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4화
결국 하나로 합일하는 걸 도와달라는 이야기다.
우선은 거절부터 하는 게 맞았다.
“차라리 처음부터 내 도움을 받아 가지 그랬어?”
“그러기엔 자존심이 상해서 말이죠.”
그런데 처음부터 부르지 않은 이유가 자존심 때문이라니.
이건 좀 실망인데.
“자존심이 밥 먹여 주나……?”
“밥은 먹여 주지 않죠. 그러나 자존하게 하잖아요. 언제까지고 지한휘, 당신의 도움만 받을 순 없지 않겠어요?”
“흐음…….”
“처음, 전 당신에게 잡아먹혔어요. 매혹이 풀렸죠. 그리고 다음, 저는 이곳에서 잡아먹혔어요. 두 번째죠. 이번도 잡아먹지 못하면요? 그건 세 번째 실패를 말하는 거예요.”
세 번이라.
그래, 이리 들으니 이해는 갔다.
그녀는 자존심이라 말했지만, 사실 이건 자존감의 문제였다.
계속된 실패.
그녀는 그 실패의 절망 속에서 무너지기보다는, 스스로 자존하려 시도를 한 거다.
문제는 그 결과다.
결국 실패다.
“잔뜩 떼를 쓴 건 알아요. 그리고 당신이 날 구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 것도 직접 봤구요. 그렇다 해도…….”
“이걸 해내지 못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은 거지?”
“맞아요. 그렇게 고집을 부린 주제에…… 이렇게 부른 게 또 우습지만 말이에요.”
느껴지는 실패의 쓴맛 탓인지, 그녀는 자조하고 있었다.
쯧…….
그제야 그녀의 모습이 왜 그런지를 알 수 있었다.
거미와 슬라임.
그런 여러 가지로 점철된 모습은 그녀가 노력한 결과였다.
혹자는 추악한 발악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소화도 시키지 못할 것들을 두고.
애쓰고, 억지를 부려댔으니까.
결국 흡수도 하지 못하였으니, 그 결과는 실패자의 추악한 모습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겉으론 추악하다 해도 상관없다.
실패해도 괜찮다.
결국 그녀는 자기 자리에서 더 위로 오르고자 노력한 것이지 않은가.
별거 없는 자리에 오른 주제에, 그에 만족하고 발전 없는 것들보다.
되든 안 되든 발악하며 올라서려는 그녀의 모습이 차라리 낫다.
실패하면 또 어떤가.
그조차도 나쁘지 않은 것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집을 부린 건 마음에 안 들어.”
“그러겠죠. 그게 당신의 성격이니까요.”
“그래도…… 이리 발악하는 건 마냥 욕할 수만은 없네. 쯧…….”
나는 이런 부분들에 약했다.
한없이 노력하는 자들.
절망에 부딪히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자들.
갖은 수단을 써서 스스로 노력을 해보고.
그 노력으로도 되지 않으면, 어떤 다른 수단을 찾아서라도 노력하는 자들을 나는 존중하며 존경했다.
어쩌면.
‘나랑 비슷해서 일지도 모르지.’
무너져 내려오는 [공허]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나.
그런 발악을 하는 나와 비슷해서 일지도.
그러기에.
“쓸데없는 고집으로 떼를 쓰는 걸 봐주는 것은 이번만이야.”
“푸흐흐…… 그 말투. 꼭 고집부리는 여자친구를 달래는 말투 같은데요?”
“……시끄러워.”
나는 이번만은 그녀의 고집을 받아주기로 하였다.
저 고집.
저 향상심.
그것으로 그녀가 성장한다면.
그 뒤엔 누구보다 믿을 만한 동료가 될 것이란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쩌면 동정일지도 모르겠다만…….’
그러기에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스르르-
그런 나를 환영하듯, 그녀는 내 발밑에 자리하고 있던 점액들을 슬그머니 치워주었다.
치워진 점액 사이로 드러나 단단한 땅.
이곳은 그녀의 심상 세계니, 이 땅의 단단함은 평소 그녀의 단단함을 보여 주는 것이겠지.
나는 그리 생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 앞에 마주 서게 되었을 때.
