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화
처음은 놀람이었다.
“곧 있으면 공허가 내려앉는다는군요.”
“공허?”
“예. 모든 걸 잡아먹는 종말. 그는 그걸 공허라고 칭했어요.”
그것은 [공허]라는 것에 대한 놀람이었다.
종말이라.
무엇이 종말이란 말인가.
모든 종이 사라지는 것?
혹은 인간이라는 종만 사라지는 것?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자기 자신이 사라지면, 그거야말로 규모에 상관없이 종말이었다.
자기 자신이 사라진다는 건, 온연히 세상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단 의미니까.
그럼 세상이 사라진 종말이지 않겠는가.
그러니 종말이라고 하는 건 사실, 한 개인의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는 거였다.
하나의 개인마다 하나의 세계를 지니는 법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를 설명하는 김시연의 어투는 꼭 그걸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종말이 무엇인지 설명이라도 들은 느낌. 아니 꼭 겪어보기라도 한 말투였다.
이에 대해 나헤나는 가감 없이 물었다.
“꼭 먼저 보기라도 했다는 투인데.”
그에 대한 대답은 의외였다.
“적어도 그는 이미 느껴 본 것 같더군요.”
“어디서?”
“그 부분을 모르겠네요. 다만…… 진실을 말하는 것 같기는 하더군요.”
“어째서지?”
“그가 간접 경험이랍시고, 영력을 다뤄서 느끼게 해줬거든요. 그 공허함과 공포를요.”
무려 종말이라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겪게 했다는 말을 들었으니, 의외랄 수밖에 없었다.
[공허] 혹은 종말.
사실 단어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대체 그러한 걸 어떻게 겪게 하느냐는 거다.
대체 어떤 공포와 공허를 느끼게 해야, 저 철의 여인 같은 김시연이 저리 두려워하게 할 수 있을까.
나헤나로서는 애써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느끼고 싶은가요?”
“느껴? 어떻게…… 윽…….”
그러나 짐작할 필요가 없었다.
김시연이 무언가 손짓하자.
스스슷-
자신의 힘을 상쇄시켰던 알 수 없는 그 힘이 움직였다.
존재한다고 예상했으나,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모르겠을 그 힘이 자신의 몸에 닿았을 때.
“아아아악!”
나헤나는 비명을 내질렀다.
공포스러웠다.
공허 따위가 아니었다.
이건…….
마치 존재 자체가 정말 으스러지는 듯한 그 무언가였다.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이대로 조금만 시간이 지난다면.
아니 단 몇 초만 더 지났다면, 자신은 자신으로서 온연히 존재할 수가…….
“하악…….”
그녀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마치 그를 알았던 것처럼, 그 수상한 힘을 그녀를 놓아줬다.
“하아…… 하…….”
그제야 그녀는 신음하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대체 그게 뭐야?”
“공허라는 것의 일부를 흉내 냈다더군요.”
“당신도 이걸 겪었던 거야?”
“……네. 원했던 건 아니지만요. 설명을 위해선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하…….”
그나마 나헤나 홀로 그걸 겪은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아니었다.
이건 누가 겪든 상관없는 문제였다.
[공허]라는 존재 자체가 문제였다.
이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아니, 실제로 존재하겠지…… 그러니 지한휘가 그리 움직인 건가?’
그것이 정말로 곧 내려앉는다면. 그때는.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쌓아온 러시아란 자신만의 제국 그 모든 것이 하잘것없어 보일 정도로 두려운 일이지 않은가.
“그래서 지한휘는…… 이걸 막자고 하는 거야?”
“그렇다더군요.”
“막을 수는 있고?”
“막을 수나 있는지는 둘째 치자더군요. 막지 못하면 모든 게 끝이니까요.”
“하…….”
러시아를 얻은 이때에 종말이라.
두렵고도 두려운 일이지 않은가.
가장 높이 올라선 이때에, 모든 게 무너지는 가장 아래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인가.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은 있었다.
“막을 가능성이 단 일도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막자고 하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예. 적어도 제가 본 지한휘는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끌 만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 그렇지.”
그 확률이 어찌 되든.
설사 0%에 수렴하는 확률이라고 할지라도, 막을 수 있을 수는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 지한휘는 희망없이 움직이는 자는 분명히 아니었으니까.
거기에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통합을 하자는 거구나.”
“예. 당장 모든 걸 끌어모아야 한다더군요. 가능한 한 모든 걸요.”
그리고 자신은 그 희망에 온 힘을 더해야 할 참이었다.
그렇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이 세운 이 제국을 지킬 수 없을 테니까.
‘이제 이해가 가네…….’
그제야 모든 상황을 파악하게 된 나헤나였다.
“하…… 이래서 내게 힘을 보태어준 거겠네. 그는.”
“우리 한국에서 힘을 쓴 것도 같은 이유일 거예요.”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가 많은 걸 얻었음에도,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듯 행동했던 이유.
모든 걸 던지듯 항상 달려 나가던 그.
자기 자신을 연료 삼아 소모하며 달려 나가던, 그 장렬한 타오름은 모두 이유가 있었다.
[공허]를 막겠다는 거.
자신이 간접적으로나마 느낀 그게 정말로 [공허]라면…….
그걸 막지 않고서는, 그 뒤는 감히 꿈도 꾸기 어려운 게 현실이니까.
그는 현실을 살기 위해 미래에 달려오는 공허를 막자고 그리 움직인 것이다.
그걸 이해하니, 그 뒤도 이해가 자연스레 갔다.
그녀가 러시아를 잡아먹는 것에 그가 대가도 없다시피 하며 도왔던 것들.
누구라도 욕심이 날 만한 재화와 사람들을 들임에도 그에 괘념치 않았던 것들.
