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나헤나. 그녀가 깨어나기를 거부한단다.
‘이게 무슨 일이야?’
생에 대한 집착이 강력한 녀석 아니었나. 삶의 욕망에 아주 충실해서, 슬라임에도 비견될 만한 게 나헤나인데.
그런 그녀가 지금 깨어나는 걸 거부한다고?
나는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정말로 거부라고?”
“예. 사실, 나헤나가 가장 많이 슬라임에 노출되긴 했어요. 그런데도 정신은 멀쩡하더군요.”
“그래? 하기사…… 매혹에 관련된 녀석이었으니, 쉽게 미치진 않았겠지. 몬스터화도 더뎠을 거고. 그런데도 안 나온다고?”
“네. 자신은 아직 얻을 게 있다는데요.”
슬라임화 돼서 얻을 게 있나.
슬라임으로부터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게 대체 뭐지?
라는 의문들이 계속해 들었다.
‘뭐냐. 뭐 그릇된 욕망이라도 있는 거냐.’
뭘 얻겠다는 건가.
회귀까지 겪은 나로서도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어이가 없을 지경.
그나마 답답함이 덜 한 이유는 하나였다.
“다시 시도해 볼까요?”
“부탁하지.”
마리 덕분이었다.
그녀가 가진 기도 기술 중엔, 상대의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기도도 있었다.
자신의 정신에 갇힌 자를 치유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도라는데.
내가 보기엔.
‘미친 기술 중 하나지.’
꽤 기이한 기도 기술 중 하나였다.
회귀 전에 마리가 저 기술을 사용하고 나오면.
그 사람은 광신도라도 되는 거처럼 마리만 졸졸 따라다녔으니까.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다만.
한때는 광신도 제조 기술이라고 한참을 놀렸더랬다.
어쨌든.
‘과정은 모르겠어도, 효과 하나는 확실한데.’
자기 정신에 깊숙이 갇힌 자들. 혹은 몬스터의 정신공격으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진 자들을 구하는 특효약이 마리의 기도였다.
‘그래도 몇 번 해보면 되겠지?’
때문에 기대감을 갖고 기다렸는데.
“……또 실패했어요.”
“허…….”
생각보다 나헤나의 반항(?)이 거칠었다.
* * *
남은 환자라 해봐야 나헤나 하나뿐이었다.
약 30여 명 정도의 몬스터화 된 자들.
“캬아아아아!”
“놓아줘!”
그들에 대한 치료는 장기화가 필요하기야 했다만.
당장 치료할 수 없으니 빼고 파악한 수이긴 하다.
저들도 당장이 문제일 뿐이지, 장기적으론 문제가 없었다.
‘어지간해선 치료가 가능할 거라고 말했으니까. 마리 말이니 믿어줘야지.’
무려 마리가 치료를 장담했다.
그녀가 아니면 다른 누가 저들을 치료할까.
그녀의 장담이 있었으니, 나는 안심하고 저들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
그 외에 다른 특이한 자들이 있긴 했다.
몬스터화는 되지 않았는데도, 몬스터의 능력을 일부 전달받은 자들.
“히익……! 팔이 늘어난다고!”
“더 늘었다가는 어딘가의 저작권이 큰일 날 수도……!”
“미친놈아. 개소리 말고, 어서 적응이나 하도록 해!”
슬라임처럼 제 몸을 늘릴 수 있는 자들이 가장 많았다.
“나 피 대신 점액질이 흐르는 거 같은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
“뭐지? 감각이 너무 예민해져서 미칠 거 같다고.”
감각이 변한 자도 있었고.
점액질을 쏘아낼 수 있는 자들도 다수 있었다.
‘……혼란스럽구만.’
이 자들은 그 수가 약 백 명 정도 됐는데, 하나같이 상태가 좋지 못했다.
하기야 죽다가 살아났는데 바로 적응되는 게 이상한 일이긴 했다.
문제는 다른 일곱이다.
지슨을 포함한, 생존자 전체를 이끌었던 헌터들.
슬라임이 모방한 거처럼.
