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5화
“직접 오셨군요.”
“자네가 불렀는데 와야지.”
내게 악수를 건네는 그는 화승 한회장이었다.
얼마 전까지, 이제 막 전투를 치르고 온 손주 한이수를 본다고 한창 시간을 보내던 그다.
그런 그가 청하는 악수를 받아들며 물었다.
“회사를 부른 적은 있어도 회장님을 직접 부른 적은 없는데요?”
“허허. 화승의 전체를 걸만한 사이즈를 이야기하는데, 부른 게 아니라고?”
내 말에 그가 헛웃음을 짓는다.
“……뭐, 그 정도였습니까.”
“몰랐나? 자네는 너무 그릇이 커.”
“칭찬으로 받죠.”
“흘흘. 칭찬일세.”
내 농담에 웃어 보이는 화승 회장.
그의 얼굴에 있는 미소엔 진심이 엿보였다.
하기는 좋기는 할 거다.
자신의 전부라 말하던 손자 한이수가 살아났다.
살아나다 못해 날아다니고 있다.
내 수련장에서 직접 수련을 받았거니와, 러시아에서 움직이며 힘을 쌓았으니까.
‘꽤 강해지긴 했지.’
-꽤라니, 그 녀석도 괴물이었다. 대체 왜 그런 자들이 네 옆에 계속 모습을 드러내는지 모르겠구나.
‘착한 일을 하고 다니니 복 받은 거 아니겠냐?’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게 여는 서글프구나.
‘싱겁기는.’
그의 성장은 마왕이 놀랄 정도로 가팔랐다.
등급 50을 돌파.
러시아에 있는 특별 던전을 금세 클리어해 냈다.
그 이후 탱커의 힘에 딜러의 힘까지 얹혀졌다.
공방이 완벽한 전사가 된 셈이다.
그런 그의 새로운 가호는 철혈의 검사.
이전에 그가 지녔던 능력을 생각하면, 대체 어째서 철혈의 검사라는 걸 얻었을지 전혀 모를 일이었다.
어쨌건, 새 가호를 바탕으로 힘을 쓰기 시작한 그는 어느새 박동길과 비견될 만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박동길이 수호자로서 철벽을 치면 그가 같이 그 벽에 힘을 보태거나.
혹은 철벽을 부수려 하는 자들을, 되려 역으로 부수는 식의 활약을 보였다.
생각해 보면 박동길이랑 어울리고 다니더니, 그의 영향을 받은 건가 싶을 정도의 모습들을 자주 보이곤 했다.
그만큼 급격한 성장이었다.
여기서 한번 좋을 수밖에 없는데.
나는 그에게 일거리를 맡기며 두 번 더 좋게 했다.
새 사업을 맡겼다.
“흘…… 새로운 공사를 벌인다고 자재를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꽤 힘들었다는 거 아는가?”
“그래요?”
그 사업 중 하나.
재앙의 바람이 불고 난 이후, 러시아를 재건시키기 위한 사업이었다.
거대한 나라들도 도시 하나 정도의 대규모 공사를 시작하면 GDP가 1% 늘어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던 게 예전이다.
몬스터 사태가 팍팍 터져나가는 현재는?
몇 %가 올라가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 사업을 도맡게 했다.
화승의 운반 능력을 이용한 원자재 수입을 맡겨놨다.
둘은 그가 가져온 공사들에 대한 수주다.
그는 내 의견을 받아 준 나헤나의 동의하에서 꽤 많은 공사를 수주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러시아 남부 곳곳에서 착공식을 올리고 있다고 하니, 보통 규모는 아니다.
그러니 이 늙은 회장도 기뻐할 수밖에.
“말했다시피, 국책 사업 수준이니까. 미래에선 자신들에게 곧바로 주지 않은 것에 꽤 섭섭해하더군.”
“이권은 어느 정도 줬을 건데도 그러네요.”
반대로 문제는 기뻐하지 않는 자도 있다는 건데.
“흘흘. 돈이란 건 쌓고 쌓아도, 더 가지고 싶은 녀석이니까.”
“그런가요. 흠. 미래답기는 합니다.”
꽤 입이 썼다.
