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9화
“버프 포션 나눠드릴 테니, 다들 오세요!”
그 방법은 바로 포션.
없던 능력도 생기게 하는 비장의 무기였다.
포션 배분은 금방 끝이 났다.
넉넉하게 준비해 온 덕에 부족할 일도 없었다.
“이 정도라면…… 없어서 못 쓰는 게 포션인데. 넘치잖아?”
“좋네. 근데 어떻게 움직임을 맞추냐.”
“강해져서 적응하는 거야 쉽지. 약한 거보다 낫고.”
“그건 그래.”
제각기 포션을 마신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었다.
할 만하다는 거겠지.
……과정이야 어쨌든 다들 내가 딱 원하는 표정들이었다.
좋다.
어느덧 입구는 성큼 다가와 있었다.
성좌 아키텍쳐도 쓸데없는 잔재주를 부려봐야,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건지 더 이상의 방해는 없었다.
탑 안에서 해결을 보겠다 이거겠지.
‘소원대로 해 줄 수밖에.’
다 함께 입구 앞에 섰고.
“엽니다.”
그그그극-
닫혀 있던 탑의 문을 열어젖혔다.
* * *
[영웅의 탑에 입장하였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멘트. 나와 마리는 전에도 들어왔던 멘트였다.
이상할 건 없었다.
되려 성좌 : 아키텍쳐의 부족한 작명 센스를 비웃을 뿐.
“또 영웅이냐. 작명 센스하고는.”
-누구랑 비슷하구나.
“설마 그게 나는 아니지?”
-…….
“……이 자식이?”
문제는 그게 되려 내게 돌아오는 거 같단 느낌인데.
스아아-
마왕 녀석은 기어이 내게 한마디 던지고 나서는, 말 그대로 자취를 감췄다.
‘꼭 불리할 때는 사라진단 말이지.’
이젠 익숙한 모습이었다.
제가 불리하거나, 시스템에 막히거나.
어떤 이유든 간에 마왕 녀석은 자주 사라지곤 했다.
처음엔 따로 무슨 일을 벌이는 건가 했다만.
‘그런 낌새는 전혀 없어. 너무 조용해서 문제라 여겨질 정도니까.’
놈은 유달리 하는 게 없었다.
내 영혼의 근원 안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안에 있는 마족들을 규합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웬걸.
되려 다가오는 마족들을 밀쳐내기 바빴다.
마치 모종의 사정이 있는 거처럼.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나는 마왕이 사라지는 걸 무심히 넘어가 주곤 했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사라진 마왕의 자취보다도.
-그르르륵!
-키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크리처들이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놈들은 이곳 영웅의 전장에 있는 우리들의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진 존재들.
우리 움직임을 읽고, 그에 대한 파훼식을 준비하여 대응하는 존재들이었다.
즉,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난도가 달라지기도 하는 희귀한 존재들이었다.
이런 존재들을 상대하는 데 가장 좋은 게 뭐냐고?
“모두 작전대로, 기억하죠?”
“으으…… 될까요?”
“됩니다. 자, 그럼 바로 갑시다!”
그건 바로, 가장 약한 자를 선두에 세우는 거다.
달려오는 선두에 맞춰 크리처가 제 능력을 갖출 테니까!
* * *
여기에 모인 자들 중에서 가장 약한 자들이 처음 앞으로 섰을 때.
선두에 설 자들은 망설였다.
그럴 만했다.
이곳은 전장. 전장에서 약한 건 곧 죽을 확률이 높단 거다.
그런데 선봉에 서라니?
고기 방패로 세운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노릇이다.
전략에 대해 설명을 해 주기야 했다만.
‘믿기 힘들겠지.’
믿음을 떠나, 선봉에 서는 거 자체가 두려운 일이었다.
“자자, 어서요! 포션도 줬잖습니까. 살게 할 겁니다. 걱정 말아요!”
내 설득에도.
저들이 망설이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바였다.
그러나 어서 움직여 줘야 했다.
“옵니다!”
-콰랴락!
우리를 본 크리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리처들이 다가와 거리가 줄어들고.
미처 선봉이 달려들기도 전에, 서로 혼잡하게 섞여 버리면?
그때는 난이도 자체가 달라진다.
지금은 약한 자들을 이용해서 난도를 낮춰야 할 때지,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난도를 높일 때가 아니었다.
