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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재앙급 플레이어가 빌런을 다 죽임-159화 (159/206)

제159화

나는 꿈틀거리고 있는 거대한 슬라임에게로 다가갔다.

제 몸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는 슬라임.

녀석은 내가 다가옴에도 몸을 움츠러트리며 꿀렁거리기만 할 뿐이다.

그 거대한 크기에 어울리는 위세는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도망치기 시작하는 협잡꾼처럼 조금씩 뒤로 물러날 뿐이었다.

머저리 같으니라고.

제 욕망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고, 그런 상태로 사람들을 꿀꺽대며 잡아먹은 꼬락서니가 얼마나 추한가.

“X신 자식.”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 꿈틀거림은 커진다.

갈수록 같잖은 반응만 커질 뿐이었다.

쒜에엑-!

놈은 그 거대한 몸에서 줄기들을 뽑아내었다.

촉수였다.

이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나 보고 흥분할 법한 그런 촉수.

놈은 수십여 개의 촉수를 내게 쏘아 보냈다.

순간적으로 거세게 쏘아지는 촉수.

촤아악-!

나는 그것들을 보는 족족 낫으로 베어 버렸다.

베어진 촉수는 바닥에서 꿈틀거린다.

비가 온 지 한참 지난 마른 땅 위에서 꿈틀대는 지렁이처럼.

그 끝이 결국 죽음이라는 걸 모르는 채, 죽을 때까지 젖은 땅을 찾아서 움직여대는 그 빈약한 움직임이란.

결국 영양공급을 받지 못한 촉수들은 금세 쪼그라들어갔다.

인간의 몸만 한 것들이 순식간에 팔뚝만 한 크기로 쪼그라드는 그 생소한 광경이란.

부르르르-

그렇게 사라져가는 슬라임의 작은 조각들.

그 조각들마저 아깝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어대는 거대한 슬라임의 모습이란.

보면 볼수록 웃기는 광경이다.

비웃음밖에 터지지 않는달까.

동시에 이런 녀석 따위를 뒤늦게 눈치챈 나에게도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런 녀석이 잘도 사람들을 잡아 먹었다라…….”

조금만 더 일찍 알아냈더라면…….

그럼 죽어가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살려낼 수 있지 않았을까.

보아하니 이 슬라임은 생전의 행동을 모방하는 능력을 얻은 거 같은데.

그렇다면 여기 대피소를 지키던 지슨.

그의 동료들.

그리고 내 말을 따라주던 나헤나.

그런 귀한 자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단, 한 명이라도 살렸더라면 우리는 [공허]라는 멸망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멀어질 수 있었을 텐데.

‘X발…….’

전생에는 보이지 않던, 재앙의 바람이 불어닥치더니, 이런 걸 잉태해 버릴 줄이야.

나로서도 절대 예상치 못한 일.

더더군다나 나는 신이 아니니 모든 걸 전지(全知)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해내는 전능(全能)함을 갖추지 못하는 게 너무도 당연할진대.

그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분하네.”

-네 탓이 아니니라.

“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한 것에 화가 났다.

열불이 터져 나오는 듯했고,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내 몸과 정신을 삼킬 듯이, 분노가 나를 거칠게 휩싸는 듯했다.

고작해야 꿈틀대는 거밖에 못 하는 슬라임 따위에게 사람들이 잡아 먹히고.

그걸 나는 구해 내지 못한 현실에 화가 났다.

또한 그런 상황에서.

‘……잘도 계산적으로 행동하고 있단 말이지.’

이 사람들이 죽어서 나타나는 이해득실이나 따지고 있는 나.

그런 내게 혐오감이 물씬 피어올랐다.

안다.

지금 내가 이리 화내는 것조차도, 결국은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합리화를 하는 작업인 것을.

이번에도 사람을 구해내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재앙이 괜히 재앙이겠어.

다음을 잘하면 되는 거겠지.

어쨌거나.

무슨 수단을 쓰든 간에 그 빌어먹을 [공허]만 막으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그런 나약한 합리화나 해대면서, 또 다음을 위해서 버틸 나 자신에 신물이 다 차오르는 듯했다.

동시에 그런 합리화를 알면서도 하고,

또 하면서 나아갈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당신은 대량의 영력을 사용하였다.]

[위험.]

[당신은 자신이 지닌 영혼의 근원을 꺼내 들었다.]

