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진짜는 크리처 따위가 아니지.’
이곳은 일반적인 던전이 아니었다.
성좌가 강제로 제 사도들을 모으기 위해서 만들어 낸 덫이다.
그러한 덫의 진짜 의미는 나에게 의하여 철저하게 퇴색되었으나.
무려 성좌가 한 일이기에 그 여파는 남아 있었다.
그 여파의 증거가 이 공간 그 자체.
“부서져라.”
나는 혼돈의 기운을 돋워 만든 뒤에, 재차 하늘을 향해 그 힘을 내질렀다.
피슉-
아주 짧은 소음이 스쳐 지나갔다.
소음은 짧았으나, 그 여파는 결코 짧을 리 없었다.
그그그그극-
이전에도 그리하였듯, 이 공격은 공간 그 자체를 노리고 있었으니까.
츠츠츠측-
깨지고, 으깨지는 소리가 난다.
얼마 뒤.
유리가 깨지듯, 실금 같은 틈들이 공간 전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제야 사람들이 현상을 눈치챘다.
“공간이…….”
“뭐야!? 깨지고 있잖아?”
공간이 깨져나가고 있음을.
자신들이 발을 디디고 있는 공간. 그 공간이 깨어져 나가는 걸 보는 경험을 지닌 자가 얼마나 될까.
제아무리 이능력자라도 평생에 한 번도 보기 어려운 게 공간의 으깨짐이었다.
그러한 현상을 수천이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으아아아…….”
“도망쳐야 하는 거 아냐?”
그중에 겁을 먹는 자가 있는 거.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본래부터 내 동료였던 자들도 있지만.
일부는 영웅의 전장에서 뛰던 허접한 이능력자들이었으니까.
갑자기 공간이 깨져감에 겁을 먹는 일 따위 이상한 일이 아니라 이거다.
그러나.
겁을 먹었다고 행동까지 이어갈 수는 없었다.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는데?”
“모르지!”
“X발……!”
모두가 한 공간 안에 갇혀 있고.
그 공간을 나갈 방법 따위는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콰즈즈즉-
공간이 완전히 으깨져 나가고.
그 뒤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이미 익숙한 것이었으니까.
“게이트다!”
눈앞의, 던전을 깨고 나면 보이는 게이트가 새롭게 자리해 있었다.
* * *
깨어져 나간 공간은 단순히,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쩌저정-
뒤이어 계속해 뒤틀리는 소리가 났고.
그때마다 이리저리 고립되어 있거나, 아키텍쳐의 속삭임에 홀려 들어가 있던 자들도 새로 모습을 드러냈다.
개 중에는 내가 아키텍쳐의 공간 일부를 빼앗아 내고 만들어 낸 내 영역도 고고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건 스러지는 바 없이, 스스로 존재하고 있구나.
‘내가 만들어 냈지만, 온연히 내 거라고 생각하긴 어려운 거지. 그 영감의 방식을 따라 한 거기도 하고…… 여러 힘을 섞었거든.’
-흠…… 일개 인간이 자신만의 영역이라. 재밌는 일이야. 상상치 못한 일이기도 하고.
공간은 마왕의 말대로 온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아키텍쳐의 공간은 계속해 깨어져 감에도, 내가 만들어 낸 영역은 변화 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러한 상태에 있을 듯해 보였다.
당장 저 영역을 갖고 뭘 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저것도 끝끝내 써먹을 수 있겠는데…….’
아키텍쳐로부터 얻어낸 정보에 따르면.
저 공간 또한 나중엔 쓸 만한 무기가 되어 줄 거다. 적어도 한 번쯤은 말이다.
그러기에 나는 저 영역을 위해서.
고오오오-!
꽤 많은 영력을 불어 넣어줬다.
내 영력이, 저 영역이 유지되는 근본적인 힘이기 때문이었다.
스스슷-
영역은 내가 던져 준 힘을 게걸스레 집어먹었고.
자신의 존재감을 더 공고히 했다.
그리고 그사이.
“으아아! 가자!”
“살았어!”
“흐어어억……! 여긴……!? 어?!”
