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화
-하찮은 것들이…… 캭!
날개를 휘둘러 오는 악마 카퓌신.
등에 돋아난 여덟의 날개를 무기로 사용하는 녀석의 공격은 매섭다.
빠른 속도와 그에 걸맞은 기운.
분명 수많은 자들을 학살했어야 할 능력이나.
“버둥거리는 주제에 말은.”
-캬아아아!
지금은 내 영력의 그물망에 갇혀서, 바둥대는 부나방밖에 되지 않았다.
-이따위 게! 이따위 게 대체 왜! 크흐…… 볼프만 있었어도…….
놈은 내가 만들어 낸 그물을 끊어내지 못했다.
발악하면, 할수록 더 휘감겨 가며 제 목을 조여갈 뿐이었다.
어차피 길게 갈 게 아니었다.
그물망에 갇혀 있는 녀석을 오래 살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죽여.”
“오케이.”
내 신호가 끝나기도 전에, 수많은 헌터들이 카퓌신에게로 달려 나간다.
콰즈즈즈즉-!
콰아앙! 쾅!
누군가는 육체를. 또 누군가는 원거리 포격을 날린다.
그물에 갇혀 버린 카퓌신이 피할 길은 없다.
-캬아아아악……!
죽임을 당하는 게 놈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여덟 개의 날개와 목이 떨어져 나가기까지 몇 초면 충분하였다.
-캬아아…… 다시 돌아…….
“어딜 가.”
후우욱-!
죽고 남은 그 영혼은 다시 음차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내게 돌아온다.
얼마 가지 않아 하데스의 낫에 있는 볼프가 그를 맞이하여 주겠지.
전에 볼프를 교육할 때처럼 놈이 머리를 조아리게 하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신기의 힘과 그 안에 담긴 영혼들이 이제는 나를 따르기 때문.
그사이 내가 해야 할 일은 영혼이 사라진 육체를 가지고 작은 장난질을 하는 것.
“딱 좋네. 들어가라.”
-킷…… 감히 마족인 날…… 악마의 육체 따위에!
“뭐, 어때? 비슷하구만.”
마족 배르파.
카피쉰과 비슷하게 날개를 주로 사용하는 마족.
날개의 수가 적고, 그 힘이 카퓌신보다 약할 뿐, 두 녀석의 전투방식은 마치 거울처럼 닮아 있었다.
그러기에 담았고.
또한 그러기에 명령했다.
“가서 학살해.”
-내가 따를 것…… 크아아아악…… 그만! 그마아아안!
“어서.”
-……알았다.
반항은 잠시일 뿐이었다.
놈은 곧 영혼으로부터 느껴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내게 굴복했다.
그런 식으로 굴복한 악마와 마족들은 상당했다.
죽는 족족, 그 영혼을 흡수하였고.
흡수한 영혼을 육체를 갈아타게 함으로써, 장난질을 쳤기 때문.
어떤 악마나 마족이든 처음엔 누구나 반항하지만.
영혼을 압박하면 얼마 가지 않고 굴복하게 돼 있었다.
그 꼴들이 너무 비슷해서.
‘둘 다 서로 싫어하지만, 너무 성격들이 똑같단 말이지. 서로 닮으면 싫어한다더니, 지금이 딱 그건가?’
녀석들이 들으면 큰일 날 생각을 해본다만.
-……무슨 헛소리냐!
그걸 듣고 화를 낼 건 지금도 분투하고 있는 마왕 정도였다.
“크큭…… 팩트로 후려치는 소리지. 헛소리라니.”
그리고 그런 마왕의 옆에는.
-닥쳐라! 저 녀석도 제발 없애주고!
-흐흐흣. 재밌구나. 재밌어. 언제 이런 파괴를 또 할 수 있다더냐!
-……미친!
전에 거대 좀비의 육체로 살려 놓았던 마족.
마왕이 끝끝내 정체를 밝히기를 꺼렸던 그 녀석이 새로운 육체를 부여받아 날뛰고 있었다.
죽어 버린 악마와 마족의 시체를 상관하지 않고, 누더기처럼 꾸덕꾸덕 붙여버린 육체를 잘도 사용하는 녀석.
