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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팰리스의 선물.
“그래~ 그거야! 그렇게 하면 되겠다.”
그로부터 2년 후, 팰리스가 무릎을 치며 일어나 집을 나섰다. 마침내 그만의 편법 즉, 팰리스식 마나축적과 마나활용법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팰리스식 편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마나축적. 이곳의 방식이 아닌 지구의 토납법과 단전호흡으로 마나를 모은다. 아르펜이 알려준 방식 즉, 몸을 혹사시키는 방식이 너무도 힘들었기 때문만은 절대 아니었는데, 덕분에 단전을 메주콩 크기로 키워냈다.
“지, 진짜다! 맹세할 수 있다고.”
아무튼 다음 단계, 마나의 활용법이 가장 중요했다.
이 때문에 2년 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고 대부분을 이 단계에 투자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곳의 기사들은 혹독하게 수련하고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터득한 감각, 이를테면 아르펜이 말했던 ‘요령’으로 마나를 집중시킨다.
유서 깊은 귀족가문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수련법이 따로 존재한다지만 어쨌든!
아르펜과 몇몇 대원들이 사용하는 방식인데, 마나의 출력을 필요로 할 때에는 몸 전체에 쌓인 마나를 손이나 발에 집중시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지금의 팰리스는 아직 몰랐지만 이것을 ‘마나회로’라고 부른다.
귀족가문의 이런 마나회로의 비전(秘傳)을 가지고 있는데 가문에 따라 위력이 크게 달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팰리스는 마나회로의 방식과 달리 마나를 몸 전체에 쌓지 않았다.
단전이라는 구슬 형태로 모아왔고 이런 방식은 혈도를 통해 이동시키거나 순환시켜야 한다.
당연하게도 그에게는 이곳의 방식이 적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정상 기사의 방식이라도 차용해야할 처지였다.
다행히 팰리스의 내용물(?)은 오랜 경륜을 가졌고 그래서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보며 해법을 연구했다.
“마나니 혈도니 따져봤자 나에게는 소용없다. 어차피 마나는 마나야. 몸 전체로 모아 (마나회로를 통해)한곳에 집중시키나 단전으로 모아 (혈도로)이동시키나 잘만 활용하면 장땡이다.”
그렇다. 엎치나 메치나 마나를 잘만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팰리스는 이렇게 큰 틀에서 고민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 이곳의 마나축적 방식도 일종의 마나호흡법이라는 점이었다.
“피부호흡! 기사들이 혹독한 단련으로 마나를 축적하지만 이것도 호흡의 일종이다. 그래 맞아. 피부호흡이야.”
사람은 허파뿐만 아니라 피부를 통해서도 호흡을 한다.
팰리스는 기사들의 마나축적 방식을 피부호흡이라고 이해했다.
그로인해 자신이 (단전의)마나를 절대로 활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前提)부터 깨뜨렸다.
“단전에 뭉친 마나를 풀어내어 힘을 쓸 손과 발로 이동시키면 해결된다. 물론, 아버지가 말한 그 ‘요령’이 필요하겠지?”
그럼, 실질적으로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이론에 불과하다는 점이었고 그 ‘요령’ 또한 아직 느끼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가능한지는 직접 수련해 확인해 봐야 한다.
마을 밖으로 나선 팰리스가 근처의 숲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수련한다면서 왜 인적이 드믄 동쪽 숲으로 나왔을까?
“쳇~ 집이나 마을에서 수련하면 편했을 텐데.”
그러나 그곳에서는 어머니와 사람들의 시선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이즈음 두 살 터울의 여동생, 헬레나가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었고 그래서 수련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예쁘고 귀여우니깐 봐주지만 좀··· 쳇~ 무슨 거머리도 아니고.”
여담이지만 라이나는 현재 셋째 동생을 임신한 상태였다.
그래서 등 따습고(여동생을 업어서) 배부른(셋째를 임신해서)여자가 됐다.
