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9화
한 왕의 이혼 문제가 종교의 새로운 지파를 열기도 하는 게 실제 있던 일이듯.
흔들리고 있는 세계 속에서 구원을 찾고자 하는 새로운 종교가 만들어지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반쪽짜리라도 성좌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것이 더 쉬워지는 건 명약관화한 일.
매일 새로 종교가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순간 속에서도,
큰 세력을 일구는 자들이 분명 있는 법이었다.
“도착했네요.”
“주페르…….”
신흥종교 주페르.
그곳도 그러한 곳 중 하나였다.
성좌 주페르란 자가 신을 자처하고 있으며.
그 아래 있는 성녀와 성자는 유럽에 한해서는 마리보다도 더한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유럽의 삼분지 일을 차지할 만큼 강력한 세를 지니고 있는 그들의 본산은 영국.
강력한 치유 능력을 바탕으로 세를 늘리는 그들을 막을 자는 없어 보였다.
실제 수많은 자를 살렸고, 그를 바탕으로 세를 늘리는 듯 보이니까.
선함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기에, 그 교황청조차도 저들을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
지금도 수많은 자들에게 봉사를 행하고 있고, 실제 꽤 많은 자들을 살리고 있었다.
곳곳에서 기적이니, 신의 은총이니 하는 말들이 울려 퍼지고 있었으니까.
그를 보고 진실을 알게 된 아이단이 평하게 되는 말은 단 한마디였다.
“더럽군…….”
그는 그 모든 장면을 바라보며, 역겨운 듯 인상을 찡그렸다.
이는 마리도 마찬가지.
그 옆에선 전 문지기이자 현재의 안내자도 같은 역겨움을 느끼고 있었다.
“호움…… 없어져야 할 곳이로군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이들은 주페르라 불리는 이곳의 실체를 알고 있기 때문.
저들이 가진 치유 능력의 바탕은, 누군가를 제물로 삼아 얻어낸 것이며.
선의를 바탕으로 보이는 봉사활동의 안에 진짜 의미를 알기 때문이었다.
‘신도와 제물이 될 자를 가르는 활동이지. 일종의 계측을 위한 행위일 뿐이야…….’
후에 이들의 제물로 아이단의 가족들이 전부 선택이 되고.
나중에 가서야 그 일을 알게 되는 아이단은 자신의 삶을 후회로 점칠시킨다.
더는 그러한 광신도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스스로 기사를 자처하였었고.
실제 그만의 기사도를 세우며 수많은 광신도를 학살하게 하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러한 아이단을.
마리는 미래가 아닌 현재에 불러들였을 뿐이다.
회귀 전의 기억을 억지로 욱여넣음으로써, 그를 일깨운 것이다.
앞으로 있을 미래를 현재로 불러들이는 것은 사실상 역천.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을 아이단의 고통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을 겪은 주제에.
단지 마리가 지닌 기억 속의 파편을 가져왔을 뿐임에도.
“고맙군. 그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어 줘서.”
그는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었다.
미래에 일어날 그 사건을 막을 기회가 생긴 것이니까.
스스슷-
힘을 일으키고 있는 그는 진정 지금을 기꺼워하고 있는 듯했다.
그에게 가족이란 전부나 다름없었고.
그 가족이 죽지 않게 만들 기회라 여기고 있었으니까.
되려 씁쓸해 하는 건 마리 쪽인 터.
그녀는 미래를 억지로 끄집어내어, 아이단을 현재에 불러들인 것에 대한 거친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그 대가를 자신이 아닌 아이단이 나중에 가서야 치를 테니까.
그런데도.
“……정말로 믿으시나요?”
“믿지 않으면? 이것도 받아냈는데, 믿지 않으면 이상한 거 아닌가?”
“제가 당신을 세뇌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세뇌라…… 내가 모두를 구하기 위한 세뇌라면…… 그조차도 받아들여야지. 방구석에 내던져져 시간을 좀 먹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후.”
그 모든 걸 다 알고 있음에도, 아이단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저 미래에 가서, 후유증을 겪는다고 할지라도.