[장시간 영혼의 근원을 사용할 경우, 당신의 근원 자체가 마모될 수 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음에도.

나는 근원을 꺼내 들었다.

그저 조금의 영력만 사용해도, 저 슬라임을 파괴하기에는 충분한 힘일 진데도.

나는 힘을 아끼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온몸 가득 느껴지는 쓰디쓴 부정적 감정에 따라 힘을 실었다.

불안, 초조, 짜증, 분노, 비참함…….

그런 감정들을 잔뜩 내 양손에 쥔 낫에 실었다.

그 거대한 감정들이 시발점이 되었다.

하데스의 사슬낫이 기다렸다는 듯 크게 부풀어 올랐다.

오러 따위가 아니다.

말 그대로 사슬낫이 그 크기를 키웠다.

동시에 낫이 지니고 있던 특유의 존재감도 같이 커졌다.

하…… 이게 진짜 사용법이었냐.

이제 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는 거도 웃기잖아.

뭐, 상관없나.

나는 그리 생각하며.

후우우웅-!

거대해진 사슬낫을 그대로 휘둘렀다.

거대하고 비대하며, 동시에 비루하게 제 탐욕에 잡아먹힌 슬라임을 향해서.

* * *

촤아아아아악-!

거대한 슬라임이 그 크기에 걸맞은 낫에 의해서 찢겨 나간다. 한점 자비 없이 그 살을 뭉개고 찢어나가는 사슬낫이었다.

-크헤에에엑!

그제야 슬라임으로부터 짙은 비명이 피어올랐다.

고통스러운 것이겠지.

내 손에 쥐어진 건, 괜히 ‘죽음을 부르는 사신의 낫’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만들어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 위력이 충분하기에 붙여진 이름.

신기이기 이전에 이명이 붙은 무기로서, 보이는 낫의 위력은 분명 대단했다.

찢고, 또 찢어 내고.

뭉개면서 흐트러트리고.

다시 뭉치고자 하는 슬라임의 단면. 그 안에 맺혀져 있는 생명력 그 자체를 태워 버렸다.

그럼에도 하나 남기고자 하는 게 있었다면.

‘……묻어는 줘야지.’

저 거대한 슬라임의 탐욕에 의해 잡아 먹혀버린 사람들.

그들의 사체는 아무리 나라 해도 가를 수가 없었다.

이제 와 쓸데없는 가식이며, 연민이라 해도 할 말은 없다만.

어쩌겠나.

이런 상황에서도 감상적으로 욕심 어린 변덕을 부리곤 하는 게 나인 것을.

그런 내 의지를 읽어 들인 건지.

콰즈즈즉- 콰즉-

거대한 낫은 슬라임의 육체를 찢어발기면서도, 그 안에 담겨 있는 사람들의 사체는 그대로 살려놓는 신기를 부려댔다.

죽이고자 하는 것만 죽이는 신기라.

대단하지 않은가.

과연.

하데스의 신기라 칭하기에 어울리는 모습이자 힘이었다.

후두두두둑-

그렇게 거대한 슬라임을 얼마나 찢어댔을까.

[당신은 적성 개체 : 돌연변이 바실락 슬라임의 영혼을 발견했다.]

저 비대해진 슬라임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고.

바로 뒤를 이어서.

[당신은 악마 : 이툰의 영혼 조각을 발견했다.]

[당신은 악마 : 헤르트의 영혼 조각을…….]

[당신은 악마 : 발사르의 영혼 조각을…….]

.

.

저 거대한 슬라임을 빚어지게 만든 원흉!

그 원인이 되는 재앙의 바람을 일으키는 데 한 손을 보탠 악마들의 영혼 조각도 같이 발견할 수 있었다.

-이툰, 헤르트, 발사르…… 하나같이 대단한 녀석들의 것이구나.

‘알아? 발사르는 특히 모르겠는데.’

-인세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강력한 녀석들이다. 주로 뒤에서 협잡질하는 녀석들이긴 하지. 직접 손을 쓰기보다는 재앙의 바람 같은 걸 일으키며, 오염을 만드는 걸 즐기는 녀석들이다.

‘악취미로군.’

-그러니 악마인 것이니라. 우리 고매한 마족과는…….

‘그만. 우선은 이해했으니까, 마족 미화까지는 가지 말자고.’

-……쳇.

나는 그들의 이름 하나, 하나를 뇌에 새기듯 기억했다.

