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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재앙급 플레이어가 빌런을 다 죽임-160화 (160/206)

제160화

이 공동 안에서 표정이 가장 어두워야 했을 마리였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과거에도, 그녀는 언제나 이런 참사를 보면 슬퍼하였으니까.

그녀가 지닌 속성이 그러했다.

슬픈 일이 있으면, 언제고 슬퍼하고.

조금이라도 기쁠 일이 있으면, 그를 찾아 기뻐하는 게 그녀였다.

덕분이랄까.

비참해지는 종말의 와중에서도, 꽤 많은 동료가 그녀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지킬 수 있었다.

비록 마모되고 조각조각 나 버려서, 흔적 정도밖에 남지 않은 감정들이었다만.

그러한 감정이라도 종말 직전까지 보존할 수 있었던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 상황에 어둡지 않은 표정으로 부른다라.

‘뭐지?’

나는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떠다니는 영혼들을 흡수하기를 그만하고, 곧바로 그녀의 부름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이거 봐요.”

“……시체잖아?”

그녀는 내가 오자마자 손가락으로 시체들을 가리켰다.

희생자들이었다.

그들 중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나헤나, 지슨, 그의 동료들. 생존자.

바로 얼마 전까지, 대화를 하고 움직였던 자들. 아니 정확히는 이들은 갇혀 있고, 이들의 행태를 따라 움직이는 걸 봤었다 해야 할까.

그를 생각하니, 보는 것만으로 입이 썼다.

하지만 마리는 아니었다.

그녀는 짐짓 나를 혼내는 듯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서는 내게 말했다.

“한휘. 가끔은 이런 기적도 일어나는 법이라고요. 잘 봐 봐요.”

“음……?”

“외면하지 말고요. 어서요.”

뭘까.

그녀의 말에 나는 다시금 시체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거? 내가 생각하는 게 맞아?”

“예.”

모두가 죽었다고 여겼는데.

‘……숨을 쉰다고?’

꽤 많은 자들이 살아 있었다.

* * *

인생은 공평하지 않은 법이었다.

생존엔 강한 자가 유리하고, 약한 자는 작은 문제만 발생해도 위기가 들이닥치는 게 진리 아니던가.

지금도 딱 그런 꼴이었다.

돌연변이 슬라임에게 잡아 먹혔을 대다수의 사람은 사라졌다.

추정되기로 이 도시의 수많은 사람이 잡아 먹혔는데, 그중에서 남은 사체들의 흔적은 채 천도 되지 못한다.

실제 내가 본 자들의 수도 딱 그 정도였다.

‘쉘터에서 생존자 행세를 하던 녀석들의 수가 천이 안 됐었으니까 말이지.’

직접 확인해 보진 않았다만.

여기 있는 자들의 수와 쉘터에서 내가 마주쳤던 자들의 수는 정확히 일치할 거였다.

웃긴 건, 이자들이 왜 아직 안 죽었냐 이건데.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만,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린 거 같아요. 그리고 일부러 소화를 안 시킨 거 같기도 하고요.”

“일부러?”

“예. 일부러요.”

“무슨 이유로?”

그 이유를 마리는 조심스레 추측해 왔다.

“음…… 추측해 보기로는, 행태를 복사하기 위해서 아닐까요. 왜, 전에 있잖아요. 도플갱어의 왕. 기억나죠?”

“아아…… 그 빌어먹을 녀석…… 기억하고 있지.”

도플갱어의 왕.

이 변종 슬라임처럼. 재앙의 와중에 태어났던 존재다.

본래 도플갱어는 한 존재를 겨우 복사하는 게 다인 존재다.

그나마도, 복사한 존재의 능력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는 것들이 대다수다.

즉 100의 힘을 지닌 자를 복사해도 잘해야 80 정도 복사한달까.

때문에 도플갱어는 생각보다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 중 하나였다.

‘혐오스러운 것만 제외하면, 죽이기도 쉬우니까.’

자기 자신과 똑 닮은 걸 죽여야 한다는 그 혐오스러움. 그것만 빼면 어떻게든 죽일 수 있었다.

때문에 꽤 많은 헌터가 도플갱어 던전 탐험을 반복했다.

상대하기가 쉬우니까.

그 수확물이 별로긴 해도, 안정성 하나만큼은 뛰어나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 도플갱어 중 변종이 있었다.