평생을 후회했던 그 사건.
모든 가족이 제물로 몰살당하여, 그를 깨어나게 하는 계기가 됐던 그 일은 바라지 않는 것이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마리. 미래의 나라도 당신이 내 기억을 깨워주는 걸 기꺼워했을 거니까.”
“…….”
“거기다 물증도 있지 않나? 이 방패를 보라고. 크큭…… 폐인처럼 지내고 있는 나를 꺼내겠답시고 이런 보물을 준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아?”
터어엉. 텅.
되려 그는 자신의 애병이 된 신화 속 방패를 툭툭 쳐가며 마리를 위로했다.
마치 미래의 진짜 아이단처럼.
“자자…… 가보자고. 나는 복잡한 것은 모르겠어.”
그는 한 걸음에 자기 심경을 말하고.
다시 한 걸음에.
“미래의 내가 어찌 될지도 모르고. 회귀니…… 무엇이니 하는 거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머리에 담겨 있는 복잡함을 던져냈다.
철컥-
자신의 팔과 어깨에 거대한 방패를 이능력으로 엮어내며.
“어쨌든…… 시간을 죽여가는 나를 꺼내왔으니, 그 대가는 치러줘야 하지 않겠어? 그러니 가자고. 미래, 아니 현재의 동료야.”
“……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을까 전전긍긍하는 마리를 위로해 준다.
그 든든함으로 말미암아, 마리를 움직이게 한 그는.
“무슨 일로 오신…… 컥……!”
“되다 만 광신도를 정화하러 온 거다.”
콰아아아앙-!
주페르 교단의 본단을 공격하는 것으로, 그 모습을 처음 드러내었다.
원탁의 기사 아이단.
그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었고.
또 얼마 가지 않아.
-내가 움직일 때인가?
-으음…… 이런 식의 호출도 있었나.
최후의 칠 인들이 연락을 받고 움직이기 시작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 * *
그렇게 마리가 미래의 동료들을 엮어내고.
그들이 공허라는 전대미문의 멸망을 피하기 위하여 긍정의 가능성을 키우고 있을 때.
그와 동시 이미 커져 버린 멸망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는 존재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이사야.
한휘 다음으로 가장 파괴적인 힘을 지닌 그녀가 이러한 일에 선택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후…… 마음에 안 들어.”
되려 그 역할을 맡은 그녀로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듯 보이지만.
이제 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움직이지 않을 그녀가 아니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녀 또한 끝을 보기 위한 여러 선택을 하였으니까.
어쩌면. 죽음의 지팡이를 보게 되었을 그때.
한휘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는 그때부터, 그녀도 이 순간만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앞으로 일어날 거친 일들에 흥분이라도 되는 듯 몸이 떨려오고 있었으니까.
“후…….”
그녀는 한숨을 한번 집어삼켰다가 놓아주고선.
스스스스-
은밀하게 마력을 끌어올렸다.
한 단계, 한 단계 끌어 올리고 있음에도 그녀가 다루는 사마력은 주변에 거친 존재력을 뿜어내었다.
“이제 슬슬 알겠는데…….”
그 거친 존재감으로 말미암아, 이 주변에 있는 이능력자들이나 헌터들은 그녀의 존재를 알아챘을 거다.
본능적으로 인간의 목숨을 노리는 몬스터들도 그녀의 목숨을 노리겠지.
그만큼 그녀가 드러난 힘은 꽤 매력적인 것이었다.
한 사람이 일으켰다고 하기엔 너무도 거대하며, 동시에 음습하였으니까.
몬스터가 집어 먹는다면,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터이고.
사람이 그것을 얻어낸다면, 꽤 괜찮은 연구 도구가 될 수도 있겠지.
“뭐 상관없나…….”
그녀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러 왔지만, 그녀가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조차도 실은 같은 사람을 쉽게 죽이곤 하는 자들인 걸 아니까.
실제 그녀의 최후 동료가 되었을 리바이도, 그들이 버렸기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차라리 피아를 신경 쓰지 않고 힘을 쓸수록 내 힘은 더 편하니까.”
