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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린 포레스트의 특별한 아이
제국력 981년, 그린 포레스트.
김칠성 아니, 팰리스 휘슬러가 살아갈 행성은 자궁 속에서 고대했던 세계관 중의 하나인 판타지 세상으로 보통은 가이아 또는 가이아 대륙(행성)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거대한 타이판 제국이 인간이 점유한 대륙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지구의 중세시대와 비슷한 꽤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현재까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에는 지금처럼 평화롭지 않았다고 한다.
역사학자들은 당시를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불렀는데, 3개의 제국과 수많은 왕국들이 쟁투를 벌이느라 피가 마를 날이 없었고 이 때문에 몬스터와 전염병까지 크게 창궐했다고 한다.
전쟁과 전염병, 몬스터의 창궐까지 모두 잠재운 영웅은 쓰러져가던 왕국의 막내 왕자 알렉산더 타이판, 미천한 시녀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이복형제들의 견제와 모략을 이겨내고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알렉산더는 왕좌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내전으로 망해가던 왕국을 20년에 걸쳐 강력한 국가로 개혁했다. 그리곤 3개의 제국과 20여 개의 왕국까지 멸망시켜 사실상 대륙을 통일했다. 알렉산더는 전국시대에 조종(弔鐘)을 울리곤 통일제국 타이판의 초대황제에 등극했던 것이다.
참고로, 여기에서 ‘사실상’이라는 단어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사실, 면적으로 따지자면 인간이 살수 없는 지역 즉, 황무지와 몬스터가 활보하는 지역이 훨씬 더 넓었다.
여기에 광활한 북부초원과 남부밀림의 원주민 그리고 여러 해상왕국에게까지는 제국의 지배력이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곳들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너무 힘들어 의미가 없었고 초원과 정글, 해상의 ‘바바리안’은 제국의 안위에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기에 타이판 제국이 대륙을 지배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인간이 점유하는 영토 대부분을 타이판 제국이 통일했는데 문제는 강역(疆域)이 너무도 넓어졌다는 점이다. 제국의 영토가 너무 넓어졌기에 마법통신으로 관리하더라도 절대자 한사람이 제대로 경영할 수가 없었다. 가이아 행성이 지구보다 1.5배나 컸으니 얼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초대황제는 개국공신들을 팽(烹)하는 대신 충성과 상납금(세금납부)을 대가로 토지(영지)를 하사하는 쌍무적인 계약관계를 체결했다. 영지 내에서는 실질적인 왕이 된 개국공신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에게 충성하는 기사와 가신들에게 장원을 하사했고 기사와 가신들 또한 농노를 지배하는, 그런 사회로 재편했다. 학자들은 이것을 ‘봉건제’라고 부른다.
이렇게 봉건제도로 출발한 타이판제국은 천년을 유지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런데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는 말이 있다. 막강한 부(副)와 군사력으로 대륙을 통일하고 지금껏 지배해왔던 타이판 제국 또한 마찬가지. 천년이 흐르는 동안 황권이 약해졌던 반면 영지전으로 무능한 영주를 솎아 내왔던 귀족들은 점차 발언권이 강해지고 독립적으로 변해갔다.
이젠 세금만 납부한다면 아무리 황제라도 영지의 내정을 함부로 간섭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여기에 정치적인 문제로 속국 개념의 몇몇 공국이 떨어져 나왔는데 오늘날에는 사실상 독립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제국민들은 타이판 제국의 권위가 절대로 손상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하늘이 무너지면 무너졌지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파이온 백작과 자베르 공작 같은 수많은 무장과 충신들이 제국을 수호하고 황가(皇家)에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기 때문이었다.
기사(Knight) 중의 기사라 불리는 브라이트 파이온 백작!
제국 동부의 파이온 영지를 지배하는 변경백이었다. 몬스터의 침공으로부터 동부지역을 수호하는 ‘철벽’ 중의 하나였는데 혹자는 황제의 ‘예리한 칼’로 칭송하지만 뒤돌아서면 ‘무식한 사냥개’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그건 그들이 정적(政敵)이었기 때문이리라.
기사(Knight)다운 살벌한 별명과 달리 그는 고귀한 금발에 하얀 피부를 자랑하는 꽤 잘생긴 거한이었다. 소싯적에는 수많은 레이디와 염문을 뿌렸다고 소문났는데 지금도 30대(代)로 보이는 40대 중반의 고강한 미장부였다.
백작은 기사 중의 기사라는 칭호답게 항상 수련에 매달렸다. 유일한 취미마저도 사냥이라고 한다. 부유하지 못한 영지임에도 그린 포레스트라는 영주 전용의 거대한 사냥터를 유지할 정도였다.
“움하하하~ 덤벼라! 찰스, 피리··· 아니, 산적들아~ 내가 바로 그린 포레스트를 보호하는 알렉산더! 초대 황제폐하이니라. 겁도 없이 넘보다니··· 참으로 가소롭구나. 움하하하~”
한적한 숲속의 공터에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이들 10여명이 모였는데 또래보다 머리하나가 큰 녀석이 막대기를 마구 휘두르며 과장스럽게 소리쳤다.
