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원탁의 기사, 아이단.
최후의 칠 인이 되었던 그.
제 몸만 한 방패를 들고 휘두르던 그는 강력한 탱커 중 하나였다.
실제 마왕의 강력한 공격을 끝까지 막아 내었던 그의 활약은 칠 인에게 있어 큰 힘이 되었었다.
그가 초반의 공격을 막지 못했더라면, 칠 인은 끝끝내 마왕에게 닿지 못했을 것이니.
그의 역할은 분명 중요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그는.
“흐흐흐…… 한국의 성녀라는 인간이 왜 여기에 온 거지?”
배 나온 배불뚝이에, 제 몸조차 간수하지 못한 머저리였다.
“엉망진창이시군요.”
“엉망이라…… 본래부터 이 상태가 나의 보통 상태면 그건 엉망진창이 아니라 보통 상태이지 않을까?”
“되먹지 못한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생각보다 더 엉망진창이네요.”
한때 아이단과 자주 어울리던 마리.
지금은 썩어 없어져 버린 기사도.
실제는 지켜지지도 않던 그러한 기사도를 지키자고 애쓰던 게 아이단이었고.
그런 아이단의 모습을 응원하던 게 마리였다.
적어도 그는 최후의 기사에 걸맞은 모습을 보였었으니까.
언제나 진중하였고.
또한 선두에 서서 모두를 지키는데 한 점 망설임이 없던 게 그였다.
지금 눈앞의 아이단의 모습은 마리가 기억하던 모습과 정반대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왔다.
현재의 아이단이 어떻게 지내는지.
그가 왜 죽어버린 기사도를 지키며 살았는지는 앞으로 일어날 하나의 사건이 있어서니까.
그 사건 이전과 이후에 그는 변하였고.
원탁의 기사라 불리기에 충분한 인물이 되었다.
지금은 단지.
“흐…… 본래 성녀가 이러하나? 그런 성격은 아닐 건데.”
“당신도 본래 그러한 성미를 지닌 자는 아니지 않나요?”
“…….”
그 가능성만 지닌 머저리일 뿐.
미래에 최고의 동료였던 자가, 현재엔 방구석 폐인이나 마찬가지인 이 상황.
그걸 조소해야 하는지.
아니면 아직 동료가 되는 미래는 벌어지지 않았기에, 안쓰럽게 바라봐야 하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는 마리였다.
‘차라리 이사야가 오는 게 나았어…….’
최후까지 함께하던 믿음직한 동료의 최악의 상태를 바라보는 건, 그 하나만으로 정신적 공격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일에 면역이 거의 없는 마리로서는 괜스레 공격적인 말투가 나오곤 했다.
‘내가 이런 성격이었나…….’
마리 자신조차도 잘 모르던 자기 성격의 일면이었다.
하기는…….
한휘와 회귀를 함께 겪어 2회차를 살고 있는 마리 자신이다.
그 자신조차도, 자기 자신을 모르는데 회귀를 함께하지 않은 아이단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건 욕심일 지도 몰랐다.
동료였던 아이단은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개화하게 되는 자니까.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이런 식으로 지냈다는 것은…… 어쨌건 회귀 전에도 일어났던 일이다.
그것을 봤느냐, 보지 못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문제는.
“예상보다 너무 저열하네요. 눈빛도 영 마음에 안 들구요.”
이 자가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못하단 거다.
“……다짜고짜 성녀라는 사람이 쳐들어와서 할 말이 그거뿐이야?”
“그럼 다른 말을 해드려야 하나요? 그래도 제가 성녀라고 불리는 걸 보면 바깥소식에 완전히 귀를 닫고 사는 건 아니네요. 방구석 폐인 주제에요.”
“……음.”
해서 더 공격적으로 쏘아붙여 보는 마리였다.
껍데기를 둘둘 두르고, 방구석에 갇혀버린 자.
아직 칠 인에 걸맞지 못한 상태에 있는 그를 억지로라도 일깨워야 하는 게 그녀의 역할이었으니까.
그녀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당장 필요하기에.
그녀는 과거의 동료였던 아이단이 회귀 전에 후회하듯 자주 읊었던 말을 떠올렸다.
