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2화
정확히 방문자는 나긴 하다.
내가 현재 있는 곳은 훈련소도 아니고, 온갖 장치로 무장해 둔 내 저택도 아니었으니까.
이곳은 사시사철 눈이 오게 되어 버린 설국.
정확히 일본의 북부에 만들어지게 된 요괴 도시가 현재 내가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 왔을 뿐이었다. 초대가 아닌 반쯤 억지를 부려서.
의외인 것은.
‘그 억지를 받아줬다는 거겠지.’
이 설국이자, 요괴국의 주인이 내 억지를 받아줬다는 거다.
무리한 부탁을 했음에도 그를 받아들이고, 내가 머무를 거처까지 주었다.
그 안에서 리바이를 살리기 위한 재료까지 이들이 수급했을 정도다.
전생에도 요괴 도시는 일본과 상당한 적대를 쌓았을 뿐이었다.
나와 유보라가 왔을 당시에는 의외로 적대보다는 반가움을 표출하기까지 했다.
그때는 이유가 있었기야 하다만.
이번은 별다른 이유가 없음에도 이리 받아 줄지는 나조차 알지 못했다.
웃긴 건, 정작 이리 받아 준 주제에 그 주인은 만나 볼 수 없었다는 건데.
갑자기 찾아와 나를 불렀다.
이 요괴 도시의 주인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는 거지? 평생 나를 안 볼 거 같았는데.”
“때가 되었다고 하시더군요.”
“때라…….”
그 이유를 물었으나, 역시 알 수 없는 말이 돌아온다.
나를 이리 받아들이고, 대가 없이 지원을 해 준 것조차 이상한 일.
사실…….
이 요괴 도시가 벌써 세워진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본래라면…… 오 년 뒤쯤. 일본의 북부가 터져 나오면서 나오는 게 이 요괴 도시 아니었나.’
회귀 전에 비해 도시가 생겨난 시기가 너무 이르다.
내가 재앙의 바람을 일본으로 흘려보낸 것도 이유가 되기야 하겠다만.
그때의 재앙의 바람이야 작은 힘이 되었을 뿐이지.
이러한 요괴 도시를 단번에 세울 정도의 힘은 가지지 않았었다.
끊임없이 살라먹어 위력을 약화시킨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요괴 도시는 떡하니 만들어졌다.
자기 자신을 환국의 주민이라 칭하는 자들이 만든 도시가, 회귀 전과 똑같이 만들어진 것이다.
소름 돋을 정도로 전생과 같은 형상으로!
여기엔 분명 무언가 있었다.
“역시 너희도 무언가 알고 있는 거지?”
“……저는 말 할 수 없군요.”
“그게 대답이 됐네.”
이를 계속해 캐물어 보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의뭉스러울 뿐.
그렇다 해도, 뭔가를 안다는 사실 자체는 알 수 있었다.
오 분가량을 걸었을까.
“도착했군요.”
“……정말 소름 돋을 정도로 똑같군.”
“후후. 열어드리겠습니다.”
6미터는 더 넘는 거대한 나무 문이 내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전생에도 보았던 문이었다.
그때는 안내자가 없고, 지금은 있다는 게 차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안내자.
겉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속은 누구보다 차가운 성정을 지닌 빙녀.
그녀는 곧바로 온몸에 서리를 만들어 내더니, 그것을 문에 쏘아 보냈고.
츠즈즈즈즉-
그것을 받아들인 나무 문에서는 짙은 서리가 내려앉음과 동시에, 나도 알지 못하는 문자들이 떠올랐다.
춤추듯 노닐던 글자는 이내 한 개의 원형 게이트를 만들어 내었다.
그것이 진짜 문이었다.
“들어가시죠.”
“그래.”
나는 문을 통과하여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 * *
‘차원을 옮긴 건가. 아니…… 지구에 다른 차원을 만든 방식인 거 같은데.’
게이트를 타고 넘어가자마자 느껴지는 부유감.
이전과 다른 종류의 것이었기에, 그것을 분석하는 데는 몇 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다 느끼셨나요?”
“조금은.”
