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답은…… 역시 실패지?”
지한휘로선 좋은 표정을 짓기 어려웠다.
이제 곧 떠나갈 참이다.
그 상황에, 마리의 표정도 좋지 못하였으니, 그 결과는 알 만했다.
“반은 실패. 반은 성공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야?”
성공이면 성공이지.
반만 성공은 무슨 말이란 말인가.
‘최악은 아니란 건데. 뭐지. 달라질 게 있나.’
지한휘는 순간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다.
“하나를 얻기까지는 나갈 수 없데요. 그러니 와서 도와 달라고 하더군요.”
“도와? 누가 누구를 어떻게 도와? 마리가 그걸 도와주러 갔었잖아?”
도움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대체 누가 한단 말인가.
“그럼 마리가 아니란 소린데. 마리가 아니면 누가 나헤나를 도울 수 있지?”
“하나 있죠.”
“설마…… 나?”
“예. 저처럼 기도를 드리진 못하더라도 지한휘는 영혼을 다룰 수 있으니까요.”
“아아…….”
누가 도울지 상상도 하지 못하였는데.
그게 자신이라니.
지한휘로서는 일순간 어이가 없었다.
이제 와 자신이 어떻게 도움을 준단 말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나마 도와줄 주체를 알았다는 게 다행이기는 한데.
“제가 도와주게 되면 영력을 이용해서 그녀의 정신에 접촉은 가능해질 거예요.”
“그 뒤는? 그 뒤에 뭘 해달라는 말은 없었어?”
“와서 들어보라고 하더군요. 지금 들으면 당신은 거절할 거 같다구요.”
“하, 씨…….”
역시 뭘 해야 할지는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어쩌랴.
‘보아하니 여기서 안 도와주면 앞으로도 협력은 그른 느낌인데…… 대체 뭐가 문제라고 이러는 건지.’
평상시는 자신이 갑이었겠다만.
나헤나가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고 있어서야, 지금은 나헤나 그녀가 갑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보아하니.
“큼…… 나헤나 님이 도움을 요청한 거라면 들어주시는 것도…….”
“우리는 그분이 나와야 나가는 게 가능할 거 같습니다만은…….”
그녀와 함께 갇혔던 러시아 헌터와 생존자들.
어쩐 일인지 지슨을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헤나를 중요시하기 때문이었다.
저들은 정말로, 그녀가 가지 않으면 이곳을 떠나지 않을 기색이었다.
그간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기야 했다만.
오늘에 와서는 무조건 떠나기로 합의를 보았는데도, 이리 나올 줄이야.
‘겨우겨우 설득해놨더니만 결국 원점이냐.’
지한휘로서는 속이 답답해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냥 답답해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그래도…… 내게 도움 요청이 왔다는 거 자체가 성과가 전혀 없단 이야기는 아니니까.’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진 모른다.
나헤나와 마리가 어떤 대화를 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성과는 성과잖은가.
전이라면 무조건 반대했겠지만, 이번은 적어도 도움 요청은 온 거니까.
그게 뭔지 몰라도 변화는 변화다.
긍정적이긴 하니.
‘쯧…… 우선은 들어 준다. 이 빚은 나중에 톡톡히 받아줘야겠어.’
결국 지한휘가 해줄 답은 정해져 있었다.
“기도를 올려 줘.”
“들어가실 거예요?”
“응. 그래야지. 안 그러면 안 끝날 거 같으니까 말이야. 안에서 때려 패서라도 데려오도록 할게.”
“……지금 한휘 기세로 봐서는, 당장이라도 들어가서 패고 볼 거 같은데요.”
“내가 설마 그러려고……?”
“뭐. 어떤 선택이든 존중하겠어요. 저도 당한 게 있는지라…….”
“푸흐흐. 바로 기도해 줘.”
“예!”
[당신은 동료로부터 대량의 영력을 요청받았다.]
[당신의 동료는 합동 기도 : 영적 영결을 시도하려 한다.]
[동의하겠는가? Y/N]
“당연히 동의하지.”
“성스러운 광휘여. 떨어진 둘을 이으사…….”
곧이어 합동 기도가 시전되었고.
화아아악-!
지한휘의 눈에는 환한 섬광이 보였다.