그 모든 이유가, [공허]를 막겠다고 움직인 거라면 전부 이해가 갔다.
이 순간.
“대체 그가 그걸 왜 아는지를 모르겠어. 왜 그게 오는지도 모르겠고. 하기는…… 체계라 하는 거도 왜 왔는지 전혀 모르지.”
“그렇죠. 그로부터 파생된 던전, 몬스터, 다른 차원. 그 모든 것들…… 전부 우리는 영문도 알 수 없었죠.”
“그래. 만약 그것들이 일종의 침공군이라면…… 아니 이 세계를 오염시키는 오염체라고 이해한다면…… 지한휘가 움직인 그 모든 이유가 이해가 가.”
“……네. 공감합니다.”
둘이 함께 움직여야 할 충분한 이유는 만들어졌다.
김시연은 자신이 겪은 [공허]라는 것에 대해서 이미 한국의 ‘미래’에 전달을 한 지 오래였다.
러시아를 잡아먹은 여왕, 나헤나도 방금 그 미래를 같이 엿보게 되지 않았던가.
그것으로 이유는 충분하다.
문제는 이 뒤다.
한휘가 직접 골랐다 할 수 있는 조력자들.
이들은 끝없는 절망 끝에서 무너지는 자들이 결코 아니었다.
그렇게 무너질 것이었다면, 최후의 칠 인도 그를 따르는 자들도 결코 만들어지지 않았을 터였다.
이들은 되려 더 큰 절망이 자신을 찾아올수록, 더 극렬한 적의를 불태우며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그러기에 이들은 금방 자신들이 할 일이 찾았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정해져 있겠네.”
“네. 마치 지한휘가 우리를 조종하는 꼴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가 정해준 일을 해야겠죠. 통합이요.”
그것은 통합이었다.
지한휘의 마음대로 이뤄지는 듯한 통합이지만.
어찌하랴.
그 [공허]가 진짜라면.
아니 그 일부만 진실이라도 세상은 절망에 빠지기에 충분했다.
자존심을 떠나 움직여야 했다.
“……러시아는 걱정하지 마. 되려 나를 중심으로 금방 뭉칠 테니까.”
“한국은…… 으음…… 잡음이 있겠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제가 있는 미래의 회장님께서도 움직이기로 마음먹으셨으니까요.”
“그래야겠지.”
이로써 통합은 결정되었다.
다소의 시행착오와 문제는 저 멀리 뒤로 미뤄둘 것이었다.
시행착오와 문제 따위도 결국은 살아남아야 해결할 수 있을 문제였으니까.
급하지 않은 것은 뒤로.
급한 문제는 앞으로.
그에 대한 합의는 금방 끝났다.
이제는 그 뒤가 중요했다.
그 힘을 어디에 투사하느냐는 거.
“통합이 끝나면, 그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지?”
“신호가 올 거라더군요. 아주 성대한 신호가요.”
“……후. 하여간 한 번에 알려 주는 법이 없다니까.”
문제는 그 지한휘답게, 완벽한 답은 주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선 움직이자구. 그럼 답이 나오겠지.”
“예. 다음에 올 때는 더 많은 자들이 함께 올 거예요.”
“얼마든. 기대할게.”
“그럼 다음에 뵙죠.”
맘에 들든, 들지 않든 간에 움직일 때였다.
* * *
그렇게 나헤나가 [공허]라는 것으로 놀라,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을 때.
지한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둘은 또 각자가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마리였다.
그녀는 초상능력에 가까운 기도와 비행을 통해서 빠르게 지구라는 세계를 주파했다.
화승의 힘을 더해 수많은 이동 수단을 사용해 내고.
그사이 잠깐의 틈이 생기면, 자신이 사용하는 기도를 이용해 공간을 이용하는 식이었다.
만능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그녀이기에 할 수 있는 이동이었다.
오로지 그녀 홀로만 가능한 묘기이기도 했다.
그녀가 지닌 기도의 능력은 만능에 가까우나 전능은 아니었으니까.
그녀 하나의 몸을 이동시키는 것만으로도, 그 능력을 거의 한계치로 몰아붙이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움직여야 했다.
-아무래도 기도를 드리는 자들끼리 통하지 않겠어?
지한휘가 던졌던 말.
그 말을 따라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기도라도 다 같은 기도가 아니라구요. 한휘.’
사실 그 말은 말도 안 되는 말이긴 했다.
기도를 드린다는 행위로 모두가 비슷하다면, 던전이 생기기 전 그 많은 종교가 다툰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수천 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종교만으로 벌어진 살인과 다툼이 얼마나 많단 말인가.
그걸 단순히 같은 기도를 드리는 것만으로 상관없다고 하다니.
쓸데없는 부분에서 대범한 지한휘 다운 모습이었다.
어쩌면 가장 웃긴 건, 그 말을 따라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할 자신일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이동의 마차를 제게 내려 주세요.”
[당신은 기도 : 성능력의 마차 소환을 사용하였다.]
화아아악-!
그녀는 자신의 신성력을 제물 삼아, 없는 걸 만들어서라도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말투는 가벼울지라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해내야 함을 알기에 하는 행동이었다.
“윽…….”
그 결과 지독한 고통이 그녀를 엄습한다.
무리를 해서였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단순히 이동이라고 하지만, 공간을 몇 번이나 건너뛰었던가.
억지로 공간을 이어붙이고, 움직이고.
그로도 모자라 이동을 위한 수단들을 수없이 소환했다.
그런 그녀의 힘을 읽어내고, 달려드는 수많은 몬스터도 상대해야 했다.
당연히 힘든 고행의 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고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드디어!”
그녀가 목표로 했던 곳이, 그녀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