화아악-
‘큿…… 고약하다니까.’
강력한 고통 속에서 나는 내 힘을 꺼내 들었다.
[당신은 당신의 근원을 꺼내 들었다.]
나의 근원. 내 영혼.
본래라면 이런 심상 세계에서는 꺼내지 말아야 할 힘.
그녀에게 잡아먹힌다면, 내 근원조차 무너지기에 절대 꺼내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망설임 따윈 없었다.
“꽤 아플 거야.”
“상관없어요. 그 정도는 각오했으니까.”
“그럼…….”
또한,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그녀도 망설임은 전혀 없었으니.
푸우욱-!
나는 그녀의 가슴팍에, 내 근원이 담겨 있는 손을 망설임 없이 집어넣었다.
* * *
‘이러니 안 되는 거지.’
그녀로부터 균열들이 느껴졌다.
미세한 균열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집중하지 않는다면 나조차도 파악하기 힘든 그런 균열들이었다.
이 균열들이 그녀가 원하는 합일을 막아선 거다.
또한.
‘차라리 잘됐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 수단이기도 했다.
이러한 균열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잡아먹혔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이건 그녀를 막는 방해물이며 동시에 보호 수단이었다.
그녀가 완전히 잡아먹혔더라면, 그때는.
‘나를 마주 보고도 나를 몰랐겠지. 이전의 나헤나라고 할 수 없는 존재였을 테니까.’
그녀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을 거다.
그러니 차라리 잘 된 거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나라면. 그녀의 남은 균열들을 채워 줄 수 있을 테니까.
스스스슷-
나는 나의 근원 일부를 떼어 냈다.
강렬하고 거친 고통이 느껴지지만, 능히 참아 냈다.
‘이 정도쯤이야…….’
그리고 떼어 낸 근원 일부를.
망설임 없이, 그녀의 온몸에 거미줄처럼 이어진 균열에다가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녀의 극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 * *
“아아…….”
가장 먼저 그녀에게 흡수된 것은 그녀의 몸 곳곳에 자리하고 있던 점액들이었다.
스스슷-
점액들 전부가 순식간에 흡수되고.
아주 가까이서부터 멀리에까지 있던 점액들도 같이 움직였다.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들어 오는 점액질들은, 본래 그녀의 안에 자리해야만 하는 것처럼 계속해 흘러들어 갔다.
‘많군…… 많아.’
거대한 동굴 하나를 차지하고 있던 점액들이다.
그녀의 심상 세계 규모를 생각하면, 어쩌면 그 이상으로 많은 점액이 있으리라.
그 모든 게 오롯이 그녀에게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후읏.”
그로부터 얻는 바가 있는가.
그녀는 작은 신음을 내뱉으면서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몇 분도 되지 않아, 모든 점액이 사라졌다.
겉으로 보아선 점액이 사라졌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진실을 알았다.
사라진 건 점액들 따위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슬라임의 영혼 일부.
그리고.
‘권능이겠지. 다른 걸 흡수하고 조종할 수 있는 권능.’
변종 슬라임을 왕으로 있게 한 권능이 스며들어 있음을.
나는 아주 잘 알았다.
매혹의 힘을 지닌 그녀다.
그녀에게 타인을 조종할 수 있는 권능이 부여 된다라.
‘소름이 돋는군.’
그거만으로 어마어마한 힘을 획득했다 할 수 있을 터.
그러나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샤아아-
점액질들이 사라지고.
그를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뒤로 나 있는 거미 육체가 변화를 시작했다.
꼬리처럼 붙어 있는 몸체와 다리들의 형태가 변형됐다.
길게 늘어나고 겹쳐지기를 반복했다.
겉은 분명 갑각의 형태일진대.
마치 잘 만들어진 반죽처럼, 움직였다.
저 갑각 안에 새겨져 있는 권능은 바로 집단의 권능.
‘바실락 여왕만이 지니는 권능이지…….’
바실락이라 이름 붙여진 여왕만이 지닐 수 있는 권능이었다.
그 권능이 있기에 바실락은 여왕이었고.
자신의 새끼들을 하나의 집단이 아닌 개인처럼 다룰 수 있었다.
