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1 --------------
사랑병원 중환자실.
‘하아~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이었구나. 징그럽게 궁상맞게 살았었고···’
죽을 순간이 되면 자신이 살아왔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는 말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어가는 칠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지난 98년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일본인 지주에게 매를 맞았던 기억.
한밤중에 (나중에 아내가 될)춘자를 몰래 불러내어 물레방앗간에 데려가 거사를 치르던 기억.
그렇게 태어난 장남과 그 후에 낳은 생떼 같은 자식들을 힘겹게 키워냈던 기억들.
그리고 종업원이 이십여 명에 불과했지만 꽤 탄탄했던 공장을 IMF로 문을 닫아야 했던 기억들··· 망각의 늪에서 겨우 건져냈는지 드문드문 사라진 기억들이 너무 많았다.
죽음을 앞둔 어느 누가 만족하겠느냐마는 칠성은 지난 자신의 삶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나가 후회하는 건 아니여. 정말 후회하는 건 아니란 말이여. 그냥 나가 살아왔던 삶이 너무도 보잘 것 없어서 안타까울 뿐인거시여. 지, 진짜랑께?'
그렇다. 지난 삶에 대한 후회나 회한이 결코 아니었다. 그보다는 안타까움이 더욱 컸다.
칠성은 일제강점기의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그리고 고도성장기와 IMF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월을 살아왔다.
매우 수동적으로···
‘이번 생(生)을 글렀어!’라고 한탄해야할 진정한 세대일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지난 삶을 책으로 풀어내면 아마도 몇 권 분량을 가볍게 넘길 것이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평범하고도 아주 평범한 삶에 불과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일부러 자신의 우수함을 숨겼던 건 결코 아니었다.
부끄럽게도 남들보다 뛰어나지도 대단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그럴 깜냥이 없었을 뿐이다.
한때는 술을 엄청 마시며 자신이 부잣집에 태어나 잘만 배웠으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큰일을 해냈을 것이라며 술주정 부리기도 했었다.
그러다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검정고시에 도전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한계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솔직히 꺽쩍지근하지만서도··· 나의 대갈통은 공부할 대갈통이 전혀 아니었제.’
겸연쩍은 마음에 자식과 손자들에게는 생계 때문에 배움의 시기를 놓쳤고 그래서 머리가 너무 굳었다는 핑계를 댔다.
그러나 웬만하면 단번에 합격한다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검정고시를 각각 3수만에 합격하며 자신의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칠성이 상재(商材)나 무슨 손재주가 특출 난 것도 아니었다.
가끔은 똑똑하고 야무지다는 칭찬을 들었지만 그건 재능이 아니었다.
그저 '곰탱이'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이 바글대는 자식들을 먹이고 건사하기 위해 정신을 ‘빠짝’ 차렸을 뿐이었다.
아니,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발악’했기 때문이었다.
좋은 말로 표현하면 '노력형' 인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톡 까놓고 말하자면 그렇게 노력하고 발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런 환경 때문이었을까?
칠성은 떵떵거리며 살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중년 이후부터 살림이 나아져 부자들을 그리 부러워하진 않았다. IMF로 건실하게 운영했던 하청공장이 연쇄부도로 무너지기 전까지는···
이렇게 그는 정말 평범하고도 평범한 대한민국의 늙은이이자 췌장암 말기환자로 이제 곧 영원한 안식을 찾아갈 그런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 죽어가는 마당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자니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도 형편없는 사람이었던 건가? 아무리 그라도 남들보다 뛰어난 것이 하나쯤은 있었을 텐데.’
칠성은 아쉬운 그 하나를 찾기 위해 (마약성분의 진통제로 흐릿해진)머릿속을 마구 헤집었다.
솔직히 그것으로 마지막 위안을 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런 시도를 통해 자꾸만 가물거리는 의식을 놓지 않기 위함이 더욱 컸다.
지금 이대로 의식을 놓는다면 아마도 저승사자와 곧바로 맞닥뜨릴 것이다.
‘아~ 그려, 몸뚱아리! 나는 몸뚱이 하난 튼실했었지, 아마?’
췌장암 말기로 임종을 앞뒀지만 2달 전까지는 아주 건강했었다.
98년을 살아왔기에 상당히 장수했고 지금껏 특별하게 아파본 적도 거의 없었다.
‘허허 그것 참~ 내가 내세울 것이 몸뚱이 하나뿐인가? 정말··· 그런거여?’
