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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재앙급 플레이어가 빌런을 다 죽임-174화 (174/206)

제174화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몇몇은 실의에 빠졌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이 완전히 떠나갔음을 받아들였다.

“잘 갔다니 됐지.”

“지옥 같은 곳에 오래 있는 거보다는 낫지 않겠어?”

“그래. 그런 게지.”

죽음을 받아들이는 거.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결국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자들은 복구작업에 열과 성의를 더 해갔다.

기록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복구 작업들이 있었다.

이러한 복구작업이 가능한 것에는.

“……여왕이라고 자처했는데, 일꾼이 된 거 같잖아요.”

“그래서 안 할 거야? 완성만 되면 나헤나 당신의 것이잖아?”

“……해야죠.”

여왕을 자처했던 나헤나의 노고가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여왕이라기보다는 일꾼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기는 했다.

그녀가 복구 작업을 위해 들인 시간이 얼마던가.

매일같이 밤샘 작업을 해대고.

하루 1~2시간을 겨우 눈을 붙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꼴이 말이 아닐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체력이 남아 있더라도, 일이 반복되다 보면 사람은 힘들어지기 마련이니까.

정신적 피로도까지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제 할 일은 딱딱 해내는 건 대견하기는 했다.

“후…… 오늘은 발표가 있는 거 아시죠?”

“알다마다.”

여기다 그녀가 말하는 발표.

즉, 대외 활동을 할 때면 지금껏 보였던 초췌한 모습은 뒤로하고 어느새 여왕다운 화려한 모습으로 변하곤 했다.

과연 여왕은 여왕인가 싶을 정도로 극적인 변신을 한달까.

‘하여간 타고나긴 했지.’

여왕도 직업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직업 정신 하나만은 투철하다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로선 몇 번이고 감탄해왔다.

내부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지배자다운 모습을 분명 보이고 있는 그녀였으니까.

문제는.

“대부분 대외 활동은 제가 감당해왔지만, 오늘 건 꼭 나와주셔야 해요. 알죠?”

“그거 영…… 귀찮은데.”

“지금 뭐라고요?”

“……아니, 나간다고.”

“그래요. 이번에도 도망치기만 하면 각오해요. 그때는 정말 제가 어디까지 막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줄 테니까요.”

“……젠장.”

꼭 이런 식으로 나도 같이 부린다는 것인데.

이번 발표식.

재건이 거의 이뤄졌음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발표가 같이 이뤄지는 중요한 발표긴 했다.

해서 나도 참여는 해줘야 하는 건 알고는 있다만.

나로선 영 성격에 맞지 않았다.

전생에서도, 지금도.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거 같았으니까.

이건, 광신도 처리를 위한 기자 발표 같을 때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때는 대놓고 광신도 애들 속이 뒤집히게 도발하는 재미라도 있었다만.

이건, 말 그대로 희망찬 미래를 말하는 그런 자리니까.

영 성미에 맞지 않는달까.

‘……씁. 이런 건 영 하기 싫은데 말이야.’

-전에는 어찌 했느냐?

‘그때는 유보라가 대신해 줬다고. 난 이런 건 영 젬병이니까.’

전이라면 유보라가 대신해줬을 텐데.

감장이 격렬해질까 싶어서.

일부러 그녀에 대해서 생각을 안 했던 나인데 말이다.

오늘따라 격렬히도 생각나는구만.

-음…… 이상하구나. 여가 기억하기로 네가 방송이나 발표에 나온 건 여러 번 본 것 같은데?

‘말했잖아. 유보라가 대신해 줬다고. 그녀가 마법으로 변신하거나 환영을 쓴 거거든.’

-……허.

하필이면 생각나는 순간이, 과거에 있었던 비밀을 말하는 게 돼서.

웃프긴 했다.

우습고 슬프다 이거다.

쯧.

마리가 살아나기는 했다만. 어쩐지 그 녀석은 아직 살리지 못한 게 여전히 눈에 밟힌다.

속이 끓어오른다.

그럼에도 당장이라도 살리겠다고 나서지도 못한다.

이제 알아서다.

‘대체 내 영혼 안에 있으면서 어떻게 격을 늘린 건지…….’

