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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하면 잘살거 같지-15화 (15/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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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안 도와줘도 됐었는데. 나 혼자 해결할 수도 있었는데.’

팰리스가 속으로 불평한 것이 진실이었다.

실제로 오크들은 도망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화를 내는 ‘아들바보’에게 그런 진실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전생의 칠성도 많은 자식들을 키워냈었다. 그래서 지금의 아르펜이 어떤 심정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럴 때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 해. 연기를 해서라도!’

나무에서 내려온 팰리스는 재빨리 아르펜에게 머리를 숙이곤 용서를 구했다.

“아빠.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이이~····”

아르펜은 걱정과 안도감, 분노의 여러 감정들이 어우러져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눈동자도 마구 흔들렸다.

“용서해 주세요, 아빠. 네?”

“네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알고 있니?”

“네, 아빠. 아빠랑 어른들의 말을 안 들었어요. 위험한 이곳에 왔어요. 잘못했어요, 아빠~”

“이이~···”

‘아직도 화가 안 풀리셨나? 아무래도 결정적인 무엇이 필요해.’

“아, 아빠~ 무서··· 무서웠쪄요, 으앙~”

‘무서웠쪄요라니··· 신이시여! 정녕, 제가 이랬단 말입니까!’

팰래스는 결국 미인과 어린아이의 만능해결사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아르펜의 다리에 매달리며 서럽게(?) 흐느꼈다.

팰리스는 남들 몰래 눈 주위를 강하게 자극했다. 눈물을 흘리기 아니, ‘만들기’위해서···

“으흑~ 으흐흑~”

이런 혼신을 다한 연기 덕분이었을까? 아르펜의 마음이 금세 진정되었다.

아르펜은 눈물을 흘리는 아들을 자신의 넓은 품에 안았다. 그리곤 팰리스의 등을 두드리며 다정하게 위로했다.

“흑흑~ 아빠···”

“괜찮다, 팰리스. 이제 다 괜찮아.”

“얼마나 무쪄웠는데요. 흑흑~”

“괜찮다. 아빠랑 아저씨들이 나쁜 오크들을 모두 물리쳤단다.”

‘아, 네에~ 그러셨겠죠. 그나저나 상처부터 빨리 소독합시다.’

“흑흑~ 다리가··· 다리가 너무 아파요.”

“어, 어?”

아르펜의 눈동자가 다시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들의 바지가 피에 흠뻑 젖었기 때문. 부하들을 닦달해 아들의 상처부터 소독했다.

일단은 지금처럼 응급처치를 한 후에 마을의 신관(이지만 팰리스에겐 술주정뱅이) 제랄드에게 보여 깔끔하게 ‘완치’할 것이다.

참고로, 도끼에 스친 상처라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가벼운 자상이라 술주정뱅이 신관이라도 흠집(?)없이 치료할 것이다. 그래서 아르펜은 마음을 놓았다.

팰리스에겐 다행스럽게도 이런 부산스러움으로 인해 오늘의 잘못을 어찌어찌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팰리스. 이곳에는 왜 왔던 거니? 아참~ 널 탓하려는 게 아니다.”

“그, 그게···”

‘말해야 하나? 3일 후의 생일날 짠하고 선물하면 좋았을 텐데.’

다소 일렀지만 솔직하게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숨겨야 내용은 대충 숨길 것이다.

“아빠에게 드릴 선물 때문이요.”

“선물? 아니, 선물은 왜 이런 곳에서··· 아니, 그게 아니지.”

아들바보 아르펜이 갑자기 팰리스와 높이를 맞추더니 팰리스의 어께에 양팔을 살며시 얹었다.

그리곤 진지한 교관모드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

“팰리스~ 내 말을 꼭 명심해라.”

“네, 네?”

‘뭐, 뭐냐! 갑자기 이런 분위기는····’

“더 이상 선물 같은 건 필요 없단다.”

