩌고 하며 가족이 요란하게 갈라진다.

“엄마? 엄마 이야기는 갑자기 왜?”

아르펜의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어두워 표정을 알 순 없었지만 팰리스도 그가 정말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이···· 엄마가 아빠를 배신했잖아요!”

“?···”

“설마 모르는 건가요? 제가 영주님 핏줄이라면서요. 그럼, 엄마가 아빠를 배신하고···”

팰리스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았다.

그런데 아르펜의 반응이 정말 의외였다.

‘피식~’

“난 또 뭐라고! 엄마가 무슨 배신이냐? 그리고 영주님이 나를 엄청 배려하신 것이라 오히려 더욱 고마워해야지.”

“네, 네?”

“사정이 그렇지 않니. 엄마는 본래 당신(파이온 백작)께서 취하시고 아끼시던 시녀였단다.”

“···”

“영주님은 그런 네 엄마를 나에게 ‘하사’하셨던 분이시다. 그런데 어찌 그 분을 칭송하지 않을 수가 있겠니. 게다가 당신의 존귀한 핏줄인 너까지 선물하셨는데.”

“?···”

‘선물··· 이라고요? 허허~ 도대체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안타깝게도 이젠 본래대로 다시 돌아갈 상황이지만서도···”

“···”

아르펜의 궤변에 팰리스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데 마냥 궤변만은 아니었다.

팰리스는 아직도 21세기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졌다면 아르펜은 중세시대 강력한 신분제 사회의 정체성으로 살아간다.

간신나라에서는 충신이 간신이듯 아르펜의 말은 결코 궤변이 아니었다.

“앞으로는 지금처럼 부르지 못하겠지만··· 아들아~ 아마도 네가 크게 오해한 것 같구나.”

“오해··· 라고요?”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불륜은 불륜이잖습니까! 도대체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그래, 아들아~ 아마도 네가 어떤 상상을 했는지 몰라도 그건 사실이 아니란다. 내가 네 엄마랑 어떻게 부부가 되었냐하면···”

아르펜이 차분하게 과거의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라이나는 어린 시절에 (몬스터의 습격으로)고아가 되었고 마을 주민의 집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런데 의탁한 집이 너무 가난해 성인이 된 16살에 시녀의 ‘업무’에 응시했다고 한다.

일종의 ‘성공한 취직’으로 21세기 한국으로 치면 ‘대기업’의 정규직으로 입사한 격이었다.

다행히 라이나는 빼어난 용모 덕분에- 당시 소영주였던 -브라이트 파이온의 전속시녀가 되었다.

그런데 가이아의 귀족사회는 성적(性的)으로 매우 문란했다.

영주나 그 자제들이 시녀를 건드리는 건 눈살을 찌푸릴지언정 흠이 될 정도까진 아니었다.

아들과 자식이 같은 시녀를 번갈아 건드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아니, 시녀들이 오히려 신분상승을 위해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분위기였다.

그 때문에 달리 생각하면 배려가 될 수 있었다.

당시 병약하고 자꾸 쟁반을 엎지르는 등의 실수가 잦았던 라이나였다.

당연히 미운오리새끼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차기 지배자였던 소영주가 라이나를 취함으로써 그녀의 입지를 세워줬기 때문이다.

소영주가 백작이 되었을 때는 라이나도 제법 콧방귀를 뀔 정도가 되었다.

물론, 본부인과 2부인의 눈치가 보였지만 첩보다 못한 시녀인지라 당연히 감내해야할 상황이었다.

그렇게 해서 라이나는 팰리스를 임신했다.

그런데 이때 백작이 신임하는 레인저의 대장, 아르펜이 라이나에게 홀딱 반해 구애하기 시작했다.

“그럼, 엄마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당연히 알고 있었지.”

“알았··· 다고요? 그걸 알면서 어떻게···”

“어떻게는 뭘 어떡하니? 당연히 네 엄마가 더욱 고맙고 소중해졌지.”

팰리스는 몰랐지만 영주의 권위는 정말 대단했다.

다소 드문 경우지만 영지의 귀족이 영주나 소영주를 초대하여 자신의 첩이나 2부인을 하룻밤 상대로 제공하기도 한다.

임신하면 어떻게 하냐고?

영주의 ‘존귀한’ 핏줄을 얻거나 보다 친밀한 관계가 목적인데 더 이상 설명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팰리스가 임신하자 아르펜은 더욱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이런 아르펜의 애정공세에 라이나는 차츰 마음을 열었다.

몸이 편하지만 심적(心的)으로 힘들었던 시녀보다는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는 삶을 그리게 됐다.

그래서 백작이 아르펜과의 결혼을 제의하자 기꺼이 수락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성적으로 문란하다보면 원치 않는 자식들이 많아진다. 그리고 귀족의 수가 늘어나면 기존에 누리던 기득권이 훼손된다.

그 때문에 이곳도 조선의 양반들처럼 ‘정식부인(본부인 외에 2명의 부인까지 정식부인으로 인정)을 제외한 첩이나 시녀들의 소생을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성 밖으로 내쫒을 수도 없어 계집아이는 시녀로, 사내는 시종으로 부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다보면 아비가 자신의 딸을, 오라비가 이복 여동생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흠흠~ 가이아 귀족사회의 어두운 단면일 것이다.

아무튼, 팰리스가 이런 세세한 사정까진 아직은 몰랐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아르펜이 없었다면 팰리스는 분명 내성에서 시종으로 살았을 것이라는 사실!

“이제 알겠니? 우리 주군이 얼마나 고마우신 분인지.”

