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1화
내기는 시작됐다.
저런 인간은 초장에 뭉개버리면 안 된다.
그리 해 놓으면 이런저런 핑계를 가져다가, 더 들러붙기만 할 인간이다.
내기 대로 소원은 안 들어주고 말이다.
말이 안 된다고?
말이 안 되는 짓을 하니까 꼰대다.
아파야 청춘이라는 개소리가 있듯이, 말 잘 들어야 꼰대다라는 개소리도…… 아니 이건 아닌가.
하여튼, 이런 자를 다루려면 대결을 하는 지금에 와서도 아주 잘 조절해야 했다.
“호오. 이렇게도 된다고?”
“거, 뭐냐. 영감님이 말하는 민속 게임에서도 맵으로 이런저런 설정이 되잖습니까. 영웅의 전장도 이런 적당한 설정은 지원해주죠.”
“처음엔 웬 미친 전투부터 시키길래, 이런 기능이 있다곤 상상도 못 했느니라. 호오…… 재밌는 곳이구나.”
그 조절을 위한 첫째. 그가 만족스러워할 만한 환경을 갖춰줘야 한다는 거다.
그의 특기는 주변의 환경 변화. 그를 이용한 쉘터 만들기 정도가 특기다.
그런 그에게 중요한 건 자연스레 딱 한 가지로 귀결된다.
그건 바로 환경.
주변 환경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그의 능력이 지닌 위력은 천차만별이다.
막말로 흙을 아무리 두텁게 쌓아봐야 흙벽 아닌가.
그에 비해서 이곳은.
“곳곳이 철근이구나. 호오…… 저건 또 못 보던 금속인데.”
“지질도 눈으로 확인 가능하십니까?”
“기본 아니냐?”
“……미친.”
그가 보기에도 만족스러울 만큼 단단한 지형이었다.
즉, 그가 위력을 펼치기에 딱 좋은 공간이라 이 말이다.
“훔…… 여기 있으면 네가 너무 불리한 거 아니겠느냐?”
“불리요?”
“솔직히 내게 너무 유리한 거 같은데.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맵을 바꾸던지 해라.”
“괜찮습니다.”
봐라. 꼰대가 신경 쓸 정도의 환경이지 않나.
그만큼 자기에게 유리하니까 저러는 거다.
저래놓고 내가 흙의 환경으로 바꿔 놓으면, 그걸 핑계로다가 들들 볶겠지!
‘뻔하지. 꼰대 같으니라고.’
이래서 꼰대를 상대하는 게 쉽지 않다.
말을 하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줬다가는,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거든.
봐라.
안 바꾸니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걸.
“어쨌건. 환경은 영감님이 봐도 자기한테 유리할 정도로 좋다는 거네요?”
“흠흠……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래봐야 도긴개긴이란다. 아, 도긴개긴이란 말은 요즘 애들이 모르나?”
“압니다. 알아요. 거, 참.”
“거, 요즘 무지렁이의 시대이긴 하니까 그런 거지. 크큭.”
“저는 무지렁이 아니니까, 걱정 마십쇼.”
그런 주제에, 꼭 자기한테 유리한 건 아니라고 말해놓는 저 얍삽함까지!
자고로, 꼰대라는 것들인 제가 말해놓고도 뭔 말을 하는지 잘 모르니 꼰대다.
아니, 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하는 거려나?
어느 쪽이든 간에 내뱉는 말이, 제게 유리하게만 말하니 영 대화가 하기 힘들단 말이지.
그래도 이왕 판을 깔았는데, 지금은 곱게 곱게 들어줘야 할 때다.
자, 이제 꼰대 뒷말 안 나오게 하기 두 번째.
“뭐해요? 시간 5분 드릴 테니까, 벽 쌓으시죠.”
“뭐?”
도발이다.
무려 5분.
이능력을 쓰기에 과할 정도로 넘치는 시간.
그 시간을 그에게 말해줘야 했다.
제가 봐도 여기에 5분까지 주면, 이건 판이 달라진다는 걸 알기에.
“네 녀석 나를 무시하는 거냐? 전장에서 단 몇 초 만에 만든 쉘터도 뚫은 놈이 없었다.”
“암요, 알죠. 그래봐야 걔들은 저보다 등급도 낮은 찌끄러기들 아닙니까.”
“허어…… 내가 상대한 것들이 전부 다 그런 건.”
“맞는다니까요. 등급도 낮은 것들이니까.”
“……큼. 미국 녀석도 나한테 2분을 줘 놓고도 못 뚫었다. 아느냐?”
아아, 이제 본색을 슬쩍 드러내는구만.