그녀는 씁쓸하게 한 번 웃어 보임으로써, 마지막 망설임을 던졌다.
삼 단계로 사마력을 전개하고.
그를 통하여 그녀가 원하는 심상적 파괴를 이 영역 전체에 흩뿌리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과정이 성공하기까지, 그녀의 손에 쥐어진 죽음의 지팡이가 큰 공을 차지하고 있음은 당연한 이야기.
고오오-
요요하게 빛나는 지팡이를 그녀가 양손으로 잡았다.
그러곤 그녀가 펼쳐 놓은 마지막 메시지를, 이 세계에 구축하기 위한 마지막 구동어를 던졌다.
그것이 마법사가 세계의 법칙을 비틀어 내기 위한 마지막 의례 행위였으니까.
“사특한 마력의 정원…… 전개.”
휘오오오오-!
그녀 주변으로 사마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 *
끝없이 부풀어 오른 사마력은 주변 10킬로미터를 뒤덮었다.
일개 인간이 만들어 낸 사마력이라 하기엔 너무도 짙고 무거운 기운들이 내려앉은 그 순간.
-그어어어.
-그륵?
이 땅 아래 뒤덮여 있던.
이제는 잊힌, 앞으로도 잊혀질 수많은 죽음이 제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빚어진 육체는 제 몸에 헐겁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살점들을 마저 벗겨내었고.
이제는 뼈만 남은 몸의 마력을 동력 삼아 움직이고 있었다.
대다수는 하염없이 약하여.
그 의지조차 미약하였으나.
어떤 장소든 타인보다 영특한 능력을 타고난 개인이 있는 법이었다.
-……일어…… 났다.
-흐…… 이렇게 내가 살아나나.
-크르륵…….
죽어서도 그 의지를 가지고 있는 자들.
이사야의 사마력으로 빚어졌음에도, 제 의지를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들이 지닌 능력은 분명히 뛰어났다.
살아생전, 강력한 능력과 의지가 없었더라면 결코 이 의지가 다시 깨어날 일은 없었을 테니까.
동시에. 이들은 위험하였다.
이사야의 힘을 빌어 깨어났으나, 이사야의 말을 들을지는 이들의 선택에 달려 있었으니까.
“이리로 와.”
그러나 이사야는 망설임 없이 그들을 불러들였다.
죽은 망자들에게 그녀의 의지가 전해지는 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해야 몇 초.
-거기인가?
-그렇군…….
-어디 얼굴을 한번 볼까.
스스스스스-
죽은 망자들.
의지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상관없는 움직임이 만들어진다.
죽음의 정원에 걸맞은 죽음의 행렬이 이어진다.
그 행렬이 우뚝 멈추어 선 것은 정원 중앙에 있는 이사야의 앞에서다.
-내 안식을 네가 왜 방해한 것이지?
-뭐지? 살려 준 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나.
그 선두에 죽음을 초월한 의지를 지닌 자들이 있었다.
그녀가 그들을 살렸음에도, 그들은 이사야의 의지를 행하기를 원치 않았다.
여기까지 도달한 것만으로도, 살려 준 것에 대한 대가를 다 치렀다고 여기는 이도 있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사야는 금기를 어긴 상태였다.
제아무리 망자를 지배하는 사마력을 다룬다고 할지라도 선이란 게 있는 법이었다.
제 의지를 잃은 망자.
원념에 점칠되어 오로지 죽음만을 바라는 자를 다루는 게 사마력의 기본이다.
제 의지를 다루는 자는 결코 불러들이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사마력을 다루는 술자를 자멸하게 만드는 짓이었으니까!
제아무리 뛰어난 사마술사라도, 제가 부른 원귀들이 말을 듣지 않아서야 어찌 힘을 사용하겠는가.
그러기에 금기고, 절대 범해서는 안 되었을 일이다.
이사야는 그러한 금기를 벌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금기를 벌인 주제에 그녀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꿇어라, 머저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