이들은 살아생전에도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분투한 이타적인 자들이다.
즉, 선한 자들이란 건데.
당장 이들이 문제였다.
나헤나만 남은 이 상황에, 그녀는 우선 이동을 시켜서 치료하고.
이들은 그대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면 일이 편해지지 않겠는가.
근데 떠나자는 나의 말에 한사코 반대를 했다.
“지슨. 정말로 안 갈 거냐?”
“가면 안 될 거 같습니다. 왠지 이대로 떠나면 안 될 느낌이에요.”
“그 이유는 여전히 나헤나인 거 같고?”
“예.”
나헤나를 두고 떠날 수 없단다.
또한 나헤나가 여기를 떠나서도 안 된단다.
나가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거라는데.
‘움직여도 문제가 없던 데 말이야. 대체 뭐지.’
슬쩍 그녀를 이동시켜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걸 확인했기에, 나는 저들의 말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후…… 하여간에 제대로 되는 게 없는 거 같단 말이지.’
나헤나는 한사코 정신 안에 갇혀 나오기를 거부해대고.
무슨 이유에선지 이들은 결코 움직이지 않겠다고 하는 상황.
“매혹도 풀린 거 같은데. 왜지…… 떠나도 될 텐데.”
“하하. 모르겠습니다. 매혹이 아니라면, 저절로 반한 걸지도 모르잖습니까?”
“개소리는…… 얼굴 붉히면서 하지 마!”
“하하핫.”
적당히 구슬려 보지만, 능글맞게 빠져나가는 지슨이었다.
씁…….
차라리 저 지슨이나 놈의 일행이 선한 녀석들이 아니면 강제로라도 이동시킬 텐데.
‘나는 저런 녀석들한텐 약하단 말이지.’
죽기 전까지 생존자들을 구하겠다고 노력하던 놈들이다.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생존자들을 구하고자 몸을 날렸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이런 상황에 강제로 이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거.
나랑은 영 안 맞는 이야기였다.
거기다.
‘이런 경우, 이유는 알 수 없어도…… 그 감이 맞는 경우가 많단 말이지.’
저들의 말이 계속 거슬리기도 했다.
이들의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나헤나를 옮겼다가는 나중에 크게 후회할 느낌이었다.
때문에 시간이 금인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에서도 이러고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이긴 했다.
문제는 성과가 없다는 건데.
“후우…….”
“마리. 어떻게 됐어?”
“여전히 거부만 하고 있어요.”
저 안에서 대체 뭘 하자는 건지.
나헤나는 계속해 마리가 접촉을 하고 있음에도, 한사코 나오지 않겠다고 하고 있었다.
“강제로는 안 돼? 어차피 정신을 다 차린 거 같은데.”
“안 돼요. 후유증도 후유증이지만, 이대로 꺼냈다가는 저나 한휘를 크게 원망할 거 같은데요.”
“내 참…… 살려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이건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그러니까요.”
사람을 살리는 데는 고집이 최고로 강한 마리 아닌가.
그런 그녀가 어떻게 설득할지는 뻔히 보였다.
이번도 몇 시간은 설득했을 거다.
그런데도 안 나오다니.
슬슬 답답함이 넘칠 지경이다.
“저 꼴이 뭐가 좋다고…….”
“그러게요…….”
한숨만 푹 나왔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나헤나의 꼴만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액화가 늘고 있었다.
육체가 일부 슬라임처럼 변하고 있다 이 말이다.
매일같이 마리가 치유해 주어도 그 정도는 점차 심해지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원해서 그리되는 거처럼.
대체 뭘 원하는 걸까.
‘저래서 얻을 게 있나?’
-그건 여도 모르겠느니라. 인간이 이런 경우는 처음이니까.
‘으음…….’
여전히 답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계속 시도해 볼 수밖에.
그러나 시간은 무한한 게 아니었으니.
결국 나로서도 제한을 걸 수밖에 없었다.
“삼 일. 딱 삼 일만 더 준다고 그래.”
“……예. 이번은 그리 전달해보도록 할게요.”