-쓰레기였지 나는…… 현재도 쓰레기나 다름없어. 속죄는 무슨……. 그저 과거에 파묻혀 사는 거지. 염탐하고, 또 바라보고, 바라면서도 안에만 숨어 있던 머저리가 나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돌려줬다.
“정곡을 찔린 거 같죠? 왜요? 아닌 척하면서도 바깥을 염탐하듯 살아 온 게 당신이잖아요. 하루, 하루 후회는 켜켜이 쌓으면서요.”
“……너, 뭘 알고 온 거지?”
그러자 반응이 온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술병을 바닥에 던지듯 놓았다.
그러고 일어나, 몸을 일으킨다.
몸을 일으킨 그가 마리를 내려다본다.
수십 센티의 차이가 나는 신체.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봄에도, 마리는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아직 있었으니까.
“뭐겠어요. 바보 같은 미래의 동료. 그를 깨우러 온 거죠.”
“이번엔 또 알 수 없는 말인…… 큭.”
고오오오-!
아이단. 그가 일어서자마자 그녀가 하는 것은 기도의 구축.
작은 기도진을 구축하고, 그 안에 아이단을 집어넣는다.
그를 일으켜 세움으로써 필요로 하는 일 단계는 완료된 상황.
‘더 길게 갈 필요는 없겠죠. 아이단, 당신도 이해해 줄 거라 믿어요. 평생을 후회하는 거보다는 당장의 고통이 나을 테니까요. 적어도 당신에게는요.’
이로써 그녀만이 구축할 수 있는 기도진에 아이단이 제 발로 들어섰다.
쿠우웅- 쿵-
“뭐야! 뭐냐고! 컥…….”
고통스러운 와중에서도, 그는 기도진이 구축된 안에서 바깥을 향해 벽을 두드린다.
크게 두드리는 소리가 나지만, 그녀가 구축한 기도진이 망가질 리는 없었다.
현재의 아이단은 제대로 제 가능성도 개화하지 못한 쓰레기.
미래의 그였다면 모를까.
현재의 그가 마리가 구축한 기도진을 부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쿠웅. 쿵.
그나마 그가 기도진을 부딪칠 때마다 일어나는 거대한 굉음이 그가 지닌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면 중 하나라는 게 다행일까.
어쨌건.
중요한 건 다음 단계다.
자신이 기억하던 미래의 동료.
엉켜버린 시간선에서, 그녀의 기억에서는 빛바랜 과거의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아이단.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미래의 그를 현재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이 기도진은 그러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
“신이여. 당신에게 제 머릿속 편린을 구축하는 것의 허락을 고하나니다.”
이미 일은 시작되었다.
더 망설일 것이 없었다.
스스스스-
그녀는 곧바로 이 단계에 들어섰다.
그것은.
[당신은 기도 : 과거의 잔재 전이를 사용하였다.]
마리의 기억 속에 있는 원탁의 기사 아이단.
과거이자 미래 속에 있는 그의 기억을 고스란히, 기도진 안에 있는 아이단에게 쏟아붓는 것.
그 기억은 마리의 시선에서 본 아이단이기에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으며.
또한 조각조각 나뉘어 있어, 제대로 된 온연한 기억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너, 너어…… 내게 대체 무슨 짓을…… 크아아악……!”
한 명을 각성 시키는 데는 충분하고도 남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거렁뱅이나 다름없는 아이단.
그의 머리에 마리가 불어넣는 수많은 지식이 새겨진다.
아니 기억의 편린이 틀어박힌다.
기사로 활동하던 그.
자신의 애병인 방패를 구하던 때의 그.
칠 인이 되어 전위에 선 걸 영광이라 말하던 그.
과거에 후회하던 그.
또한.
그때의 그 사건으로 모든 게 변해버렸던 그의 계기.
그 모든 게 반쪽짜리인 그에게 주입된다.
그것은 어쩌면, 그 어떠한 고문보다도 잔인한 일이었다.
미래의 편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그야말로 강제로 박아버리는 것이니까.
그러나.
성력을 불어 넣는 마리는 멈춤이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설사 괴물이 되더라도. 그 끝을 보는 게 저와 한휘의 결심이니까요.’
아이단.
그에게 원망을 받더라도.
