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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 돼! 속지 마라, 팰리스. 쟤들이 지금 공갈치는 거야.”
우습게도 티아늄이 친구들의 수작을 방해하고 나섰다.
“공갈··· 이요?”
“당연하지. 우린 명예로운 드워프다. 아무리 곤란한 상황이라도 정직한 종족이지.”
“야~ 티아늄! 그걸 사실대로 말하면 어떡해?”
“우리에게 너··· 이러기냐? 이건 배신이야, 배신!”
‘피식~’
“뭐, 배에~신? 아그들아~ 너흰 아직 어른이 아니라서 이런 거야. 우리 드워프 종족의 명예를 생각해야지. 어른처럼! 낄낄낄~”
“이익~ 저런 배신자를 친구로 뒀다니···”
“이제부터 저 자식은 친구가 아니다!”
“오호~ 그래? 어차피 성인도 아닌 너희 아이들과 어울릴 생각이 없었는데? 낄낄낄~”
티아늄! 참으로 숭악한(?) 드워프였다.
“이이~”
“저, 저 자식이··· 야~ 티아늄 이 새꺄···”
‘왁자지껄~ 웅성웅성~’
성격파탄자 여럿이 떠들어대니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졌다.
여기에 팰리스까지 틈틈이 끼어들어 계약을 맺자고 떠들며 돌아다녔다.
그러나 드워프들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모두가 입을 맞춘 듯이)티아늄에게 비법의 전수를 허락해달라고 요구만 할뿐 계약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팰리스는 별수 없이 계약을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 드워프와 안면을 텄다는 데에 의의를 둬야 했다.
“잠깐만~ 그나저나 허락? 팰리스가 허락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으, 응?”
“갑자기 뭔 소리야?”
“내가 그것을 순순히 알려줄 것 같아? 어림도 없지.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장가 좀 가려고···”
“뭐, 뭐?”
“저 저··· 저 새끼! 오늘 갈아 마시고 만다.”
티아늄이 다시 불쌍한 이들의 속을 뒤집었다. 주변이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급기야는 도끼를 휘두르며 실력행사에 나섰다.
‘저, 저런··· 말려야 하나? 그런데 어째 신이 난 얼굴인데. 뭐, 평소의 행실인가?’
흉흉한 분위기와 달리 피를 본 드워프가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이들에겐 다소 과격한 장난인 것 같았다. 그러나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
‘저 무식한 도끼에 잘못 맞으면··· 안 되겠다.’
팰리스는 성대에 마나를 이동시키곤 크게 소리쳤다.
“모오~두 동자~악 그마아안~”
'위잉, 위잉~'
너무 큰 고함소리라 단번에 소란을 잠재웠다. 세륨이라는 드워프는 깜짝 놀라 딸꾹질할 정도였다.
“딸꾹~ 뭐, 뭐야?”
“이제 좀 그만해요!”
"아, 알았다."
“티아늄, 내가 부탁한 물건이나 빨리 내놔요. 그리고 아저씨들! 아저씨들 문제는 내가 없을 때에 알아서 해결해요. 알았어요?”
“어, 어? 그래···”
“미안하다, 팰리스. 잠시만 기다려라.”
티아늄이 멋쩍은 얼굴로 (크고 작은)각궁 2장과 화살이 가득 담긴 화살통 2개를 챙겨왔다.
팰리스는 재빨리 주저앉아 허벅지를 이용해 알파벳 ‘C'자 모양의 활대를 거꾸로 굽혀 시위를 걸었다.
참고로, 크기가 큰 것은 아르펜에게 선물할 것이고 작은 것은 팰리스가 직접 사용할 각궁이었다.
그리고 화살통은 팰리스의 주문에 따라 통아와 애기살, 깍지를 별도로 수납하는 구조였다.
‘끄드드득~ 팅! 끄드드득~ 팅!’
“오호~ 역시··· 생각보다 훨씬 잘 나왔네요.”
팰리스는 빈 활을 쏴보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드워프들과의 인연을 이대로 끝내기가 너무 아쉬웠다.
“아참~ 티아늄. 계속 이곳에서 지낼 건가요?”
“당연히 아니지. 이제야 겨우 인정받았잖아? 참한 아가씨들과 데이트를 즐겨야지. 히히히~”
“그래요?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부탁할 것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오~ 그래? 그럼 우리들이 이곳에서 지내겠다.”
“그래, 그래! 그런 부탁은 우리에게 맡기면 된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이 작업장을 마련···”
티아늄의 반대는 곧바로 진압되었다. 친구들의 억센 손바닥이 티아늄의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찾아와라, 어린 친구.”
“그래, 너라면 항상 환영한다.”
“약속했어요? 그럼, 그때 모른척하기 없기에요?”
“그래, 아참~ 어린 친구. 우리가 이곳에서 생활하는 건 비밀이다. 만약, 다른 인간들이 찾아오면··· 알지?”
아마도 귀찮음을 피해 떠나거나 다른 곳으로 잠적할 것. 드워프와 짝짜꿍할 생각인 팰리스는 그런 상황을 절대로 원하지 않았다.
