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0화
순식간에 느껴지는 부유감.
이젠 익숙해지는 이동의 느낌이었다. 공간이든 정신이든, 혹은 영적영역이라도 상관없다.
이 기이한 부유감은 다른 데서 느끼는 게 아니었다.
영혼 그 자체가 느끼는 부유감이었다.
영력술사. 그것도 마법사라고 불리는 나다.
‘이젠 영혼 마법사라고 하기엔 뭔가 기이하게 변해가고 있지만 말이야.’
어쨌건.
그런 나이기에 느끼는 짙은 부유감이다.
이 짙은 부유감이 느껴지고 나서 일어나는 현상은 우선 하나다.
“역시…….”
주위를 둘러봤음에도, 보이는 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1,000명이 넘었던 인원들.
영웅의 탑을 학살하다시피 하던 동료들 모두가 사라졌다.
이사야, 마리, 김시연…….
그 누구도 이곳에 없었다. 오로지 나 혼자다.
적막감이 느껴졌다.
그러한 적막감을 더 강렬하게 하는 건, 내가 현재 머무르는 공간 자체였다.
아무것도 없는 무색, 무채의 공간.
아니 굳이 색을 표현하자면 그것은 ‘검정’이라고 해야 할까.
실상 내가 느끼기에 검정일 뿐이다.
진정 이곳의 색상이 검정인지는 알 수 없는 공간이었다.
상하좌우를 느끼긴 힘들었다.
높이의 고저를 느끼는 건 더더욱 힘들었다.
말 그대로다.
가만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보통 사람이라면 미치기에 딱 좋은 공간이었다.
한 걸음 내딛음에 걸어지고.
위로 올라가고자 마음먹으니 몸이 떠오른다.
어쩌면 무중력 상태와 비슷해 보이지만.
오로지 검었다.
사실, 움직이고 위로 올라간다고 느끼는 거 자체도 어쩌면 허상일 지도 몰랐다.
말 그대로 착각일 수 있단 의미다.
이런 공간에 대뜸 날 던져 넣다니.
그게 누군지는 뻔하였다.
“……너무 대충 꾸민 거 아니냐?”
[…….]
대답이 없는 자. 이 탑의 주인.
성좌 아키텍쳐겠지.
놈은 나를 이런 기이한 공간으로 불러온 주제에.
대답은커녕 접촉조차 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대신 다른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것은…….
* * *
[당신의 육체는 이 공간 안에서 쇠락하고 있다.]
[당신이 지닌 기술 : 신의 육체가 쇠락하고 있다.]
[당신의 오감이 멀어 가고 있다.]
[당신의 시야가 사라진다.]
[당신은 촉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당신이 지닌 후각이 약화되어 간다.]
[당신의 육체가 지닌 강대한 힘이…….]
그것은 약화의 덩어리였다.
소위 능력을 약화시키는 게 디버프. 고작해야 그런 수준의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이건…….
내 육체 자체를 쇠락하게 만들고 있었다.
있는 걸 사라지게 만들고.
노화 속도를 빠르게 올린다.
동시, 그간 쌓은 업적들로 빚어진 육체의 힘을 약화시키며.
그와 동시에, 다시는 그러한 업적을 쌓지 못하게 그 뿌리가 될 가능성 자체를 거세하고 있었다.
‘……하.’
시야가 흐려진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
몸에 힘은 사라지고.
항상 느껴지던 활기는 더 없었다.
늙어가는 게 느껴진다.
1초가 1년.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이능력자로서, 강대한 힘을 지닌 나.
수백 년의 삶을, 어쩌면 수천 년의 삶을 이뤄갈지도 모를 나의 생명력이 급속도로 소모되어 간다.
이런 일을 벌이는 자는 단 하나다.
성좌 아키텍쳐.
그리고 그런 놈의 목표는…… 뻔해 보였다.
‘나라도 데려가겠다는 거냐?’
나의 죽음.
아키텍쳐가 그린, 모든 계획.
전생에 이능력자들 중 다수를 잡아먹었던, 아니 정확히 그의 신도로 들일 수 있었던 영웅의 전장이란 덫.