각설하고, 수련을 시작하려는데 오늘따라 숲이 아주 조용했다.
“뭐, 사냥하고 있으려나?”
멀리서 뿔나팔 소리가 들렸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영주성의 귀족들이 사냥하러 나온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동쪽 숲의 동물들이 죄다 도망갔을 것이다.
“뭐, 나와는 상관없겠지? 그래, 반드시 마나를 이동시켜 나도 귀족이 되어보자. 으라차차~”
팰리스는 평소 이용하던 바위에 가부좌로 앉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자신이 만든 이론에 의거, 단전의 마나를 오른손으로 이동시키고자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단전에 뭉쳐진 마나부터 풀어내야 한다.’
다행히 마나를 풀어내는 작업은 1시간가량을 노력하자 상당히 자연스러워졌다.
그렇다면 이제부터가 가장 중요한 단계. 의지를 일으켜 마나를 이동시켜야 한다.
‘후우웁~ 후우~ 후우웁~ 후우~’
‘마나야! 오른손으로··· 오른손으로 제발 이동해라!’
세상사 뜻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법. 팰리스가 염원하고 염원했지만 실패했다.
단전 부근에서만 서성일 뿐 좀처럼 움직이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절반의 성공이었다.
아주 미세한 양이지만 마나가 이동했는데 태아 시절에 만들어진 흔적(단전을 향해 마나가 유입되었던 방사형의 흔적)을 따라 마나가- 새어나가듯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혈도가 태어남과 동시에 굳어져 왔지만 팰리스의 몸에는 아직도 방사형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지금껏 토납법으로 수련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숲의 오솔길 같은 흔적이다 보니 통제에 따른 마나의 양이 너무 적었고 그래서 이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팰리스는 계속 마나의 이동을 염원했다.
그렇게 2시간이 흘렀다.
‘후우웁~ 후우~ 후우웁~ 후우~’
‘마나야! 오른손으로, 제발 오른손으로··· 으~ 실패인가? 오른손이 어째 묵직해진 것도 같은데.’
미세한 양이었지만 2시간가량을 계속 염원해왔다.
당연히 오른손에 마나가 모아졌고 그래서 얼핏 묵직하고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감각을 그가 제대로 알아차린다면! 그러나···
‘뭐, 기분 탓이겠지? 아니면 오른손에 쥐가 났거나. 그래, 3시간을 움직이지 않아서 그럴 거야.’
안타깝게도 팰리스는 이것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으~ 이쯤 그만하고 내일 다시 도전하자.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목덜미도 서늘해졌다.
불현듯, 아르펜의 잔소리가 떠올랐다.
[새소리까지 들리지 않는 숲이라면, 팰리스! 그때는 아주 위험한 상태야. 아빠랑 약속하자. 그때는 무조건 돌아온다고.]
“너무··· 조용해!”
아무리 사냥 중이더라도 새소리 정도는 들려야 한다.
그런데 이곳이 너무 조용했다. 아니다. 방금 전부터 이상한 소리가 얼핏 들려오기 시작했다.
참고로, 다른 숲과 달리 이곳 동쪽 숲은 간혹 몬스터가 출몰한다고 한다.
‘다다~ 다다다닥~’
‘부스럭, 부스럭~’
저도 모르게 소리가 들려오는 관목(灌木) 숲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팰리스 또래의 아이들이 급하게 나뭇가지를 밀치는 소음. 그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러다···
“끽끽, 끼이~ 이익?”
“어, 어?”
빽빽한 관목 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민 80Cm가량의 이족보행 생명체. 팰리스와 눈이 딱 마주쳤다.
“고, 고블···린?”
팰리스보다 키가 살짝 작은 생명체. 처음 보았지만 직감적으로 고블린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너무도 놀란 팰리스가 입만 벙긋거렸다.
놈도 당황했는지 잠시간 얼어붙었다.
‘모, 몬스터라니···’
지금껏 곱게(?) 자라 체감하지 못했지만 가이아는 아주 위험한 세상이었다.
