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하면 잘살거 같지-33화 (33/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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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팰리스 파이온

가리발디 후작의 집무실.

“뭐, 실패했다고? 제이슨 자네 지금··· 나에게 이걸 보고라고 한 겐가?”

주세페의 노성(怒聲)이 집무실 안을 쩡쩡 울렸다.

데이비드의 실패소식이 알려진데다 그것도 한 달이 넘은 오늘에서야 겨우 전해졌기 때문이다.

“무려 한 달 전의 일이다. 아무리 놈들이 실패를 숨겼다지만 오늘에서야 보고하러 왔다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죄송합니다, 각하! 그런데 그것이··· 실패는 실패인데 절반의 성공입니다.”

“응? 절반의··· 성공? 그건 또 무슨 소린가?”

“그것이··· 파이온 영지는 실패했지만····”

“실패했으면 실패한 것이지 무슨 변명을 하려는 게지?”

“변명이 아닙니다, 각하! 본래의 목표는 분명 실패했습니다. 헌데, 파이온 영지와 인접한 영지 2군데에서 무사히 드워프 4개체를 확보했다고 합니다.”

“응? 인접한··· 영지? 내가 알기로는 그곳들은 계획만 세웠지 여건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시행은 한참 후로 미룬 곳으로 아는데···”

“그렇습니다, 각하! 아무래도 후작님께 성의를 보이기 위해 다소 무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이슨 자작의 말마따나 크리스탄 교단은 이번에 상당한 무리를 했다.

상거래로 치면 ‘첫 거래’였던 까닭이다.

한 달 전, 데이비드의 실패와 더불어 엄중한 부상까지 당했다는 급보를 접한 주교와 세인트는 급히 대책을 준비했다.

‘첫 거래’부터 실패한다면 자신들의 존재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해진 교단 수뇌부는 나중으로 미뤄놓은 체로키와 휴스턴 영지의 드워프들을 급히 처리할 것을 결정했다.

다행히 염려했던 두 영지들은 오랜 평화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 유별난 오크들의 출현에 깜짝 놀라 기사단과 병사 대부분을 투입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사실, 영지민을 보호해야할 영주의 입장에서는 실수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드워프는 전력적인 가치를 지닌 귀중한 존재였다.

아무튼, 이로 인해 안전한 내성에 마련한 드워프의 작업장이 허술해졌다.

이점을 노렸던 크리스탄교단은 특수부대를 투입했고 쉽사리 드워프들을 납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무난하게 성공시켰더라도 다소 무리한 면이 없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오크들이 파이온 영지 건까지 계산하면 연속으로 3번이나 출현한 셈이었다.

분명 크리스탄교단의 소행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몬스터를 조종하는 ‘비술’을 보유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당연히 중앙정부에서 크리스탄교단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 때문에 관리들의 분위기가 뒤숭숭했었군?”

“네, 각하! 조만간 중앙정부에서 크리스탄교단을 조사하거나 근거지를 찾아 확보하라는 지침을 하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긴 그렇겠군. 그럼, 자네의 대책은?”

“성공보수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드워프의 호송을 마치는 즉시 외부활동을 자제하라고 경고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겠나?”

“지금껏 잘만 숨어 다녔던 놈들입니다. 발각될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긴~ 놈들은 원래 그런 놈들이었지. 그럼, 그 건은 그렇게 넘어가고···”

‘으드득~’

주세페가 갑자기 이를 갈았다.

황제의 충견, 자베르 공작과 파이온 백작이 주도하는 황제파연맹에게 자신들 귀족파연맹이 압박당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들의 한축이었던 파이온 백작이 황도를 떠나 영지로 복귀했다.

파이온 백작에게 황제라는 보호막이 약해진 셈. 가만히 지켜본다면 천하의 주세페가 아닐 것이다.

“파이온 백작을 견제하거나 무슨 타격을 줘야겠는데··· 제이슨! 무슨 좋은 수가 없겠나?”

대뜸 좋은 수를 요구하는 가리발디 후작. 참으로 뜬금없었다.

그러나 제이슨 자작은 그런 주세페를 지금껏 모셔왔고 항상 준비된 지낭(智囊)이었다.

“후작 각하! 파이온 백작에게 영토를 무상으로 넘기는 건 어떻습니까?”

정적(政敵)에게 피와 살이 될 영토를 공여한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일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제이슨 자작이 대책으로 제안했다.

“영토를··· 준다? 자네의 자세한 설명을 들어야겠군.”