“어서요!”
다행이랄까.
한 명이 눈을 질끈 감고 달려 나가 줬다.
“에잇!”
“X벌. 죽으면 책임져 주라고요!”
“으아아아!”
그게 시작이었다.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으나.
어쨌건, 여기까지 온 자들은 전사라 불리기에 충분한 자격을 지닌 자들이었다.
함께하는 자들 중에서 약할 뿐이지, 전투는 수십 번씩 했던 자들이다.
처음이 문제일 뿐이다.
한 명이 달려 나간 그 순간부터 크리처도 우르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달려드는 크리처들과 선두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부루루룩-!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역시 예상대로!’
딱 내가 기대하는 소리였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며 훅- 그 크기가 줄어든 크리처들.
후우웅-!
이내 놈들에게 바람이 차는 소리가 나더니, 덩치를 부풀렸다.
그러곤, 그 형태조차 눈앞의 선두들과 비슷한 형태로 뒤바꾸고 있었다.
조금은 더 빠르게.
조금은 더 강하게.
마치 선두에 선 자들을 카운터 치기 위해 태어난 존재처럼!
-키이이이!
-케켘
크리처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자신하는 듯.
변신함과 동시에 선두와 부딪쳤다.
그 모습은 매우 맹렬하고, 또한 잔혹하여 보였다.
제 몸을 아끼지도 않고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저게 본 모습이지.’
그대로 부딪쳤다.
콰아아앙-!
콰앙!
크리처의 맹렬함을 본 모두는 학살이 벌어지겠거니 했다.
모두의 생각 속에서 당하는 쪽은 당연히 선두였다.
어쨌건.
가장 약한 자들이 선두를 가버렸으니까.
‘죽나.’
‘진짜 고기 방패였던 거야?’
‘화살받이를 세운 건가…….’
단 한 번의 부딪침으로, 꽤 많은 자들이 으깨지겠지.
그리 생각하는 거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반전은 금세 일어났다.
콰드드드득-!
“뭐야!? 썰리잖아!”
“이거 할 만해!”
내가 데려온 자들 중 가장 약한 전력을 지닌 자들.
따로 선별할 정도로 수준이 낮았던 그들.
그들 중 크리처를 상대로 밀리는 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콰아아앙-!
“크하압!”
되려 기세를 더 키워가며 몰아붙일 뿐이었다.
“딱 포션으로 강해진 거보다 한 단계씩 약하잖아?!”
“이거 되겠는데!?”
적의 전력이 예상보다 더 약했다.
누구 말처럼. 딱 포션을 먹어 강해진 것보다 한 단계 혹은 반단계 정도 더 약했다.
딱 그 정도 차이였다.
그리고 전장이란 곳에서 그 정도의 차이는.
“크큭…… 학살 가능하겠는데.”
“죽여!”
“X바아아알! 이런 놈들한테 쫄았다고!? 죽여! 죽여!”
압도적 전력 차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일대일도 아닌, 다대다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개인 간 전력이 벌어지게 된 거니까!
선봉은 금방 크리처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크리처가 변신해서 달려들었다만.
결국 선봉의 모습을 따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데이터에는 포션을 먹은 선봉은 없었을 터.
그 귀한 포션을 먹고 다니는 자가 있을 리는 없었으니까.
때문인지, 선봉을 복사한 크리처들은 몰려오는 족족 학살을 당하고 있었다.
‘좋아. 딱 좋은 그림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그린 일 단계 그림이었다.
그럼, 이제 이 단계를 그려줘야 더 상대를 압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일 층의 모든 크리처가 선봉에 맞춰 변신한 걸 확인한 나는 곧바로 외쳤다.
“모두 전진! 죽여 버려요!”
“우와아아악!”
다 함께 돌진하라고!
* * *
적이 가장 약하게 변신하도록 만들고.
약화 된 적의 틈을 타서, 강력한 자들로 학살을 벌이는 거.
여기에 물약을 이용한 버프.
또 하나.
“기도 드릴게요.”
“예이. 예이. 전장 중에도 기도 시간은 중요합죠.”
“이상한 농담 말아요! 시작합니다.”
[당신의 동료가 기도 : 육체 강화를 사용하였다.]
