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재앙급 플레이어가 빌런을 다 죽임-167화 (167/206)

제167화

-키이이이.

-킥?

바실락 거미는 완전히 물러난 게 아니었다.

나헤나의 의지에 따라서 사람들의 눈에서 숨었을 뿐이었다.

숨어들은 그들.

그들에게로 나헤나의 의식이 전달되었다.

그 의식.

-적들을 섬멸하라.

여느 몬스터라면 받아들일 만한 의지였다.

단, 하나만 제외하고.

-인간은 사살치 말도록 해.

-키이……?

가장 증오스러운 존재.

인간을 처리하지 말라니.

자신들의 여왕은 인간을 처리하기 위해 이 세계에 온 게 아니었던가.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여왕에게 충성하는 것이 그들의 본질.

그러나 그 이전에 몬스터로서 인간에 대한 학살은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키이이이!

반발심이 물씬 풍겨져 나온다.

그러나.

그 반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감히! 네 놈들이 내 명령을 무시하겠다고?

멀리서부터 퍼져나오는 기파.

그로부터 느껴지는 여왕의 서슬퍼런 기휘.

그들의 본질조차도 부수기에 충분한 힘이었다.

-키이이…….

바실락 거미들은 다시금 고개를 조아렸다.

그들의 유전자에 박힌 강자에 대한 복종이, 그리 행하게 만들고 있었다.

체면? 부끄러움?

거미들에게 그러한 것들이 있을 리가.

완전한 복종을 말하였으니, 그저 따르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스스스스슷-

정글에 퍼져 있던 바실락 거미들.

그들이 물감이 번지듯, 번져나갔다.

소리 없이, 은밀하게.

처음 이곳을 잡아먹었던 그때처럼, 움직이는 그들의 발걸음은 거칠 게 없어보였다.

거미들의 행렬이 시작됐다.

* * *

내가 전투 종료를 선언하고.

우리들은 곧바로 거미들이 둘러싸고 있던 쉘터를 떠나기 시작했다.

“더 머무르기도 싫다고!”

“흐흐. 여기 있자고 고집부린 게 누군데!”

“……시끄러워. 어서 가자, 어서.”

채비를 하는 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본래부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시끌벅적한 가운데, 느껴지는 사람들의 기분은 전부 좋아보였다.

나쁠 이유는 없었다.

사냥은 종료됐고, 승리한 건 우리였다.

괜찮은 우군까지 얻어서 출발하는 상황이지 않은가.

앞으로의 상황이 나빠보이는 것은 없기에.

떠나는 자들 모두, 기뻐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런 환경을 만들어 낸 나는 아니었다.

‘으음…… 기파가 움직였다.’

-여도 느끼었다. 아니, 네 기감에 함께 느꼈다는 것이 맞겠지.

쉘터를 떠나고 있는 지금.

기파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중심도.

‘중심은 나헤나…… 뭘 한 건지는 알 거 같은데…….’

-여도 짐작가는 바가 있느니라.

은밀하여, 어지간한 자들은 느끼기 힘든 기파의 움직임이었다.

뭘까.

그 목적은……?

잠시 머리를 굴리고, 결론은 나왔다.

‘조종한 거야.’

-바로 그거다.

나헤나가 무언가 조종했다.

그 대상은, 바실락 거미인 게 분명하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왜인지 내심 짐작은 갔다.

동시에 확인을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나는 어느새 내 오른편을 차지하고 있는 나헤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명령을 내린 거야?”

“응.”

확인을 위한 거였다.

그에대한 대답은 긍정.

‘거미들을 다룰 수 있는 거 하나는 확실하군.’

그녀의 답 또한 정보다.

그녀가 바실락 여왕의 영혼을 흡수한 건 단순히 그녀가 지닌 통제 권능이 증가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생각지 못한 다른 효과도 있었다.

바로 거미들을 다루게 되는 것.

그에 대해 물은거고, 답이 왔다.

“있는 자원을 써먹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

“그렇지.”

시원스레 말하는 그녀는 어깨를 쭉 펴고 있었다. 당당해 보였다.

그녀의 당당한 모습을 나는 가만 바라봤다.

“흐음…….”

“왜, 그렇게 보는 거야? 그런 식으로 부리는 게 걱정 돼? 걱정 마. 인간은 공격하지 말라고 명령해 두었으니까.”

