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1화
‘이들이 함께 손을 잡을 줄이야.’
마임맨. 마트료시카. 정보국장. 스티큰.
그녀도 이들을 매혹시키기 위해 꽤 공을 들였던 기억이 있을 만큼, 러시아에서 알아주는 강자들이었다.
그런 자존심 강한 이들이 한데 모였다.
단순히 모여 있기만 하면 다행일 텐데.
손발을 맞춰 그녀 하나만을 노리고 달려 들 줄이야.
아무리 그녀라도 상상치도 못한 일이다.
“잡았어!”
“놔!”
수십 개의 분신을 만들어 낸, 마트료시카가 그녀를 잡아챘고.
그 분신을 부수려고 하면.
“흐히히히!”
“미친 녀석이!”
상대가 자신의 모습을 흉내 내게 만드는 마임맨의 이능이 발동했다.
[당신은 기술 : 흉내 내기에 당했다.]
마임맨의 특기는 자신의 행동을 상대가 모사하게 하는 것. 그리함으로써 상대가 위험에 빠지게 만드는 게 그의 특기였다.
도망쳐야 할 때, 공격을 하게 만든다거나.
공격을 해야 할 때, 되려 방어만 하게 만드는 식.
단순해 보이는 방식이지만.
전장에서는 치명적인 수단이었다.
한 치라도 잘못 움직일 경우 문제가 발생하는 게 전장이었으니까.
‘큿…….’
“잘도 저항해내는구나!”
그 특기의 위력은 꽤 강력했다.
바실락 거미의 영혼과 결합하여 꽤 강력한 통제력을 지닌 나헤나.
그녀로서도 멈칫멈칫하게 만드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어지간한, 이능은 그녀에게 통하지도 않을 걸 생각한다면.
‘……무슨 괴물들이 돼서 온 거야?’
저들의 강함은 비정상적이다.
나헤나에게 매혹됐을 때보다 몇 배는 더 강해져 있지 않은가!
그 원인은 예상이 가는 곳이 있었다.
‘늙은 너구리. 설마 네 녀석이…….’
통칭 늙은 너구리. 러시아 정보국 국장.
그가 가진 진짜 능력에 대해서 아는 자는 많지 않았다.
그저 고위 관료 중 하나라고 여길 뿐.
그러나.
나헤나만은 그녀의 능력을 알았다.
“차라리 자네를 실험실에 넣었어야 했어. 쯧…… 일이 복잡해지지 않았는가?”
“시끄러, 고약한 늙은이. 그 눈깔을 찢어버리기 전에 닥치라고.”
“허허. 고약하구먼. 고약해.”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는 늙은 너구리.
그의 진짜 능력은 정보를 취합하는 거 따위에 있지 않았다.
정보를 취합하는 능력 따위로 국장까지 올라설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능력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말이다.
그의 진짜 능력은 버프.
그것도 그에 속한 자들에 대한 버프였다.
그러기에 그는 국장이 된 거다.
그가 국장으로 있는 곳의 능력자에게는 버프가 부여되니까.
‘늙은이…… 그래봐야 몇 퍼센트 되지 않는 것을 능력 상승이라 씨불였을 건데.’
그러나 그녀가 알기로 그의 능력은 이렇게 극적이진 않았다.
고작해야 쓸 만한 버프가 있는 정도라 여겼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의 진짜 힘은 소수가 되었을 때 나오는 거였다.
버프가 되는 힘의 총량은 정해져 있고.
그를 받는 자가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그 힘을 크게 나눠 받는 식이었다.
힘의 총량이 100일 경우, 100명이 받으면 1이 되지만 다섯이 받으면 20이 되는 식.
이 부분은 나헤나로서도 모르는 일이었다.
‘잘도 숨겼네 늙은이. 매혹에 당했는데도 숨겼다 이거지. 대체 어떻게……?’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모름에 대한 대가는 언제나 처절한 법이었다.
쒜에엑-!
여러 개의 날카로운 날이 그녀의 뒤를 찔러 온다.
“읏…… 망할 녀석.”
“크힉! 아쉽다! 겨우 다 잡았는데!”
둘은 찔리고.
셋은 피했다.
아슬아슬했다.
사실 완벽한 피함도 아니었다.
