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그 한마디에 죽음을 뚫는 의지를 지닌 망자들이 그녀의 말을 들을 리가.
-헛소리를!
후우욱-!
그들은 자신들을 빚어 준 사마력의 힘을 이용하여, 이사야에게 들이닥쳤다.
생전 근거리계 능력자였던 자는, 제 무기로 사마력을 쥐고 휘두르고.
우우웅-!
원거리계였던 자들은, 사마력을 연로 삼아 마법의 힘을 뽑아 든다.
서로 합을 맞춘 바가 없음에도, 순식간에 제대로 된 합격진이 만들어진다.
명백히, 그녀의 말을 거부하는 모습.
그녀는 그것을 보고 혀를 탁 찼다.
“그래. 기대도 안 했다.”
제 손으로 빚어진 주제에, 쉬이 굴복하지 않은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화아악-!
그녀는 한 박자 더 늦게 이능력을 끌어 올렸다.
-흐흐. 늦었다!
그것을 보고 망자들은 웃었다.
자신들의 영원한 잠을 깨운 사마술사.
안식을 방해한 그녀를 단번에 죽이리라 마음먹었기 때문.
술사가 지닌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전사들에 비하면 한없이 느리기에 가지는 자신이기도 했다.
그러나.
발동이 늦었다고 해서, 그 효과가 천천히 일어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파즈즈즈극-!
망자의 손에 닿기도 전에,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검은 전류가 퍼져나간다.
-컥…….
가장 먼저 비웃음을 짓던 망자가 전류에 휩싸인다.
온몸을 휘감는 검은 전류.
망자의 몸에 들어찬 그것은 망자의 의지를 무시하고, 그 육체를 구속시켰다.
-이, 이따위 것을. 끄아아악!
망자임에도 고통을 느껴지게 하는 기이한 전류였다.
-꺽!
-어떻게……!
망자들은 그를 무시하고 덤벼들려 했다.
그녀의 온몸으로부터 퍼져나가는, 전류를 피할 길은 없으니 한 방 맞더라도 이사야에게 피해를 주려 한 것이다.
나쁜 판단은 아니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술사를 타격할 경우, 대다수의 마법들은 파훼 당하는 법이니까.
콰아아앙-! 쾅!
원거리에서까지 던져진 그 공격들은 일견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허튼짓이야. 이만 멈추지.”
그녀가 한마디를 나지막이 던지는 그 순간.
터억.
그녀에게 날아들던 그 모든 공격이 일순간 멈춰 섰다.
원거리의 공격도 예외 없이 전부 멈춰선 기이한 광경이었다.
시간이 멈춰서? 아니었다.
“후…….”
그녀가 날리었던 검은 전류.
이제는 주변 수백 미터를 휘감은 그 전류가 그녀의 영역을 만들어 주었기 덕분이었다.
전류는 단지 겉으로 보이는 현상일 뿐이었다.
실제 그 안에 담긴 힘은 그녀의 영역을 구축하는 힘이었던 것이다!
가까이 있는 망자를 옭아매는 건 그 구축 끝에 나온 부산물일 따름!
그녀가 영역을 구축해내자.
쿠우웅. 쿵.
여기저기 있던 망자들의 무릎이 저절로 꿇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끄아아악!
-켁…….
그들의 의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꿇리고.
그 남아 있는 의지마저 그녀에게 점차 물들어갈 뿐이었다.
점차 굴복당하기 시작하는 망자들.
그런 망자 중.
“호오……?”
-흐…… 이따위 것에 무너질 리가…….
-안…… 돼……. 그 일을…… 끝내기 전까지는…….
그녀의 영역이 구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항을 하는 자가 둘 있었다.
그 둘에, 지루해하던 그녀의 표정에 호기심이 어린다.
-끄으윽…….
-흐…….
그녀는 당장 둘을 제압할 수 있음에도, 둘이 의지를 이용하여 몸을 일으키는 것을 가만 바라보았다.
‘전사 하나 마법사 하나인가. 딱 좋네.’
그들이 더 크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녀의 표정은 다양해진다.
기대치 못한 걸 본 표정. 자신의 예상 밖에 있는 걸 보았을 때의 놀라움이 동시에 서린다.
