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3화
조건만 맞다면 시작되는 것이니까.
이제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기에, 그 누구보다 바라는 게 부활이 되었다.
‘결국 다시 돌아서 원점인 셈이지.’
돌고 돌아 바라는 게 유보라의 부활이라니.
회귀를 한 처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해 같은 목적이란 게 웃기지 않은가.
처음엔 날 회귀시킨 동료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고.
지금에 와서는 녀석이 이 모든 걸 해결하기 위한 열쇠가 되어서라니.
너무도 우스운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슬쩍 지어지는 조소가 쓴웃음으로 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에게 동의는 받았어요?”
“그럴 리가. 녀석은 성좌를 잡아먹지도 않은 주제에 진실을 알게 된 거 같더라고.”
“……그녀는 분명 괴물이니까요. 자신이 부활하면 공허가 앞당겨지는 걸 깨달았겠죠. 스스로요.”
“그래. 그게 열쇠의 의미지. 후……. 그래서인지 제멋대로 부활을 거부하더란 말이지.”
“그녀답네요. 다 전지하고 있으면서도, 전능하지 못하니 할 만한 선택이기도 하고요.”
말했잖나.
공허는 현상이다.
‘아키텍쳐 덕에 알게 되었지.’
공허라는 현상이 내려앉는 조건은 둘 중 하나다.
공허는 세계가 일정 이상의 힘을 지니거나.
혹은 일정 이하의 힘을 지니게 되었을 때 내려앉게 된다.
체계와 함께 일종의 세계선들의 균형자를 자처하고 있었다.
그러한 현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방아쇠가 필요할 터.
그것을 달리 이야기하면 그 세계의 힘을 강화시키거나.
혹은 그 세계의 힘을 약화시키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유보라가 그러한 방아쇠였다.
회귀를 함께하고.
내 영혼 안에 있으면서 스스로 세계의 진리와 영혼에 대해서 탐구한 시간의 마법사 유보라.
영혼의 깨달음과 시간선에 대해서 깨달은 그녀가 이 세계에 온전히 부활한다면.
‘……그건 세계의 힘을 격하게 강화시키는 셈이 되는 거지.’
세계의 힘은 강해지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그리되면?
공허는 내려앉을 거다.
그리고 시험을 할 터였다.
이 세계가 과연 공허를 이겨내고 존속할 자격이 있는지.
혹은 공허에 완전히 잡아먹혀 사라져 버려야 하는지를.
이 세계의 인류는 스스로 응시를 하지도 않았는데, 제멋대로 시험을 해 버리는 거다.
유보라는 스스로 그걸 알아냈고.
때문에 전에 부활 의식을 할 때도, 그를 거부해 버린 거다.
자기가 부활하게 되면 세계 멸망의 시간을 더 가속화시키니까.
‘……하여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제멋대로라니까.’
유보라로서는 그것이 제 나름의 희생이겠다만.
녀석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나로선, 지독히도 싫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키텍쳐의 영혼을 잡아먹고.
꽤 강력한 힘을 얻은 지금.
나는 처음으로 녀석의 의사에 반하여 내 방식으로 이 일을 끝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를 위한 준비는 마리와 이사야, 그리고 수많은 동료들을 통해서 지금도 이뤄지고 있으니.
이제 진짜 열쇠를 불러들일 때였다.
“후…… 제가 열쇠인 걸 알고…… 제멋대로 부활을 거부하는 녀석이니 강제로 부활을 시켜봐야겠지.”
“가능하겠어요?”
“안 되어도 되게 해야 하지 않겠어?”
“후후. 좋네요. 그럼 바로 시작해 보죠.”
“얼마든지.”
유보라.
길고 긴 시간을 지나 녀석을 부활시킬 시간이다.
* * *
내 영혼 안에서 스스로 영혼 마법에 대해 깨달은 유보라다.
지금 와서 보면, 마법에 별다른 연원이 없는 내가 근원의 영혼 마법사가 된 것에도 녀석의 손길이 들어가 있을지도 몰랐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녀석은 내 영혼 안에 포함돼 있었으니까.