아득히 눈이 멀 것 같은 빛이었다.
그러나 눈이 멀리는 없었다.
‘영적인 빛인가……!’
그의 눈앞을 화려하게 차지하고 있는 빛은, 영적인 빛이었으니까.
눈이 타버린다거나 할 일은 없었다.
다만, 그 정신이 아득해져 갈 뿐.
“흣…….”
짙은 신음과 함께. 지한휘는 쓰러질 듯 몸을 누였다.
그런 그의 귀로.
“조심하세요. 가서 너무 놀라지 말구요!”
마리의 목소리가 아득하니 들려온다.
‘그런 건 좀 일찍…….’
아쉽게도 답은 할 수 없었다.
그의 영혼이 이미 나헤나에게로 닿아 있었으니까.
* * *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영혼은 나의 육체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괴기하네. 이래서 조심하라 했던 건가.’
그러고 보인 광경.
보기 좋지는 않았다.
안은 동굴이었다.
바닥과 동굴은 점액질로 이뤄져 있었다.
낯선 점액질은 아니었다.
되려 익숙했다.
“대체 이게 왜 여기 있는 거냐. 다 죽여놨는데 말이야.”
바로 얼마 전에 죽인 슬라임의 것이니까.
동굴 안으로 점차 더 들어갈수록, 안은 더 괴기해졌다.
스스스-
곳곳에서 작은 거미의 형상들이 보였고.
그 거미들은 나를 보면 화들짝 놀랐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여덟 개의 발을 놀려 도망치기 바빴으니까.
웃긴 건.
나로부터 도망친 거미들이 들어가는 곳이었다.
쑤욱-
놈들은 슬라임의 점액질 안으로 제 몸을 파고들어 갔다.
스스로.
이해 못 할 일이었다.
‘뭔 역전 세계도 아니고.’
현실서 거미와 슬라임은 적대 관계다.
슬라임은 거미의 갑각 안을 노려 잡아먹고자 하고.
그런 슬라임을 죽이기 위해 거미는 항상 감각을 돋고 있다.
설사 제 몸을 노리지 않아도 거미들은 상관치 않았다.
우선은 슬라임을 보기만 하면 죽이고 보았다.
그게 마치 본능처럼.
그런데 그런 거미들이 안으로 들어간다니.
이해가 가지 않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 참……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냐, 나헤나.”
이곳은 나헤나의 심상 세계.
그런 세계가 이리 역전이 돼 있는 꼴을 이해하는 거 자체가 꽤 많은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이해할 생각도 없을 수밖에.
길은 계속해 이어졌다.
‘너무 동굴이잖아……? 대체 뭘 숨기고 싶어서 이런 심상을 유지하고 있는 거냐.’
철벅. 철벅.
수많은 점액질에 어느덧 발이 적셔질 정도였다.
‘어딜!’
슬금슬금 기어 오는 점액질이 나를 침범하려 하는 행위였다.
파악-
나는 발을 휘둘러, 붙어있는 점액질들을 떼어냈다.
그것들이 닿는 거만으로 상당히 불쾌하였으니까.
‘어서 보여라.’
그런 불쾌감을 유지하는 가운데, 얼마나 걸어갔을까.
어느덧 그 끝이 보여왔다.
그러고 도착한 공동의 끝.
“얼씨구? 이건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드디어 목표로 하였던 나헤나가 보였다.
문제는 그녀 혼자가 아닌, 다른 여러 존재의 조각들이 공중에 둥둥 떠 있다는 거였다.
* * *
‘이래서 형상이 이상하다고 했네.’
마리는 보이지 않는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나헤나를 둘러싸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성력이 있을지라도, 영력은 약하기에 그 관념이 잘 보이진 않는다던가.
다행이다.
보지 않는 게 나은 광경이었으니까.
안으로 들어선 곳에 있는 나헤나.
그녀는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하반신은 거미의 다리가 그녀를 휘감고 있었고.
그 뒤로는 거미의 배 부분이 꼬리처럼 자리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온몸엔 옷을 대신하여 덕지덕지 슬라임의 점액 따위가 들러붙어 있었으니까.
‘으…… 대체 정신 세계에서 왜 저러고 있는 건데.’
내가 특이한 취향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또 모르겠다만.