“···”

‘보시면 환장할 각궁인데요? 실제로 확인하면 후회하실··· 가만! 더 이상··· 이라고요? 그게 무슨 뜻이지?’

“네가 그 어떤 것을 선물해도 소용없단다. 아빠랑 엄마는 그보다 더욱 기쁘지가 않을 테니깐.”

“···왜요?”

“팰리스~ 세상의 어떤 귀중한 것이 너보다 소중하겠니. 네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었다. 아니, 선물이고, 선물일 거야. 알았니?”

그렇다. 아르펜 부부에게 가장 귀중한 선물이 바로 팰리스 그 자신이었다.

“네, 네?”

“너의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기쁨이었다,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기쁨일 것이고, 즐거움일 게야.”

팰리스는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가슴 깊숙이 아릿해지면 잊고 지내던 전생의 자식들까지 생각났다.

이번엔 연기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저도 모르게 아르펜의 품에 덥석 안겼다.

“팰리스~ 지금처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알았니?”

‘토닥토닥~’

아르펜은 다시 품에 안긴 아들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위로했다.

가벼운 토탁임은 팰리스의 마음속으로 매섭게 스며들었다. 정신과 육체의 괴리감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네··· 아빠. 고마···”

‘고맙습니다··· 아버지! 나는 당신은··· 아들입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신파극이 따로 없었다. 레인저들도 모두들 입가에 미소를 그려냈다.

허나, 이곳을 대충 정리해야할 때였다.

오크의 심장을 갈라 확인하거나 사체를 매장하던 토머스의 아버지, 하든. 무슨 생각인지 오크의 고통을 덜어주려다 말고 아르펜에게 다가왔다.

“대장! 이런 기회가 흔히 오는 것도 아닌데, 지금··· 어떨까요? 일부러 한 놈의 숨통을 남겨놨는데요.”

하든은 명줄을 겨우 이어가는 깜장 코딱지를 가리키곤 팰리스를 눈짓해 보였다.

“뭘 어떡···· 아~ 그거? 그런데··· 지금?”

‘뭐지? 이 암호 같은 대화들은··· 아무래도 나와 관계있는 것 같은데.’

팰리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너무 어리지 않을까?”

“에이~ 아니죠. 이런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안 그래요? 팰리스는··· 남자니깐!”

“흐음~”

아르펜이 주저하자 피리온의 아버지, 라파엘이 끼어들었다.

“그래요 대장. 팰리스는 이곳 그린 포레스트에서 살아갈 남잡니다. 레인저의 아들이니까요.”

이쯤 팰리스도 대강을 눈치 챘다. 아마도···

‘내 손으로 직접 오크의 숨통을 끊으라는 뜻이겠지요?’

그랬다. 굳이 그린 포레스트가 아니더라도 가이아는 몬스터와 자주 접촉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어린 팰리스에게 첫 살생을 경험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해했어요. 영화나 소설에서는 쉽게 막 죽이고 죽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닭 모가지를 비틀면···’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여러 느낌들로 인해 기분이 몹시 더럽다!

살짝 불거진 혈관에 사람보다 높은 체온. 그리고 살고자 목을 되돌리려는 헛된 몸부림···

처음이라면 상당한 충격까지 받는다.

그런데 닭 모가지도 아니고 사람을 닮은 이족보행 생명체의 명줄을 끊어야 한다.

그러나 팰리스가 어디 보통 사람인가?

“아빠, 아저씨 잠깐만요! 지금 저보고 오크를 죽이란 말이죠?”

‘그게 뭐 어렵다고! 내가 방금 전까지 오크들을 막 사냥했네요.’

“어, 어? 팰리스···”

“와우~ 역시 대장의 아들일세.”

차례로 아르펜과 아든의 반응이었다.

다른 대원들도 휘파람을 불며 팰리스의 용기를 응원했다.

팰리스는 발목에 착용한 대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힘겹게 명줄을 이어가는 오크에게 절뚝이며 다가갔다.