그 덫을 파훼한 대가로, 성좌 아키텍쳐는 내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일이 실패했으니, 그 대신 실패하게 만든 원흉인 나라도 죽이겠다는 거겠지.
‘어이가 없네…….’
반항할 틈도, 방법도 없었다.
탑에 올라가서 불리었고.
불리자마자 죽음이 느껴진다.
이토록 어이없는 죽음이라니.
그간 달려 온 그 모든 시간이 너무도 허무하게 사그라드는 건 아닌가.
너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헛웃음이라도 짓고 싶은데…….
오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내가 헛웃음을 짓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감정 하나는 확실했다.
허무했다.
그나마 생각을 지속 할 수 있는 이유는…….
스스슷-
여태껏 내 통제하에 있는 영혼.
그 안에 담긴 나만의 근원 덕분이겠지.
이 근원이라는 건 설사 신이라도 쉬이 조작하지 못한다고 들었으니까.
‘망할 마왕놈…… 근원은 조종 못 해도. 영혼을 담는 육체를 금방 죽여 버리잖아.’
문제는 그런 근원을 담고 있을 그릇.
즉, 육체가 쇠락하여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허무한 죽음 앞에서, 과연 나는 미래를 그릴 수 있겠는가.
아니 내가 없는 미래에서는 과연 남은 자들이 이 망할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이 순간에서조차도 [공허]를 막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내가 어이가 없을 지경이긴 하다만.
그 각오 하나로 여기까지 온 나였기에,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도망치는 것일지도 모르지…….’
이 순간에도 [공허]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현실도피일지도 모른다.
강대한 힘.
일개 인간인 나 하나는 쉽게 짓눌러 버리는 성좌의 화풀이.
그 화풀이에 쇠락해가는 내 육체를 바라보며, 더 절망하기는 힘들었기에.
그러기에 하는 현실도피라 이 말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제아무리 나라도 미쳐 버릴 거 같았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나 죽음을 각오했고.
[공허]를 막아 내지 못하면, 나도 죽으리라 여기긴 했다만.
이런 식의 죽음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그러기에 도피하고, 또 도피하려 했는데.
‘……어?’
이변이 발생하는 건 그 뒤였다.
‘……이 자식이? 끝끝내 챙길 건 챙기겠다 이거냐.’
* * *
끝없는 쇠락함 가운데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빛이었다.
오감이 없는 나도 느껴지는 빛이라.
영혼으로 느껴지는 빛이란 의미.
그걸 보자, 나는 직감적으로 저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아키텍쳐다!’
놈이다!
나를 이리 허망한 죽음에 가까워지게 만든 존재.
그 아키텍쳐가, 내가 거의 죽음에 다다를 때쯤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모습이 아닌 존재의 드러냄인가.
모르겠다.
이 공간 자체가 아키텍쳐의 육체 내부일 수도 있음이니.
모습을 드러낸 아키텍쳐의 빛은 점차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속도는 일정했다.
놈이 도착할 때쯤은, 나는 숨이 꼴딱 넘어가지 않을까 싶은 상황.
딱 그런 속도였다.
그 속도의 의미를 나는 순간 깨달았다.
‘타이밍을 노렸군. 그냥은 못 간다 이거냐?’
그릇이 사라지면 영혼은 금방 흩어진다.
흩어지는 영혼은 제아무리 성좌라도 쉽게 잡아내지 못한다.
제 성도나, 영혼을 바친 제물이나 잡아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놈의 광신도도, 제물도 아니다.
그러기에 놈은 아무리 성좌라도 내 영혼을 쉽게 잡아가지 못한다.
그래도 성좌는 성좌이니 억지로 잡아가려면 갈 수야 있겠다만.
효율이 나지 않을 거였다.
‘다른 자보다 내가 더 힘들겠지.’
내 영혼의 근원은 굉장히 거대한 상태.
일개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수많은 영혼을 품은 존재다.
또한, 지금까지의 성장으로 말미암아 근원 자체를 한껏 키우고.