“후후후~ 역시 각하십니다. 각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영토는···”

영지민과 더불어 영주가 가진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자산일 것이다.

세금과 군사력을 모두 영토를 기반으로 얻어낸다.

그러나 모든 영토가 그런 건 아니다.

얻을 수 있는 이익에 아주 작은 반면 지출이 너무 커 계륵이 된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지역을 골라 두 세력 간의 화해와 관계개선을 가장해서 파이온 백작에게 무상으로 선물한다.

그럼, 황제의 견제에서 벗어나고 대외적으로도 좋은 평판을 얻을 것이다.

“오호~ 그러니까, 유지비만 잡아먹지 실제로 얻을 이익은 하나 없는 지역을 골라 미운 놈에게 선물한다?”

“그렇습니다. 다만, 이번 계획의 성격상 파이온 영지에 접한 지역이어야 합니다.”

알다시피 파이온은 제국의 동부에 있었고 가리발디 후작의 영토는 서부에 위치했다는 점이다.

자신이 보유한 영토에서 떼어줄 수는 없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럼··· 어디지?”

‘파이온백작에게 자신의 영토를 공여할 영주와의 협상. 그리고 그 보상에 대한 문제는 자신이 처리할 테니 자네는 그 대상지역이나 말해라.’가 생략되었다.

“체르키 영지의 아나톨리아입니다.”

“아나톨리아라면···”

파이온영지의 서부와 접한 산악지대로 주로 체로키 자작의 지배를 거부하고 도망친 농노. 그리고 각종 범죄자들이 숨어사는 지역이었다.

그곳의 주인, 체르키 자작은 토벌을 해서 얻을 이익이 너무 적어 거의 방치하다시피 내버려뒀고 그래서 아나톨리아는 무법지대로 변한지 오래였다.

참고로, 그곳을 관할하는 체르키 영지는 매년 곡물을 수입하는 곳이었고 최근에는 크리스탄 교단의 습격으로 드워프 2개체를 강탈당한 상태였다.

“몇 년간 곡물을 반값에 넘겨준다고 제시하면 눈이 뒤집어지겠군.”

“그렇습니다, 각하! 황제파연맹과 우리 귀족파연맹의 화해를 위한 선물로 포장해야 합니다. 그럼, 귀족회의에서도 무난하게 처리될 것이고 황제와 파이온 백작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호오~ 좋아! 아주 좋아~ 으흐흐흐~”

가리발디 후작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깃들기 시작했다.

* * *

‘덜거덕, 덜거덕~’

짐마차가 흔들거리며 그린 포레스트로 향하는 오솔길을 다시 거슬러갔다.

마부석에는 아르펜과 팰리스가 나란히 침중한 표정으로 앉았고 짐칸에는 이런 분위기에 동화된 토머스와 피리온이 나란히 앉아 지나쳐온 길을 바라보다가 가끔씩 뒤를 흘깃거렸다.

“···”

‘덜거덕, 덜거덕~’

“하아~···”

‘팰리스··· 앞으로 우린 어떻게 하지?’

피리온의 얼굴에선 고민의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로 지냈던 팰리스가 파이온 백작의 핏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신분의 차이가 크게 벌어졌고 둘 사이의 관계가 상당히 어색해졌다.

아니, 어쩌면 피리온 자신만의 생각일 지도 모른다.

팰리스는 아직도 몇 시간 전의 충격 때문에 그만의 세상에 갇혀 저렇게 멍하니 앉아 있지 않은가.

아마도 자신과의 사소한 문제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 계속 친구일까?’

마법사가 되면 최소 준귀족의 대우를 받는다.

그럼에도 영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차이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함께 지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이젠 ‘신분’이라는 커다란 걸림돌이 둘 사이를 가로 막았다.

더 이상 친구로 지낼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피리온이 이렇게 고민할 때 평소에 별다른 생각 없이 살아왔던 토머스 또한 고민하고 있었다.

다만 피리온과 달리 공돈(?)으로 생긴 100골드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으흐흐흐~ 야~ 피리온! 너 100골드를 어떻게 쓸 거야?”

“으, 응?”

“헤헤헤~ 100골드어치 빵을 사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봐! 정말 대단하지 않냐?”

이런 토머스의 너스레에 피리온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그거 좀 계산해 봐라. 100골드면 빵이 몇 수레가 될지를···”

“야~ 토머스! 친구라서 이 말은 안하려고 했는데··· 너! 생각이란 걸 하고 사냐?”

피리온이 토머스에게 시비를 걸었다.

