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빛이 닿는 순간, 나는 하나의 거대한 존재와 연결되었음을 느꼈다.
육체와 육체 따위의 연결이 아니었다.
영혼과 영혼의 연결이었다.
‘성좌도 영혼이 존재하기는 했구나.’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되었다고 여기면서도 나는 행동을 개시했다.
나는 연결이 깊어질 수 있도록 내 영혼을 더 크게 부풀렸다.
스으으으-
이를 기다렸나.
연결이 더 짙어짐을 느꼈다.
‘옳지. 그래야지.’
더. 더. 더.
완벽히 합일되어 갔다.
차라리 육체와 육체의 결합이었더라면.
‘진작에 잡아먹혔겠지.’
이런 기회는 없었을 수도 있었다.
전에 외신을 볼 때도 그러지 않았나.
놈의 육신 일부, 고작해야 눈동자를 바라봤음에도 나는 죽음을 실감했다.
성좌란 그런 존재였다.
다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상대의 육신을 쇠락하게 하고.
그를 잡아먹는 존재이며.
같은 격이 아닌 이상은 버티기도 힘든 존재.
그게 성좌였다.
그러기에 전지전능하지 못함에도, 자신들을 감히 신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을 신이라 모시는 신자와 광신도들이 계속해 생겨나는 거였다.
그 힘은 분명 신에 가까운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영혼 대 영혼은 다르지.’
영혼을 바라볼 때만큼은 전과 달랐다.
성좌 아키텍쳐의 영혼은 분명히 거대하였다.
한 우주를 차지하는 것만큼, 끝없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간간이 보이는 그 끝에는 황홀하리만치 화려한 오라와 형상들이 보였다.
단순 아름답기만 한 형상이 아니었다.
그 형상 아래에 숨어 있는 격!
마왕, 마족, 악마 따위가 감히 흉내 내기도 힘들 격들이 장막처럼 켜켜이 쌓여 있었다.
‘미쳤군…….’
황홀할 만큼 아름다우며, 또한 강대한 영혼이었다.
그러나 영혼이기에.
‘버틸 수 있다.’
나는 놈의 영을 뚜렷이 볼 수가 있었다.
영혼 그 자체를 다루는 영혼 술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거대한 존재를 갖춘 놈의 영혼 속을 유영했다.
스르르르-
그 거대한 격을 살피고, 또 살피었다.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이곳은 영혼의 세계이고. 영적 세계에서 시간의 흐름이란 있으나 동시에 없는 것이었으니까.
때로 바깥의 어느 순간보다도 빠르게 흐르는 게 영적 영역이었고.
또 때로는 영원 같은 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찰나같이 지나가는 게 영적 세계였다.
그런 영적인 곳에서 시간을 조율할 수 있는 건 영혼 술사로서의 기본이었고.
나는 그 기본기를 활용하여, 찰나의 순간만으로 놈을 살필 수 있었다.
‘파악은 끝났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니 전생을 통틀어 처음 성좌라는 개체를 살필 수 있었다.
비록 영혼 일부만을 살피는 거뿐이었지만.
그거만으로도 내가 얻는 바가 있었다.
‘이게 격이란 건가. 그리고 아키텍쳐는…….’
영혼의 격.
아키텍쳐가 성좌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성좌가 가진 힘의 일부.
권능.
성좌가 된 놈의 몸에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체계의 흐름까지.
흡사 거대 정부의 보안을 뚫어낸 해커가 꽤 많은 정보를 얻어내듯이.
나는 이 성좌라는 거대한 영혼을 꿰뚫어 봄으로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알고,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함으로써 결국 발견했다.
‘틈이다!’
한없이 드높은 놈의 격 사이에서 드러난 작은 하나의 틈을!
그것은 거대한 영혼의 크기에 비하면, 생채기만도 못한 아주 작디작은 틈이었다.
체계가 스쳐 지나가면서 만들어진 흐름이었다.
‘아키텍쳐도 성좌가 되기 전에는 어떤 세계의 이능력자였지…….’
그런 과거가 만들어 낸 흐름은, 성좌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성좌의 격이 아닌, 이능력자로서의 낮은 하위의 격이었으니까.