그쪽(?)은 아닌지라.
감탄하기는커녕, 순간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이미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겠다고 하기엔…….
어딘가 멀리 떨어진 모습이다.
그래.
인정하자.
영적으로 괴물이 된 존재도 많긴 하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버린 자들.
그들을 구하기 위해 들어가 보면, 절망에 무너지거나 스스로를 찢은 존재들도 있다.
그래도 저건…….
“너무 터무니없는데.”
나로서도 보지 못한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한 주제에.
나헤나는 내 목소리를 듣자,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봤다.
“왔어요?”
해맑은 그녀의 목소리.
심상으로 울리는 목소리기에 말이 통하지 않을 리 없다.
그녀의 감정까지도 전해진다.
밝다.
또한 무언가 기대하고 있다.
여태 시간을 끌어 놓고도, 밝고 활기차다니?
어이가 없을 지경.
“뭘 하자는 거냐. 너 때문에 사람들이 다 기다리고 있잖아? 이런 모습을 보여 주려고 날 부른 거면, 그거 실망인데. 코스프레치고는…… 취향이 영 아니라고?”
“푸흐흐. 그게 뭐예요, 대체. 저도 이런 쪽은 취미가 없다고요.”
“그런데 왜 그러고 있는 거야?”
나의 물음에도 그녀는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다.
그 미소 한편이 어딘가 처연하다.
순간 동정심이 느껴지나 싶었는데.
‘음…… 착각은 아니네?’
[당신의 영혼이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흔들린다.]
어째서인지, 내 영혼이 그녀의 미소에 흔들려 버릴 정도다.
이곳은 그녀의 심상 세계.
그 무엇보다 그녀가 주(主)가 되는 건 맞긴 하다만.
고작 미소로 흔들릴 줄이야.
쯧.
쓴 입맛을 다시는데, 그녀의 답이 들려온다.
“글쎄요. 왜일까요?”
“나는 선문답은 영 취미가 없다니까.”
“알죠.”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보다는 바로 목적으로 들어가자고.”
“칫. 이쯤이면, 한번 흔들려 볼 법도 한데 말이에요.”
……망할.
흔들리긴 한다.
영력이 뒤흔들리고 있으니까.
대체 이 안에서 뭘 하고 있기에 내 영력을 뒤흔든단 말인가.
이건 차라리 본체일 때가 더 상대하기 쉬운 기분이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이를 말할 순 없는 일이었다.
거미의 형상을 한 그녀는, 내가 조금만 틈을 보이더라도 날 물어 젖힐 수 있으니까.
설사 내가 그녀를 도우러 왔다 하더라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런 존재니까.
그게 내가 이곳에 들어와서 느낀 본질이다.
“시끄럽고. 어서 나갈 생각으로 이야기나 해 봐.”
“다 먹으려고요.”
“음……? 다 먹는다고?”
“예.”
뒤이어 들려오는 그녀의 설명은 가관이었다.
* * *
나헤나는 합일을 원하고 있었다.
하나는 잊고 있던 존재였다.
바실락 여왕이니까.
슬라임에게 잡아먹혀 완전히 사라졌나 싶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였다.
여왕은 가장 먼저 변종 슬라임에게 잡아 먹히긴 했다.
문제는 그 이후.
슬라임이 소화를 마치기도 전에, 나헤나가 먹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녀는.
“이건 가능성이었어요. 제가 더 강력해질 수 있을, 확실한 가능성이요.”
다른 자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가능성을 찾았다.
바실락 여왕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새끼들과 성체들.
완벽한 중앙집권이나 다름없는 그 체계가 그녀의 구미를 당기게 한 거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 조각이 여기 있었군. 어쩐지 완전하지 않은 느낌이더라니.”
변종 슬라임의 영체 일부였다.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만.
그 일부가 이곳에 있었다.
결국 그녀가 원하는 건 이 던전에서 가장 강한 것들이었다.
무려 여왕과.
그 여왕을 잡아먹은 새로운 변종 왕이었으니까.
그 둘을 흡수하여 일체화하겠답시고, 그녀는 바깥으로 나오지 않은 거다.
이제 와서는.
“혼자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안 도와줄 거예요?”
“내 참…….”
나의 도움을 바라고 있는 것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