[뭐, 몬스터? 걱정마라, 팰리스. 아빠와 아저씨들이 좀 세잖니? 우리가 매일 청소해 놔서 안전하단다. 그런데 왜 그런 눈으로··· 지, 진짜라니깐? 아무튼 아들아~ 동쪽 숲으로는 가지 마라. 거긴 길 잃은 몬스터가 가끔 나타나거든? 절대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몬스터와 마주치면 무조건···]
‘도망! 빨리 도망가야 해!’
고블린이 작고 약하다지만 몬스터는 몬스터다.
게다가 이제 겨우 4살이었다.
팰리스가 고개를 흔들며 재빨리 마을 쪽으로 내달렸다.
그제야 놈도 정신을 차리곤 관목 숲을 빠져나오는데··· 이런! 한 마리가 아니었다.
‘부스럭, 부스럭~’
“끼익~ 끽, 끽~”
“으아악~ 사람 살려! 고블린이 나타났어요.”
도망가며 흘깃 뒤를 살펴보니 고블린 30여 마리가 줄줄이 관목 숲에서 빠져 나왔다. 아니, 녀석들에 이어서- 맞상대하려면 병사 2명이 필요하다는 몬스터인 -오크 5마리까지 녹슨 도끼를 휘두르며 관목 숲을 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무리에서 떨어진 오크들이 고블린 무리를 만나 사냥하던 중이었으리라.
“이런 미친··· 으아악~ 오크도 나타났어요.”
팰리스가 도망치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러나 동쪽 숲은 본래 인적이 드믄 곳이다.
아무리 소리쳐도 구원해줄 어른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참고로, 팰리스가 아무리 단전을 만들었다지만 비무장에 몸 자체가 어렸다.
소설처럼 몬스터와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단전만 만들었지 그것을 이용할 방법이 없었다.
“헉, 헉~ 사람 살려요~ 몬스터요, 몬스터!”
‘젠장, 아버지 말을 들을 걸!’
뒤늦게 자책했지만 후회는 항상 늦은 법이다.
트롤이나 오거도 아닌 가장 하위의 몬스터에게 당할 위기라니··· 위급한 상황임에도 왠지 억울했다.
거 있잖은가!
‘소설에서 보면 한 번에 몇 마리씩 썰어버리는 몬스터인데.’
그런데 소설과 달랐다. 한눈에도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오크처럼 상당히 강해 보였다.
오크가 추격하자 고블린들이 더욱 빨리 달렸다.
자연, 팰리스와 고블린의 간격이 빠르게 좁혀졌다.
“헉, 헉~”
전력으로 5분가량을 달리자 다리가 무거워지고 숨이 가빠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래도 달려야 한다.
만약 고블린에게 따라 잡힌다면···
“헉헉~”
‘잡아··· 먹힌다! 이러다간 정말 죽겠어.’
살기 위해서는 심장이 터지도록 달려야 한다.
‘스르르~’
천운인지 목숨이 위험해지자 몸이 절로 반응했다.
단전의 마나가 풀려나와 ‘파워’가 절실했던 다리로 이동했던 것. 태아시절에 만들어진 그 방사형의 흔적을 통해 이동했던 것이다.
자연, 팰리스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헉헉~ 어, 어?”
‘방금 전에 살짝 느꼈던 따뜻하고 묵직한 기운··· 설마, 이것이 바로 그···’
단전에서 다리로 이동하는 느낌에 달리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팰리스는 아르펜이 말했던 그 ‘요령’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요령을 깨우치자 그제야 자의적인 마나의 통제가 가능해졌다.
팰리스가 마나를 사용하자 몬스터와의 간격이 늘어났다. 그러나 몸이 작고 어리다보니 간격을 크게 벌리지는 못했다.
지금은 어른들의 구원이 절실했다.
“헉, 헉~ 사람 살려요! 몬스터요, 몬스터!”