그걸 본 망자들은.
-희롱…… 하듯 보지 마라…….
-이조차도…… 우리는…….
분노하면서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영역하에서 몸을 일으키기조차 어려운 상황.
이후 그녀에게 반항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임에도
이들의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비척거리며 다가오는 그들.
피슉-
마법사로 추정되는 망자조차도, 제 마법이 먹히지 않음을 느끼고서 몸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없이 느리고, 또 느리었다.
일반인보다도 더 느린 상태로, 이사야를 향해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은 거룩하기까지 했다.
그녀의 영역하에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
그런 불가능을 의지 하나만으로 깨부수고 있음이니, 망자든 생자든 간에 그 의지 자체는 한없이 높이 평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기에 이사야는 한참 그들의 반항을 지켜보았다.
“드디어 찾았네.”
몇 번이고, 망자를 일으키고. 또 일으킨 상황 가운데서 저 두 망자는 처음 본 ‘변수’였으니까.
그녀는 때문에 흥미로웠고.
또 때문에 즐거웠다.
그리하여 그런 즐거움을 준 두 망자에게, 그녀는 스스로 다가갔다.
-흐아……!
-우습게…… 보지…… 말라 했지!
후우웅-!
그걸 기다렸다는 듯, 망자들은 제 두 손을 휘둘렀다.
자신들의 안식을 방해한 이사야.
그녀에게 한 방을 날리고자 한 것이다.
그 이후에 상관없이!
한없이 느렸으나, 그 안에 담긴 의지만큼 드높은 공격이 다가온다.
절대 멈추지 않을 거 같은 그 공격들.
그것을 멈춰 세우는 건, 이사야의 영역도 사마력 따위도 아니었다.
단지,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너희들의 한을 풀어 줄까?”
-……뭐?
-음…….
그들이 죽어서도 의지를 갖게 된 이유.
망자의 한.
그것을 풀어 준다는 한 마디로, 그녀는 거룩한 둘의 의지를 멈춰 세울 수 있었다.
한.
그것은 그들이 망자임에도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자, 동시 어떻게든 풀어내야만 하는 실타래이기 때문.
이사야는 그것을 노렸을 뿐이고.
그 한마디에, 그들이 하나같이 멈춰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한마디의 파급력은 굉장히 거세었다.
-나, 나도……!
-나도 해 줘!
그녀의 영역에서 무릎 꿇은 자들.
더는 움직이지 못한 자들도, 그 한마디에 자신의 한도 풀어달라 맹목적으로 외치고 있으니까.
-제발……!
-흐으…… 뭐든지 할게! 뭐든지!
그 한만 풀어진다면, 뭐든 해내겠다는 간절한 요청들이 그녀에게 쏟아진다.
그녀는 그러한 모든 요청을 무시하고, 오로지 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격은 이 둘에게만 있어.’
쉽게 무릎 꿇은 그 어떤 망자들보다도, 이 둘의 의지가 가장 거대하였기 때문.
한이 크면 큰 만큼 의지는 거대하고, 그 의지는 망자에게 있어 곧 힘이나 다름없으니.
그러기에 그녀는 오로지 이 둘만을 바라본 거였다.
-…….
-…….
그러나 막상 둘은 멈춰 섰음에도 침묵을 유지했다.
쉽게.
자신의 한을 풀 수 있다고 여기지도 않을뿐더러.
자신의 한을 푸는 것을 다른 자에게 맡기는 것이 마음에 들지도 않기 때문.
그것을 알기에 그녀는 재차 먹음직스러운 한마디를 더 던져주었다.
“계약을 하자. 그러면 너희 손으로 너희의 한을 풀 수 있게 도와줄 테니.”
-……!!
그것이 기폭제였다.
제 손으로 한을 풀 수 있다!
망자에게 이만큼이나 매력적인 게 또 어디 있으랴.
-그게 무엇이든?
“그래 무엇이든.”
-쉽지 않을 걸 알고도?
“너희를 가질 수 있다면야…… 어차피 너희와 내가 해야 할 일이 같은 종류인 거 같거든.”
-……흐…….
-그렇다면 좋다!
그것은 망자가 무릎 꿇기에 충분하고도 남은 조건이었고.