“그래. 부탁할게.”
앞으로 단, 삼 일.
그 시간 이상은 나로서도 그녀에게 투자하는 건 무리였다.
재앙의 바람이 불어닥친 근원지인 이곳은 처리하긴 했다만.
이 외에도 처리해야 할 곳들이 꽤 많았으니까.
물론, 나 외에 다른 길드원들이 꽤 많은 애를 써주고 있어 상황이 악화되지 않고는 있다만.
그렇다 해도 길드 최대 전력인 내가 있고 없고는 달랐다.
‘사실, 여기서 이리 시간을 할애 하는 거 자체가 무리인 상태기도 하고 말이지.’
해서 삼 일의 제한 시간을 줬는데.
그 삼 일 중 하루도.
“……맹렬히 거부하고 있어요.”
달라지는 게 없었다.
이틀째에는
“고민은 하는 거 같아요. 무언가에 막힌 거 같은데…… 답을 내리지 못한 거 같더라구요.”
“뭐에 대한 답을 내리자고 하는데?”
“모르겠어요.”
마리조차도 알 수 없는 말을 해왔다.
“들어가면 뭐가 보이긴 해?”
“나헤나 그녀가 있고…… 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요.”
“무언가?”
“예. 저도 잘 보이질 않아서 뭔지 정확히는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흐음…….”
알 수 없는 말을 들었다.
나헤나의 정신 속에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은 상태도 아니고 말이야.
나헤나가 영혼술사도 아닐진대, 그 안에 다른 무언가가 있을 이유가 있었나.
‘슬라임의 영혼도 내가 흡수했는데…… 뭐지?’
그 안에 뭐가 있으려나.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대망의 삼 일째였다.
슬슬 떠나는 걸 생각해 봐야 했다.
짐은 다 싼 지 오래였다.
지슨을 포함한 다른 자들도, 이제 더는 떠나는 걸 반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도 알고 있는 거다.
이대로 시간을 계속해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것을.
가장 아쉬워하던 그 지슨조차도, 알겠다며 짐을 꾸렸을 정도니까. 알 만하지 않은가.
대망의 마지막 날이다.
“마리. 마지막으로 한번 들어가 봐. 오늘은 무조건 데리고 떠날 거라고 하고.”
“……예.”
사람 살리는 일엔 항상 생글거리던 마리도, 오늘만큼은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해 보였다.
이대로 두면 반은 실패가 돼서 그럴 것이었다.
“다녀올게요.”
“그래. 기다리지.”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는.
나헤나의 정신으로 진입하기 위한 기도를 올렸다.
얼마 가지 않아, 거대한 신성력이 그녀의 온몸을 감쌌고.
“으음…….”
마리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그 자세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내 눈엔 아주 또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영혼.
그녀의 영혼 일부가 나헤나의 정신 일부와 겹쳐지는 게 보였다.
‘아무리 봐도 정신 교감이라기보다는 영혼 교감에 가까운 행위란 말이지. 성좌니까 영혼을 다룰 수 있는 기도를 부릴 수 있는 건가. 아니면…….’
나는 그런 마리의 기도를 보면서, 턱을 괴고 한참을 생각하고 있었다.
기도가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
또 그런 기도를 성좌는 어떻게 쓰게 하는지에 대한 쓸데없는 고찰이었다.
당장, 이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없기에 하고 있는 소일거리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을까.
세 시간쯤 됐나.
“슬슬 떠나야 합니다. 길드장님. 밤이 되면 쓸데없이 몬스터들이 들러붙으니까요.”
“잠시만, 기다려봐. 슬슬 마리도 깨어날 거 같으니까. 준비는 마저 점검하도록 하고.”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길드원 중 하나가 재촉하는 가운데,
마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나헤나의 정신으로 다이브(dive) 했던 그녀의 영혼이 다시 돌아오는 게 내 눈엔 보였다.
“으음…….”
다시 눈을 뜬 마리.
전처럼.
그녀는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또렷한 눈빛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 뒤 그녀가 하는 말에, 나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