강력한 통제력을 지닌 권능 중 하나였다.
그 권능이 빚어진 게 저 갑각의 힘이요, 존재의 이유였다.
또한 여왕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그릇이기도 했다.
그 그릇을.
“이리로 오렴.”
그녀는 자신에게로 불러들였다.
드드드득-
갑각처럼 두터운 외피들이, 그녀의 말을 따라 흘러들어왔다.
흘러들어온 외피가, 그녀의 온몸을 감쌌다.
마치 갑옷처럼.
뒤이어서.
‘……완전한 합일인가.’
그 두터운 갑옷들은, 마지막 합일을 위한 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 * *
지한휘가 나헤나의 심상 세계 안에서 그녀의 변화를 목도하고 있을 때.
바깥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던 마리.
그녀도 상상치 못한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것은.
사각- 사각- 사각-
다 사라졌을 거라 여겼던, 바실락 새끼와 성체들.
그들의 군세가 다시 일어나 움직이는 장면이었다.
다시 일어난 군세는 오로지 한 방향만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이곳.
마리를 포함한 길드원들과 지슨, 생존자들이 있는 쉘터였다.
저들의 움직임을 눈치챘을 땐, 이미 늦었다 싶을 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마냥 다가오기만 한 게 아니었다.
‘대체 언제 이리 불어난 거지……?’
저들은 수까지 많았다.
분명 전멸을 시켰으리라 여겼었는데.
아니었나.
그 수가 불어도 너무 불어나 있었다.
상황이 좋지 못했다.
차라리 길드원들만 있다면 피신했을 텐데.
그들을 이끌어야 할 지한휘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였다.
‘한휘…….’
생존자들도 문제였다.
이번 사태로 인하여, 대다수가 특수한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만.
이들은 아직 자기 힘을 제대로 다룰 줄 몰랐다.
그런 생존자들에게 전투까지 바라는 거.
무리다.
되려 희생자만 나오게 될 거다.
그렇다면.
남은 건 마리를 포함한 길드원들이 나서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인데.
쓰러진 한휘와 나헤나. 그에 더해 생존자들까지.
안 그래도 힘든 전투가, 저 힘들게 예상될 수밖에 없었다.
불리한 상황이다.
샤샤삭- 샤삭-
-키이이!
-킥!
그런 상황에도 적들은 괘념치 않고 점차 쉘터 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쿠우웅. 쿵.
쉘터 곳곳에서 굉음이 일어난다.
적들을 막기 위해서 세워놓았던 벽들이 무너지는 소리다.
절망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이야. 어려운 싸움이 되겠는걸……? 그렇지 마리?”
“……그러게요.”
“어쩌겠어. 이럴 때 우리가 나서줘야지.”
“그렇죠.”
이러한 절망에 무너지기엔, 여기 있는 자들의 멘털이 누구보다 단단하단 거였다.
샤아아아-!
이사야. 그녀의 사령술이 가장 먼저 빛을 발했다.
드득- 드드득-
모아두었던 시체들이 언데드가 되어 다시 일어났다.
그들은 선봉대가 되었다.
콰아앙-!
적들의 침입을 가장 먼저 막기 위한 방벽이기도 했다.
이사야가 그리 시간을 버는 사이.
“마리, 준비됐습니다!”
“예! 성광의 파도여. 그대들에게 힘의 부여를……!”
마리는 기도 주문을 외웠다.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챙겨 놓았던 짐을 두고 무기를 다시 들고 선 길드원들과 지슨.
그들에게로 마리가 외운 기도의 힘이 부여된다.
육체가 급격하게 강력해진다.
“고맙습니다!”
“갑니다!”
그 대가로, 추후 전투가 끝이 난다면 극렬한 피로감에 휩싸일 터.
하지만 그에 대해 신경 쓰는 자는 여기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달려 나가 막아야 한다고만 생각할 뿐이다.
지한휘가 깨어나기까지는, 버텨야 한다 여겼으니까.
“온다. 와!”
“언데드들 무너진다. 이차 소환될 때까지 충돌 대비해!”
“예!”
그리하여 이들이 전투를 벌이려 하는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악-!
급작스레 환한 빛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