칠성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약해진 몸뚱이는 주인의 명(命)을 수행하지 못하고 약한 신음성을 주위에 퍼뜨렸다.
“으으~···”
“아, 아버지!”
“아버지, 괜찮습니까?”
“어, 어떡해··· 흑흑~ 우리 아빠, 불쌍해서 어떡해···”
신음성이 흘러나오자 팔순에 다다른 장남을 시작으로 늙수그레한 자식들이 일제히 고개를 디밀었다.
칠성은 아직도 아빠라고 부르는 막내딸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의 몸 상태가 너무도 좋지 않았다.
진통제로 머릿속이 너무도 어지러웠고 자식들을 위로할 기운도 하나 없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환갑을 넘긴 막내딸에게 미소를 (힘들게)살짝 머금어 보였다.
‘토깽이 같은 내 자식 새끼들! 그려~ 나에겐 요로코롬 착한 자식들이 아주 많아. 그려 안 그려?’
자랑이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열셋을 낳아 열한 남매를 무사히 성혼시켰다.
그런 아들딸들은 각자 손자손녀들을 낳아 4대(代)까지 계산하면 200명을 넘길 엄청난 대가족을 이뤄냈다.
혹자는 이런 엄청난 대가족을 꼬집으며 ‘산업의 부속품’이자 ‘자본가의 노예’들을 많이도 '생산'했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소싯적의 칠성은 소학교에 입학하는 대신 (부모님의 논을 차지한)일본인 지주의 집에서 머슴으로 일해야 했었다.
첫아이를 낳은 아내에게 미역국을 먹이기 위해 염전에 가야했고 그곳에서 소금보다 더한 비지땀을 흘려야 했었다.
그런 그에게 가족은 절대로 ‘산업화의 부속품’도 ‘자본가의 노예’도 아니었다.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고생했지만 '고생덩어리'가 결코 아니었다.
그저 평범했던 칠성의 자랑거리이자 기쁨이었고 마음속의 보물이었다.
못 배운 것이 한이었던 그는 정말 힘들게 돈을 모았다. 칠성은 그렇게 번 돈을 모두 자식들의 교육비와 뒷바라지에 쏟았다. 그러나 자식들 또한 공부에는 그리 소질이 없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아주 흔하고 흔한 의사나 판검사는 하나도 없었다.
아니, 대학교 입학은커녕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겨우 마쳤을 뿐. 알고 보니 판검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되는 직업이었다.
아무튼, 손자 대(代)에서야 겨우 대학교를 졸업한 녀석이 나왔다.
그러나 소위 ‘SKY’와 같은 명문대학교가 아니었다.
“그래서 뭐! 그러니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어, 어? 가, 갑자기 왜 화를 내고 그러나? 오해야, 오해! 내 말은 자네 자식들이 못 났다는 말이 절대로 아니고···”
“거시기~ 이봐, 김사장. 내 새끼들은 달랐어. 그려 안 그려?”
“응? 뭐, 뭐가 말인가?”
“아무리 못 배웠어도 말이지? 내 새끼들은 남들과 달랐어. 거 왜~ 툭하면 사고치는 자네 애새끼들··· 그 싸가지 없는 애새끼들하곤 차원이 달랐단 말이지. 그려 안 그려?”
“이, 이 사람이 갑자기 애들 애기는 왜··· 이쯤 그만 하세. 내가 왜 자식들 이야기를 꺼냈는지 원.”
“흘흘흘~ 김사장, 자네도 알지? 내 새끼들이 얼마나 착하고 효심이 깊은지를··· 자넨 내 마음을 모를꺼여. 아암~ 그렇고말고. 허허허.”
10여 년 전에 친구와 나눴던 대화. 자식들은 칠성처럼 농사를 짓거나 공장을 전전했던, 남들의 눈에는 상당히 부족해 보이는 ‘산업역꾼’이었다.
그러나 칠성은 자식들 문제로 속을 끓여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한심한 성적표를 보여줄 때만 제외하면···
‘나의 자랑은 가족이여! 그래, 나의 인생은 절대로 실패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았어.’
칠성이 눈을 부릅떴다. 아니, 마음은 그리하려고 했지만 약해진 몸뚱이는 겨우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그때가 가까워졌는지 호흡이 힘들어지며 눈꺼풀이 너무도 무거워졌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힘들었던 건 칠성의 마음이었다. 이렇게라도 자신의 삶이 특별하다고 변명해야 하는 마음 말이다.
‘역시··· 나의 인생은··· 정말 평범했던가?’