“···”

‘아뇨! 저에게는 아버지가 정말 고마우신 분이네요.’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지만 팰리스는 이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엄마를 보면 어색할 뿐이지 괴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이랴~”

‘이히힝~’

아르펜이 마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팰리스는 지나가는 투로 고마운 아버지에게 자신의 진심을 고백했다.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제 아버지는··· 당신입니다.”

“어험~ 이랴~ 어서 가자!”

순간적으로 흠칫거렸던 아르펜. 목소리 톤이 갑자기 밝아졌다.

이제 팰리스는 팰리스 파이온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의 아버지는 항상 아르펜 자신이란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리라.

* * *

이틀 후, 파이오니아.

“그럼, 팰리스~ 이제부터 잘 지내야 한다. 알았지?”

아르펜이 아쉬운 얼굴로 팰리스에게 작별을 고했다.

토머스는 벌써 피닉스기사단이 생활하는 건물로 달려갔고 피리온 또한 마법사들이 생활하는 건물에 짐을 옮겼다.

어젯밤까지 정든 가족들과 석별을 나눴던 팰리스도 이젠 파이온 백작과 그 가족들이 기다리는 영주의 저택으로 거처를 옮길 차례였다.

“네, 아버지!”

“이젠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고 말했지?”

“에이~ 우리끼린데요 뭘··· 그리고 그렇다면 뭐라고 불러야 해요?”

“그야 뭐··· 흠흠~ 아무튼 저기 집사양반이 오는 것 같으니··· 마지막으로 아들아~ 이제 그만 가야겠구나.”

“네, 아버지.”

“잘 살아야··· 큼!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요. 이랴~”

‘이히힝~’

잠시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똑바로 앞만 바라보며 마차를 몰던 아르펜. 내성 밖으로 나가는 순간 갑자기 등 뒤로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팰리스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하아~ 아버지! 앞으로는 아버지라고 부르진 못하겠죠?”

‘하지만 제 마음 속의 아버지는 항상 당신이라는 사실··· 결코 변치 않을 겁니다.’

팰리스는 아르펜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서야 몸을 돌렸다.

그러자 눈앞으로 새로운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이 생활하는 저택이 가득 들어왔다.

“하하하~ 환영합니다, 공자님! 소인 집사를 맡고 있는 엘리엇이라고 합니다.”

저택의 운영과 사용인들을 관리하는 집사 엘리엇이었다.

그는 팰리스에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순간, 그제와 어제 모친이 지겹게 말하던 집사에 대한 정보를 떠올랐다.

[물론, 이사벨라(1부인) 마님과 올리비아(2부인) 마님께 당연히 잘 보여야겠지. 하지만 팰리스 너는 엘리엇 집사님에게도 잘 보여야 한단다. 그분이 저택과 시종, 시녀들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실제니까. 그리고 알고 보면 집사님은···]

“아~ 엘리엇 집사님이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말씀 편하게 하시지요. 공자님은 영주님의 아들입니다. 아랫사람 입장에서 듣기가 참 민망합니다.”

“에이~ 그건 아니죠, 집사님! 제가 영주님 아들이지만 엄마의 아들이기도 하잖아요? 엄마가 집사님께 함부로 대하면 크게 혼내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요. 헤헤헤~”

“···”

팰리스는 의도적으로 비굴하게 굴었다.

엘리엇은 이런 팰리스가 의외였는지 잠시간 말을 아끼며 조심스레 팰리스는 살폈다. 그러다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그렇··· 군요. 라이나 그 아이가 제법··· 자식농사를 잘 지었군요.”

이 순간 엘리엇의 입가에서는 미소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눈빛 또한 팰리스의 뼈 속까지 모두 훑어보겠는 듯 날카로웠다.

‘알고 보면 엘리엇 집사님은 상당히 음흉해. 뒤끝도 작살이거든? 절대로 트집잡힐 일은 하지 말아야 해.’라던 라이나의 말이 맞았다.

그는 라이나가 주의를 준 ‘요시찰’ 중의 하나였다.

“하하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집사님.”

“하하하~ 저야말로··· 앞으로 공자님께서 저를 잘 보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에이~ 그건 오히려 제가 할 말이라니까요?”

“흠흠~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지금 대부인 마님을 비롯한 가족들이 공자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엘리엇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몸을 획 돌리더니 그대로 앞장서 걸어갔다.

짐마차로 싣고 온 짐들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로···

팰리스는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저택으로 향해 한걸음씩 발을 놀렸다.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께가 무거워졌다. 어깨의 짐이 아닌 마음의 짐 때문이었다.

‘나는··· 지지 않겠다!’

파이온 백작은 팰리스는 아들로 인정했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은 아니었다.

생판 모르는 사이인데다 지금껏 평민으로 살았던 팰리스를 자신의 가족으로 인정하진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집사가- 영주가 아들로 인정한 팰리스에게 -지금처럼 무도한 ‘짓’을 태연하게 벌이지 않았겠는가!

‘일종의 신고식이 있겠지? 그러나 난, 주인공이다! 주인공이 지는 것 봤어? 이리저리 좀 힘들겠지만···’

팰리스는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참고로, 라이나가 귀띔한 저택의 생활은 조선시대로 비유하면 내명부(內命婦)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집사는 환관(宦官)의 최고 우두머리에 해당했다.

알다시피 내명부는 각종 음모가 난무하는 요지경(瑤池鏡) 같은 세계였다. 팰리스의 앞날엔 험난한 가시밭길이 활짝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10. 팰리스 파이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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