이 공간의 주인은 고맙게도, 그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그제야 나는 공간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여러 개의 꼬리를 지닌 여우.
자칭 환국이자 요괴 도시의 수장.
그녀를 보았을 때, 나는 익숙함과 함께 기이함을 느꼈다.
“너…… 꼬리가……?”
“후후. 아홉이죠? 당신의 기억과는 달리요.”
“……허.”
그 기이함의 정체. 꼬리의 수였다.
회귀 전 내가 보았던 놈의 꼬리는 여덟이었다. 팔미호로서 완성되지 못한 요괴 도시의 주인.
그 이유 때문인지 그녀는 요괴 도시를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도시를 찾았을 때야, 간간이 도움을 줬을 뿐이었다.
마왕과 벌인 최후의 전쟁에서도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정도다.
듣기로는 전투가 시작하기 직전 요괴 도시 일부가 모습을 감췄다고 듣기야 했다만.
그게 그들이 말하는 환국으로의 귀환이었는지.
혹은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려는 의식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보아하니,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너…… 기억을 갖고 있군?”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거참.”
이 구미호.
이 녀석도 이전의 기억을 갖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군.”
* * *
전생에도 이 팔미호는 우리에게 큰 호감을 보였었다.
유보라를 포함한 나와 칠 인에게 꽤 많은 보물을 가져다줬을 정도.
도깨비가 있는 도시는 거래를 해야 했지만, 요괴 도시에서는 대가 없는 호의를 받으면 충분했을 정도였다.
덕분에 꽤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기에, 나 또한 이곳에 대한 호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지금 알게 된 진실은 그 호감을 잊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내가 성좌의 기억을 잡아먹은 걸 알겠지?”
“물론이죠. 정확히는 영혼이지 않나요.”
“다 알고 있군. 그럼 전에도 다 알았다는 의미일 거겠네?”
“……그렇죠.”
“그렇단 말은…… 너는 우리가 마왕과 최후의 전투를 진행하러 갈 때의 결과도 알고 있었단 의미겠군.”
“공허. 혹은 멸망. 그것에 잡아 먹힐 걸 알고 있었죠. 특히 그녀와 함께하는 한은요.”
“……하.”
녀석은 전생의 우리가 실패할 것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공허에게 잡아먹힐 운명을.
그걸 알고 있음에도 귀띔을 해 주지도 않았다.
그저 마왕을 두고 최후의 일전을 벌이러 가던 우리에게 몇 개의 보물을 줌으로써 응원을 했을 뿐이다.
그 부분이 어이가 없으며, 또한 날 미치도록 궁금하게 했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걸 보면 분명 호의는 지니고 있는데…… 왜 최후에 가서는 그리한 거지?”
“……이젠 스스로 알지 않나요?”
“스스로라…….”
“그 당시는 팔미호. 지금은 완성된 구미호. 그러한 위계에 도달하기도 전에 알게 된 게 있어요.”
“뭐지?”
“공허의 반복이죠.”
“반복이라…….”
“공허는 끊임없이 세상을 잡아먹죠. 다시 또 새로운 세계를 향해가고, 또 그곳에서 체계를 세운 뒤 잡아먹기를 반복하잖아요.”
“그래서?”
“그 반복 끝에 나오는 부산물들이 있어요. 그게 우리, 환수들이죠. 그런 우리는…….”
“모두가 잡아 먹힐 걸 알면서도,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는 건가?”
“네. 바로 그거죠. 때문에 우리는 당신들에게 호의를 지니고 있음에도…… 스스로 알지 않는 한은 도와줄 수 없었어요.”
“하…….”
이 녀석들은 우리 생각보다 많은 걸 안다.
공허의 잔재로 태어났다 하는 이것들은, 어쩌면 그 잔재로부터 지금의 나조차 모르는 수많은 것들을 알고 있을 거였다.
그중 하나가 회귀의 기억일지도 몰랐다.
‘……어이가 없네.’
웃긴 건 그러한 기억을 얻을 수 있었음에도, 이들은 움직일 수 없다는 거다.
공허의 잔재로부터 태어났기에, 공허에 반하는 행위를 직접적으로는 할 수 없는 듯 보였다.