결코 잊지 않기 위해서다.

언제고 마주한다면, 그 누구보다 처절하게 부숴 버려야 하니까.

단지, 그뿐이다.

후두두둑-

그렇게 얼마나 베고, 또 베었을까.

거대한 슬라임의 육체는 쪼그라들어간 지 오래였다.

슬라임의 마지막이 들이닥쳤는지.

이내, 기다리던 울림이 울린다.

[당신은 적성 개체의 영혼 : 거대한 바실락 슬라임을 흡수할 수 있다.]

그것은 영혼을 흡수할 수 있다는 거.

돌연변이의 영혼이라.

그 영혼의 쓸모는 이루 말할 게 없다.

가진 권능도 강력한 녀석이었다.

그 녀석의 영혼을 흡수한다면, 아마 내가 지닌 근원 포식도 한 단계 더 나아가지 않을까.

‘당연히 흡수해야지.’

나는 이것을 바로 잡아먹으려 들었다.

그 전에 울려오는 울림이 있기 전까지는.

뒤이어 울리는 울림은 체계가 아닌, 내 손에 쥐어진 사슬낫으로부터의 울림이었다.

[하데스의 사슬낫이 적성 개체의 영혼을 원한다.]

[들어주겠는가?]

그 울림이 의미하는 바.

그것은 뻔하였다.

“흠…….”

안에 사로잡힌 영혼을 사역할 수 있는 사슬낫이다.

그러기에 놈도 원하는 거다.

먹음직스러운, 바실락 슬라임의 영혼을.

기이한 일은 아니었다.

이전에 삼킨 악마 볼튼의 영혼도 그러하듯이. 사슬낫은 쓸 만한 영혼은 제품에 놓고 사역하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이를 내가 허락하느냐는 것이다.

쓸 만한 영혼은 사슬낫이 아닌 내게도 분명히 유용한 것이니까.

본래라면 내어주지 않겠지만.

‘……뭐, 상관없나?’

이번은 예외였다.

어차피 배가 불러왔다.

이 안에 담긴 희생자들의 영혼은 삼키지 않았다만.

인간 외에도 여왕과 수많은 바실락 새끼를 잡아먹은 슬라임이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영혼을 나는 이미 수없이 집어삼킨 지 오래였다.

덕분인지.

꽤 많은 영혼을 집어삼켜, 영력을 키운 나로서도 오랜만에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그런 한편으로, 희생자들의 영혼은 보면 볼수록 한숨만 비어져 나와서 문제다만…….

어쨌거나.

딱히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는 상황이란 의미.

“허락할게.”

!!!

나는 곧바로 허락했고, 그에 반응하듯 사슬낫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도망치려는 슬라임 영혼으로 기세등등하게 달려 나갔다.

그러고는.

꿀꺽.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삼키는 소리가 났고.

[당신의 손에 쥐어진 하데스의 사슬낫이 돌연변이 슬라임의 영혼을 집어삼켰다!]

뒤이어, 사슬낫은 슬라임 영혼을 잡아먹었다.

‘묵직해진 거 같은데……?’

그 뒤 손에 쥐어진 사슬낫의 무게가 조금 더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영혼을 삼켰는데, 무게감이 느껴지다니.

우스운 일이었다.

‘계속 집어삼키다가는 들지도 못하는 거 아닌가? 쓰지도 못하는 무기가 되는 거라니, 그럼 우시는데…….’

자제해야 하나.

생각을 슬쩍 할 무렵.

부르르-

그게 아니라는 듯, 사슬낫은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그 울림이 내 손에까지 이어졌다.

가리지 말고 영혼을 주라는 의미겠지.

나는 그걸 알아차리곤, 놈을 달래듯 쓸어주며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

그제야 사슬낫은 다시 잠잠해졌고.

스스슷-

뒤이어,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크게 키웠던 몸을 줄여갔다.

물리 법칙을 무시하듯 거대해졌던 사슬낫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엔 단 몇 초면 충분했다.

그러한 사슬낫이 사라지고 남은 광경은.

“후…….”

결코 좋지 못한 광경이었다.

슬라임이 흡수하고 남은 희생자들. 그들의 사체가 널려있는 광경은 퍽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왜일까?

“한휘! 여기로 와 보세요!”

얼마 안 가, 뒤이어 나를 부르는 마리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은 상태였다.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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