“뀌에에엑? 뀌엑, 꿰엑···”

기력이 다한 깜장 코딱지. 팰리스를 흘깃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아마도 최후를 예감하고 팰리스에게 고통을 덜어달라는 뜻이리라.

아르펜과 레인저들은 조용히 어린아이의 첫 살생을 지켜봤다.

팰리스는 뱃속에 능구렁이를 담고 사는 애어른이다.

“다음 생에서는 좋은 세상이나 인간으로 태어나라, 에잇~”

팰리스는 별다른 감흥도 없이 오크의 심장에 대거를 힘껏 박았다.

‘푸욱~’

“꿰에에엑~”

심장 깊숙이 대거가 박히고 깜장 코딱지가 마지막 단말마를 지르는 바로 그때였다.

대거를 통해 근육의 움직임들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외부의 물체를 밀어내려는 절박한 움직임들···

각궁으로 오크를 잡을 때의 기분과 전혀 달랐다. 천양지차(天壤之差)였다.

‘꿀렁, 꿀렁~’

칠성시절에 돼지를 잡고 소도 잡아봤던 팰리스였다.

그런데 지금의 몸은 최초의 살생을 접했다.

그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온몸이 바르르 떨리며 머릿속이 휑했다. 역시 머리로 알고 있던 지식과 실제는 달랐다.

레인저들은 이런 팰리스를 보고도 못 본척 배려했다.

팰리스 스스로가 이겨내야 할 그 만의 시련이기 때문이리라.

“오호~ 잘했다. 누가 보면 레인저로 착각하겠네.”

“하하하~ 처음인데도 아주 능숙하네? 대장처럼 아주 뛰어난 레인저가 될 거야.”

“우리 피리온도 저래야 하는데··· 에휴~ 정말 걱정이야.”

레인저들이 다소 과장스럽게 칭찬했다. 덕분에 팰리스는 떨리는 몸을 추스를 여유를 되찾았다.

‘고맙습니다. 아저씨들···’

구구절절한 말이 없어도 서로의 마음이 전해졌다.

이런 미묘하고 따뜻한 분위기는 깜장 코딱지의 심장을 갈라 뒤적이던 라파엘이 크게 소리칠 때까지 유지되었다.

“얏호~ 마정석이다.”

“뭐, 마정석이 나왔다고? 이놈은 하급인데?”

앞서 말했다시피 마정석은 몬스터의 심장에서 추출한다.

오우거나 트롤 같은 중급몬스터 5마리를 잡아야 겨우 하나를 얻는 확률이라고 한다.

당연히 하위 몬스터는 마정석이 나올 확률이 크게 낮아진다.

오크의 심장에서 마정석을 얻었다면 운이 무척이나 좋았다는 뜻이었다.

“와아~ 오늘 운이 아주 좋았네?”

“축하한다. 팰리스. 자~ 기념이다.”

라파엘은 피에 젖은 마정석을 나뭇잎으로 닦아 팰리스에게 휙 던져줬다.

‘휙~ 덥석~’

‘이것이··· 마정석이구나.’

각궁에 장착된 마정석은 특수한 처리 때문에 팥알 크기였다.

그에 반해 이번 것은 원석이라 그런지 엄지손톱 크기. 특수처리가 없었기에 아직은 부적이나 장식물 이상의 가치가 없을 것이다.

팰리스가 마정석을 챙기자 아르펜이 등을 보이며 앉았다.

“팰리스~ 자, 업혀라.”

“네, 아빠!”

팰리스는 평소와 달리 아주 자연스럽게 업혔다.

아들을 등에 업은 아르펜과 레인저들은 마을을 향해 이동했다.

마침, 석양에 노을이 붉게 물들어 아름다운 정취를 자아냈다.

마을에 돌아온 팰리스는 술주정뱅이(신관)에게 치료를 받고 집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쳤다.

‘아이고~ 이렇게 오늘이 가는 구나. 오늘은 참으로 길었어.’

