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공간이 깨어져 나간다.
공간과 공간 사이를 이루고 있던 축을 혼돈의 기운으로 부숨으로써 만들어 낸 이적이다.
그러한 이적과 함께 다가오는 것은 지독할 정도의 부유감.
이동에 따른 그 기이한 감각이 가져다주는 폐해는 더 없었다.
어지러움이나, 불쾌함 따위도 느끼지 못했단 이야기다.
‘……정말 멀어져 가는 걸지도.’
나로선 그 사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모순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만.
공간을 이동하면서 얻어지는 부유감.
그 가운데에서 오는 불쾌한 감정은 그래도 나 자신이 아직 인간이라는 육체에 머물러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거 같았으니까.
그러나.
아키텍쳐를 물리치고, 그 영혼조차 조각조각 내서 흡수하고 있는 지금에서까지 그러한 부유감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
그래도 그러한 욕심에 대한 상실감 따위는 느껴지고 있지 않나.
이런 불쾌한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자신은 아직 인간으로부터 그리 멀어지지 않았다.
‘……쯧. 어쩌면 외면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만.’
사실 이건, 지독한 말장난이었다.
아키텍쳐를 흡수하면서 얻은 지식과 지혜는…… 나 자신의 현 상태를 아주 잘 설명해주고 있었으니까.
아키텍쳐의 영혼을 흡수하여 변해버린 지금 자신의 상태는…….
“한휘!”
“왔구나!”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환한 목소리들. 그것들이 나의 상념을 일깨웠다.
눈앞을 바라보았다.
마리와 이사야의 목소리에 많은 이가 놀라 나를 바라보는 가운데에서.
콰아아아앙-!
곳곳에 터져 나오는 폭음들이 있었다.
이 새로운 공간 또한, 자신이 전에 있었던 공간들처럼 또 하나의 전장이었다는 의미.
이미 예상하였던 바이기에 그 의미에 새삼 놀랍지는 않았다.
‘역시 성좌는 성좌라는 건가.’
자신을 죽이고 잡아먹기 위해서 새로운 공간을 꾸리면서도.
동시에 이 안에 있는 자들을 죽이기 위하여 계획을 변경하는 거.
그에 따라 전생과 다른 적을 준비하여 놓는 거.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하나를 움직임에 둘 이상의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건, 성좌라면 기본적으로 가진 속성들이니까.
이해한다.
다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은 놀랄 뿐이다.
내가 어디서 나왔는지, 어떤 상황을 헤쳐나왔는지 전혀 감을 잡지들 못하겠지.
“대체 이 힘은 뭐예요?”
“어?”
그나마 감을 잡은 건, 평소 나와 함께 다니는 파티원들 정도였다.
다만 이들도 표면적으로 내 힘이 달라진 걸 느꼈을 뿐이다.
지금까지의 내 궤적을 제대로 읽어들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기사.
‘이해를 바란 적은 없지.’
무슨 상관인가.
[공허]를 잡아내겠다는 게, 최종의 목표.
또한 전생의 빚을 갚기 위해서 그 녀석만 꺼내 들면 나로선 모든 짐을 내려놓는 게 된다.
그 둘만 잊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 이전에,
“흠…….”
-크르륵…… 넌 뭐지? 아아…… 설마!
아키텍쳐가 손수 빚어 만들었을 크리처.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된 저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게 먼저겠지.
12미터가량의 높이에, 4미터가량의 크기를 지닌 몸체.
열두 개의 팔과 손에는 각기 다른 무기를 쥔 채 흔들고 있으며.
동시에.
‘중력을 다루는 녀석인가.’
양어깨에 넓게 퍼져나온 기이한 원형의 어깨에서는 중력파가 뻗어 나온다.
본능적으로 중력을 조절하고.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포지션으로 억지로 욱여넣고, 열두 개의 팔로 부수는 형태인가.
단순하지만, 그만큼 강력한 방식이다.
어지간한 공격은 중력파에 의해 막혀나갔을 거고.
그 중력파를 꿰뚫고 나간 공격이라도, 위력은 한없이 약해졌겠지.
그에 더해진 열두 팔이 만들어 내는 궤적의 위력이란.
