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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재앙급 플레이어가 빌런을 다 죽임-169화 (169/206)

제169화

막장도 이런 막장이 따로 없었다.

“내 거야!”

“이 새끼가! 이걸 네가 감히 가져가겠다고!?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

“다 죽게 생겼는데! 그걸 따져!”

서로가 서로의 것을 탐하고 있었다.

실랑이를 벌이는 쪽은 차라리 나았다.

타아앙-!

총성이 울려 퍼졌다.

어디서 구했을지 모를 총들의 총구는, 몬스터가 아닌 같은 사람을 향했다.

이 세계에서 총은 최소의 보호 장비.

마력탄이 아니고서야 몬스터를 사살하지 못하더라도, 저지하기 위해서 쓰이는 게 총이었다.

한국에 비해 총기를 구하기 쉬운 러시아라곤 하지만.

타당- 타다다당-

곳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져서야.

“이건 선 넘었네.”

말 그대로 선을 넘었다.

옆에 있던 나헤나는 한쪽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가 다 민망해지네.”

얼굴이 벌게지기까지 한 것이 진심으로 민망한 듯했다.

그 민망함을 달래 줄 이유가 있겠는가.

“그래야지. 네가 여왕이라고 불리는 곳이잖아. 몬스터 사태가 터졌다고 해서 이리 통제가 안 될 줄이야. 실망인데?”

“……이미 여러 차례 실망을 줘서 더 나빠지는 건 없을 거 같은데?”

“그건 그렇긴 해. 그런데 왜 갑자기 반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이리 반말을 해 올 줄이야.

이건 태세 전환이 너무 빠르지 않나.

블라디보스토크가 자신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이 상황에서는 내게 안 될 터인데.

그런데도 너무 당당하다.

“생각 중이니까.”

“무슨 생각?”

“당신의 말대로, 진심으로 당신 편에 서는 게 맞는가에 대한 생각.”

대답하는 걸 보아하니 아주 막 나갈 요량인가 보다.

“그 생각 길기도 하구만. 장고(長考) 끝에 악수 둔다는 말 모르나?”

“알지. 그래도 이건 해야 해.”

“흐음…….”

생각이 길어져서야 좋은 꼴을 못 봤는데.

하기야.

‘태어나기를 여왕의 기질을 타고난 녀석이긴 하지…….’

아포칼립스 와중에서도 제 성세를 구축하던 녀석이다.

러시아를 제 제국으로 삼고자 하는 건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상태.

타고난 녀석이다.

아마 전생 전에도, 이사야만 아니었더라면 진짜 여왕이 됐을지도 몰랐다.

‘리치에겐 매혹이 안 통해서 다행이었지.’

리치 이사야.

그녀라는 족쇄가 없었더라면, 그때의 그녀는 정말 러시아를 잡아먹었을 거다.

적어도 최고의 흑막은 되었겠지.

그런 그녀니까.

‘결정이 느릴 수밖에 없나.’

말로는 온 힘을 다해서, 나를 돕겠다고 한다만.

진심으로 나를 도울지.

그에 관해서는 깊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듯해 보였다.

남이 보기엔 바보 같고, 또한 쓸데없는 고집 같아 보이겠다만.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거다.

곧 죽어도 하지 못하는 게 있곤 하지 않은가.

서로 간 완벽한 신뢰를 갖고, 우선은 내 밑에서 움직이는 거.

그녀로서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일일지도 모른다.

당장, 슬라임에 잡아먹혀서도 여왕이 되겠답시고, 그 영혼을 빨아들이고자 했던 그녀였으니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나로서는.

“더 길게 이어지면 이쪽도 기회는 없으니까, 빨리 결정하라고.”

“……알겠어.”

더 기다려 줄 여유가 없을 뿐이다.

어쨌건, 러시아를 수습하고 그 이후를 나는 생각해야 했으니까.

‘일본 쪽도 난리가 났다고 들었는데…… 쯧. 일이 계속 벌어진단 말이지.’

당장 재앙의 바람이 불러들인 여파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일본.

몬스터 웨이브 사태를 제대로 해결치 못하고 난항을 겪고 있는 중국.

땅은 넓은 주제에 인구는 몇백만 명밖에 없어서 고생하는 몽골.

정말, 곳곳에서 문제가 터지고 있는 터라.

