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화
김시연과 김필서.
오랜 시간을 끌어서 현재에 이뤄진 주제에.
둘은 꽤 손발이 잘 맞았다.
“제가 전위를 맡죠.”
“내가 맡아야지.”
“어쨌든 탱커는 저이지 않습니까. 믿어주세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다소 억장이 무너지는(?) 대화를 하는 걸 제외하고.
김필서는 탱커로, 김시연은 딜러로서 역할을 해주었다.
불퇴권사로 불리던 김시연.
실상 그녀가 지닌 능력은 굳이 탱커를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만.
‘공수가 완벽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지.’
둘은 의외로 시너지 효과가 뛰어났다.
김필서가 완벽히 전위를 맡아줌으로써,
그녀는 등에 날개를 달은 듯 전장을 날뛰었다.
공수 전부를 신경 쓰다가.
오로지 공격만 신경 쓰게 되니 그 공격이 더 날카로워졌다.
오롯이 공격 일변도.
그 외에 어느 것도 신경 쓰지 않는 그녀의 공격은 내가 보기에도 매서웠다.
“여기도 있습니다!”
“……오.”
콰아앙-!
거기다 때때로 틈을 노리고 날려오는 김필서의 공격까지.
그는 탱커 역을 맡고 있으면서도 거기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았다.
기회만 있으면 공격을 날려댔는데, 그게 내가 보기에도 감탄사가 나올 만큼 매서웠다.
여기에.
[당신은 새로운 연계기를 보았다.]
타아앙-!
불퇴권사와 김필서 둘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연계기까지!
혼연일체로 날아드는 그 공격은 매섭다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김시연이 단번에 수십 번의 주먹을 날려 시선을 교란하고.
그 사이 김필서는 잔뜩 에너지를 모아 장풍처럼 쏘아댔다.
김시연의 주먹을 신경 쓰다가는, 그의 에너지가 문제였고.
그렇다고 김필서의 공격만 방어하자고 있자니, 김시연의 주먹이 문제였다.
말이 수십 합이지, 불퇴권사로 불리던 그녀의 주먹도 매섭기 그지없으니까.
빠른 공격과 묵직한 한방의 연계.
별거 없어 보이는 공격이나, 실제 조합됐을 때의 매서움은 상당함을 넘어 새로운 수준이었다.
“제대로인데!?”
“혼자 못 이겨내면 둘로.”
“둘이 안 되면, 시너지라도 내야 했으니까요.”
“말을 그렇게 이을 필요까진 없잖아?”
“이 연계기의…….”
“단점입니다.”
“……미친 단점이네.”
다만 그 단점이 상당히 우스웠다.
둘은 연계기를 펼치는 동안 일정 영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정확히 세 걸음 정도.’
거기에 특유의 리듬도 지켜줘야 했다.
리듬이 맞지 않았을 때는 힘의 총량이 조금 줄어드는 게 보였다.
다른 자는 몰라도 적어도 내겐 그게 확실히 보였다.
난 눈이 아닌 영력으로 상대를 느끼니까.
거기다 잘 보면 힘의 총량 자체가 늘어난 게 아니었다.
‘공방에 순서가 있고. 김시연은 속도가 오른 대신에 대미지가 약해지고, 김필서는 그 반대인가.’
잘 보면 둘의 연계기가 가지는 힘은 그대로였다.
김시연과 김필서의 속도 합이 10, 힘의 합이 10이라고 치자.
그럼 김필서는 자신이 지닌 속도를 7할 이상 희생했다.
김시연은 대신 자신이 지닌 힘을 4할 이상 희생했다.
희생한 만큼의 힘과 속도를 상대에게 나눠줬고.
각자가 그걸 나눠 가졌다.
즉, 김필서는 속도를, 김시연은 힘을 희생함으로써 장점을 극대화한 방식이었다.
그러므로 묵직하고 매서운 연계기를 그려나갈 수 있다는 건데.
‘재밌네, 이 방식도.’
그 방식 자체는 발전의 여지가 상당히 커 보였다.
아마, 검에 미쳤던 리바이가 저 방식을 보았더라면.
‘꽤 많은 영감을 받았겠지. 세 개의 검으로 홀로 연계기를 그려냈던 녀석이니.’
새로운 검법을 창조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 정도였다.
나조차도 저 연계기를 보며 불쑥불쑥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한계는 확실히 명확해 보였다.
“아주 좋긴 한데…….”
“그럼 좀!”
“맞으시죠!”