“토마스 저 새끼가 또··· 쳇~ 나 안 할래.”
“나도 안 해. 오늘도 우리가 산적이냐?”
“맞아. 쟤만 항상 황제폐하고 우리는 계속 악당만 했어.”
한눈에도 아이들의 소꿉놀이로 보였고 전형적인 또래들답게 서로 주인공이 되고자 했다.
그런데 골목대장 토마스의 대응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녀석은 때로 반질거리는 주먹에 들더니 매섭게 눈을 흘기며 을러댔다.
“이런 썅~ 찰스, 피리온!”
“어, 어?”
“그리고 너희들··· 뒤질레? 오늘 함 죽어 볼텨?”
아무리 수가 많더라도 아이는 아이였다. 이들 사이에서는 그저 욕 잘하고 힘이 센 녀석이 대장이었다.
아니면 독기를 품고 악착같이 달려들어 코피를 터뜨리거나···
“아, 아니 그게··· 야~ 피리온. 빨리 어떻게 좀 해봐라, 응?”
온전한 코를 바랐던 찰스는 꾀돌이로 통하는 피리온에게 재빨리 당면과제를 떠넘겼다.
“어, 어? 토머스 그게··· 우린 너랑 노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그럼 뭐야? 오늘 코피 좀 제대로 흘려 볼까?”
“그게 아니고 사실은··· 그래, 약속! 깜빡했는데 말이야? 약속이 있었어.”
한눈에도 급조한거짓말로 보였다. 그러나 어리고 힘만 센 토마스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약속이··· 있었어? 누구랑?”
토마스의 물음에 피리온이 몸을 돌려 검지로 300m가량 떨어진 바위동산의 정상을 가리켰다.
아니, 위험한 정상부에서 가부좌로 앉은 한 남자아이를 가리켰다.
아이는 6살가량으로 보였는데 또래의 평민아이와 달리 하얀 피부에 밝은 금발. 허름한 차림새임에도 왠지 모르게 귀티가 흘렀다.
지금쯤이면 얼추 눈치 챘을 것이다. 그렇다. 그 아이가 바로 김칠성이었다.
아니, 이젠 팰리스 휘슬러로 살아가는, 정신연령 100세 이상(以上)에 전생까지 기억하는 이상한 아이였다.
찰스와 피리온은 거짓말을 진실로 둔갑시키기로 했다. 그래서 바위동산으로 급히 다가갔으나 바위 꼭대기는 어린아이가 오르기에 힘들고 위험했다. 그래서 바위 밑에서 팰리스를 향해 소리쳤다.
“····”
‘후우읍, 후우~ 후우읍, 후우···’
“야~ 팰리스! 안 놀고 뭐해?”
“그래, 빨리 내려와. 빨리 내려와 우리랑 함께 노올~자.”
‘후우읍, 푸후우~ 큭! 하아~’
‘이 녀석들이 또···’
아이들의 소란에 호흡이 흐트러진 팰리스, 아쉬운 한숨과 함께 지그시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파랗고 투명한 눈동자가 반짝거렸는데 저도 모르게 빠져들 것만 같았다.
‘에휴~ 내가 저런 꼬맹이들하고 친구 사이라니··· 한 대 줘 팰 수도 없고. 허허 참~ 인생이 뭔지.’
겉모습이 잘생기고 귀티 나는 아이였지만 팰리스의 속은 100세를 넘긴 노인이었다. 아무리 어린아이의 신체에 6년을 적응했다지만 좀처럼 현재의 상태가 익숙해지질 않았다.
“팰리스, 그렇게 이상하게 앉으면 힘들지 않아?”
‘꼬맹이들아~ 습관이 되면 이 자세가 오히려 편안하단다. 가부좌를 틀어야 마나호흡도 더욱 잘 되고. 알겠느냐?’
“그래 내려와, 내려와아~ 빨랑 내려와서 우리랑···”
아이들이 막 특유의 ‘땡깡’을 벌이려고 한다.
“그만!”
“··· 같이 놀~ 흡!”
“내가 뭐라고 말했지?”
툭하면 코피 타령이었던 토마스와 달리 그저 나직한 말투였을 뿐이다.
그러나 찰스와 피리온은 팰리스의 조용한 말을 더욱 어려워했다. 짜증 때문에 저도 모르게 스며든 마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에휴~ 참자, 참아. 녀석들이 무엇을 알겠어? 아직 철부지잖나. 나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것도 아니고. 그래~ 부랄 친구가 가장 소중한 친구라는 말이 있잖아?’
“찰스, 피리온. 지금처럼 수련할 때나 내가 무엇을 만들고 있을 때는 어떡하라고 말했었지?”
“그야 절대로 건드리지 말고 움··· 방해하지도 말라고··· 아차~ 미안해, 팰리스.”
“한 번만 용서해줘. 다음부턴 절대로 그러지 않을게, 응?”