수많은 자들이 모습을 드러낸 게이트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파앗-
파아앗-
사람 하나가 게이트를 지나갈 때마다, 게이트가 화면 조종되는 듯 치직 거리며 그를 빨아들였다.
겉으로 봐선 일견 불길해 보이는 게이트의 상태였으나, 속은 전혀 문제없어 보였다.
저 게이트는 무려 체계가 손수 만들어 낸 게이트로 보였으니까.
본디 영웅의 전장 유저였던 자들이 빠르게 물러나기 시작하고.
그 뒤에.
“다들 돌아가도록 해. 러시아에서 보자고.”
“한휘는요?”
“나도 갈 거야. 마지막에는.”
“알겠어요. 기다릴게요.”
“고작해야 몇 초 차이일 건데 뭐. 돌아가면 할 이야기가 많아. 이번에 꽤 많은 걸 알게 됐거든.”
“뭔데? 뭔데?”
“가서 이야기하자고. 자, 들어가.”
나는 동료들을 포함한 길드원들과 이번 일을 위해서 달려와 준 조력자들에게 돌아가라 말했다.
처음엔 모두 주저했다.
나만 두고 가는 게 괜찮나 싶은 듯했다.
혹은, 따로 내가 무슨 일을 벌이는지 궁금하기도 한 거겠지.
그러나.
나는 여기서 더 뭘 벌일 생각이 없었다.
그저 실패한 성좌가 두고 간 영역이 무너져 내리는 걸 끝까지 지켜보고 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럼…….”
“이따 봐요!”
하나, 둘씩.
사람들이 게이트를 향해 들어간다.
그렇게, 모두가 들어가고.
공간이 깨어져 나간다.
성좌 아키텍쳐의 영역에서 가장 작은 곳이었던 나의 영역.
그 영역이 남아 있는 영역 중에서 가장 큰 공간이 될 때쯤이었다.
“이제 나도 들어가 볼까.”
-그래. 어서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
마지막을 전부 보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고개를 돌려 게이트로 들어서려 했다.
돌아갈 때라 여겼으니까.
그러나, 잠시 뒤 눈앞에 드러난 메시지들에는 나조차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드러낸 것이 너무도 놀라웠으니까.
[성좌 : 아키텍쳐가 성좌를 잃었다.]
[성좌를 잃어버린 아키텍쳐는 외신의 일원으로 합류했다.]
그것은 하나의 성좌가 제 자리를 잃었다는 통보였으며.
하나의 정보였다.
[수많은 성좌 후보자들이 새로운 성좌 자리를 원하고 있다.]
성좌의 수는 제한되어 있고.
그 제한된 성좌를 차지하기 위해서 각축전이 벌어질 거란 정보.
우스운 것은.
[당신은 성좌 후보자들 중 하나로 참여할 수 있다.]
[당신은 인간 중 최초로 성좌를 빼앗은 인간이다.]
[당신은 인간 중 최초로 성좌 후보자가 된 인간이다.]
[당신은 인간 중 최초로…….]
나란 존재가 그 성좌 쟁탈전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재밌었다.
내가 성좌를 무너트렸고, 그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거보다도, 다른 한 가지가 더 재미있었다.
그것은.
“체계가 보기엔 아직까지 나는 인간이긴 한가 보네. 마음에 들어.”
-그게 왜 마음에 드는 것이냐?
그것은 아직까지도 내가 인간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거.
그 점 하나가 내겐 가장 재미있고 마음에 드는 점이다.
“그런 게 있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마왕은 그런 나를 보고 이해하지 못하지만, 상관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오로지 나만 알면 되었으니까.
나는 나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로, 히죽 웃어 보이고서는.
“가자고.”
깨어져 나가는 공간 안의 게이트를 타고 원래의 세계로 넘어갔다.
* * *
돌아오고 나서 이어진 건 잠시의 휴식.
그러나 그 휴식이 온전히 쉼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 안에 있는 자들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마리나 이사야는 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다.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 둘에게 내가 성좌 아키텍쳐로부터 얻은 정보 일부를 풀어냈다.
고작해야 일부일 뿐이었지만,
그 둘의 눈에서 있는 놀람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그 내용이 같이 회귀를 한 마리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한 진실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아낸 건 여기까지야.”