화승이 자재를 운반하기 위한 원자재를 구할 때.
나는 이 구하는 역할을 미래가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화승도 가능은 한 일이다만.
‘일부러 나눠줬지.’
둘이 일을 나눠서 하게 함으로써 이권을 준 거였다.
그 소식으로 주가도 꽤 올랐을 터다.
자재를 대량으로 구매하면서 이득도 추가로 얻었겠지.
그런데도 일을 나눠서 줬다고 섭섭해하다니.
우스운 노릇이다.
‘물에서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하는 셈이긴 한데…… 그래도 그 미래이니…… 그럴 만한가?’
동시에 역시 미래다 싶었다.
그럴 만하달까.
회귀 전에서도 미래는 세계의 오대 세력이 된 이후도 끝없는 확장을 원했었다.
실제로 행하기도 했었다.
그런 그들이 더 많은 이권을 챙기지 못했다고 떼를 쓰는 거.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 떼를 써서야.
‘이 뒤에 주려고 하는 게 하나 있었는데 안 되겠구만.’
괜히 심술이 나는 나였다.
그래서일까.
변덕을 부리기로 했다.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지켜봐 봐.’
이제 와 내가 부리는 변덕은 일개 개인이 부리는 규모 따위는 넘어선 지 오래.
그 여파는 꽤 크겠다만, 내가 알게 뭔가?
러시아 남부도 내 품으로 들인 지금, 이참에 버릇을 한번 잡아 놔야지.
그런 내 기색을 읽은 걸까.
화승의 회장이 미소를 띠운 채, 은은하게 물어왔다.
“자네는 몰라도 나는 이해는 간다네. 자네, 나를 여기로 불러들인 건 단순 재건 사업 때문만은 아니지 않은가?”
“눈치가 빠르시네요.”
나는 여기서 그의 물음에 대한 답을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장단을 더 맞춰줘야지.’
미래에 심술을 부리려면 그의 협력이 꽤 중요하였으니까.
“흘…… 눈치가 없었더라면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겠지. 자네, 재건 이후를 분명 그리고 있지?”
“예.”
“뭔가? 그게?”
“러시아와 한국 통일요.”
나는 나헤나 이후로 처음. 내 계획의 일부를 말해줬다.
처음 그녀에게 말하고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 계획을 말이다.
근데 왤까.
“뭣?”
“통일 말입니다. 아아, 통합이라 해야 하나요?”
“……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고 하는 건가?”
이미 예상하고 물었다 싶었는데, 진심으로 놀라는 회장이었다.
이거 참.
‘이게 그렇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나?’
-……그럼 쉽겠느냐?
‘다들 통들이 작구만. 작아.’
갈수록 재앙이 불어 닥치고 있고.
모든 사회가 문제가 되는 지금에 와서 이 계획을 듣고 놀랄 줄이야.
당연히 예견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달리 생각해 보면.
그림은 꽤 재밌어진다.
‘그럼 미래도 이건 예상 못 하고 있겠군. 재밌네.’
러시아와 한국의 통합.
화승 회장도 잘 이해하지 못할 정도면.
나나 나헤나, 계획을 짠 이사야 정도나 이 계획의 진짜 의미를 안다는 거 아닌가.
그러니 재미가 있어질 수밖에.
남들이 그리지 못한 그림을 그리는 거.
그거만큼 짜릿한 일은 또 없는 법이었다.
‘늘 새롭지.’
나는 아직도 놀라고 있는 화승 회장에게 장난스레 말했다.
“왜요? 이제 와서 못하겠다 싶으세요?”
“허허…….”
“정 감당 못 하시겠다 싶으시면 말씀하시구요. 미래한테 맡기는 거도 방법이니까요.”
그건 장난스러운 도발이었다.
그러나, 그 도발이 그의 뭔가를 건드린 걸까.
“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 말년에 와서 재밌는 일을 한다 싶어 놀라는 걸세! 이런 큰일을 거절할 리가.”
잔뜩 얼굴이 벌게져 말하는 화승의 회장.
어느새 그의 눈은 투기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기 전 잔뜩 흥분한 투사처럼.
제아무리 노회하여 온갖 경험을 한 그라도, 미래에 밀린다는 말에는 흥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지.