샤아아아-!
그 격을 향해서 나는 미친 듯 돌진했다.
뒤늦게 그 흐름을 느낀 걸까.
아니면, 영혼이 연결 됨으로써 나를 완전히 잡아먹었다고 방심했던 걸까.
내 돌진을 읽은 아키텍쳐의 다급한 의지가 들려온다.
[안 돼!]
과연 성좌인가.
아키텍쳐는 영혼 술사가 아님에도 육신이 아닌 영혼을 관조할 줄 알았다.
그 관조 끝에 나를 찾아냈고.
제 의지를 일으켜, 나를 잡아채려 했다.
그그그그긍-!
영혼의 세계.
그 전체가 닫히려 하고 있었다.
연결이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동시에, 남은 모든 의지가 나를 적대하기 시작했다.
‘흐으으…….’
영혼이 느낄 정도의 거대한 압박감이 나를 옥죄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 돼서는 안 되었다.
‘그래선 모두 끝나.’
놈의 압박감에 굴복하는 그 순간.
나는 이 안에서 겨우 지키고 있던 내 의지가 사그라들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놈에게 완전히 잡아 먹히고 흡수될 거였다.
그리된다면, 내가 아는 모든 것들과 가진 모든 힘이 놈에게 넘어가겠지.
그 뒤는 뻔하지 않은가.
놈은 내가 아는 것을 기반으로, 또다시 지구에 있는 이능력자들을 잡아먹을 덫을 키울 거였다.
나도 사라진 후에, 그 덫을 막을 자는 더 없었다.
이사야나 마리.
그 둘도 무리인 일이었다.
놈은 나를 흡수함으로써 영혼 술사의 힘도 부릴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리되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찰나와 같은 순간을 이용하여, 계속해 돌진하였다.
놈의 의지를 피하고.
나를 막아서려는 압박을 파훼하고.
멀리 도망치려 하는 틈을 주시하며, 달려 나갔다.
그리고 끝끝내!
‘잡았다!’
나는 놈에게 남아 있는 작은 틈을 잡아챌 수 있었다.
내가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나는 마지막까지 남은 모든 힘을 대가로 불사르며, 한 가지 권능을 불렀고.
‘존재 포식!’
그 틈을 잡아먹었다.
* * *
부풀렸던 내 영혼이 놈을 꽉 무는 그 순간.
육신이 죽어가며 연결이 끊어진 듯 보였던 체계.
그것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기술 : 존재 포식을 사용하였다.]
감히 성좌의 영혼을 잡아먹겠다고 달려왔지만, 이는 거의 도박이나 다름없는 행위.
육신은 거의 죽어버려, 두세 호흡이면 목숨이 사라질 상황이고.
성좌와 영혼을 연결했다지만, 그 격차가 크기에 언제 내 의지가 사그라질지 모를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놈의 틈을 노렸고.
그 틈 가운데 있는 작은 존재의 조각을 잡아먹으려 했다.
그 작은 조각은 성좌 아키텍쳐가 성좌가 되기 이전 하나의 이능력자로서 존재하던 시절의 조각!
나는 그 조각을 잡아먹어, 끝끝내 성좌 아키텍쳐란 존재 자체를 잡아먹으려 했다.
소를 취하여 대를 얻으려 잔뜩 욕심을 부린 거다.
그러기에 도박이었고.
실패하면 모든 걸 잃는 순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될까. 되지 않을까가 결정되는 건 순간이었다.
[당신은 성좌 : 아키텍쳐의 존재 일부를 포식하는 데 성공했다!]
듣지 못할 거라 여겼던, 체계의 알림.
그 알림을 통해 결과를 읽어내는 그 순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됐구나!’
내 도박수가 제대로 통했다는 것을!
* * *
[감히……!]
뒤이어 ‘성좌 : 아키텍쳐의 분노 서린 음성’이 들려온다.
영혼의 울림이었다.
울림만으로 끝날 리가 없었다.
내가 자신의 틈을 집어먹으려 하자, 놈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그그그긍-!
[죽어라……!]
성좌가 되기 전 자신이 지니고 있던 잔재.