알다시피 피리온은 어릴 적부터 토머스에게 얻어 맞아왔고 가끔씩은 쌍코피를 흘려왔던 아이였다. 당연히 지금껏 주눅이 들어 있었다.

“무슨 소리야? 야~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

“그럼, 이런 상황에서 네가 꼭 이래야겠냐?”

“야~ 지금이 도대체 무슨 상황인데? 그리고 내가 뭐! 내가 뭘 잘못했는데?”

정말 모르겠다는 듯 토머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행스럽게도 이젠 다(?) 컸다고 예전처럼 주먹부터 휘둘러 쌍코피를 터뜨리거나 하진 않았다.

“하아~ 그만하자, 그만해.”

“뭐야~ 말을 꺼냈으면 말을 해. 그래야 내가 알아먹지.”

“아이 씨~ 됐다니까?”

“이 새끼가 지금··· 계집애도 아니고 뭐하자는 거야? 안 그러냐?”

상황이 이쯤 되자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던 팰리스도 정신을 차리고 뒤를 슬쩍 흘깃거렸다.

토머스와 피리온이 등을 돌릴 상태라 이런 팰리스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계집애라니··· 하아~ 저런 녀석을 어쩌면 좋냐···”

“이런 씨··· 말을 하라니까?”

“야~ 토머스! 너 팰리스 친구 아니냐?”

‘치, 친구?’

토머스와 피리온이 말싸움하느라 몰랐지만 이 순간 팰리스가 흠칫거렸다.

“당연히 친구다. 내가 우리 아빠 다음으로 제일 좋아하잖아. 헤헤헤~”

“그렇다면 지금 뭐하는 거야? 팰리스가 지금 영주님의 아들이라는데.”

“으, 응?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였냐? 팰리스가 영주님 아들인 것이 무슨 문제냐고.”

“하아~ 아무리 멍청해도··· 야~ 팰리스가 이젠 친구가 아니게 됐잖아!”

‘피식~’

“너 되게 웃긴다? 팰리스가 영주님 아들인거랑 친구가 아닌 거랑은 도대체 무슨 상관인데?”

“응?····”

“?···”

토머스의 말에 피리온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몰래 엿듣던 팰리스도 다시금 흠칫거렸다.

“흠흠~ 무슨··· 상관이냐고?”

“그래! 팰리스가 영주님 아들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쩔 건데? 그럼, 친구가 아닌 거냐? 친구는 그냥 친구잖아.”

“그, 그렇···네? 그럼 계속··· 친구겠네?”

그제야 어둡던 피리온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지금껏 몰래 엿듣던 팰리스도 어느 정도 충격을 벗어나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아~···”

‘토머스··· 그래, 너와 피리온은 친구였지. 앞으로도 계속 친구로 지낼 것이고. 내가 영주님의 아들이라도···’

‘팰리스는 파이온 백작의 아들이다!’

그 말인즉, 팰리스 휘슬러는 아르펜 휘슬러의 핏줄이 아니라 브라이트 파이온 백작의 피를 물려받았다.

“에이~ 설마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해요?”

처음에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백작의 눈동자가 너무도 파랬다.

머리카락은 자신과 같은 밝은 금발이었고 얼굴 또한 부드러운 계란형이었다.

그에 반해 아버지 아르펜은 빨간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의 각지고 넙데데한 얼굴이었다.

DNA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아니,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팰리스가 딱 파이온 백작을 빼다 박은 아들이라고 말할 것이다.

지금껏 엄마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파이온 백작과 더 비슷했다.

‘그렇다면 백작님과 엄마가··· 불륜? 엄마가 영주님의 전속 시녀라고 했으니 혹시···’

소영주 레온 파이온이 현재 20살이고 본부인의 장남이었다.

자신이 출생할 당시라면 레온은 그때 9살. 백작은 이미 결혼하여 애까지 여럿 딸린 유부남이었다는 소리였다.

뜬금없이 중세시대 판 막장드라마가 펼쳐졌다.

불륜이 아니라면 작금의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아~···”

‘아버지를 어떻게 대하고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하지?’

칠성시절에 재미나게 시청했던 ‘아현동 마님’에서도 이와 비슷한 설정이 나왔었다.

당시에는 보는 재미가 참 쏠쏠했었는데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되었다.

재미?

재미는커녕 가슴 속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지금껏 자신을 친아들로 착각하고 애지중지 키워왔던 아버지 아르펜이 불쌍해서···

10. 팰리스 파이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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