녀석의 정체는 마왕에게 끝끝내 반항하고, 반기를 들었던 마족.
한때 마계의 공작이라 불리었던 베르만드라는 마족이였다.
흑공작이라 불렸던 녀석은, 그 이름에 걸맞게 그림자를 이용했다던데.
때마침 내가 지닌 가호 중 하나가 그림자 아니었나.
나는 그걸 녀석에게 던져 줬고.
놈은 그 뒤로 신나 날뛰고 있었다.
-크흐흐. 좋군…… 죽어서 얻은 힘이 전성기보다 더 강하다니. 재밌는 모순이지 않느냐?
-닥쳐라!
-크히히. 네 녀석과 같이 날뛰는 게 더 큰 모순이기는 하지!
-흐으…… 제발…… 좀…….
반대로 같이 날뛰어야 하는 마왕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하다만.
‘알게 뭐냐.’
마왕이 어찌 되든, 나로선 목표로 한 바만 성공하면 될 뿐이었다.
실제, 모든 건 내 목표대로 이뤄지고 있었다.
일 단계가 삼파전.
이 단계가 그 뒤에 혼돈을 더 끼얹는 것 아니었던가.
슬슬, 그 혼돈이 다음 삼 단계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 * *
그 삼 단계의 목적.
그것은.
이 안에서 죽고 부서지며 나오는 업과 영혼들.
그것들을 싸그리 잡아먹어 가며, 채워가는 거.
한 차원에서 쌓이기에는 너무도 많은 업과 영혼을 채움으로써, 혼돈을 불러들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혼돈의 업과 영혼이 어딘가 튀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바로 저 뒤에서 마법진을 조율하고 있는 유보라의 몫.
스스스스슷-
어느새 그녀는 다중 이동 게이트를 변형.
업을 채우는 감옥으로 게이트를 이용하여, 이 전장에서 쌓이는 한과 업은 잔뜩 머금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한휘!!!! 거의 다 차올랐어!”
“오호…….”
내가 원하는 만큼의 양이 그득그득 차올라 있었다.
“어머나…… 세상에…….”
“X발. 저거 뭐야…… 무섭다고!”
그것은, 시간과 영혼을 다룰 수 있는 유보라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법이자 기적.
그것을 본 보통의 인간들은, 악마와 마족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다가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느껴지는 기운과 크기가 일개 인간이 감당하기에 너무도 두려운 것이었기 때문.
그런 상당한 크기의 업과 영혼을 유보라는 잘도 다루고 있었다.
“역시 괴물이라니까.”
“누가 괴물이야!”
그런 주제에 잘도, 자기를 놀리는 말은 듣고 있었으니.
저런 거창한 일을 하는 주제에도, 아직 여유가 남아 있단 의미다.
이로써.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더 모으는 건 나도 무리라고!”
“으음…….”
내가 성좌 아키텍쳐의 영혼을 잡아먹고 마련한 주도적인 계획.
그 거대한 계획이 마지막 단계에 다다라 있었다.
혼파망 가운데.
어마어마한 업과 영혼을 모았으니.
그 기운을 이용하여 쏘아 보내면.
‘……공허가 내려앉겠지.’
이로써 우리는 인위적으로 공허를 내려앉게 하는 트리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결국 남은 건 마지막 사 단계.
선택이었다.
이 거대한 기운을 어디로 날리느냐.
그에 따라 이미 발동되어 움직이고 있는 공허를 어딘가로 보낼 수도 있게 된다.
‘날려 보내는 성공확률은 50% 정도인가…….’
이것이 마지막 사 단계.
공허의 발동이었다.
그 선택의 때를 모두가 본능적으로 느낀 것일까.
-한휘! 약속을 기억하거라!
언제 배신할지 몰랐던 마왕. 그 녀석은 처절하게 외친다.
절대로 마계는 안 된다고.
-흐익…… 저것은!
-아아. 하등한 것들이 결국…….
-이러자고 온 거 아니잖아? 어서 튀자고!
-흐히히…… 파괴다. 파괴. 나는 그 자체로 좋다고!
그에 반해 악마들은,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인다.
누군가는 미쳐 신났고.