팰리스의 생각처럼 오늘은 상당히 길었고 마침내 하루가 끝··· 나지 않았다.

오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아들의 각궁을 슬쩍 살펴본 아르펜이 안절부절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 저런 활이 내··· 선물인가?’

아르펜은 아들이 준비한 선물이 무척 궁금했다. 잠깐 만져보기만 했지만 아들이 들었던 활은 몹시 뛰어난 활 같았다.

“팰리스··· 그냥 잘거니?”

“네, 아빠. 근데 왜요?”

“아니 그게··· 네가 준비했다는 그··· 아, 아니다.”

진지한 아르펜이 사라지고 멍청한 ‘아들바보’가 다시 부활했다.

‘아하~’

팰리스는 이런 아버지의 내심을 눈치 챘다. 이상하게도 자꾸 놀리고 싶어졌다.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고 움~ 일찍 일어나야 된데요.”

“그래요. 여보~ 오늘은 피곤할 테니 일찍 재워요.”

“어, 어? 오늘은 괜찮은데··· 조금 늦게 자도 괜찮은데···”

아르펜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영문을 모른 라이나가 커다란 눈만 끔벅거렸다.

‘피식~’

‘다른 선물은 필요 없다면서요? 나 자체가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면서요? 크크크~’

맘 같아서는 계속 놀리고 싶었지만 오늘의 아르펜은 정말 듬직한 아버지였다.

“아참~ 선물이 있었네? 아빠에게 줄 선물을 깜빡했네요.”

‘꿀꺽~’

“흠흠~ 그, 그렇지?”

“어머? 팰리스~ 아빠 선물을 준비했니?”

“네, 엄마! 잠깐만 기다려요, 제가 금방 가져올게요.”

팰리스는 아르펜에게 선물할 (시위를 걸지 않은)각궁을 등 뒤에 숨겨 가져왔다.

호기심이 가득한 어머니의 눈동자와 기대감에 자꾸만 흔들리는 아버지의 눈동자가 서로 비교됐다.

“자, 이거요. 제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불쑥~’

팰리스가 짠하고 각궁을 아르펜에게 내밀었다.

아직 시위를 걸지 않은 각궁은 솔직히 볼품없이 보였다.

알파벳 ‘C'자 모양. 어찌 보면 서툰 솜씨로 만들다 실패한 (나무 재질의)허리띠 같았다.

“서, 설마 이것이··· 선물이었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당연하게도 아르펜은 눈에 띄게 실망했다.

“아이 참 여보~ 팰리스가 당신 생각해서 준비한 건데.”

라이나가 재빨리 치고 들어와 남편의 실수를 무마했다.

“아참~ 그렇지? 고맙다, 아들아~ 마침 허리띠가 없었는데 잘··· 쓸게.”

‘하아~’

당연하게도 아르펜은 사슴가죽으로 만든 꽤 튼튼한 허리띠를 착용하고 있었다.

“하하하~ 아빠, 그거 허리띠가 아닌데요?”

“허리띠··· 아니냐?”

“네, 아빠. 그거 활이에요, 활! 여기 시위도 있잖아요?”

팰리스가 시위까지 건넸지만 아르펜은 의심쩍은 얼굴로 가만히 들고만 있었다.

아니, 이곳의 상식대로 ‘C'자 모양 그대로 각궁에 시위를 걸었다.

알다시피 각궁은 ’C'자를 ‘I'자로 펼친 후에 뒤집은 ’C'자로 굽혀 시위를 걸어야 한다. 쉽게 말해 발랑 뒤집어 걸어야 한다.

“아~ 이것이··· 활이었구나? 그런데 팰리스~ 줄이 좀··· 길다?”

아르펜의 말에 팰리스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정말 힘겹게 참아야 했다.

‘줄이 길다고? 아이고~ 배꼽이야.’

5. 작은 세상으로 나와 미래를 준비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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