친구 사이의 대화로는 상당히 어색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서는 이런 상황이 꽤 익숙한 것 같았다.
“그래? 흐음~ 그래 알았다.”
“용서해 주는 거야?”
“친구사이에 용서는 무슨··· 나는 좀 더 수련해야 하니까 너희들은 이만 가봐라.”
“알았어, 팰리스. 야~ 피리온. 빨리 내려가자.”
“그럴까? 아참~ 내려가면 토머스만 빼놓고 칼싸움하자.”
‘후다닥~’
두 아이는 서둘러 자리를 떴고 그제야 바위동산이 다시 조용해졌다.
팰리스는 마나호흡을 위해 다시 숨을 골랐지만 흐름이 깨졌는지 자꾸만 허튼 생각이 스며들었다.
그런데 잠깐! 팰리스의 말투가 상당히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는가? 방금 전에는 사투리가 전혀 없는 너무도 정상적인 말투를 사용했다.
지난 생에서 그토록 교정하려 했었지만 결국에는 고치지 못했던 전라도 사투리였다.
“흥~ 사투리? 고치려고 노력했다면 당연히 불가능했겠지.”
누가 알면 비웃을 테지만 갓 태어난 칠성은 내심 사투리 때문에 고민했었다. 산도(産道)를 빠져나온 후에 닥친 갑작스러운 추위에다 살인적인 폭행(?)에 시달렸음에도···
당신도 한 번 생각해보라.
“이봐, 거시기 거기, 이짝 좀 보더라고! 내가 분명 말했지? 거시기를 거시기하게 거시기하라고. 그려 안 그려?”
시대(時代)의 주인공이 전라도 사투리를 남발하면 어떻게 보이겠는가!
그런데 그 문제는 너무도 어이없게 해결되었다.
“NU! ?? ?CC~ E???···”
“응애~ 응애, 응애~”
‘머, 머시여~ 시방 머라고 씨불인 겨?’
갓 태어난 칠성은 몰랐지만 이곳은 판타지 세상이었다.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사용하는 언어부터가 지구와 달랐다. 새로이 말을 배우고 생각마저 이곳의 언어로 사고(思考)하는 바람에 사투리 문제가 정말 어이없게 해결되었다.
그렇다고 갓난아기의 생활이 마냥 순탄했던 건 결코 아니었다.
겨우 눈을 떴지만 시야가 너무 좁고 흐릿해서 사실상 장님이나 다름없었다.
‘피식~’
“그때는 먹고 싸는 것부터가 고난이었지, 아마? 이제야 생각하지만 정말 다사다난했었어.”
당시, 생소한 언어와 새로운 세상이 어떤 곳인지 파악하기 위해 잔뜩 긴장했던 칠성. 그의 입안으로 무언가 불쑥 들어왔다.
‘쑤욱~’
칠성은 부드럽고 달큰한 맛이 나지만 아주 거대한 살덩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그것이 바로 유방과 젖꼭지임을 깨닫고 저도 모르게 뱉어냈다. 98년의 생활이 가져다준 사회적인 본능이리라.
“응애~ 응애, 응애~”
‘아, 아짐씨, 남사스럽소, 잉~ 거시기가 참 거시기하네. 아무리 어무이라도 이라면 안 되지요. 안 그렇소?’
아기가 젖을 먹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아직은 ‘자신의 어머니’로 다가오질 못했다.
칠성은 새로운(?) 어미에게 괜스레 죄를 짓는 것 같았다. 허나, 아기는 너무도 허약했다.
솔직히 배도 슬슬 고파졌다. 여기에 갓난아기가 몇 시간째 계속 젖 먹기를 거부하자 모친 즉, 라이나가 크게 걱정했다.
“NU! NU! ?? ?CC~”
너무도 생소한 언어였지만 직감적으로 당황한 라이나가 자신에게 젖을 먹이려고 달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아직도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라이나의 간절함이 너무도 절절했다.
“응애~ 응애, 응애···”
‘하아~ 그래. 내가 졌소, 아짐··· 아니, 어무이··· 걱정마쇼. 이제부터는 착하게 젖을 먹을 라요. 배가 고파 그런 건 절대로 아니고, 나가 살려면 어쩔 수가 없겠지요?'
“NU! NU! ?? ?CC~”
“응애~ 응애, 응애···”
‘아따~ 알았다니까요? 그랴~ 이제부터는 먹어야지. 거시기~ 먹는 것이 남는 것이니까.’
‘쭈욱, 쭈욱~'
그제야 칠성이 거대한(?) 젖꼭지를 입에 물고 쭉쭉 빨아댔다.
그 순간 라이나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일 것이다.
‘고난’이라는 단어를 결코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칠성은 분명 젖꼭지를 빨았다. 그런데 원하는 것이 좀처럼 입안으로 들어오질 않았다.
“응애~ 응애,”
‘얼라리요? 거시기가 왜··· 안 나오남? 거, 거시기~ 젖꼭지가·· 고장 났남? 웜매 이런 씨발 것~’
3. 그린 포레스트의 특별한 아이- 2(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