“후우~···”
자식들을 키우고 희생하는 대신 자신에게 모두 투자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평범하고 궁상맞던 자신의 삶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특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희생과 헌신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환경이 주어진 시절(時節)이 야속했고 그렇게 살아야했던 자신의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마, 맞다. 나는 절대로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김칠성 알겠나? 나는 그저 세월이 야속했을 뿐이란 말이다.’
이런 칠성의 생각과 달리 조금은 다른 상념들이 자꾸만 끼어들었다.
‘그런데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뭔가 하나쯤은 만들어놔야 했는디··· 아니면 이노무 지랄같은 세상에 김칠성이라는 이름을 하나쯤은 남겨놨거나···’
그렇다. 이것이 바로 칠성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삶과 전혀 다른 생(生)을 살아왔다. 순간 안타까움을 회한(悔恨)이 대신하려고 했다.
칠성은 급히 늙어버린 자식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아니, 아니여! 나에겐··· 저렇게 착한 자식새끼들이 있지 않아? 뭐, 후회? 나는 절대로 후회하지 않겠다. 내가 저렇게 착한 애기들을 키워냈으니까! 그려 안 그려?’
이젠 늙어버렸지만 정말 착하고 착한 아이들이었다. 그런 자식들이 벌게진 눈자위를 눈물로 연신 식히고 있었다. 칠성이 이 세상에 이루고 가꾸어낸 진정한 작품들이었다.
‘그래~ 내가 죽을 때까지 후회할 수만은 없··· 아~ 씨벌! 지금··· 인가?’
그때였다. 칠성은 지금이 바로 삶의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다행히 유언장은 입원하기 전에 미리 작성해 놨다. 그렇다면 죽기 전에 유언 하나쯤을 남겨야 한다. 칠성은 마지막 남은 기운을 모두 모아 힘겹게 입술을 달싹거렸다.
“으으~ 애··· 애들··· 아~”
“···”
병실 안을 가득 채우다 못해 복도까지 늘어선 자식과 손자들. 칠성의 마지막을 직감했는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지, 지금처럼 느그들··· 서, 서로들 잘 지내···고···”
야속하게도 몸뚱이가 너무도 빠르게 약해졌다. 당연하게도 죽음이 너무도 가까이에 다가왔다.
“애, 애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후우, 후우~ 죽기 전에··· 하아, 하아~ 내처럼 후회하덜 말고··· 허, 헉···”
‘툭~’
‘삐익, 삐이이이이이~’
칠성의 머리가 힘없이 돌아갔고 그 순간, 심박기가 자지러졌다. 그 소리에 담당의사가 급히 다가와 칠성을 살피다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나지막이 선언했다.
“임종··· 하셨습니다.”
“아, 아버지···· 크흑~”
“아, 아빠··· 안 돼요, 아빠! 우리 아빠 어떡해. 불쌍해서 어떡해. 흐흑~”
가족에게는 특별한 남자였겠지만 너무도 평범한 자로 살았던 김칠성. 마침내 그가 숨을 거뒀다.
그제야 조용히 슬픔을 곱씹던 노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저도 모르게 늙은 육신을 빠져나온 칠성의 영혼. 오열하는 늙은 자식과 자손들을 어루만지며 위로하려고 했다.
[괜찮다, 괜찮아. 애들아~ 나는 괜찮으니까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스르륵~’
그러나 칠성은 이제 육신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물리력이 없는 영혼으로는 아쉬운 뜻을 전혀 이룰 수가 없었다.
이제 산자는 이승에···
죽은 자는 저승으로···
[그러니까 거시기~ 이것이 죽음··· 인가? 다른 건 몰라도 배창시가 아프지 않아 좋구먼. 몸뚱아리가 정말 가벼워졌어.]
칠성이 연기 같이 변해버린 자신의 영체를 신기하게 바라볼 때. 먼 곳으로 떠나야할 모든 준비가 절로 이루어졌다.
죽음!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이젠 어쩔 수가 없으리니.
칠성은 잠시라도 더 이승에 머물러 있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승의 존재가 아니었다.
‘휘리릭~’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공허하고 칠흑같이 암흑덩이가 조금씩 몸집을 불리다가 갑자기 칠성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칠성이 시커먼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는 시야를 가득 매운 강력한 빛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칠성은 21세기 대한민국과의 인연이 완벽하게 끊어지며 완전한 죽음이 이루어졌다.
1. 어떤 죽음-2(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