그게 왕이다.

놈은 복사물이 지닌 바 능력 이상을 복사할 수 있는 존재였다.

또한 하나를 복사함으로 끝이 나야 하는데, 여럿을 복사할 수 있기까지 했다.

상상해 보라.

자신보다 더 강력해진 자신이.

동료들의 능력마저 흡수해서 다가오는 그 상황을.

쉽게 이겨낼 수도 없는 존재였다.

그런 강력한 존재인 주제, 놈은 수작까지 부렸다.

‘최악이었지.’

복사한 자의 인격을 바탕으로 동료인 척을 하거나. 던전에서 겨우 살아남은 생존자인 척을 했다.

그러고서 꽤 많은 희생자를 내었고.

이내 초월하듯 더욱 강력해지더니, 제 자손을 뿌려댔다.

그 자손들.

왕의 특성을 똑 닮아 있었다.

더 많은 자를 복사하고, 닮아갔다. 놈들이 도시에 들어왔을 땐, 그 도시를 폐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을 정도다.

그런 도플갱어들의 약점이 있다면 하나.

복사하는 자를 소화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거.

원본이 금방 죽어 버리면, 그 도플갱어도 죽어 버린다는 거다.

놈들도 행태를 복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그때는 그 시간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놈들을 토벌하는 데 성공을 했었다.

‘그때도 골이 꽤나 아팠는데 말이야.’

어쨌거나.

그때를 생각해본다고 한다면, 이해가 간다.

어려울 거 없다.

이 빌어먹을 정도로 추악한 슬라임이 왜 사람들을 살려놨는지가, 이해가 간다 이 소리다.

“더 많은 미끼를 끌어오기 위해서 소화를 더디게 했다 이건가.”

“바로 그거에요. 일부러 살려둔 거도 있는 거죠.”

더 많은 희생자.

더 많은 자를 이끌기 위한 미끼다.

그러한 미끼는 꽤 그럴싸해야 하는 법.

한낱 물고기를 낚는 데도, 괜찮은 루어가 필요한 법이지 않은가.

때문에 녀석이 한 게 희생자들을 이용한 행태 복사다.

인간이 아닌 몬스터가 인간 행태를 복사하는 게 쉬울 리는 없으니, 희생자를 우선 살려둔 것이고.

덕분에 살아 있기는 한데.

“그렇다 해도…… 다들 정상이 아니긴 해.”

“맞아요. 뇌가 망가진 자들도 다수고. 신체가 사라진 자들도 꽤 많죠.”

기본이 뇌사 상태다.

차라리 신체 일부가 사라진 건 양반으로 보일 정도다.

그러나.

나는 이쯤 상황을 파악하니, 마리와 같이 웃을 수 있었다.

“그럼 됐네.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거니까.”

“예. 약간의 후유증쯤…… 죽는 거보다는 나으니까요. 후후.”

눈앞에서 같이 웃어 주는 마리.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그녀가 있었으니까.

시간과 재료만 충분하다면 그녀는 그게 누가 됐든 살릴 수 있다.

“그럼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

“한휘의 많은 영력. 그리고 그간 사냥한 것들의 칠 할 정도요.”

“휘유. 많네.”

그리고 그 많은 자를 살릴 수만 있다면.

“이제 와서 아낄 거예요?”

“그럴 리가 있나. 바로 살려 보자고.”

그 대가가 무엇이든 나는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 * *

회복을 시키는 덴 실력이 약하고 강하고가 없었다.

누가 더 위급하냐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당장 위급한 자들부터 한데 모았다.

신체 일부가 소실되고, 피를 흘리는 자들. 이전엔 슬라임이 지닌 점막에 의해서 출혈이 막아졌지만, 지금은 가장 위급한 자들이 되었다.

“여기부터 필요해요.”

“알았어.”

[당신은 동료 : 마리로부터 합동 기도 : 치유의 파도를 제안받았다.]

[동의하겠는가? y/n]

그런 이들을 위해 당장 필요한 건 외상의 치유.

“당연하다.”

“고마워요!”

[당신은 합동 기도를 위하여 대량의 영력을 소모하고 있다.]

[당신의 동료 : 마리가 합동 기도 : 치유의 파도를 사용한다.]