각설하고, 각궁 2장과 기타 부속품들을 챙긴 팰리스는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곤 티아늄의 동굴을 빠져 나왔다.
팰리스는 밝고 맑은 세상으로 나오자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그제야 각궁을 가졌다는 고양감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역시 사람은 지상에서 살아야 해! 아무리 잘 꾸며놔도 지하는 역시···”
사람이 생활하기에 너무도 열악했다.
아무튼, 밝은 세상에 나오고 당초의 목적까지 성공했다. 팰리스는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팰리스는 이제 겨우 6살. 평소의 그였다면 이곳에선 상당히 긴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각궁을 가졌다. 설혹, 상황이 아니다싶으면 마나를 이용해 도망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팰리스의 움직임이 다소 거칠었다.
‘부스럭, 부스럭~’
역시 방심의 대가는 확실했다.
레인저가 청소한다지만 이곳 동쪽 숲은 몬스터들이 간혹 출몰하는 꽤 위험한 지역이었다. 1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오크 10여 마리가 팰리스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취익! 작은 먹이다, 취이익~ 사냥감 그대로 선다, 취익, 취익!”
“취이이익~ 그래야 아프지 않는다, 죽는다. 취익!”
도망가지 않으면 아프지 않게 죽여주겠다는 ‘개소리’였다.
“오호~ 마침 잘됐다. 이 녀석을 시험해보자.”
팰리스는 오크들을 비웃곤 재빨리 각궁을 꺼내 화살을 재었다. 그리곤 덩치는 작지만 상당히 재빠른 녀석의 머리를 겨냥했다.
‘끼익~ 끄드드득~’
국궁은 본래 (깍지를 끼운)엄지에 시위를 걸고 검지로 감싸 당겨야 한다.
그러나 깍지를 착용할 여유가 없는데다 엄지손가락 사법을 따로 연습하지 않았다. 그래서 검지와 중지로 시위를 당긴 후에 잠시 숨을 멈췄다.
‘이제··· 가라!’
팰리스가 활시위를 놓는 순간,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
‘피리릿~ 빡!’
선두오크의 이마에 맞고 들어가 뒤통수로 살짝 삐져나왔다.
그 사이에 오크들은 50m로 안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팰리스는 침착하게 화살을 재고 다시 시위를 놓았다.
‘피리릿~ 퍽!’
‘뀌에에엑~
돼지 목 따는 소리, 이번엔 오크의 복부 깊숙이 틀어박혔다.
그러나 간격은 이제 겨우 15m! 아무리 마나를 다루는 팰리스라지만 오크의 신장은 팰리스보다 2배 이상이다.
중량으로 따지면 5배 이상이었다. 그런 녀석들과 드잡이하면 심히 불리할 것이다.
‘그래, 이쯤 도망 아니, 후퇴한다.’
“잠시 후에 보자. 에잇~”
‘다다다닥~’
팰리스가 갑자기 휑하니 사라졌다.
“취이이익?”
닭 쫓던 개가 된 오크들. 처음에는 황당한 모습을 보이다가 하얀 콧김이 보일 정도로 분노했다.
저렇게 작은 인간에게 자신들 전사 둘이 희생당했다.
“취익! 잡는다, 취익, 취익~ 찢어 죽는다, 킁!”
“취이익~ 무조건 찢는다. 킁! 오래 살려 찢는다. 취익, 취익!”
정신을 차린 오크들이 재빨리 팰리스를 추격했다.
타고난 사냥꾼답게 조를 나누어 목표물을 한곳으로 몰아가려고 했다.
‘다다다닥~’
“흥! 몰이사냥을 하시겠다고? 한번 당하지 두 번을 당할까보냐.”
팰리스는 추격해오는 오크들을 비웃곤 빠르게 달리면서 각궁에 화살을 재었다.
그리곤 기회를 엿보며 도주하다가 오른발을 강하게 찍어 몸을 획 돌리고는 곧장 시위를 놓았다.
팰리스는 명중 확인도 없이 다시 발을 놀렸다. 장궁이 아닌 작은 각궁이라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피리릿~ 퍽!’
‘뀌에에~ 뀍, 뀍~’
달리며 뒤를 흘깃 살펴보니 어께에 화살을 매단 오크가 화살대를 부러뜨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급하게 시위를 놓는 바람에 살짝 빗나갔으리라.
도망가던 팰리스가 갑자기 활을 쏘자 오크들이 깜짝 놀랐다.
방패라도 가졌으면 화살쯤은 문제없으련만 그들의 무장은 오직 창과 도끼, 글레이브 같은 공격무기 뿐이었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저격한다면 오크들은 필히 전멸당할 것이다.
비록 팰리스가 비록 쫓기는 몸이지만 그 때문에 사냥감은 오히려 오크들이었다. 팰리스가 도주하며 다시 시위를 놓았다.
“훅, 훅~ 가라!”
‘피리릿~’
호흡이 흐트러졌는지 이번엔 완전히 빗나갔다.
그러나 시간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결과는 동일할 것이다.
