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그에 기생하는 녀석을 잡아내야 했어.”
“기생이요?”
“그래. 바실락 둥지. 처음 설명했을 때, 기억하지?”
“음…… 바실락의 새끼들을 상대해야 했고. 최종 보스는 여왕. 그리고 초기에 가게 되면…… 아, 설마 그겁니까?”
“그래. 던전이라고 해서 한 가지 몬스터만 나오진 않잖아. 특수한 던전들을 제외하곤, 일종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편이니까 말이야.”
“……이해했습니다.”
던전은 하나의 작은 세계와 같다.
조각조각 나 버린 세계이긴 하다만.
그 작은 세계에도 포식자와 피식자가 있다.
당장, 내가 처음 다녀왔던 쥐쟁이 던전만 해도 그렇잖은가.
놈들은 던전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외곽에 있는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곤 했다.
그 작은 동물들이 어디서 나오는지까지는 나도 모르니 일단 넘어가고.
어쨌거나.
꽤 많은 던전이 그러한 식으로 돌아가곤 한다.
일종의 작은 생태계가 있는 거다.
바실락이 출현하는 둥지도 마찬가지다.
여러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곤 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은 꼭 있다.
첫째는 최종 보스는 여왕 바실락이라는 거.
보통 그 아래로 성체가 아닌 새끼들이 등장한다는 거다.
둘째는 그러한 바실락들이 잡아먹는 먹이다.
바실락 둥지를 가게 되면 꼭 나오는 게 있다.
이름도 제대로 지어져 있지 않은 존재들.
슬라임이다.
바실락 둥지에서 나오는 이 슬라임들은 기본적으로 바실락 새끼의 몸에 기생한다.
새끼들 몸 사이의 관절을 파고들어 가서는, 그 안에서부터 녹여 먹는 게 놈들의 특기였다.
이렇게 보면 이 슬라임이 포식자로 보인다만.
‘실제는 아니지.’
아니다.
대다수의 슬라임은 바실락 새끼에 기생하기도 전에 잡아 먹힌다.
사실 그러잖는가.
뛰어난 감각을 지닌 게 몬스터다.
바실락처럼 곤충형인 몬스터의 감각은 일반적인 몬스터보다 더 뛰어나다.
그런 바실락 새끼들이 제 몸에 슬라임이 스며드는 걸 가만히 두고 보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족족 죽여 버린다.
그러고 남은 액체.
즉, 슬라임의 사체를 바실락 새끼들이 쪽쪽 빨아먹는다.
그럼으로써 그것을 양분 삼아 성장하는 게 바실락 둥지의 기본 생태계였다.
때문에 이런 바실락 둥지를 오래 두면, 꽤 많은 성체가 출현하곤 했다. 슬라임을 잡아먹어서 성장해 버리는 거다.
여하튼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게 바실락의 생태계인데.
나는 이 부분을 나도 모르게 간과해버렸다.
‘슬라임 따위는 금방 죽어버린 줄 알았지.’
재앙의 바람이 불어닥치며, 생태계가 망가졌을 거라 여겼다.
슬라임은 전부 죽어 버렸고.
그 대신, 이 위성 도시에 있는 사람들을 제물로다가 바실락 여왕과 새끼들이 성장을 추구했노라 여겼다.
그러다 성체가 된 걸 보고 생각했다.
우리가 바실락 새끼들을 보이는 족족 죽이고 있으니.
이에 따라 위기감을 느낀 바실락 새끼들이 성체화 되기 위하여 변태를 시도한 거라고.
한데 아니었다.
처음부터 잘 생각해야 했다.
“놈들은 처음부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을 거야. 꼭 우리가 아니더라도 성체가 되려고 했을걸?”
“고작 슬라임 때문에 그랬을까요?”
“어. 아무래도, 재앙의 바람이 불어닥치면서 생태계 역전이 일어난 거 같거든.”
“역전이라면…….”
“슬라임이 바실락을 잡아먹게 된 거겠지.”
“……으음.”
재앙이란 건 그런 거다.
재앙의 바람이 불어닥치며 힘을 불어넣은 거.
그건 바실락이 아니라, 바실락 슬라임일 게 분명하다.
그럼으로써 힘을 역전시켰을 거다.
슬라임이 잡아 먹히고, 거미는 성세를 이뤄야 하는 그 구조를 재앙의 바람이 뒤바꾸었을 거라 이 말이다.