그 녀석의 격이 너무 높다.

그런 녀석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쌓아야 할 업.

그 업은 아직도 적었다.

재앙의 바람을 막아 내었고.

러시아에 불어닥친 재앙을 막아 낸 걸로 모자라, 재건까지 해내고 있는데도 ‘업’은 여전히 모자라다 말하고 있었다.

차라리 올슨의 부모와 같은 영혼들이 많았다면 좋을 텐데.

‘그들은 의외로 많은 업을 쌓게 했으니까 말이야.’

그런 영혼은 드물다 못해, 거의 없다 봐도 좋을 지경이었으니!

괜스레 그 녀석이 생각나는 지금에 와서 꽤 입이 쓰게 느껴졌다.

슬퍼서겠지. 그리워서이기도 하고.

그런 나로부터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게 있나.

“왜 그래요, 한휘? 그렇게 죽고 싶은 표정을 지을 정도로 못하겠으면…… 빼줄까요?”

어떻게든 발표, 뒤이어 이어지는 파티에 들어오라 하던 나헤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대로라면 원하기만 한다면 빼주기야 하겠지.

그러나.

‘……이도 업을 쌓는다 생각하면 나쁘진 않지.’

내가 알아가는 카르마.

즉, 업이란 개념은 꼭 사람을 죽이고 살려서가 아니라,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이었으니.

꽤 많은 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표나 파티도 업을 쌓기에는 시간 대비 괜찮은 행위긴 했다.

“……아니야. 가야지. 가서 해내야 하지 않겠어?”

그러니.

더더욱 가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런 서글픈 표정은 그만 지어요. 알겠어요?”

“그래. 그래야지.”

어떻게든 해내야 하지 않겠는가.

유보라. 그 녀석을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 * *

……는 개뿔.

나헤나. 그녀는 자신의 판이 벌어졌음에 한없이 신나 했다만.

내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그놈의 식순은 왜 그리도 긴 건지.

사람 하나 소개하는 데 몇 분이요. 다시 등장해서 인사하는 데도 몇 분이다.

아포칼립스가 다가오는 때에 가면, 이딴 식순들이 사라져서 좋았는데.

‘그게 세기말의 유일한 장점이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장점이 없는 건 아니었네.’

이 시기는 아직 여유가 있어선지, 식순 따위가 줄어들어 있지 않았다.

되려 여왕으로서 그녀의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선지 더 크고 화려하고 길게 했을 뿐이다.

덕분에 그녀의 든든한 동맹이자 조언가로서 옆을 지켜 줘야 하는 나로선 좀이 쑤셔 죽을 노릇이었다.

다른 자들은 이 시간을 그리 즐긴다는데.

나는 몇 번을 겪어도 도무지 적응이란 게 되질 않는다.

차라리 전장에 몇 번 더 나가는 게 나을 지경이라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생각해보면 앞으로 [공허]가 내려앉을 미래를 지켜내면, 이런 일들이 더욱 많아질 텐데.

딱 이런 쓸데없는 일들은 벌이지 못할 정도로만 미래를 살려 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되었을까.

“……이것으로 종료합니다.”

그때가 가서야, 나헤나가 말하던 발표라고 하는 게 종료되었다.

사실 말이 발표지.

러시아 남부에 대한 그녀의 지배권을 공고히 하고.

아직 북부에 남아 있는 러시아 독재자의 대가리에 한 방 쏘겠다고 발표를 하는 거나 다름없는 짓거리였는데.

참으로 교양있게, 알아서 잘 돌려 말하더라.

“어땠어요?”

“타고났네. 타고났어. 잘 선택했다 싶더라고.”

“후후. 근래 들은 말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네요.”

“퍽이나 그렇겠네. 나로서는 지옥 같았다고.”

“행사는 아직 끝이 아닌데요?”

“……젠장.”

문제는 이 빌어먹을 지옥 같은 현장이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 * *

남아 있는 것은 파티였다.

이런 중대한 발표 따위를 하고 나면, 그 뒤에 파티를 열면서 서로를 공고히 하는 거.

그거 오랜 전통이긴 하잖나.

어? 네가 내 편이지?

그래. 그래. 우린 같은 편.