미국 랭커란 놈은 2분이나 시간을 줬었어?
방어 능력자가 2분이나 받았으면 엄청 받은 건데.
‘그러니 랭커도 못 뚫은 거구만.’
어느 랭커인지 몰라도 멍청했구만.
방어 능력. 그것도 건설과 관련된 능력에 이분이라니.
너무 많은 시간을 줬다.
그걸 알고 있는 나도 5분이나 주고 있는 게 웃기긴 하다만.
‘이러면 5분 가지고 안 되겠는데?’
지금 보아하니 5분도 모자라겠다.
더 도발을 해야 했다.
“미국 놈이 2분이면 전 10분은 주겠습니다.”
“뭐!? 이 녀석이 어른을 놀리면 쓰나. 5분도 말이 안 되는데 10분이라니!”
자, 여기서 도발을 넘어 직격타를 먹여야 했다.
“아. 그래야 뒷말이 안 나올 거 아닙니까?”
“뒷말? 무슨 뒷말!? 내가 언제 뒷말한 적이 있디?”
넘치던데요.
라는 말은 겨우 집어삼켰다.
건설을 할 때도, 입만 살아서는 뒷말을 엄청 해대더만.
한회장이 가진 증표로 움직이면서, 하도 말을 해대서는 머리가 아프다던데.
그런 주제에 자기가 뒷말을 한다는 자각도 없었던 건가.
‘크…….’
역시 완전체로다.
그런 완전체이니만큼 더욱더 조심해야겠지.
“예, 예. 안 하시죠. 그래도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확실? 무슨 확실?”
“이 내기. 영감님은 가진 방어 능력을 시험하는 거…….”
“방어 능력이 아니라 쉘터 능력!”
거…… 트집하고는.
“예, 쉘터 능력. 그 능력을 시험하는 거고, 그걸 제대로 보이려면 10분은 필요한 거 아닙니까. 아니에요?”
“큼…… 시간이 더 늘어날수록 튼튼해지긴 하지. 특히 이런 곳은 못 보던 금속이 있기도 하니까…….”
슬금슬금 눈 돌리는 거 보게.
보아하니, 나와 대화하는 이 사이에도 눈으로 지질을 확인하고 있는 거였구만.
‘어쩐지 말을 잘도 받아주더니. 이유가 있었네.’
아닌 척하면서도, 지질을 살피면서 어떻게 쉘터를 설계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던 거다.
잘 설계해 놔야 꼰대 짓도 지속할 수 있는 거니까.
아무래도 능력 없이 입만 산 꼰대는 대우를 못 받는 법이거든.
저 늙은이가 여태 꼰대면서도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다 능력이 었어서였으니까.
그걸 지키기 위해서라도 저리 눈을 굴리고 있는 거다.
‘가증스러운 늙은이 같으니라고.’
아닌 척은 해도 아주, 저 유리하게 판을 짜는 데는 도사다.
저렇게 머리를 굴릴 줄 알면서도, 다른 사람 말은 안 듣고 속 터지게 하는 게 더 얄미운 점이고!
여하튼.
“그럼 금속 탐지 시간까지 드릴까요?”
“큼…… 그건 됐다! 내가 너 상대하는데 거기까지 하리?”
……꼰대 ……아니 새끼.
눈 뒤룩뒤룩 굴리던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보아하니 지질 탐색 다 끝낸 거구만.
그래놓고 저 자신이 짐짓 여유로운 척하기까지 하다니.
과연 완전체다.
“그럼 어쨌건 10분은 드리겠습니다.”
“……거, 필요 없대두?”
“제가 제대로 하려고 하는 거니까 그런 겁니다.”
“허어…… 참, 나중에 나한테 너무 유리했다고 딴말하기 없기다? 소원 들어주기도 유효하고?”
다 이긴 판이라고 생각하나.
끝끝내 확인까지 한번 해주시는 영감님이다.
이만하면 자기한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영감님이나 소원 들어줘야 하는 약속 지키십쇼. 막판에 깨졌다고 뒷말하지 말고.”
“허, 내가 그러겠느냐?”
할 거 같으니까 이리 판을 길게 깔지. 이 양반아!
라고 내뱉고 싶지만. 아직이다, 아직.
“뭐든 확실히 해야 해서 그런 거죠.”
“클클…… 그건 그렇지, 알았다. 내가 10분을 준비한 걸 네가 깨부수면 내 뒷말 없이 소원 들주겠느니라.”
“좋습니다. 좋아. 자, 시작합니다.”
[10:10]
나는 바로 타이머를 맞춰줬다. 여기서 디테일이 중요한 것이 10초는 더 줘야 했다.