‘강하겠어.’
내가 오기 이전까지, 이들 모두가 고전한 것도 이해가 가는 바였다.
쓰려져 있는 수백의 사상자들.
그중 백이 넘는 인원이 죽은 것도, 그나마 저 앞에서 움직여 주고 있는 자들이 힘을 쓴 덕분이겠지.
“크읏…….”
“어떻게 왔는지 몰라도 어서 힘을 보태줘요!”
문제는, 그들도 결국 힘이 다하여 겨우 버티고 있다는 건데.
후우우웅-! 후웅-!
크리처 보스의 강대한 공격이 쏟아지는 걸 보면, 당장이라도 가지 않으면 누구 하나가 죽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꽤 강력한 녀석이다.
거기다.
놈은 영리하기까지했다.
놈은 급조해서 만들어진 주제에 그 지능은 반푼이가 아니었다.
나를 보고 그 정체를 유추해 냈다.
-네 녀석이 그분의 부름을 받았던 녀석이냐. 그렇다면…… 하나라도 더……!
“호오…… 사도급 정도는 된단 건가?”
아키텍쳐가 나로부터 당한 걸 안 건가.
자기 주인을 이겨낸 나를 이기는 건 무리라 여긴 건지.
놈은 꾀를 썼다.
내가 달려가 자신을 분쇄하기 전에, 제 바로 앞에 있는 자들부터 분쇄하려 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라도 죽여 피해를 누적시키고 싶은 듯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최대의 피해를 주고 가자는 마음이겠지.
쒜에에엑-!
그 각오만큼이나 강대한 공격이 눈앞에 있는 자들을 덮치려 하고 있었다.
“이런!”
당장 내가 달려가는 거보다, 저 거대한 무기들이 눈앞의 탱커들을 부수는 게 당연해 보였다.
겉으로는.
그러나.
잔꾀는 잔꾀일 뿐이었다.
“거기까지.”
샤아아-!
내가 힘을 발휘하는 그 순간, 이 공간 자체에 존재하는 모든 움직임이 멎고 있었으니까.
* * *
‘역시 쉬워.’
영혼의 근원 마법사였던 자신.
마법사라 칭하였으나, 온전히 마법사로서의 길을 걷지 못한 자신이었다.
과거의 경험으로 비추어 새로 나온 마법과 기술들을 조합해내고.
되려 이걸 마법적으로 응용하기보다는 하나의 기술로써 사용했다.
인정하고 싶지만 그게 진실이다.
마법사로서 자신은 확실히 재능이 좋지 못하였다.
전투 센스와는 다른 문제다.
영혼의 근원은 탐구했을지언정, 마법 그 자체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은 해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마법사에서 조종사로 변화한 지금은 달랐다.
수많은 경험을 해내지 못했음에도.
이제 막 전직을 해냈음에도.
그런데도.
‘보인다.’
이 공간 안에 있는 하나, 하나의 영혼들이.
그들의 영력의 움직임이.
또한 그들의 근원들이 보인다.
이것이 영혼의 조종자로서 지니게 된 권능 중 하나.
보지 않는다면 모를까.
이미 보게 되는 것을 헤집어 버리는 게 어찌 어려울까.
“…….”
-……!
이 공간 안에 있는 모두의 영혼, 그 근원의 일부를 나는 잡아챘다.
그리고 벌어진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두의 움직임이 멎은 상태.
사용자의 의지를 받들어 움직여야 할 마력이나 이능도 같이 멈추어 버린 극한의 멈춤.
단순히 영혼의 근원을 움직였음에, 공간 자체가 완전히 정지했다.
이건, 시간 정지 따위가 아니다.
그리 정지시켰다면 시전자인 나조차도, 이리 자유로이 움직이지는 못했을 테니까.
이건 근원 자체를 멈춰 세워 만들어 낸 이적일 따름이다.
나는 그런 모두를 멈춘 상태에서,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공간 자체를 거닐었다.
“…….”
“…….”
침묵 속에서 모두가 또렷이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정확히는 그 시도가 느껴진다.
눈동자도, 기운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니까.
“호오…….”
개 중에 약간이나마 그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존재는 마리나 이사야, 김민하 정도뿐이었다.