팰리스는 오크들의 몰이사냥을 피해 도주하며 간간이 화살을 날렸다.
가쁜 호흡 때문에 명중률이 떨어졌지만 거리를 계속 유지하는 팰리스가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피리릿~’
10분이 지나자 제대로 따라오는 오크는 5마리만 남았다.
바짝 약이 오른 놈들은 손에 든 무기나 돌멩이를 던지며 반격했다. 그러나 투사무기도 아닌 그저 어께와 팔로 던지는 바람에 중간쯤에 떨어졌다.
그 때문인지 팰리스는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살짝 마음을 놓았다.
“야~ 이 못생긴 오크들아~ 그거 하나 제대로 못 던지냐? 젖 먹던 힘까지 모아 던졌어야지!”
팰리스의 놀림에 덩치가 가장 큰 오크가 울분을 터뜨렸다.
그 녀석은 유력한 차기의 족장 후보자로 경쟁 오크부족에게 밀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나선 선발대의 대장이었다.
선발대가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한다면 부족은 필히 다른 부족에게 흡수, 소멸당할 것이다.
“취익, 취익! 화났다, 깜장 코딱지. 취이이익~ 작은 놈 죽인다, 꼬옥~ 취익!”
부족의 운명을 걸머진 깜장 코딱지. 방심한 팰리스를 향해 도끼를 힘껏 내던졌다.
다른 오크보다 월등한 자신의 모든 힘을 모아··· 그 때문인지 도끼가 매우 위험한 코스로 날아들었다.
‘휘리리릭~’
‘헉! 조, 좆 됐다.’
“으라차차~”
‘때굴때굴~’
팰리스가 몸을 던지다시피 옆으로 굴렀다.
덕분에 깜장 코딱지가 던진 도끼를 겨우 피했지만 허벅지를 스치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었다.
길게 배인 상처로 바지가 금세 젖어들었다. 역시 방심은 금물이었다.
상처가 깊진 않았지만 더 이상 간격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됐다.
“이런~ 낭패다.”
순간, 심장이 쫄깃해졌다. 재빨리 일어나 달렸지만 예전과 같은 속도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유리해도 여긴 가이아다! 쳇~ 방심은 금물이었는데.’
팰리스는 자신의 추태를 반성했다. 이곳은 한 번의 실수가 죽음으로 돌아오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이 당할 것이란 생각으로 발전하진 않았다.
‘나는 영웅이 될 사람이다. 여기서 죽을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팰리스는 손에 든 각궁을 등에 걸치곤 부근의 거대한 활엽수에 매달렸다.
“에잇~”
안전한 나무 위에서 저격한다면···
투사무기가 전무한 오크들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팰리스는 10m 위에서 가지를 뻗은 곳에 자리를 잡고 허벅지부터 대충 지혈했다. 그리곤 다시 각궁으로 무장했다.
그 사이 깜장 코딱지와 4마리의 오크들이 팰리스가 오른 활엽수를 포위했다. 당연하게도 팰리스는 안전한 위치에서 여유 있게 저격했다.
‘피리릿~ 빡!’
오크 한 마리가 머리에 화살을 달고 즉사했다. 나머지 오크들은 깜짝 놀라 즉시 활의 사각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팰리스에게 너무 유리한 상황이다. 통나무 같은 가지 위를 이동해 다시 시위를 놓았다.
‘피리릿~ 퍽!’
‘뀌에에~ 그르릉~’
이번에는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남은 오크는 이제 겨우 3마리. 그제야 깜장 코딱지는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들은 사냥꾼이 아닌 사냥감이었다는 사실을···
“취익! 작은 인간 강하다, 대장. 취익, 취익!”
“취익! 대장 도망간다. 킁! 그래야 산다, 우리. 취익!”
용맹한 깜장 코딱지. 부족의 샤먼처럼 똑똑하진 않았다. 그러나 어리석지도 않았다. 지금은 도망가야 한다고 결정했다.
오크들이 활의 사각을 이용하여 슬금슬금 팰리스와 거리를 벌렸다.
팰리스가 도망가는 그들을 굳이 죽일 생각이 없었지만 오크들이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그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고 그것이 그만 자신들의 명줄을 옥죄고 말았다.
난데없이 화살 10여 대가 오크들에게 날아들었다.
‘슈슈수숭~ 슈슝~’
‘퍽! 퍼벅, 퍼버버벅~ 팍! 퍼버벅!’
“꿰엑? 꿰에에엑~”
“꿰엑, 꿰에에엑~”
부족의 생존을 위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던 오크 선발대. 한순간에 전멸했다.
숲을 순찰하던 레인저가 팰리스가 사살한 오크를 발견하고 급히 출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이저를 지휘하던 아르펜이 피투성이(?) 차림의 아들을 발견하고 말았다.
분명 방금 전에 사살한 오크들에게 목숨을 위협 당했으리라!
아르펜의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불덩이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팰리스~ 너 이 자식··· 당장 내려와!”
당연하게도 아르펜이 크게 화를 냈다.
4. 팰리스의 선물-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