바꿔버린 시간선에 의해서 그 결과물이 망가지더라도 상관없었다.
한휘가 만들어 놓은 계획대로라면, 일은 금방 벌어질 터.
그때를 위해선 뒤는 생각지 않고 무슨 일이라도 해내기로 하지 않았던가.
현재의 아이단을 이용하여, 미래의 아이단을 불러내는 거.
그게 설사 역천에 가까운 일일지라도.
본래 그녀가 지닌 가치관의 일부가 망가지는 일일지라도 상관없었다.
현재의 그녀는.
‘……그리고 또한 그것이 저의 각오니까요. 이건 끝나야 하니까.’
그 모든 걸 내던지고서라도, 해낼 각오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한 각오가 형상화되는 것인지.
고오오오오-!
굴절되어 가던 그녀의 성력이 더 곧게 뻗어나간다.
그녀의 각오만큼이나 곧고, 강력하게.
뻗어나간 그 강력한 성력이 아이단에게 끊임없이 주입된다.
그것은 거대한 성력의 파도!
적어도 수십 명의 인간을 부활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거대한 해일과 같았다.
그 모든 걸 들이붓고, 박아내고, 억척스레 압축시킨다.
아이단의 몸 하나에!
그럼으로써 만들어진 결과는 하나.
“크아아아악……! 이건…… 이게 대체 무슨…….”
미래의 일부를 꺼내와 아이단의 몸을 강력하게 탈바꿈시킨다.
본래라면 수년간 목숨을 내놓은 던전행을 벌여야 하고.
수많은 광신도를 학살하고 나서야 온연히 만들어질 그 몸을 억지로 꺼내 든다.
그러고는 그러한 단단하고 올곧은 몸으로, 숙련하여 쌓았을 기술들을 억지로 일깨운다.
“읏…….”
이는 제 아무리 성녀라 불리는 마리라도 본래 불가능한 일.
그러나 한휘가 건네어 준 누군가의 ‘영혼석’ 하나로, 이 기적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기술과 육체.
그 둘이 전해지고, 기도진은 제가 행해야 할 마지막 단계로 나아간다.
그것은.
“아아…… 안돼…… 안돼! 안된다고…… 큭…….”
미래에 그가 지니고 있던 후회.
미래가 될 수 있을 기억들의 편린.
그를 원탁의 기사이자, 광신도의 학살자로 만들었던 과거의 사건들이 그의 머리에 틀어박힌다.
현재의 그의 가치관을 완전히 깨부숴버릴 기억의 파도가 그를 덮치는 순간.
“끄윽…….”
그는 마지막 신음을 삼키며, 온몸을 덜덜 떨었다.
쿠우웅-
겨우겨우 버티던 그.
그의 육신이 다시 무릎 꿇는다.
동시에.
파즈즉-
그를 가두고 있던 기도진이 깨져나간다.
한참을 무릎 꿇고 있던 그. 그가 다시 몸을 일으키는 데는 일 분 정도면 충분했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덜덜 떨림에도, 다시 몸을 일으킨 그의 눈은 한점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제 신념을 위해서라면 뭐든 행하던 그때의 그처럼.
“마리…….”
“……아이단. 오랜만이에요?”
“후…… 너답지 않은 일이었어. 과격해. 너무나도 말이야. 그렇지?”
“미안해요.”
“아니. 아니야…… 이 기억이 가짜도 조작도 아니라면…… 너는 이유가 있어 행했겠지.”
“맞아요. 그 이유도…… 이젠 알죠?”
“그래.”
실제 그를 불러들이는 데 성공은 했다.
반은.
그러나 아직 완전한 성공은 아니었다.
두 가지를 행해야 했다.
“우선 방패를 찾아야겠군…… 그래야 내 힘을 온연히 쓸 테니까.”
“그건 걱정 마세요. 이미 작업은 시작했으니까요.”
하나는 진짜 힘을 되찾기 위해 그의 애병을 찾는 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좋아. 그럼 두 번째는 알고 있겠지?”
“네, 그때의 그 사건. 그걸 막으러 가야겠죠?”
“……고마워.”
그를 후회의 덩어리로 만들었던 과거의 사건 하나를 막아 내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