이쪽에서도 어디부터 어디까지 손을 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찰나다.

이때 시간을 더 끌 필요가 있겠는가.

“그럼 나는 나대로 수습하러 갈 테니. 어서 해결하고 오라고.”

시간을 끌기보다는 움직이고.

또 움직일 수밖에.

* * *

후우웅-!

지한휘가 몸을 날려 움직이는 걸, 나헤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어디로 가는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이 난리 통을 그 나름의 방법으로 수습하려 시도한다는 거.

그 하나만은 확실했다.

그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으니까.

“후…….”

그녀는 다시금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단 몇 초가 흘렀을 때는.

“…….”

본래의 냉담한 표정을 돌아와 있었다.

이게 그녀가 평소에 지닌 표정이자, 태도였으니까.

여왕을 자처하고 있는 그녀는 인자하기만 한 왕이 아니었다.

차라리 폭군에 가까운 터.

타아앙-! 탕!

총소리가 들려 오는 곳을 향해, 그녀는 차분히 걸어 들어갔다.

갈수록 커져 가는 총소리.

“넌 뭐야!”

“미친X인가! 여길 감히 와!? 뭐라도 떨어질 줄 알고!?”

총기의 주인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그들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한심한 벌레들.’

제 왕국을 더럽히는 벌레였으니까.

그녀의 혐오스러운 눈빛에 발끈한 것일까.

철컥.

총기의 주인은 그녀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모든 게 망가져 가는 거리.

그곳에 무기 하나 없이 홀로 걷는 여인이 있다면, 오히려 긴장을 해야 할 터인데.

총구를 겨누는 그 자의 눈엔 광기만이 엿보였다.

그는 광기대로 행동하고자 했다.

실제로 방아쇠를 당겼으니까!

“그 눈깔은 뭔데! 내가 못 쏠 줄…… 컥!”

“버러지. 죽어.”

그러나 그는 방아쇠를 미처 다 당길 수가 없었다.

쑤우욱-!

그녀의 그림자가 솟구쳤다.

솟구친 그림자는 그대로, 총기를 쥐고 있던 그 손을 잡아채었다.

잡아챈 팔은 그대로, 잘려 나갔다.

땅에 떨어져야 할 총은 어느새 뻗어 나온 다른 그림자가 잡아채고 있었다.

“크어어어억! 내 손!”

푸화악-!

피가 솟구쳐 나온다.

솟구치는 피만큼 고통스러운지, 그자의 광기는 이미 지워져 있었다.

점칠 된 고통에 의해 순식간에 나약해져 갈 뿐이다.

남은 한쪽 손으로, 피가 터져 나오는 손을 부여잡고 피를 막아보려 했다.

그러다 흘끗, 보이는 것에 그자는 대번에 놀랐다.

“흐이이익……!”

그자의 광기를 지켜주던 무기.

총.

몬스터에겐 약할지라도, 같은 인간에게는 무기로서 한없이 유효한 그것.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켜주던 그 총구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아…… 안 돼. 크흐…….”

뒤를 직감한 것일까.

그는 화들짝 놀라, 주저앉았다. 그런 가운데 몸을 질질 끌어서 도망치려 했다.

어느새 피가 흘러나오는 팔의 고통도 잊은 듯했다.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팔로 땅을 짚어서라도, 이곳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다.

‘죽는다! 죽어. 죽는다고!’

살고 싶어서다.

다른 자의 목숨을 앗아서라도, 살아남으려 하는 자들은 제 목숨에 대한 생존 욕구 하나만은 뛰어났으니까.

그러기에 다리에 힘이 풀린 와중에서 손이라도 사용해 도망치려 하는 거겠지.

“으힉…… 으히이이익!”

바닥에 핏줄기가 그려진다.

1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를 움직이는 데도 땀이 뻘뻘 난다.

빠져나간 피에, 현기증이 훅-하고 생겨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살려고 했다.

그러나 그 무의미한 도주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버러지는 치워야지.”

나지막한 나헤나의 한마디.

그녀의 한마디에 그에 대한 처우는 정해져 있었으니까.

타아앙-!

벌레라 칭한 그를 겨누었던 총.

주인을 바꾼 그 총의 방아쇠가 당겨졌고.

“안……!”

투웅-!