격도 끌어 올린 게 나였다.
마왕이 칭하기로 이제 일개 인간이라고 하기엔, 말이 안 된다 여기는 존재가 나란 존재였다.
얼마 가지 않아서.
그 육체 자체도 허무하게 벗어던질 존재를 나라고 칭하곤 했다.
‘그때는 우스운 소리라 여겼는데 말이지…….’
어쨌건.
그런 비대한 영혼을 지닌 나는, 아무리 성좌라도 쉬이 흡수하기 힘들었다.
쉽게 말해 가성비가 좋지 못하였다.
억지로 나를 삼켜 얻을 힘보다, 삼키기 위해서 소모되는 힘이 더 많을 거였다.
‘……그래서 꼼수를 부린 건가?’
소위 체계를 따라 하는 성좌 아키텍쳐다.
그런 아키텍쳐가 보기에 나란 존재는 쉽게 삼킬 수도,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기도 싫은 존재일 터.
안 그래도 제가 만든 계획을 부수기까지 했으니, 어떻게든 죽이고 싶은 존재이기도 할 거다.
그런 나를 잡아먹자고 아키텍쳐가 한 선택은 결국.
‘나를 거의 죽게 만들고. 죽은 그 순간에 홱 채갈 생각이군. 그게 가성비가 가장 좋으니까.’
가장 효율이 좋은 방식으로 내 영혼을 집어삼키는 거.
처음 계획대로 수많은 이능력자를 삼키지는 못하겠다만.
그래도 개중에 가장 쓸 만한 게 나였으니, 그 선택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가장 최악은 피하기 위해 나를 잡아먹으려는 거다.
성좌다운 진득한 욕심이었다.
근데 우습게도.
‘……X신이네. 그게 되려 내게도 틈이 되는 걸 모르는 건가?’
그 욕심이 다 죽어가던 내게 한 가지 희망을 안겨주고 있었다.
* * *
희망은 있으나, 그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성좌 아키텍쳐.
그의 행동거지가 꽤나 조심스러웠다.
스스스-
그 빛은 아주 조심스레,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기미가 보이면, 놈은 빛을 멈추어서까지 기다렸다.
‘망할 녀석…….’
아주 집요했다.
아니 집요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였다.
집착하듯 내 몸을 계속해 탐색했다.
내가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그러면서도 그 어떤 틈이나 변수조차 만들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레 행동했다.
성좌답지 않다.
그러나 반대로 저런 조심스러운 행동거지를 지녔기에, 성좌로서 꽤 높은 자리에 이를 수 있겠다 싶은 모습이었다.
모순되며 또한 이중적이었다.
‘……흐으.’
놈이 조심스레 움직이는 만큼 시간은 지나갔다.
쇠락한 육체는 더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숨을 쉬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생각도 잘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뭘 하려 했는지조차, 점차 희미해져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윽…….’
내 몸에서, 내 영혼이 반쯤 떠오르는 것을 다시 느꼈다.
남은 반이 다 떠오르게 되는 그때가 가지는 의미는 단 하나뿐이었다.
‘죽음.’
영혼 없는 육체는 죽은 육체일 뿐이었다.
점차 죽음이 가까워져 갔다.
더욱더.
좀 더.
영혼이 육체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이었을까.
얼마나 떨어졌을까.
짙은 부유감이 나를 감싸려는 그 순간.
스으-
잊고 있던 존재.
성좌의 빛이 나와 가까워짐을 나는 느끼었다!
화아악-!
가까워진 나를 가둘 듯 몸을 부풀렸다.
몸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내 영혼을 그물처럼, 잡아채고!
그 상태 그대로 나를 잡아먹으려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놈은 나를 잡아먹을 거였다.
그간 내가 쌓은 영혼의 모든 힘. 근원. 기억.
그 모든 것들을 잡아먹을 순간이었다.
최악의 상황.
그러나 이 최악은 어찌 보면 내게 최선의 상황이기도 했다.
‘지금이다!’
내가 원하던 틈이 드러날 때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