-……계약만 성립한다면…… 내 모든 걸 받치겠다.
-나 또한, 전부를……!
쿠웅. 쿵.
둘은 실제 자신들의 의지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그제야 이사야는.
“후후…….”
만족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드디어 얻었다……!’
그녀로서도 가장 원하였던, 그것들을 얻은 순간이었으니까!
* * *
사마술사와 의지를 지닌 망자.
두 존재가 서로의 조건에 맞는 계약을 진행하는 그 순간은 그 어떤 거짓도 고할 수 없었다.
망자는 망자대로.
술사는 술사대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해야만 계약이 진행되고 서로 힘을 더할 수 있기 때문.
지독하도록 신성한 계약 앞에서.
서로는 진실을 구했고.
우우웅-!
큰 어려움 없이 서로의 동의 속에 계약은 진행되었다.
그리함으로써 두 망자는 이사야의 아래에 복속되었고.
그렇게 되자마자 두 망자는,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삼켰다.
-음…….
-……반은 속았군.
서로의 계약 속에서 두 망자가 지닌 힘의 방향과 이사야가 지닌 그 목적을 알게되는 것은 필연.
계약에 조건이 명시되어야 하기에,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 결과,
두 망자는 이사야가 둘을 속일 생각이 전혀 없었음에도, 결론적으로 속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계약을 하지 않았어도 우린…… 한을 풀 수 있었겠군?
“그래. 그렇게 되겠지.”
두 망자와 계약을 통해 이사야는 새로 힘을 얻었다.
그녀가 사마력을 다루면서 얻은 과부하의 일부를, 의지를 지닌 망자들에게 얹을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
의지가 없다면 모를까.
의지만 있다면, 그 폐해를 얼마든지 짊어질 수 있기에 둘은 계약을 통해 그것을 동의하였다.
그 폐해를 짊어지는 것은 산 자에게는 끝없는 고통이 될 수 있지만.
그들과 같은 망자들은 되려 의지를 키우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
망자는 생자와 달리 한이 곧 의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으로 알게 되었다.
이사야가 넣은 작은 장난을.
“이 시대…… 특히 이 땅 위에 있는 망자들이 품은 한은 둘 중 하나지. 몬스터 혹은 인간. 맞지?”
-…….
-이미 알지 않는가.
“후후. 직접 말함으로써, 얻어지는 게 술사에겐 있으니까.”
-그러한가…….
“그래. 명확히 하는 것이 힘이 되거든. 일종의 주문처럼. 자자, 다시 본론으로 오자고.”
-……본론이라. 우리가 가진 한은…… 나는 몬스터였지. 이 땅 위의 것을 뭉뚱그려 죽이는 것.
“그래. 그리고 마법사 네 녀석은…….”
-……알잖느냐. 나를 버린 자들. 그들과 함께 하는 자를 죽이는 거.
“말 그대로 학살과도 다름없는 한들이지. 망자답달까.”
-맞다.
-……으음…….
이들이 지닌 한은 두 종류.
몬스터 혹은 인간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한이다.
이 두 한은 공교롭게도 이사야가 목적으로 하는 바와 같았다.
‘중국을 부수기에 이것만 한 것들이 또 있을까.’
지한휘가 그녀에게 지정해준 목표지는 중국.
정확히 리바이를 버리도록 명령한 자들과 그곳에서 날뛰고 있는 몬스터의 처리였다.
그리함으로써 그들이 얻는 것은 꽤 큰 터.
그러기에 이사야도 망설이지 않고, 지한휘의 품을 떠나 이 중국에 왔다.
그곳에 와 그녀가 가장 처음 한 것은 망자의 부대를 만들어 내는 거.
그리고 두 번째가 현재와 같이 그 거대한 망자의 군대를 같이 짊어질 한을 품은 자의 탐색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은 게 이 둘이었고.
그 둘에게 이사야는 가감 없이 자신의 목적을 말하였다.
그러기에 둘은 계약 뒤에 한숨을 지은 거였다.
자신들의 한과 상관없이 이사야는 결국 자신들의 한을 풀어 줄 것을 계약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까.
그러니 장난질이라 칭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영원토록 이사야를 따르지 않는다는 계약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러나 뒤 이어지는 이사야의 말에는 둘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