‘젠장! 이러다간 내가 먼저 지치겠네. 그래, 마나를 목으로도 보내보자.’
“후웁~ 사~아람 살려요오~ 모~온스터가~ 나타났어요오~”
일부의 마나를 성대로 이동시키자 엄청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주 큰 목소리라 잘만하면 마을에도 전달됐을 것이다.
이젠 어른들이 구해줄 때까지 놈들에게 따라잡히지 말아야 한다.
팰리스가 흘깃 뒤를 살펴보니 고블린을 바짝 따라잡은 오크가 막 도끼를 휘두르려고 했다.
“취익! 작은 먹이 죽는다. 취익!”
“취이익! 작은 너, 죽는다. 큰 우리 행복한다, 킁!”
‘휙, 휙~’
“끼이, 끽~ 켁~”
고블린 2마리를 사냥한 오크들.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번들거리는 눈으로 팰리스까지 노려보며 달려왔다.
그런데 잠깐! 오크가 2마리뿐이었다.
“헉, 헉~”
‘다른 놈들은 어디로··· 이, 이런~ 염병할!’
경악스럽게도 한동안 사라졌던 오크들이 다시 나타났다.
문제는 마을 쪽에서 2마리 나머지 한 마리는 남쪽을 봉쇄하며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몰이사냥을 위해 우회했으리라.
팰리스는 어쩔 수 없이 유일하게 열려진 북쪽으로 달렸다.
더욱 큰 문제는 이곳도 가시덤불 때문에 조만간 길이 막힐 것이라는 점이다.
“헉, 헉~ 아차~”
‘큰일이네. 이쪽은 곧 막다른 길인데.’
시시각각 가시덤불이 다가왔다. 그만큼 생존의 시간이 줄어들었다.
마침내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야 말았다.
이젠 팰리스도 고블린도 도망을 멈춰야 했다. 그제야 오크들이 안심했는지 천천히 걸어오며 침을 흘렸다.
팰리스가 뒤를 흘깃거리며 가시덤불 속으로 뛰어들까 고민하던 바로 그때였다.
빽빽한 가시멀찍이 덤불 너머로 두발로 선 검은 인영이 살짝 어른 거렸다.
뭔가를 잔뜩 이고 짊어진 것 같았다.
‘혹시··· 어른인가?’
“사람 살려요! 제발 살려주세요.”
우습게도 팰리스가 소리치자 고블린 무리도 덩달아 구해달라고 울부짖었다.
“끼익, 끽~”
“끽끽끽~끽~ 끽끽!”
그런데 검은 인영은 가만히 구경만 했다.
“···”
“구해주세요, 제발···”
“끼익, 끽끽끽~”
“···”
오크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마음이 너무 급해졌다.
“아이 씨~ 살려 달라니까요? 아저씨 제발 살려줘요, 네?”
“싫다, 내가 왜?”
“어, 어?”
‘뭐, 저딴 놈이···'
“새롭지만 낡은 자야. 지금은 너희와 만날 시간이 아니다. 지금은 네가 스스로 해결해라.”
‘새롭지만··· 낡은 자? 아참~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아, 아저씨 제발···”
“끼익, 끽끽~”
“뭐, 아저씨라고 했어? 나, 아저씨 아니거든? 어디를 보고 아저씨야?”
“···”
‘잘 안 보이는데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저씨가 맞네, 맞아.’
라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이만 갈 테니 알아서 잘 해결해라.”
팰리스와 고블린이 사정했지만 야속하게도 성격파탄자 아니, 검은 인영이 떠나버렸다.
게다가 오크 무리도 어느새 5m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렇다면 이젠 꼼짝없이 죽어야 하나?
‘후르릅~ 꿀꺽~’
“크크크~ 취익! 가만히 있는다, 취이익~”
“취익! 그래야 아프지 않는다. 맛나게 죽는다, 킁!”
살벌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오크들. 녹슨 도끼를 치켜들더니 팰리스에게 달려들었다.
4. 팰리스의 선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