저 방식. 자신보다 약한 자나 동류인 자에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연계기다.
급작스레 빨라지고, 위력적으로 변한 공격은 동류에게도 치명적이니까.
그러나.
강자에게는 잘 먹히지 않은 방식이었다.
“단점도 명확한 걸 어떻게 해?”
“윽…….”
“……컥.”
“속도가 빨라지면 뭐 해. 내가 더 빠르면 되잖아.”
“큿…….”
“그럼 위력은? 같은 논리로 쉽게 막히면 끝 아닌가.”
“보통은…… 그게…….”
“될 리가 없잖아요!”
결국 힘과 속도의 총량은 같다.
아무리 강화했다 하더라도 하나는 포기한 거다.
대단해 보이는 수식이지만, 결국 장난 같은 숫자 놀음이다.
게임으로 치면 스테이터스 배분을 극단적으로 만들어 냈을 뿐이다.
그러나 이건 게임이 아니고 현실이다.
현실에서 극단적으로 배분된 힘은, 실제 그리 강하지 못하다.
“되는데?”
타아앙-!
나 같은 자에게 간파당하게 되면 그 약점이 훤히 보이게 된다.
나는 그들의 보이지 않는 간격을 이용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었고.
동시에, 그들의 공격이 날아올 때쯤이면 그걸 역이용하여 막아 냈다.
“뭐…… 사실 어지간한 자들한테는 먹히긴 했을 거야.”
“……큿.”
이미 약점이 노출되어버린 공격방식은, 이미 경지에 이른 내게 있어서는 손쉬운 먹잇감일 뿐이다.
“자기 입으로 자기가…….”
“어지간하지 않다 이건가요?”
“빙고.”
바로 지금처럼!
영력으로 빚어진 나의 손이 김필서의 강대한 공격을 막아 낸다.
동시 남은 나의 두 손은 김시연과 수십 합을 그려낸다.
그녀가 여래와 같이 펼쳐내는 수십의 공격방식은 분명 화려하다.
그러나 힘에서 밀려버리는 순간, 이 수십 합은 어떠한 잘 만들어진 장식 따위밖에 될 수 없었다.
위력적이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 틈을 파고들 뿐이었다.
타아앙. 탕. 타앙.
아주 쉬이 그녀의 수십 합을 막아낸다.
“큿…….”
그 뒤에 만들어진 잠시의 틈.
가늘어지는 그녀의 호흡을 나는 쉽게 캐치해 냈다.
실상 아주 작은 틈이었다.
호흡이 끊어지지 않고, 잠시 옅어졌을 뿐이다.
현시대에서 고수라 불릴 수 있는 그녀다.
이 잠시의 호흡을 다시 이어붙여 본래의 힘을 되찾는 거.
본래의 그녀에게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상대가 나였다.
다른 자에겐 보이지도 않을 틈이나, 내게 그 틈이 보이는 순간 끝이었다.
“잘 가라고.”
투우웅-!
굳이 영력을 실을 것도 없다.
신의 육체로 단련되어버린 나의 양팔은 그것만으로도 무기라 할 만했으니까.
“……커윽.”
휘둘러오는 팔을 치워내고.
그녀의 복부에 한 방을 먹인다.
그녀의 복부가 순간적으로 움푹 파인다. 마치 거대한 망치에 맞기라도 한 거처럼.
단련된 그녀의 육체다.
그러한 육체가 움푹 파일 정도의 힘. 그 힘이 가진 총량은 결코 작을 수 없었다.
잘 단련된 그녀조차도, 고통스레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속에 있는 걸 게워내지 않은 게 대단하다고 할 정도다.
내부적으로 느끼는 타격은 결코 적지 않겠지.
그런데 우습게도.
고통스레 인상을 찡그린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김필서도 마찬가지.
“호오…… 둘이 같이 고통을 느꼈네?”
“……흐으.”
“이것도 약점이죠.”
“잘도 약점을 말하는군.”
“이미 걸린 약점은…….”
“숨길 것도 없으니까요.”
이 또한 새로운 약점이다.
둘은 숨기지도 않고 그걸 말하였다.
그렇다고 패배를 자인한 건 아니었다.
나와 이어진 잠깐의 대화.
그 사이에도 둘은 고통을 회복하고자 숨을 골라냈다.
그 잠시의 시간만으로도 고통이 꽤 가신 건가.
둘은 호흡을 고르게 바꾸며 다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역시 재밌어. 과연 불퇴권사와…… 그녀의 연인이라 이거지?’