[당신의 동료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성녀급을 넘어서고 있는 마리.
‘나만큼이나 성장이 빠르단 말이지. 저 지팡이에 뭔가가 있는 건 분명한데…….’
그녀가 지닌 성력을 이용한 기도가 전력을 한 차원 더 높게 만들어 낸다.
버프에 버프.
말은 단순하나, 본래 쉽게 이뤄지기 힘든 기예.
그 기예가 이뤄짐으로써.
“으아아아!”
“미친. 미친. 미친…… .힘이 넘친다고!”
일순간 전장에 있는 전사들이 깊은 고양감에 빠져들 정도다.
제아무리 잘 단련된 전사라도 버티기 힘들 정도의 카타르시스!
강력해지는 육체와 그에 비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과부하.
아무런 제약 없이 힘을 퍼트릴 수 있는 순간이란!
그 무엇보다 더 강력한 도핑제였다.
마약이나 다름없는 환희를 가져다줄 수밖에 없다.
퍼어어억-!
-키엑!
그 결과가 적의 죽음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잔뜩 흥분할 수밖에!
전장에서 지나친 흥분은 독이라고들 말한다만.
“이렇게 압도적이게 되면, 독이 아니라 흥분조차도 버프겠지. 안 그래?”
파아아앙-!
“당연한 소리예요.”
내 말처럼. 이건 또 새로운 버프가 된다.
김시연조차 그걸 알고 있기에, 그녀는 김필서와 같이 합격기를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잔뜩 흥분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으엇! 따라가기가 힘듭니다!”
“힘 좀 써봐요!”
“그거 듣기엔 좀…… 에잇! 알았습니다!”
김시연을 따라가야 하는 김필서는 죽을 맛이 느껴지는 노릇인 듯하다만.
‘알 게 뭐야. 커플 따위.’
나는 그런 김필서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되려 비웃어 줄 뿐이었다.
누가 김시연이랑 사귀라고 칼 들고 협박했나?
자기가 선택한 김시연이니,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하지 않겠는가!? 어!?
어쨌든.
모두가 잔뜩 전력이 강화된 가운데, 그 전력을 상대 크리처를 향해 투사하고 있었다.
그 결과로.
[당신들은 영웅의 탑 2층을 최단 시간으로 돌파했다.]
[당신들은 영웅의 탑 4층을 최단 시간으로 돌파했다.]
우리는 말 그대로 탑을 달리듯 주파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최단 시간이라…….’
최단 시간이란 말.
최단이 되려면, 그전에 오간 자가 있단 의미 아니겠는가.
최단인지 최고인지를 비교하려면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할 테니까.
‘내가 알기로는 이 시간엔 우리가 처음 가는 걸 텐데?’
그런데 최단 시간이라고 말을 하니, 그게 걸릴 수밖에.
어느덧 그러한 최단 시간으로 10층, 20층을 돌파하고 있었다.
탑의 총 높이는 30층.
‘이 정도면 껌이겠는데.’
크리처가 점차 강화되어가고, 또한 크리처에 걸맞은 환경으로 탑이 변화는 하고 있다만.
우리가 짜 놓은 작전 앞에서는 그조차도 전혀 소용 없어 보였다.
‘알게 뭐냐. 어쨌건 뚫기만 하면 되는 거겠지.’
그리 생각하며 우리는 휴식과 전투를 반복해 가며 위로, 또 위로 향해갔다.
중간, 25층의 중간 보스를 처리하고.
26층, 27층, 28층.
점차 위로, 위로 또 올라갔다.
‘유비무환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철저한 준비 속에서.
성좌 아키텍쳐의 속이 뒤집힐 만큼 빠르게 올라서고 있는 우리였다.
“자, 이제 마지막이네요.”
“크큭. 아키텍쳐 자식 눈앞에 있으면 얼굴이 벌게졌을 거야. 안 그래?”
“왜 아니겠어요. 잔뜩 화가 났겠죠. 수확도 얼마 못 거둘 테니까요.”
“꼼수를 부린 녀석의 최후지.”
그렇게 대망의 마지막에 다다랐다.
‘회귀 전엔 당했지만…… 이번은 다르다.’
전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에 자축하며.
그그그그극-!
우리는 탑의 마지막 층을 가리고 있는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 순간.
“……어?”
예상에 없던 이변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