“네가 내린 명령 자체는 걱정하지 않아.”

때문인지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것 같았다.

인간이 몬스터를 부리는 것.

그에 대한 거부감을 내가 가질 거라고 생각한 듯 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온 몸, 아니 영혼 그 자체에 몬스터의 영혼을 덕지덕지 붙인 게 나였다.

무려 언데드의 영혼에 악마와 마족의 영혼까지도 붙여 놓는 게 나다.

같은 인간까지도.

그런 내가 몬스터를 다루는 것 따위에, 이제 와 혐오감을 느낀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단지 나는 다른 가설을 하나 생각했을 뿐이다.

그것도 내가 확인해야 할 다른 하나였다.

“네가 다룰 수 있는 게 거미만이 아니지?”

“……으음.”

“최소 슬라임류는 다 가능할 거 같고. 거미가 되는 걸 보면 곤충류는 어지간해선 될 거 같은데? 아니야?”

그녀의 통제력이 어디까지 미치느냐.

그를 확인해야 했다.

처음 그녀로부터 뻗어 나온 기파를 느끼고서.

그녀가 지닌 통제력이 과연 거미까지‘만’ 닿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거 치고는 전혀 힘을 들이지 않은 거 같았거든. 되려 여유로워 보여.’

해서 물었을 뿐이다.

내 물음에 그녀가 움찔거렸다.

육체의 움찔거림이 아니었다.

그녀가 지니고 있는 균열 사이.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내 영혼의 근원이 순간적으로 흔들렸을 뿐이다.

나는 그것을 움찔거렸다 느낀 것이고.

‘맞군.’

그게 대답이 됐다.

그녀는 매혹의 조종자이자, 몬스터의 조종자가 되었다.

확실하다.

순간 소름이 돌았다.

‘맞네. 어지간한 몬스터는 이 녀석 손아귀에 들어가겠는데. 내가 너무 대단한 능력을 줘 버린 걸지도……?’

나헤나.

그녀에게 너무도 뛰어난 능력을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훅- 들어왔다.

어린아이에게 핵폭탄 같은 걸 쥐여 준 꼴인 거 같은데.

그녀의 본질은 여왕.

그것도 폭군에 가까운 여왕이었다.

그런 여왕에게 이런 힘이라.

과연 맞는 것일까.

으음…….

의문이 들었다.

그런 의문을 나헤나는 느낀 것일까.

그제야 순순히 인정하는 말을 해왔다.

“……정말로 쓸데없이 예리하다니까.”

“예리하지 않으면, 죽을 만한 사선을 자주 다녔으니까.”

“……알아보기론 그런 일은 별로 없던데. 어쨌든, 맞아. 몬스터를 다룰 수 있게 됐어.”

“어느 정도나?”

그녀는 여전히 질린 표정을 하면서 답했다.

“최하급은 다 가능할 거 같아. 갑각류나 슬라임류는 당연히 될 거 같고. 나머지는…… 음, 실험을 해 봐야겠지만…… 될 거 같은?”

“과연…… 대단한 힘을 얻었네.”

“한휘, 네 덕분이야. 그리고 이 힘은 너를 위해 쓰일 거고 말야.”

그러면서, 마지막은 나를 위해 그 힘을 쓸 거라 말해 왔다.

그러곤 다시 당당해졌다.

나로선 그 모습이 퍽이나 우스웠다.

제 힘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나에게 들키고 나자, 그제서야 말을 하는 꼬락서니라니.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본래 나헤나의 성격이 그렇긴 하다만…… 꼭 인정해 줄 필요는 없지 않나.’

이제 본격적으로 그녀와 일을 해야 할 순간이다.

그런 와중에 나헤나가 계속해 이런 식으로 숨기는 게 생긴다?

나로선 안 좋았다.

아니 나를 떠나, 일을 진행함에 아주 좋지 못했다.

전력을 다해도 겨우 무너트릴 확률이 생기는 게 [공허]다.

우리가 상대하는 [공허]라는 것 자체가 가진 본질이 그러하다.

그런 [공허]를 상대로 전력을 다해야 하는 판국에, 힘을 숨긴다라……?

이해는커녕, 분노가 치밀 수밖에.

결국 나는 경고 하나를 던져 줄 수밖에 없었다.

“나헤나.”

“……으응?”

“나와 함께 일을 하려면, 그런 식의 습관은 버려.”