“후후. 역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자,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할까요?”
“아무렴. 밤을 새워서라도 해야지!”
나는 흥분한 그를 데리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아름다운 이국적인 미녀와 밀회를 즐기겠다고 파티장을 빠져나오는 것보다, 더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자그마치 두 나라의 통합을 어찌 그려내는가에 대한 답을 내리는 시간이었으니까!
* * *
“오오. 이건 내 숙원 사업 중 하나였지.”
내 계획 중 일부를 들은 화승 회장이 잔뜩 흥분한다.
-이 자, 이러다 숨이 넘어가겠는데? 저 나이에 저리 흥분하면, 인간은 죽을 수도 있지 않나?
‘냅둬. 회귀 전에도 이정도로는 괜찮았던 양반이니까.’
-흐음…… 특이하구나.
그로선 그럴 만한 일이었다.
러시아와 한국의 통합을 이야기하고 있는 나였다만.
‘그게 쉬울 리가 있나.’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까웠다.
인종이 다르고 문화가 달랐다.
사회 지도부야 나헤나가 매혹을 걸어놨다만. 그도 한계라는 게 있었다.
실질적인 업무를 하는 자들 모두까지 그녀가 매혹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아무리 그녀가 강해졌다고 하더라도 전국민을 자신의 매혹하에 두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러시아도 안 되는데 한국은 더더욱 될 리가 없다.
그런 가운데 통일?
실제 해내려고 해도 수 세대는 지나야 가능할 거다.
설사 같은 국가 이름을 지니고 언어를 통합한다고 해도 수 세기는 지나야 같은 국민이라 생각할 거다.
그것도 장담할 수가 없는 일이다. 본래 국가 간 통합이란 건 그만큼 힘든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 나는 시간까지 없지 않나.
‘[공허]는 쉬지 않고 내려앉으니까.’
수 세기로 안 될 일을 수년 만에 처리하는 거?
아무리 나라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가장 먼저 거리를 좁혀 놓을 순 있다.
다 통합하진 못해도, 헌터라는 집단들 따위는 힘으로 통합해서 써먹게 할 수 있다.
억지로 통합하는 것이기에, 나중에 가선 문제가 일어나겠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중의 일이다.
‘거기까지 생각하긴 어렵지.’
나로선 [공허]에서 또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 통합을 외칠 뿐이었다.
어쨌건 막고 나서 보면, 그 후유증이 어찌 되었든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러기 위해서 지금 잔뜩 흥분한 화승 회장의 힘이 필요했다.
“러시아에서 한국까지 있는 도로. 항만. 물류라! 후……! 듣기만 해도 엄청나군.”
“러시아도 망가져서 대단한 게 오고 가진 못할 겁니다. 대신 헌터 전력 정도는 오고 갈 만한 길은 만들 수 있겠죠.”
“당장은 그거면 되었네! 헌터들만큼 소비적인 자들이 또 어디 있다고. 후후. 그들이 얼마나 큰 돈이 되는지 아는가?”
“암요. 잘 알죠.”
“참으로 재밌는 생각을 해냈구먼…….”
문제는 잔뜩 흥분한 그가 과연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는 거다.
한국에서 옛 북한 지역을 이어가고.
바다에 잠수해 있는 거대 몬스터를 패퇴시킨 후, 새 항로를 여럿 만들어 내야 했다.
비행길은 어떻고?
나라고 해도 목숨을 위협받는 그곳을 열어 내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과연 그가 해낼 수 있을까?
‘해내야만 하는데 말이지. 그것도 단기간 내에 말이야.’
내가 생각하는 다음 단계를 가기 위해선 그의 능력이 꼭 필요로 했다.
과연 가능할까?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느냐고? 못해도 되게 해야 하지 않나.”
해서 물었고.
나는 확답을 원했다.
“저는 각오를 묻는 게 아니라 현실성을 묻는 겁니다. 안 되면 접어야 하니까요.”
“흘흘…… 자네가 이 늙은이를 너무 작게 보는군. 방법이 있네.”
“방법이라 하심은……?”
그리고 그는 꽤 가능성이 있는 확답을 해왔고.
나는 그 대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