“신의 이름 아래에서 죽는 자는…….”

그녀만의 기도문이 길게 이어지고.

얼마 가지 않아 거대한 파도가 주변을 덮친다.

치유의 파동이었다.

파도처럼 번져나가는 치유의 기운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샤아아-

파도가 스침에, 출혈이 멎는다.

출혈이 멎고 남은 신체 부위 위로 새 살들이 돋아난다.

그 아래에선 핏줄과 근육, 뼈 등이 생성되어간다.

빠르고 강력한 회복!

그 대가로 나로선 상당한 영력이 소모되고.

이를 주도해야 할 마리는 어느새 몸을 부르르 떨어대며 겨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나나 마리나 둘 모두 고통스러운 상태였다.

신의 육체를 지닌 현재라 하더라도, 영력을 사용하는 거 자체는 언제나 고통을 동반하니까. 견딜 만하다 뿐이지, 고통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마리도 마찬가지다.

막강하다 할 수 있는 신성력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기도를 사용할 수 있는 마리.

그런 그녀도 기도엔 대가가 있었다.

‘기도라고 해서 공짜는 아니니까…….’

그것은 치유받는 자들의 고통 일부를 그녀가 겪는 것.

무지막지하게 닥치는 그 모든 고통을 겪어내야만, 그녀는 상대를 치유할 수 있었다.

이건 사실 말도 안 되는 페널티다.

다른 자들을 치유하겠다고, 저 자신이 고통을 느끼는 거.

이게 말이 되는 소리란 말인가.

다른 자가 팔이 떨어져 나가든 말든, 제 손에 박힌 가시 하나에 더 고통스러워하는 게 사람의 본질이지 않은가.

타인의 고통보다 자신이 겪은 고통이 더 큰 건 너무도 당연하기에.

여기서 마리가 치유를 멈춘다고 하더라도 욕하는 자는 없을 터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흐읏…….”

그 거대한 고통을 감내하며, 치유의 파도를 계속해 유지해 나갔다.

그녀는 멈출 생각도, 이유도 없어 보였다.

그저 계속해 견뎌내고, 감내하며 치유를 시도해 나갈 뿐이었다.

이는 나로서도 상상치 못한 행위였다.

타인을 위한 희생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니까.

하물며 그것을 계속해 행해야만 하는 그녀의 역할을 생각해 보면.

펑펑 힘이나 써대는 나란 존재 따위보다는, 그녀가 더 추앙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저 유럽의 성녀 성자 행세를 해대는 쓰레기들보다도.

바로 눈앞에 있는 마리 하나만이 진짜 성녀라고 칭하는 이유기도 했다.

‘대단한 녀석이야…… 하긴 저런 녀석이니 그 빌어먹을 성좌가 그리 편애를 하는 걸지도.’

새삼 그녀가 왜 성좌에게 사랑받는지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마리의 저러한 부분들이 있었기에, 꽤 많은 자들이 그녀를 보며 감정이 마모되지 않고 버텨낸 것도 있었다.

나만 하더라도 그녀가 없었으면 마모되다 못해, 감정 자체가 없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왜 녀석을 추앙하는 신도들이 많았는지 알 수 있지…….’

그녀를 따르는 자들이 많았던 이유도 알 만하다.

종말 속에서, 믿을 만한 가치를 지닌 몇 안 되는 존재였으니까.

그녀를 두고 거의 신처럼 모시는 자들이 꽤 있었다.

최소 성녀였다.

그녀는 그런 추앙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그 영광을 자신을 총애하는 성좌에게로 돌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녀가 보내는 그 힘을 성좌는 그녀에게로 되돌려보냈다는 거다.

‘대체 왜 그랬으려나.’

대다수의 성좌는, 신도들이 보내는 힘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걸 생각해 보면, 이는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 성좌와 신도가 힘을 주고받는 건 일종의 거래였다.

서로 간 대가를 지불하고 힘을 주고받는 거니까.

그런데도 그걸 한사코 거부했으니, 이상하다고 여길 수밖에.

종말 전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만.

‘이번에는 알 수 있으려나.’

왠지 이번은 알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고통을 감내하는 그녀의 기도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당신은 협동 기도 : 치유의 파도를 성공적으로 완수해냈다.]

결국 그녀는, 고통스러운 기도를 끝마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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