‘둘은 몰라도, 냥곰이는 의외군.’
김민하의 기척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 예상대로의 흐름.
‘뭐, 상관없나.’
그런 흐름 가운데서, 내가 차분히 움직여 도착한 곳은 거대한 크리처 앞이었다.
-…….
수백의 사상자를 내고.
내가 등장한 마지막까지도, 피해를 누적시키려고 했던 추악한 몬스터.
그 몬스터가 멈춘 채로 바로 앞에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놈과 나의 거리는 고작해야 2미터가량.
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갔고.
그러자 놈으로부터 거대한 울림이 느껴진다.
영혼의 울림이었다.
‘성좌 주제에 이런 크리처에도 잘도 영혼을 부여한단 말이지.’
그 울림은 크리처에 부여된 영혼의 울림이었다.
그 뜻은 두려움.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갈 때마다 그 두려움의 크기는 더 커져 나간다.
크리처와 나의 거리가 0이 되는 그 순간.
그때를 직감하고 있기에 느끼는 두려움이겠지.
급조되어 만들어진 주제에 감 하나는 좋은 녀석이다.
문젠 이제 사라져야 한다는 거겠지만.
놈과 나의 거리가 0이 되었을 때.
나는 놈의 거대한 육체 한가운데에 손을 얹었다.
내 손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영력의 파동.
이미 멈추어 버린 크리처의 영력에 막대한 파동을 집어넣는 것만으로도 내가 원하는 결과가 그려진다.
투웅-!
-끄어어어억……!
영혼이 산산이 조각나는 고통이란 결과가 만들어지니까.
투웅. 퉁. 투웅.
나는 그러한 파동을 세 차례 더 욱여넣었다.
‘크리처에게 중요한 건 영혼이 아닌 육체니까.’
놈의 영혼을 산산이 조각 냄을 넘어, 그에 대한 여파로 육체까지 부수기 위함!
그 울림에 의하여.
놈의 몸이 원자단위로 흩어진다.
열두 개의 팔이 연결되도록 만들어 주던, 아키텍쳐의 의지가 소멸한다.
어깨에 기계처럼 장착하고 있던 중력을 조절하던 부위.
가장 신경 써서 만들어 냈을 그곳도 결국 그 힘을 잃는 게 느껴졌다.
‘사그라들었군.’
내가 목표한 데다.
영혼을 흔들고 부숨으로써, 역으로 그 그릇인 크리처의 육체를 조각냈다.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더 묶어 놓고 있을 필요는 없지.’
나는 이 공간을 묶어두었던, 모든 영력을 풀어주었다.
“한휘! 뭘 한 거예요!?”
“어!? 다시 움직인…… 다?”
영력을 묶었다 해서, 그 의지까지 묶은 건 아닌 터.
이들은 몸이 묶인 채로 내가 움직이는 걸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영력을 통해 뭘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건 눈에 보이는 게 아니었으니까.
설사 나와 같은 영력술사 계열이라 할지라도, 내 세밀한 조종을 눈치채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젠 보고 보지 못하고는 상관없어졌다.
-끄아아아악!
영혼만으로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던 크리처 보스.
놈이 실제로 목소리를 내질렀다.
동시에 내가 무얼 시행했는진 몰라도,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알게 만들어 줬다.
후두두두둑-
놈의 열두 개의 팔이 떨어져 내려가고.
어깨는 산산조각 나며.
육체는 힘을 잃고, 쓰러졌다.
쿠우웅-!
거체가 쓰러지고.
얼마 가지 않아, 남아 있어야 할 시체는 산산조각 나서 흐트러졌다.
“이런…… 시체는 꽤 귀했을 건데. 내가 너무 힘이 과했나?”
얼마 가지 않아 그 흔적조차 사라진 크리처 보스.
그걸 보고, 힘 조절을 하지 못했음에 자조하고 있는 나를 두고서 타박하는 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
“허…….”
되려 놀라움을 표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뒤를 보면 더 놀라겠는데?’
그러나 이들이 놀랄 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진짜는 따로 남아 있었으니까.
나는 그 진짜를 위해서, 호흡을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