틈.
그 틈과 함께 나를 붕괴시키려 했다.
완벽히 끊어내려 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손해라도 감수하겠단 의지였다.
제아무리 성좌라도, 자기 영혼의 일부를 끊어내는 것은 크나큰 손해일 테니까.
그 일부가 오랜 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신이 성좌가 되기 이전에 지니고 있던 틈이었기에, 그 피해는 더더욱 막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급하단 것이겠지.
그러나.
나는 그러한 판단을 잔뜩 비웃어줬다.
‘이미 늦었어.’
처음부터 나를 잡아먹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시도조차 말아야 했다.
차라리 나를 깔끔하게 죽여 버리고.
그 뒤에 남은 이능력자들을 잡아먹으려 했다면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그리되어야만 했다.
영혼은 하나이지 여럿이 될 수 없었다.
그 하나의 일부를 내가 잡아채고 흡수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내 거야 넌.’
난 그 틈으로부터 아키텍쳐라는 존재의 전체를 읽을 권한을 얻게 되었다.
해킹으로 치자면, 마지막 관문을 열어젖힘으로써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 것이었다!
성좌의 영혼을 흡수하는 것에 해킹을 비유하는 거.
전혀 다른 일이라 할 수 있겠다만.
무슨 상관인가.
나란 존재가 이 행위 자체를 그리 이해하고, 실행하고 있는 것을.
모로 가든 도로 가든 상관없다.
성공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계속 들어와라! 계속!’
스스스스-
나는 난잡하다 할 정도로 게걸스레 틈을 집어삼켰고.
그 틈을 연결고리 삼아서 놈의 지난 삶의 궤적을 읽어갔다.
귀족의 서자.
그 세계에서 이능력을 처음 각성.
체계의 선택을 받았고.
제 신도들을 만들어 나갔으며.
끝끝내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던 자.
최강의 자리에 올라, 인류를 구원하겠다던 약속을 저버리고.
제게 모든 걸 바친 인류를 잡아먹어 버린 괴물!
그들을 제물로 하여, 성좌에 올라선 그는 자기 자신이 체계가 되기를 바랐고.
그 바람이, 그가 올라가는 성좌의 권한 일부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성좌 : 아키텍쳐’라는 진명을 얻게 되었으며.
성좌이되, 체계와 가장 비슷한 존재가 되었다.
영웅의 전장도 결국 그러한 흉내 내기로 만들어진 결과물 중 하나이자.
그의 세계이며 영역이었다.
그런 궤적이 내게 보였고.
나는 그런 놈에게 평해줄 말이라곤 단 한마디뿐이었다.
‘미친놈이었군.’
저 자신밖에 모르는 머저리.
어쩐지 성좌이면서도 제 영역 내에 그럴듯한 수하나 광신도 하나 없더니만.
결국 제가 제 손으로 모든 걸 잡아먹고 홀로 살아남았기에 그런 결과가 그려진 것이 아닌가.
우스운 일이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궤적은 더더욱 황홀하였다.
성좌가 되고 나서 얻은 놈의 권능.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힘.
체계를 따라 하는 방식.
아키텍쳐로의 지능.
그 모든 것들이 점차 내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안 돼에에에!]
그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감에, 놈은 지극히 큰 공포를 느끼는 듯했다.
어떻게든 나를 떼어놓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처음부터 나를 이 안에 들이면 안 됐었지.”
제아무리 성좌라도 영혼 술사의 영혼을 제 영혼 한가운데에 흡수하다니.
역대급 머저리 짓이다!
“이미 빨대는 꽂혔어, 머저리야. 영혼 술사의 영혼을 제 영혼에 집어넣다니. 그런 미친 짓을 왜 해?”
나는 성좌의 궤적을 흡수하고 읽어 들이면 들일수록 더 여유로워져 갔고.
놈은 내게 체계와 흐름을 읽히면 읽힐수록 크게 쪼그라들어갔다.
놈은 계속해 분노하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틈을 보이는 순간 잡아 먹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으니까.
뒤늦게 후회하는 건가?
[……내 복수 하리라!]
놈은 큰 결단을 내리고 있었다.
그 결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