“무얼?”

“힘을 숨기는 거. 내심을 숨기는 거. 다른 짓을 하려고 마음먹는 거.”

“……뭐야, 그게. 나도 의지란 게…….”

“의지를 갖지 말란 게 아냐. 다만 확실히 하자는 거, 뿐이지.”

“아니 그래도 나는…….”

변명해 오는 그녀.

눈에는 억울함이 가득해 보였다.

그래, 그녀로서는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거미를 조종해 주변 몬스터를 처리하도록 했을 뿐이다.

러시아 남부의 안정화를 위해 많은 몬스터를 처리해야 할 지금이다.

그런 상황에 거미를 부리는 거.

득이되면 됐지, 나쁜 일은 아니었다.

억울할 수밖에.

그러나 내게 힘을 숨기고 했다는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꼬집었다.

“나헤나. 내게 같은 편이 되었다는 의미는, 뭐든 숨기는 자와 함께한단 의미가 아냐.”

“그럼 다 드러내야 한다는 거야?”

“가능하다면. 그리고 그게 맞는다면.”

“그럼 너는? 너는 할 거였고?”

내 꼬집음에 그녀는 억울하다는 듯 따져왔다만.

“그래. 러시아 남부를 정리하면서, 계획을 같이 세우기로 했잖아. 그때 당연히 했을 거야.”

“……읏.”

나는 당당하게 답해줄 뿐이었다.

나는 당당했다.

내게 동료가 된다는 의미는 그런 거니까.

처음 이사야를 구했을 때도, 나는 그녀에게 내가 아는 것들을 말하였다.

마리와 유보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진정 동료라 여긴 자들에겐 그게 무엇이든 말해주는 바였다.

나헤나는 그러한 동료가 되겠다 분명히 말했다.

그럼 그에 맞춰 해주길 바랄 뿐이다.

억지 같아 보일 수도 있다.

‘맞지, 억지.’

나란 녀석도 길드원들을 데리고 다니고.

그들을 동료랍시고 말을 하면서도, 모든 걸 말하진 않았으니까.

회귀라는 이점을 갖고 이용만 하고 있을 뿐이니까.

억지가 맞다.

그리 보일 수 있겠지.

그러나 본질은 다르다.

“네가 보기에 너나 나나 같아 보일 수 있겠지. 그러나 하나는 달라.”

“그게 뭔데!”

“너는 네 이득을 위해서 숨길 뿐이지만…… 나는 그 마지막을 위해서 가리고 있을 뿐이야. 네 심상 세계에서 그걸 느끼지 않았어?”

“…….”

그 본질의 차이는 사익을 위한 것이냐, [공허]를 막기 위해서냐의 차이.

그러기에 그녀와 내가 행하는 행동은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달랐다.

나는 그것을 확실히 할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를 확실히 하고자 했다.

“합류? 좋지. 그러나 네가 제대로 동료가 될 거라 생각하면, 마음가짐부터 다시 하고 와.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동업자 정도로 만족하도록 하고.”

“…….”

진짜 제대로 동료가 될지.

혹은 동업자가 될 지를 확실히 하려 했다.

그러기에 그 어떤 때보다 그녀에게 냉정하게 말을 하였고.

나헤나는 무언가 충격이라도 받은 듯, 잠시 멈추어 섰다.

나는 그런 그녀를 따로 챙기지 않았다.

다시 앞으로 나갈 뿐이었다.

더 당당하게 걸었다.

-여가 보기에 너무 몰아붙인 거 같다만.

‘아니. 시간을 더 끌어선 안됐어.’

-흐음…….

되려 염려하는 건, 내가 아닌 마왕이나 주변의 동료들이었다.

마리나 이사야 모두, 나를 바라보는 눈에 걱정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애써 얻은 전력.

나헤나를 내손으로 내치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러나, 나는 확실히 하려고 했을 뿐이다.

자기 힘을 숨기고 다니는 자와는 일을 절대로 같이 하지 못하니까.

과연 그 대답이 어찌될지는 나도 아직 모르겠다.

“…….”

그 뒤로 나헤나는 저 뒤에서 나를 조심스럽게 따라오기만 할 뿐이었으니까.

달리 어떤 말도 하지 않으니, 그 내심을 알기 어려울 수밖에.

어쨌건, 나도 본심은 전했다.

답은 그녀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 답이 오기 전,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