스마일- 스마일-

해주자고.

하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행위를 우린 보통 파티라고 한다.

다른 자도 아니고, 매혹의 조종자라 불리는 나헤나.

그녀가 이런 행위를 하는 건 엄청난 비효율로 보이긴 한다만.

“어머. 저기들 모여 있네요. 저도 다녀올게요.”

“예이. 예이. 다녀오시죠.”

무려, 여왕이라고 칭하는 그녀가 원하는 행사였으니까.

이런 쓸데없는 자리도 벌어질 수밖에 없는 거겠지.

‘정말 쓸데없는 사치가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말이야.’

-사치라니. 이런 일을 행함으로써 서로 간의 결속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는 마족도 행하는…….

‘……그만. 진짜, 내 편이라곤 하나도 없네.’

나로선 영 쓸 데가 없어 보이기만 하는데.

그 마왕조차도 쓸모가 있는 행위라 말해대니, 어쩌겠는가.

잠자코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밖에.

그나마 손에 쥐어진 맛 좋은 와인조차 없었더라면, 진즉에 나갔을 거다.

“흠…….”

그래도 가만 보니, 나헤나도 파티만 즐기고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자들에게는 모르겠지만, 나로선 그녀가 은밀히 힘을 쓰는 게 보였다.

‘북부에 있는 권력자들 초대해 놓고, 매혹하는 거구만.’

그녀는 아직 포섭하지 못한 자들을 상대로 매혹을 계속해 걸고 있었다.

자기 편으로 삼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단 말이다.

사실, 그녀가 지닌 힘에 대해선 권력자들 사이에서 꽤 소문이 난 상태다.

때문인지, 이곳에 초대받은 자들도 그녀의 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을 상당히 갖추고 온 거 같기는 한데.

‘보호 장치들을 잘도 뚫어내네?’

그녀는 그런 장비들을 말 그대로 찢어발기고 있었다.

보호 주문은 해제해 버리고.

보호 장비는 힘도 쓰기 전에, 그 안에 담긴 기운을 되려 매혹시켰다.

이능력자들의 보호?

그들은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녀가 매혹을 쓰는 걸 눈치도 못 채고 있었다.

그 콧대 높은 마왕조차도 감탄할 정도의 묘기들이었다.

-갈수록 더 강력해지는 거 같구나.

‘그러게? 그래도 이게 재밌긴 하네.’

지금 보니 여기가 전쟁터였다.

처음부터 그녀는 파티 따위를 열려고 한 게 아니었다.

자신을 미끼로 권력자들을 불러들이고.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삼기 위해서 이곳에 굳이 크게 파티를 연 거였다.

그렇게 나헤나라는 미끼에 걸려든 머저리들을 거미가 먹잇감을 휘감듯 돌돌- 말아내서 잡아먹고 있는 거고 말이다.

‘대단하구만.’

즉, 이곳은 그녀만의 전쟁터!

매혹의 힘을 지닌 그녀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섣부른 불나방들을 일방적으로 후려갈기는 학살의 현장이라 이 말이다.

‘좋네.’

그쯤 되자, 나는 파티장 안에서의 답답함이 한결 가시는 게 느껴졌다.

조금 쓰게 느껴지던 와인의 맛이 더욱 깊고 풍미있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공간이, 재미없고 쓸데없는 파티장에서 전장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으니까.

‘오…… 저 녀석은 삼 초만에 매혹했네? 삼 초 컷이로구만.’

-저 녀석은 가자마자 끝났다. 대단하다.

‘저건 좀 버티네?’

-그래봐야 오 초 정도 아니더냐.

‘그래도 신기록이지. 크…… 이렇게 직관하는 것도 재밌구나.’

나헤나는 실시간으로 자신의 우군을 늘리고 있었다.

여기 있는 자들 중 약한 자나, 권력을 지니지 않은 자가 없을 텐데.

그런 자들을 끌어들인다라.

이 파티가 끝나면 그녀의 힘은 한층 더 강해질 게 분명했다.

그 순간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을 생각으로, 얼마나 바라보고 있었을까.

“……자네 오랜만에 보는군.”

나의 감상을 방해하는 자가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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