“그러니까…… 성좌 아키텍쳐는 여기 있는 이 지구를 제 신도들을 모집하는 걸 넘어, 다른 곳에 팔려고 했다는 거지?”
“어. 서로 간의 지분 단위로 넘기려고 했던 거 같더라.”
“……그럼 이해가 가네. 아키텍쳐가 일개 성좌치고 너무나도 많은 힘을 갖고 있었던 게 무슨 이유인지 말이야.”
“그렇지. 다른 성좌들이 그 힘을 일부 나눠서 부담해 준 거야. 그러니 영웅의 전장이나 던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거겠지.”
그중 하나는 성좌 아키텍쳐가 큰 힘을 갖게 된 이유.
체계를 모방하고자 아키텍쳐라는 이름까지 지어 보였던 성좌.
그 성좌, 아니 이제 외신이 된 그 녀석은 단순히 그 이름만 따오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 행동조차도 비슷하게 행동하고자 했다.
그중 하나가 다른 성좌로부터 힘을 받아내고, 다 함께 신도를 불리는 거였다.
이를 통해 유추해 보자면.
체계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드디어 드러난다.
체계의 목표는.
“그럼 체계는…… 성도나 신도들을 모으는 것이 아닌데도, 계속해 다른 세계를 옮겨다닌다는 건…….”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지. 모으려는 거야.”
“뭐를?”
“성좌를. 놈은 공허와 함께 다니며 성좌 후보자들을 추리는 거다. 혹은…….”
“새로운 성좌를 빚을 만한 공간을 찾아내는 걸지도 모르죠.”
“그래. 바로 그거다.”
성좌 후보자들을 구하는 거.
동시에 성좌 후보자를 앉힐 만한 새로운 성좌 자리를 만들어 내는 게 체계의 목표였다.
“물론…… 이게 전부라고만 생각하진 않아. 고작 두 가지 이유만으로 체계가 그리 바삐 움직일 리는 없으니까. 최종 목표가 있겠지.”
“뭘까요?”
“모르지. 그거까지는 아키텍쳐도 알아내지 못했으니까.”
“으음…….”
물론 그조차도 일부일 거였다.
성좌란 존재도 한 행동에 여러 이득을 가져오려 하지 않는가.
그런 성좌들을 때로는 제압하고 부리기도 하는 게 체계였다.
그런 체계가 한두 가지 목표만을 움직인다?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말이 안 되기도 하지.
그러기에, 다른 목표가 있음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키텍쳐도 정확히는 몰랐다만.
은연중에 예상 정도는 가능했다.
“예상 가는 게 전혀 없는 건 아니야. 예를 들자면…… 아니지, 아냐. 이건 아직인가.”
“왜 말을 하다 마는 거야?”
그러나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었다.
보채오는 이사야에게 대답을 대신해 하늘을 가리켰다.
“아아…… 이해했어.”
“체계가 여기를 바라보고 있을 수 있단 거군요.”
“그런 거지.”
저 하늘의 주시자.
무려 체계가 우리의 말을 듣고 기록할 수도 있기에 뒤는 더 말하지 못하였다.
‘어느 정도 우리가 알고 있다고 짐작하는 것과 직접 듣는 건 다르니까. 거기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으면, 체계는 직접 말하지 않는 거까지는 모른단 말이지.’
여러 이유 때문이지만, 동료들은 이를 듣고 금방 이해를 하였다.
“이번 일로…… 꽤 많은 걸 얻게 됐네.”
“그렇지. 반쪽짜리지만 영역도 구축해냈고. 체계나 성좌들의 목표도 어느 정도 알아냈으니까.”
“거의 힘으로 얻었지만 말이지. 그 성좌들을 상대로 말이지.”
“그렇지. 그게 더 마음에 드는 점이야.”
어쨌건.
이번에 얻은 건 넘쳐나도록 많았다.
새로운 영역, 정보, 혼돈의 힘.
더불어 같이 영웅의 전장을 다녀온 자들 모두 꽤 많은 힘의 상승을 이루었다.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체계가 그 업적에 따른 보상을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우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그건.
“해서, 이번에 방향을 전환해 볼까 해.”
“어떻게?”
“바꾸자.”
모든 걸 바꾸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