일명 준비시간이랄까.
대화를 하는 사이 준비는 다 마친 것 같지만.
꼰대를 상대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긴장해야 했다.
제가 말하고도 불리하면 말을 뒤바꾸는 게 꼰대니까.
그 10초를 보고 그는 슬쩍 웃더만.
“클클…… 기대하거나.”
짐짓 여유로운 척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철로 뒤덮인 주변의 환경.
내가 직접 설정한 이 맵 중에서, 가장 짙은 곳을 향해 그는 움직이고 있었다.
저곳.
나도 아는 곳이었다.
이 맵에서 가장 단단한 곳이었다.
지질 조사를 해서 아는 건 아니었다.
회귀 전에도 몇 번이나 이 맵을 사용했었다.
그러다 보니 경험적으로 저 곳이 가장 단단한 곳이라는 걸 잘 알았다.
‘역시 꼰대 늙은이야.’
그곳으로 그는 냉큼 걸음을 옮기더니.
“읏차.”
드드득- 드드드득-
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가 팔을 휘젓자, 그가 디디고 있던 검은 철들이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움직였다.
‘그래도 능력은 진짜네.’
전생도 쉽게 뚫기 힘들었던 저 검은 철들.
다른 차원의 드워프들이 말하기로 미스릴이 변형된 무언가라고 하던 것인데.
그걸 그는 잘도 움직여 댔다.
그러고 3분.
철컹. 철컹.
기초가 만들어졌다.
다시 5분.
기초에 살이 겹겹이 더해지며 벽이 만들어졌다.
7분.
검은 철들을 전부 다 사용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쯤이면 슬쩍 다 됐다고 할 법도 한데.
대결 앞이라서 그런가.
그는 체면을 차리기보다는 실리를 차리는 데 집중했다.
“으차차!”
“……거, 되게 시끄럽네. 철로 뒤덮인 곳에서 저리 소리 내려면 얼마나 시끄러운 거야?”
-전력을 다해서 소리치는 걸지도?
“저거 능력까지 쓰는 걸걸?”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검은 철을 전부 다 쓰고도, 그 뒤로 남은 다른 철들까지 끌어들였다.
터엉! 텅!
이중. 삼중. 사중. 오중.
검은 철로 두껍게 벽을 만들어 놓은, 기초 위에 단단한 철골들이 뒤덮였다.
단순히 뒤덮기만 한 게 아니었다.
-공학적이로구나. 대단해.
‘……쉘터만 수천 개는 만들어 댔을 거니까. 본능적으로 저리 하는 거겠지.’
공학적으로 최대한 공격을 방어할 수 있게 만들어 내고 있었다.
꼰대라도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일면이었다.
‘……나는 저렇게 안 늙어야지.’
-회귀까지 더하면 비슷한 나이 아니더냐?
‘……그럼 저렇게는 안 늙어서 다행이다. 진짜.’
-큼. 여가 보기에는…….
그렇게 대화 따위나 하며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을까.
“되었다!”
저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신이 난 목소리였다.
만들어진 쉘터의 겉모양은 반구 형태.
그러나 진짜는 지하까지 완벽하게 보강해 놓은 원형의 형태임을 나는 익히 잘 알았다.
또한 10겹도 넘어가는 저 철골은, 정말 어지간한 화력을 퍼부어서는 뚫기 어려운 두께였다.
‘약점이 없는 건 아닌데…….’
물론 저 안에 있는 걸 죽이자고 하면, 생각보다 쉬웠다.
내가중수법이라고 있지 않나.
겉이 아닌 속을 먼저 타격하는 방식.
이능력을 이용하여 속을 타격하여 버리면?
쉘터에 있는 저 늙은이에게 타격을 입히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일 거다.
늙은이도 그걸 모를 리 없다. 저래 봬도 전문가니까.
하지만, 이 내기는 분명 그를 타격하는 게 아닌 쉘터를 부수는 거.
그걸 잘 알고 있으니까, 저리 쉘터를 만든 거다.
안이야 어떻게 되든, 겉만 지켜내면 되는 거니까.
그러니 저리 설계한 거겠지.
“네 녀석에게도 10분 주마!”
저리 자신만만한 거기도 하고. 아주 자신감이 우주를 꿰뚫으신다.
나는 그 자신감에 피식 웃어줬다.
“10분은 무슨.”
-몇 분이면 되겠느냐?
“1분도 안 걸리지.”
저런 걸 깨부수는 게 무엇보다 짜릿한 걸 잘 아니까.
자, 그럼 한번 깨부숴 보러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