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하면 잘살거 같지-20화 (2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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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탄교단의 어느 비밀 지부(支部).

어두운 실내, 가냘픈 빛줄기가 각진 네잎 클로버와 유사한 상징물(이미지 참조)이 비춰주고 있었다.

그 부근에 하얀 수염이 탐스러운 노인이 서있고 갈색 로브차림의 30대 남성이 한쪽 무릎을 꿇고 노인을 말을 조용히 경청했다.

“···우리 크리스탄교단의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반드시 완수해야 할 것이야. 데이비드군 이제 그만 출발···”

“···”

“허허허~ 그래~ 이번 역사(役事)는 신실한 자네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게야. 세상의 법을 어기고 이종족을 노예로 잡아오라는 건 분명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겠지. 아암~ 그렇고말고.”

“아, 아닙··· 니다. 주교님.”

데이비드는 자신의 말과 달리 여전히 얼굴이 굳어 있었다.

“아니, 자네의 마음이 틀리지 않아. 나조차도 처음엔 그리 생각했었으니.”

“그렇다면 주교님은 왜 저에게 그런 명령을···”

“내가 아니다. 세인트께서 그리 결정하셨다. 그리고 세상의 법은 인간을 위한 법이지 하늘의 법이 아니다.”

“하늘의··· 법? 아참~ 세인트께서요?”

“그러하네, 데이비드. 괴롭겠지만 드워프를 잡아오란 명을 직접 내리셨단 말이다. 크리스탄의 신실한 종 데이비드야~ 아직도 망설이는가?”

“아, 아닙니다. 세인트께서 결정하셨다면 우리가 모르는 깊은 뜻이··· 세인트의 뜻은 곧 크리스탄님의 뜻입니다.”

“그렇다. 세인트의 결정은 곧 크리스탄님의 뜻이지. 하찮은 우리들이 그분의 깊은 뜻을 어찌 헤아리겠느뇨.”

“그렇습니다, 주교님. 그럼, 저는 이만 출발하겠습니다.”

표정이 밝아진 데이비드가 물러나와 흑색로브차림의 호위병 둘 사이를 지나쳐갔다.

호위병 둘은 굳건한 바위를 연상시켰다.

기다란 로브로 온몸을 가렸지만 억센 근육들이 빨간 눈동자와 어울리는···

뭐, 빨간 눈동자?

게다가 이지(理智)를 상실했는지 초점이 맺혀있지 않았다. 로브 속을 들여다보면 더욱 놀랄만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닌··· 오크였다.

* * *

파이오니아성 영주대리의 집무실.

5년이 지난 오늘도 메이플은 서류더미 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5년 전의 모습과 살짝 달라져 있었다.

과거에는 그 혼자서 영지의 서류들을 모두 처리했다면 지금은 제법 자란 팰리스와 피리온을 조수(助手)로 부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음은 공중화장실과 거름의 생산 문제로군. 피리온 군은 그에 관련된 서류를 나에게 주고 그래··· 팰리스군?”

공중화장실과 거름의 사용은 칠성시절에 읽었던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소재였다.

그리고 충분히 예상했다시피 팰리스가 자작에게 제안했던 사업이었다.

“네, 자작님. 3개월 동안이나 충분히 공중화장실에 대한 이용을 홍보했어요. 다음 달부터는 푼돈이나마 벌금을 물려 길거리에 똥과 오줌을 버리지 못하게 해야 해요.”

‘끄덕, 끄덕~’

“그렇지. 말을 안 들으면 회초리를 들어야지.”

“회초리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회초리까진 아닌데. 그건 좀 너무해요.”

“하하하~ 말이 그렇다는 뜻이다. 흠흠~ 팰리스군, 그래 거름의 생산 건은 얼마나 진척되었지?”

“어제 성 밖에 조성한 곳을 찾아가 확인했는데요? 책에서 나온 것처럼 똥과 오줌이 잘 삭았더래요.”

“흐음~ 그렇다면?”

“네, 조만간 밀을 파종해야 하니깐, 빨리 땅에 뿌리고 갈아엎어야 해요.”

참고로 가이아대륙에서는 거름이나 퇴비를 사용하지 않았다.

사람이 부족하면 부족했지 삼포제(三圃制)로 윤작(輪作)할 땅은 비교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팰리스가 이런저런 사업을 추진하는 데에는 식량을 증산하여 영지민의 배고픔을 없애겠다와 같이 무슨 거창한 뜻으로 시행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거름이라는 소중한 ‘아이템’을 공개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무슨 대인배도 아니고··· 우리 집은 농사를 안 짓거든? 내가 다스리는 영지라면 또 모를까! 그런데··· 크흑~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어.]

그렇다. 거름은 공중화장실을 건설하며 그 해결책으로 어쩔수 없이 공개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 모태가 된 공중화장실 사업은 팰리스가 도저히 못 견딜 (가정교사의)주거환경 때문이었다.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어. 세상에··· 먹고 자는 집밖으로 똥과 오줌의 냇물이 흐르다니. 우웩~]

안타깝게도 가정교사는 영주자제들의 유학 때문에 내성이 아닌 외부에서 생활했다. 그런 그와 생활하며 배워야 하는 팰리스 일행은 더러운 집에서 일주일의 3일을 지내야 했다.

집밖으로 매일 똥과 오줌의 강을 봐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각설하고, 팰리스는 아직도 어린아이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약간의 윤색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것이 필요한 시점, 메이플 자작이 다시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정말로 밀의 생산량이 늘어날까? 먹는 문젠데, 밭에 더러운 그것을 막 뿌려도 괜찮을지···”

파이온 영지는 자급자족에 살짝 부족해 20%의 곡물을 수입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농사 한철을 망치면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다. 게다가 거름의 정체는 마른 잡초더미에 똥과 오줌을 뿌려 삭힌 오물덩어리였다.

“도서관의 오래된 책에서 봤어요. 호빗들이 그렇게 농사짓기 때문에 수확량이 엄청나다고 했어요. 책 제목을 잊어버려서 다시 찾아내기가 좀 곤란하지만요.”

이런 방식이었다.

출처를 밝히기 곤란했던 팰리스는 영주의 도서관에서 얼핏 봤는데 책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둘러댔던 것이다.

그런데 팰리스가 왜 유학(?) 초기가 아닌 5년이 다 되어서야 이런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을까?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분명 달랐을 것이다.

아무리 어려도 즉각 여러 사업들을 시작하여 척척 성공시켰을 것이다.

[젠장~ 현실은 소설이 아니라니까? 나는 천재가 아니야! 지난 전생을 그저 그런 보통사람으로 살았단 말이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 팰리스 일행이 가정교사의 집에 도착하여 첫 수업을 시작할 때였다.

“너희들 이름이 팰리스, 피리온, 토머스라고 했었지? 자~ 지금부터 공용문자를 배워보자.”

간단하게 안면을 튼 가정교사는 두꺼운 교본을 나눠주곤 나무판에 아이들이 배워야할 공용문자들을 차례대로 쓰기 시작했다.

‘아~ 드디어! 드디어 이곳의 공용문자를 배우는구나.’

‘쓰윽, 쓰윽~’

“아~····”

순간, 팰리스는 작은 탄성과 함께 눈물이 핑 돌았다.

피리온과 토머스도 마찬가지였는데 각각 배움에 대한 감격과 하품 때문이었다. 팰리스는 이런 둘과 사정이 전혀 달랐다.

“고, 공용문자가··· 상형문자였어?”

가이아의 공용문자가 한자(漢字)와 같은 표의문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팰리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이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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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천재는 누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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