체계는 그런 내 영혼의 일부로부터 마법사의 가능성을 읽어내어 내게 마법사 직업을 던져 주었다, 이 말이다.
성능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제대로 활용하기에 부족하였을 뿐이다.
어쨌건.
그런 유보라를 세계로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그 격에 맞는 재료를 필요로 했다.
“업은 이미 모여들고 있는 걸로도 충분해요. 당신의 동료들이 꽤 잘해 주고 있는 거 같네요.”
“이사야. 그 녀석이 특히 고생이지.”
소위 업이라 불리는 카르마.
그에 대한 준비는 차고도 넘친다.
문제는 그 육체를 구성할 재료다.
“어울리는 재료들을 준비하는 게 일이군요.”
“그 정도인가?”
“당신도 느껴지지 않나요. 손에 쥔 영혼석의 격이 너무 높아요. 어지간한 상급 마족은 뛰어넘은 지 오래라구요.”
“……하여간 괴물이라니까.”
이전에 준비하였던 재료들.
성녀인 마리를 구성시키는 데 충분하고도 남았던 재료들로도 부족하다.
이는 현 던전 수준에서 얻을 만한 것들로는 그녀의 육체를 빚기 어렵다는 이야기.
때문에 이곳 요괴 도시의 힘을 필요로 했다.
온갖 기이한 존재가 넘치는 곳이 이곳이니까.
공허의 잔재가 빚어져 만들어진 곳이 이곳이니만큼, 뛰어난 재료들이 넘쳐나도록 많다.
“청룡의 비늘, 백호의 꼬리, 헤테스의 머리, 매두사의 머리카락…….”
“이걸로도 저울이 기울어 있는데?”
“하…….”
문젠 그 재료들을 쌓고 또 쌓아도, 그녀의 격에 맞지 않는다는 건데.
“이러면 어쩔 수 없네요. 공허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라도 저 또한 당신들의 성공을 바라고는 있으니…….”
“그래서?”
“이걸 내주죠.”
“……미친.”
그 격을 맞추고자 구미호가 굉장한 수를 뒀다.
써걱.
그녀의 아홉 꼬리. 그중 마지막.
완성을 의미하는 그 꼬리를 그녀는 제 손으로 잘라내었다.
절단된 꼬리는 금방 저울의 위로 올라갔고.
그것은 균형을 맞추는 데 충분한 추가 되었다.
그제야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되레, 놀라는 건 나였다.
소중히 여기는 꼬리를 여기서 잘라낼 줄은 몰랐으니까.
“……그 꼬리 겨우 만든 거 아냐?”
“처음도 아니에요.”
“그 말은……. 음……. 이해했어. 이런 일이 당신에게는 처음이 아닐 수도 있단 거네.”
“수천 년…… 어쩌면 자각하지 못한 시간까지 더하면 수만 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공허를 피하려고 시도한 게 몇 번일 거 같나요?”
“이해했다. 진심으로 우리 성공을 바라는 것도 알겠고.”
“후후…….”
예측에서 벗어났으나, 이해 못 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놀람을 멈출 수 있었다.
이것으로.
그녀의 부활을 위한 준비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이 났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당신은 자신의 근원을 불러일으켰다.]
[당신은 자신이 지닌 혼돈의 기운의 가능성을 키워냈다.]
[당신은 혼돈의 기운을 알 수 없는 영혼석에게로 쏟아부었다.]
이제, 부활이다.
* * *
‘전보다 더 존재감이 짙어졌군…….’
앞을 인식했을 때, 보이는 풍경은 전과 달라져 있었다.
그 앞에 내 기억 속에 있는 유보라가 있었다.
기억과 달리 그 존재감만은 거대하였다. 그사이 또 성장했다는 의미겠지.
그리고 그 성장의 의미를 지금의 나는 안다.
“네가 왜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지고 살려고 하냐?”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때?”
“그래.”
힘은 강해진 주제에.
어쩜, 이리도 어린 이야기를 하는 건지.
때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무슨 때란 말인가.
“언젠가…… 공허가 내려앉을 때쯤, 너 혼자 자살하려고 할 때? 아니면, 공허가 오기 전에 네가 차원 이동을 해서 홀로 도망칠 때? 아니면…….”