그것은.
“사슬이죠. 지독한 사슬…… 공허가 세계를 잡아먹기에 우리는 태어났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묶여 있을 뿐이죠.”
이들이 환국이라는 거대한 세계의 주인을 자처하면서도, 동시에 묶이게 만들어 버린 사슬이었다.
구미호는 이를 자조하듯 평했다.
자신들은 많은 걸 알고 있으나, 묶여 있을 뿐이라고.
“기껏해야 신화나 설화 속에서 간간이 모습을 드러낼 뿐이고요.”
“으음…….”
“이번에 요괴 도시로 모습을 드러낸 것도, 꽤 많은 힘을 소모해서 겨우 진행했을 뿐…… 사실 제 고집으로 빚어진 도시일 뿐이죠.”
“자유로워지고 싶기는 하다는 건가…… 그런 주제에 움직이기는 싫고?”
“후후. 그리 볼 수도 있겠네요.”
결국 이들은 공허와 체계의 잔재로부터 태어난 자들.
때문에 그것에 묶여서, 그 자유 의지조차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불쌍한 존재들이었다.
이들의 수장인 구미호가 자신의 위계를 이용하여 요괴 도시나 환국 따위로 간간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고는 하나.
그조차도 결국엔 진실된 존재로서 존재하는 게 아닌 허상이나 다름없었다.
공허가 존재하는 한,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곳은 결국 공허에 잡아 먹히게 되어 있으니까.
지독한 모순이고, 지독한 쳇바퀴였다.
그리고 그 일면을…….
“아키텍쳐의 영혼을 잡아먹지 않았더라면 나도 알지 못했겠지.”
나는 우연히 성좌의 영혼을 살라먹음으로써 알게 되었다.
그게 과연 우연인지는 잘은 모르겠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그리고 너희는 또 모른 척을 했을 거고.”
“맞아요.”
이들은 또 내가 아무것도 몰랐다면, 그저 호의만 보였을 거다.
세계의 진실 일부와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알려 주는 일 따위는 없었겠지.
그렇게, 요괴 도시라는 곳에 자신들을 가두고 우리가 멸망해 가는 것을 지켜보았을 거다.
그게 안타까움이든 혹은 방관자로서의 즐거움이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그래도 다행이지 않나요. 이미 알고 있는 자에게 첨언을 하는 건 가능하거든요. 모르는 걸 가르쳐 줄 수는 없어도요.”
“재밌네.”
내가 전에 비해 알게 된 게 많음으로써, 이들은 우리를 도와줄 수 있게 됐다.
모른다면 모를까.
이미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것을 가르쳐주는 정도는 문제가 없는 식인 듯했다.
뭐…….
‘모든 걸 알면서도 안 가르쳐 준 게 괘씸하기야 하다만…….’
내 개인적인 심정을 떠나서, 어쨌건 이들이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공허의 부산물로서 태어난 환수들.
그들이 우리 인간들에게 호의를 지니고 있단 사실은 분명 이득이었으니까.
거기다, 서로 많은 정보를 알고 있기에 말이 통하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료나 다름없지 않은가.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내게 이해받았다고 여긴 것일까.
구미호는 먼저 물어왔다.
“당신…… 이곳까지 와서 원하는 건 하나죠?”
“그래. 열쇠가 되는 그 녀석의 부활을 원한다.”
나는 그 물음에 선선히 대답했다.
내가 이곳 요괴 도시까지 온 이유.
리바이를 먼저 부활시키는 경험을 얻어냄으로써, 최종적으로 해내려고 하는 것.
그것은.
“유보라의 부활을 시키는 데 도움을 줬으면 해. 녀석이 깨어나는 순간…….”
“……일이 시작되겠죠. 그녀가 당신의 심상 안에 있으면서 많은 걸 얻어버렸으니까요.”
유보라의 부활.
어쩌면 모든 것의 시작, 혹은 모든 것의 끝이라 할 수 있는 그녀의 부활을 원한다.
아키텍쳐로부터 얻게 된 게 맞는다면…….
녀석을 이용하면 공허를 불러일으킬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아는 멸망은 단순히 때가 되어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현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