또 누군가는 홀연히 도망치려 한다.
-으아…… 왜 안 되는 거야!
-막혔다. 막혔어! 못 나간다고!
우스운 건.
아무리 발악해 봐야, 여기서 나와 유보라, 그리고 제삼자가 허락하지 않는 한은 누구도 도망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부터 저들을 가두는 건 내 목표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참고로, 저들의 도망을 허락지 않는 제삼자는.
-결국 만들어 내었구나.
“그렇지.”
내 옆에서 여덟 개의 꼬리를 살랑이고 있는 구미호였다.
녀석은 공허의 잔재인 제 도시를 제물 삼아서 여기에 있는 모두를 묶고 있었다.
누구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누구도 감히 열어 놓은 게이트를 열지 못하도록!
자, 이제 마지막 오 단계.
그건 내 선택에 달려 있었다.
과연 어디에, 저 마법진을 조준하고 쏘느냐에 따라서!
그곳에 공허가 내려앉게 된다.
멸망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선택의 때는 얼마 남지 않았다.
첫째는, 이런 대규모 전투가 일어남에도 입을 다물고 있는 체계가 증거이며.
둘째는, 아까까지 여유롭던 유보라가 어느덧 온몸이 땀에 절어 있는 거였다.
아무리 그녀라도 더는 여유롭지 않다는 의미.
“한휘…… 어서!”
“그래.”
자, 이제 선택해야 했다.
마계 혹은 음차원.
이 둘 중 어디로 이 업을 퍼트리고 넘기느냐.
마지막 발동을 하는 것은 결국 저 마법진을 보조하여 주고 있는 나의 몫!
여기까지 달려왔던 나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랄 수도 있겠지.
과연 어디에 멸망을 던져야 할까.
-한휘!
이 순간 자비를 말하지만.
전생엔 우리에게 멸망을 던져 놓았던 마왕의 마계에?
혹은.
-흐힉…….
-오라! 오라! 오라! 멸망이여 오라!
그런 마왕의 움직임에 맞춰 장난질을 치던, 저 음차원의 악마들에게?
어디에 멸망을 구겨 넣든 나쁘지는 않은 수였다.
어디가 돼도 인류에겐 좋을 터였다.
실제.
“아아…….”
“됐다. 드디어 되었어……!”
이제는 그 전말을 알고 있는 수많은 동료들.
그들은 희망이라도 되찾은 듯, 밝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마계와 음차원.
아니 그 외에 달리 어떤 선택이 되든 그것은 상관없다.
그게 어디가 되든 이들에게 있어 희망적인 결과라 여겨서 저런 환한 표정을 짓는 걸 거다.
그런데 어쩌나.
내가 여기서 하는 선택은.
어쩌면, 최악이 될 수도 있는 것을.
나는 나를 바라보는 유보라에게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유보라…… 시작해.”
“……아아.”
계획대로 어서 행하라고.
그 말에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신음한다.
뒤이어 벌어질 일을 다른 자는 몰라도 그녀는 알기 때문이겠지.
뒤이어 이사야와 마리의 신음도 들려 온다.
함께 움직여 온 둘만큼은 그 의미를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해야 할 일.
그 일의 진실된 의미를 소수만 알고 있는 그 상확 속에서.
나는 단 한 점도 흔들리는 법 없이, 말했다.
“어서.”
“……공허 트리거 발동.”
어서 공허를 터트리라고.
마계도.
음차원도.
그 어디도 아닌.
과가가가가가각-!
바로 이곳. 지구에.
전생에도 그러했듯이, 다시금 공허가 내려앉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내 마지막 오 단계.
피해만 다니던.
그 어떤 차원이 되었든, 도망치려고 노력하는 공허.
나조차도 얼마 전까지는 두려워하기만 하던 공허를 되려 이 아래로 불러들이는 트리거의 실행이었다.
그그그그그극--
그 이전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갈라진다.
뿌옇게 내려앉기 시작한 어둠은.
하늘부터 살라먹는다.
점차, 점차 아래로 내려오며 모든 걸 지우려 한다.
그제야 모두가 알았다.
아니 느끼었다.
[공허]가 내려앉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