상대는 단말마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머리가 꿰뚫렸다.

털썩.

도망치자고 끌어 올렸던 상체가, 그제야 눕혀졌다.

머리가 꿰뚫리고 완전히 죽어버린 사내.

“으익…… 으아아!”

“괴, 괴물이다! 그림자 괴물이야!”

그걸 본 동료들과 그와 대치하고 있던 자들.

서로 총을 겨누던 자들은 겁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제야 상황이 파악된 것이었다.

자신들을 잡아먹는 포식자.

그 포식자가 이곳에 강림했다는 것을 알아챈 거다.

그러나 너무 뒤늦었다.

“어딜 가려고. 너희들에 대한 처우는 결정됐다고 했잖아. 치우는 것이라고.”

타아앙-! 탕-! 탕-!

총구의 총열이 연이어 달구어진다.

총열이 달구어질 때마다, 총열 사이로 지나간 총알이 그들을 꿰뚫는다.

총알은 적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여지없이 그들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이 시기에, 고작해야 총 따위를 쓰는 자들 중에 이능력자가 있겠는가.

꿰뚫리는 순간, 그 안에 담긴 뇌수는 총알에 의해서 흩날릴 뿐이었다.

쿠우웅. 쿵.

얼마 가지 않아, 거리를 더럽히고 있던.

아니 정확히 그녀만의 제국을 더럽히던 버러지들의 몸이 쓰러진다.

순식간에 일어난 학살이었다.

그 학살의 끝.

“으아…… 으으으으!”

“사, 살려주세요!”

버러지 같은 행위에 참여하지 않은 소수의 목격자들만이 겨우 살아남았을 뿐이었다.

생존자들의 흐느낌을 제외하곤, 주변은 고요하였다.

소음을 낼 만한 자들 모두를 죽여놨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한 침묵이 만족스러웠을까.

“후.”

여왕다운 표정을 지은 그녀는 그제야 찌푸렸던 인상을 조금 폈다.

만족한 듯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전부 만족한 게 아니었다.

폭군의 자질을 지닌 그녀가, 상대가 죽었다고 해서 그대로 두고 볼 리가 있는가.

폭군은 죽음조차도 농락하기에 폭군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거였다.

쒜에엑-!

그녀를 중심으로 뻗어 나온 그림자들.

슬라임의 그것과도 비슷한 촉수처럼 움직이는 그림자들이 죽은 시체들을 꿰뚫었다.

꿀렁- 꿀렁-

꿰뚫은 그림자 사이로, 죽은 버러지들의 피가 뻗어 나온다.

쑤우욱-!

그 피가 한데 뭉쳤다.

한 명의 인간이 지닌 피는 약 5리터 정도.

그녀가 죽인 자가 수십이었으니 그 피는 순식간에 불어날 수밖에 없다.

여지없이 불어난 피는 그녀만 한 크기로 불어났다.

“일어나라.”

그녀는 그 피를 이용해,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그녀와 똑 닮은 형상이었다.

그녀가 일어나라 명하자.

-…….

그녀의 형상을 한 그것이, 눈을 떴다.

스스스스-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형상.

핏빛과 그림자의 검은 빛으로 이어진 그것은 매혹적이나 또한 위험해 보였다.

이것은 그녀가 만들어 낸 하나의 창조물.

바실락 여왕으로서 지닌 통제력과 변종으로부터 얻은 흉내 내기를 일부 사용해 만들어 낸 새로운 개체였다.

그 생명력은 그녀가 담아놓은 힘과 피가 가진 마력이 다할 때까지였다.

그 모든 힘이 사라진다면, 다시 피 따위가 되어 부서지겠지.

아래로 쏟아진 피는 땅에 스며 그 형체마저 잃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가서 처리해.”

-…….

폭군인 나헤나.

그녀가 명하였으니까.

이 거리를 더럽히고 있는 버러지들. 그것을 쓰러트리고, 잡아먹으라 말하였으니.

이 땅에 버러지들이 있는 한, 이 괴기한 생명체는 제 생명을 계속해 유지할 수 있을 거였다.

이것에게 있어 버러지들은 좋은 양분이자, 제 몸을 유지하게 하는 제물이었으니까.

스스스스-

명령을 들은 새로운 생물체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럼 가 볼까.”

그제야 나헤나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더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향하는 곳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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