[당신은 독에 중독되었다.]
날카로운 날에는 독이 묻어져 있었으니까.
아찔한 현기증이 그녀의 정신을 흩트렸다.
그럼에도 버텨 내는 건, 그녀 특유의 독기 때문.
“너도 죽일 거야!”
“크헤헷! 죽여! 죽여 보라고! 근데 날 어떻게 죽여!?”
“……버러지들.”
현기증으로 인해 몸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거 같고.
힘은 고갈되어 가지만.
그녀는 그걸 드러내지 않은 채 버텨 내고 있었다.
자신은 여왕.
그녀가 아는 여왕은 죽기 전까지는 절대 쓰러져서도, 굴복해서도 안 되기에.
“후…….”
그녀는 버티고, 또 버티어 내며.
저들의 공격을 막아 내고자 다시 움직였다.
* * *
그러나, 모든 일이 의지만으로 가능하게 하는 자는 이미 신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아쉽게도, 여왕이란 자리에 올라서는 그녀도 신은 아니었다.
한 번에 이겨내려 했으나 그게 되진 않는다는 의미.
그녀가 위기에 몰리는 데는 몇 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읏…….”
“이제 죽어 줘야지!”
어느새 그녀의 목 앞에 놓여 있는 스티큰의 칼날들.
수백, 수천의 날을 소환해서 적을 공격하는 게 그의 방식.
어느새 나헤나의 온몸을 칼날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대로 1cm만 더 들어간다면.
그녀의 온몸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게 되겠지.
“아이언 메이든이라고 하는 기술인데 어때? 흐흐.”
“저열한 자식…….”
피를 흘리는 나헤나를 보고, 스티큰은 저열한 웃음을 지어댔다.
나헤나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상황.
이 상황에 놀라는 건 그녀가 아니라 되려 그녀를 바라보던 자들이다.
“어어어!?”
“대체 왜 저러고 있는 건데!”
“뭐야!?”
그녀의 형상을 한 것들. 그것들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서 나온 자들.
호기심 많은 자들은, 그녀를 따라붙는 데 성공했다.
그녀를 찾자마자 보게 된 광경이 그녀의 온몸이 칼날에 뒤덮인 장면이었을 뿐이었다.
도시의 구원자를 찾으러 왔는데, 같은 인간이란 족속들이 그녀를 공격하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놓아줘! 뭐 하는 건데!”
“아아…….”
해서 그녀를 놓아주라 말하지만.
여기 있는 자들 중, 그런 목소리에 반응할 만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크흐흐. 재밌는 팬들이 많은데?”
“나헤나. 자네 말대로 버러지들 아닌가? 버러지들의 구원자 행세는 어땠는가?”
되려 이 상황을 두고 즐길 뿐.
“대중들은 자네가 죽으면 뭐라 말할지 모르겠군.”
“너희 버러지가 감히 여왕을 죽였다 말하겠지.”
“과연 그러겠는가?”
“충분히!”
“푸핫…… 언론을 적당히 주물러주면 될 문제야. 그러면 다들 금방 잊겠지. 아니 잊게 하는 거보다 자네를 욕하게 만드는 게 좋을지도? 흐흐흐.”
“이 사태의 원인이 나헤나인 걸로 하죠. 추악한 마녀의 타락으로!”
“그거 좋구먼!”
되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나헤나를 나락으로 끌어 내릴 수 있을지를 상상하며 현재를 즐길 뿐이었다.
앞뒤의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재앙의 바람 이후로 수습을 해낸 건 나헤나일진대.
그걸 되려 나헤나의 죄로 만들겠다니.
우스운 노릇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실제로 가능할 것이란 거다.
이곳에 있는 정보국장이나 요원들.
그들이 조금의 힘만 사용하더라도,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건 쉽게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없는 죄도 만들어 내는 게 그들의 특기였다.
“네년은 죽어서도 제대로 눈을 못 감을 거야. 희대의 악녀이자 쓰레기로만 남을 거니까.”
“……버러지들이.”
그들은 나헤나가 자신만의 명예를 추구함을 잘 알았고.
여왕으로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마녀이자, 악녀.
쓰레기로 만들어 낼 생각이었다.