쓰러지기 전까진, 어떻게든 반항하겠다는 전의가 보인다.
수 싸움에서 확실히 밀려났음에도 포기하지 않는다라.
이런 자들은 흔치 않다.
그런 흔치 않은 자들이 연인이 돼서 달려드는 건 더 흔하지 않은 일이고.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재미있었으니까.
얼마 만에 있는 흥미로운 전투란 말인가.
회귀 전의 힘을 거의 찾아가고. 어쩌면 그 이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이다.
그런 내게 이만큼의 흥미를 주는 존재들이라.
몸서리칠 정도로 재밌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수밖에.
“그 악마의 미소는…….”
“뭡니까?”
“글쎄.”
그걸 보고 악마의 미소라 칭하는 게 우습기는 하다만.
어떤 식으로 둘이 해석을 하든 상관없기는 하다.
나는 둘에게 이해를 구할 생각 따위가 없었으니까.
되려 그들에게 이해를 시킬 생각이다.
‘더 강해지는 방식이 뭔지 이해시키는 거지.’
저들을 다 두드리고, 망가트리고, 부술 생각이다.
우리가 선 이곳은 영웅의 전장 한가운데.
아무리 부숴버리더라도, 둘은 진심으로 망가지진 않는다.
죽지도 않는다.
아직은.
다만 그 고통만은 현실과 똑같을 뿐이다.
그리 설정해놓았으니까.
죽지는 않으나, 고통과 경험은 확실히 얻을 만한 곳이지 않은가.
그런 공간 안에서 이들을 두드리는 거.
이보다 더 저들을 두드리고 단단하게 만들 방식은 내가 알기로 없다.
그러기에 나는.
타아악-!
망설임 하나 없이 몸을 날렸다.
“잘 참아봐. 제대로 해줄 테니까.”
“온다!”
“막읍시다!”
“가능하면, 막고. 간다!”
콰아아아앙-!
이 둘을 조각 조각조각 내기 위해서.
* * *
나조차 예상치 못하게 붙어버린 둘.
이르다 수준이 아닌, 전에는 이뤄지지 않았던 일을 해낸 둘이다.
시간을 내서 그런 둘을 담금질하는 수고를 하는 것.
아무리 나라 할지라도 기꺼운 일이었다.
“큭……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죠? 거기다 우리가 이곳에만 붙어있는 것도 손해가 막심하다구요.”
“손해라니?”
“지한휘 헌터나 우리나…… 바깥에서 할 일이 많잖아요. 여기서만…….”
“이리 죽치고 앉아서 훈련만 하는 건 힘든 일이라고요.”
다만.
그 호의를 받아들이는 상대들은 경우가 다른 듯했다.
이해는 간다.
당장 이들을 훈련 시켜 주고 있는 나나, 훈련을 받아내고 있는 둘.
그리고 그 외 나의 명령과도 같은 부탁 덕에 꽤 많은 자가 영웅의 전장에 매달려 있는 형편이다.
이들 하나하나가 러시아나 한국에서 꽤 많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고. 또한 현재도 많은 영향력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이들을 영웅의 전장에 묶고 있다는 거.
‘강해지기는 하지만…… 강해지는 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긴 한 법이지.’
그것이 시간 낭비라고 여기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바였다.
때로 홀로 강해지기만 하는 거보다, 조직 내에서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게 더 효과적일 때도 있으니까.
이미 이들은 조직의 핵심이랄 수 있는 자들이었으니.
단순히 개인 훈련에만 매진하는 거도 낭비로 보일 수밖에.
요 며칠간이라도 그의 부탁에 따라 영웅의 전장에 매진해 준 거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간 내가 해 온 일이 있기에, 다소 무리해서나마 이리 시간을 보내 준 것이겠지.
‘내 예언이 걸리기도 하고.’
이들은 지금 궁금해 하고 있는 거다.
과연 내가 말한 대로 일이 터질지. ‘그 녀석’이 과연 언제 움직일지에 대해서.
미칠 듯이 궁금한 거다.
문제는 이런 이들의 궁금증을 나조차도 답해 줄 수 없다는 거다.
그 미친 성좌가 움직이는 시기가 됐다는 것만 짐작할 뿐, 확실한 시기까지는 나조차 알기 어려우니까.
그러기에 사람들을 이리 모아놓고 전장을 돌리고 있을 뿐인데.
그런데.
“……흠?”
전조가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