“그만!”
녀석은 그때란 걸 기다리겠답시고, 영혼석에 홀로 처박혀 있던 거다.
홀로 고고하나, 함께할 때는 누구보다 약하기도 했던 녀석이.
모두를 작전으로 이끌고 있으나, 속은 걱정으로 검게 타는 녀석인 주제에.
제 혼자 다 짊어지려고 한 거다.
전에는 몰랐으나 이제는 나도 아는 사실.
“너 혼자 다 짊어질 때를 기다린 거잖아. 그치? 공허를 어찌 불러들이는지를 알아냈고. 그걸 혼자 짊어지면 된다 여긴 거지. 맞지? 이야……. 대단한 성인군자 납셨네.”
이걸 팩트 폭행이라 하나.
잘도 읊어 주고 있으니, 녀석이 눈을 질끈 감는다.
당당하지 못하게 고개를 푹 숙이곤 이야기한다.
“……나쁜 선택은 아니었잖아?”
그녀 말대로 나쁜 선택은 아닐지도.
그러나 나는 아니다.
“아니. 나쁜 선택이지.”
“나 하나 희생하면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 그러니 나쁜 건…….”
하나로 끝나면, 그 하나의 세상이 끝난 것이지 않은가.
때로는 그 하나가 전체보다도 중요할 때가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헛소리 마. 그러고 네가 죽어 버리면 내가 괜찮을 거 같냐?”
“……그건…….”
“쯧…….”
입맛이 썼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전에도 모든 걸 다 뒤집어쓰고 가려고 했던 녀석이다.
그리고 회귀를 했을 때.
내 영혼의 품 안에 있으면서, 홀로 알아 버린 거다.
어떻게 세상을 구해낼지를.
그 거창한 계획엔.
나도, 마리도 없었다.
오로지 유보라 홀로 존재하고 있었을 뿐.
홀로 시간의 대마도사가 되고.
다시 또 홀로 영혼을 이해하여 대마법사급으로 올라가는 녀석이다.
그런 유보라가 바라보는 세상 따위.
나 같은 빡대가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겠지.
세상 다 짊어지고 죽어 버리려는, 그 심오하고 거창한 각오조차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한다.
“모든 건 처음 계획대로 갈 거야. 너도, 나도 살아남는 방식으로. 설사 모두를 살리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그 정도는 욕심부릴 만큼 구르긴 했잖냐?”
“……나 하나 살자고 피해가 커지더라도? 괜찮다고?”
“어. 적어도 나는 그래.”
여기까지 움직인 것 또한, 전생의 빚이 있어서일 뿐이다.
무슨 대단하고 거창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 마음의 빚.
그 무거운 빚에 나는 기어이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을 뿐이다.
그런 나도 누군가에겐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겠다만.
그런 모든 잡소리를 다 떠나서.
“적어도 동료를 버리고, 다 끝냈다고 하고 싶지는 않거든. 예전부터 말이지.”
“……진짜, 변한 게 하나도 없네.”
나로선 동료가 일 순위다.
그걸 이해한 건가.
고개를 든 녀석은 나를 또렷이 바라보고 있었다.
각오가 됐다는 거겠지.
“푸흐흐. 그게 나지.”
“……그래. 그게 지한휘지. 고집 하나는 정말로 세서, 제 고집은 단 한 번도 안 꺾는 병…….”
“씁. 거기까지!”
“후후…….”
“웃지 마라.”
문제는 그 각오가 생기자마자, 특유의 거친 말이 나온다는 건데.
이거는, 부활 의식의 부작용 정도로 해 두면 되지 않으려나.
어쨌건.
이 녀석이 혼자 짊어지려는 빚을 함께 짊어질 수준이 되기까지.
너무도 길고, 길었다.
그리고 이 길었던 여정의 끝맺음을 위하여.
“가자.”
“그래.”
나는 녀석의 손을 맞잡았고.
홀로 고고히 존재하던 녀석만의 영혼석을 깨부쉈다.
그리고 그 순간.
그그그그그그극-
세상 자체가 비틀어지는 소리가 내 영혼 전체에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