그걸 무엇보다 치욕스럽게 여길 나헤나였으니까.
상대에 대한 처우는 결정되었으니, 이제 끝을 내야 할 때.
“자자, 너무 길어져서 좋을 게 있나. 저녁에 축배를 들려면 이제 끝을 내야지. 스티큰?”
“흐으…… 즐기지 못해서 아쉽긴 한데, 어쩔 수 없겠죠?”
“아쉬움은 내 따로 챙겨줄 테니. 어서 끝내라고.”
이 상황을 이끈 정보국장은 나헤나의 죽음을 명했다.
“스티큰! 어서! 해!”
“후…… 알겠수다.”
스으으-!
망설임은 잠시일 뿐이었다.
스티큰은 자신의 주먹을 꽉 쥐었다.
[당신은 기술 : 검의 세례의 종장을 명령했다.]
그것은 신호.
자신의 칼날들에게, 먹잇감을 잡아먹으라 하는 신호였다.
모든 주먹이 다 쥐어지는 순간.
나헤나의 온몸은 칼날에 의해서 꿰뚫릴 거다.
자신의 할 일을 다한 칼날이 사라지고 난 뒤.
그녀는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겠지.
자신을 조종한 마녀.
그런 마녀에 어울리는 최후지 않은가.
“읏…….”
그러나 스티큰의 손은 더 쥐어지지 않고 어느 순간 멈춰 섰다.
그에 국장은 열불이 나는지 그를 재촉했다.
“어서! 무엇 하는가! 내 분명히 보상을 줄 거라고 했는데!”
그러나 재촉은 먹히지 않았다.
“윽…… 이게, 이게 왜…….”
어느샌가 스티큰의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얼굴은 벌게져 있었고.
다른 남은 한 손으로 굽혀지지 않는 손을 접으려 했다.
그리하여 칼날로 그녀를 꿰뚫으려 했으나.
“으윽!”
먹히지 않았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국장. 이변이 발생했다는 걸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설마……!’
그는 뒤늦게 양옆을 둘러보았다.
그가 생각하는 자가 이곳에 있는 건 아닐까.
나헤나가 불러왔던 이방인.
지한휘.
검은 머리를 한 그자는 아직 이곳에 오기 전일 텐데.
그에 대한 함정을 발동시키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기에 그는 급히 양옆을 둘러보며, 지한휘가 이곳에 있는지 찾아봤다.
‘아닌데? 없지 않은가?’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그래. 아니겠지.’
이곳으로 그가 향한다는 그 어떤 보고도 없었다.
아직 왔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
스티큰의 장난이 너무 심한 거다.
“이 상황에도 장난질을 할 건가! 스티큰! 어서 집행하래도!”
“…….”
그러니 어서 집행을 하라 명했다.
장난은 그만두고, 어서 끝내자는 신호다.
그래야 그, 지한휘가 왔을 때 수습도 가능할 테니까.
‘모든 건 계획대로다.’
그리 생각하며 명하지만.
“어서!”
“…….”
스티큰은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뭐지?
대답은 국장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들려왔다.
“뭘 어서 하라고 그러는 거야, 국장?”
“……어?”
양옆? 아니었다. 그가 살펴본 곳들엔 없었다.
뒤다!
국장인 그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국장은 놀라 뒤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야?”
아직 이곳에 절대 도착하지 못했을 거라 여긴 지한휘.
그가 짙은 미소를 짓고는 그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그가 놀라기가 무섭게, 뒤이어 비명도 터져 나왔다.
칼날에 온몸이 갇혀 있는 나헤나의 비명? 그럴 리가!
비명의 주인은 다른 이었다.
“크아아아악!”
스티큰이었다.
칼날을 조종해야 할 그의 양손은, 어느샌가 잘려져 툭 떨어져 있었다.
‘언제……!?’
그저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지 않았는가.
대체 언제 손을 자른 거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지한휘의 등장 이후로.
국장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건 오로지 물음표(?)뿐이었다.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으니까.
머리가 멍하였다.
이 상황을 어찌 해결해야…….
아니, 어떻게 도망쳐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눈을 뒤룩뒤룩 굴리고 있는 게, 안 되겠네.”
“……컥?”
지한휘가 그에 대한 처분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