이상하다고?
원래 이상한 일들을 일어나게 하는 것이 재앙 아닌가.
예상도 못 한 일들이 일어나고는 하니, 그에 대응하기 힘든 것이기도 하고.
이번에도 그런 게 분명하다.
슬라임이 거미를 잡아먹었다.
그것이 거미들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했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단체 변태를 일으켰을 게 분명하다.
어쩌면 우리가 기폭제가 됐을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슬라임 때문에 위기를 느낀 바실락들인데, 이 안에 들어와 족족 바실락을 사냥해댔잖나.
위기를 느끼는 게 당연하다.
때문에 변태가 더욱 빨라졌을지도.
‘바실락도 생명이니, 살고 싶었을 테니까. 살려면 강해져야 하고 말이지.’
어쨌건.
그러한 식으로 성장해 버린 바실락들이 노리려고 한 것이 무엇이냐.
“당장 믿기지 않아도 좋아. 어차피 증거는 곧 보일 거 같으니까.”
“곧 보인다고요?”
“어.”
바실락이 노렸을 그것들은 멀리 있지 않았다.
두근- 두근-
저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생동감 넘치는 거대한 생명력!
나헤나와 생존자들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거대한 존재.
바실락들은 그것을 노렸을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곧 보일 참이었다.
아까부터 저 거대한 생명력을 따라서 움직이고 있던 참이니까.
길을 잃을 수도 없었다.
이 쉘터에 있는 인간인 척을 하던 모든 존재를 죽이고 난 뒤.
그 뒤에 남은 시체들이 액체가 되어 향하는 곳에는, 맥동하는 생명력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이번 던전 브레이크를 통해 만들어진 가장 거대한 존재.
어쩌면 가장 큰 수혜를 받았을 그 존재를 향한 걸음이 점차 빨라져 갔다.
“아…….”
“……대체 이건.”
그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팀원들에게도 놀람이 번졌다.
그들도 느끼는 거다.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거대한 생명력을!
얼마나 더 걸어 들어갔을까.
‘점차 아래로 내려가는군.’
때로는 막힌 벽을 억지로 뜯어내고.
사람이 가기에 너무도 좁은 곳들은 넓혀가며 전진해나갔다.
그러고 드러난 거대한 공동.
그 안에는.
“……이게 진짜였군요.”
“그렇지.”
변태했을 바실락 여왕. 새끼.
그러한 존재들 따위가 아니라, 그러한 바실락 던전의 모든 존재를 잡아먹고 크기를 키웠을 존재가 있었다.
* * *
[당신은 적성 개체 : 돌연변이 바실락 슬라임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크고 거대했다.
이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축구장 두 개보다도 더 커 보이는 공동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것을 달리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그 거대한 생물체가 지닌 생명력이 맥동하고 있었다.
“저걸…… 슬라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겁니까?”
“안 될 건 없지. 슬라임이라고 해서 꼭 작아야 하는 법은 없으니까.”
“그렇다 해도…… 후…….”
본디, 사람은 자신의 상상력을 벗어난 존재를 바라보게 되면 인식이 어려운 법이었다.
대다수의 팀원이 그러했다.
평소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이렇게 거대한 생명은 처음 겪었을 테니까.
하기야, 이 시기엔 보통 그러했다.
아무리 커 봐야 폐허에서 등장하는 정도거나, 도깨비 정도의 수준을 봤을 거다. 아니면 오우거나.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
이 정도 거대한 생명 따위, 흔히 볼 수 있게 된다.
그때 가서는.
‘몬스터도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힘을 키우니까. 크기는 그중에서도 가장 쉽게 힘을 키우는 방식이기도 하고.’
꽤 많은 것들이 거대해진다.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일종의 진화를 하는 거다. 크기를 통해서 말이다.
해서 나야 그러한 존재들을 꽤 봤다만.
아무래도 내 옆에 팀원들은 이런 거대한 존재를 보기 힘든 게 당연했으니.
저들이 놀라서 눈앞의 것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제는.
다들 인식해야 할 걸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데.
-저것 너를 쳐다보고 있는 거 같지 않으냐?
‘어. 분명 날 인지해서 보고 있어.’
-다들 그걸 모르는 거 같구나.
‘슬라임이 어떻게 상대를 인식하는지 모를 수 있으니까. 이해는 가.’
저 거대한 슬라임.
몸 안에 수많은 생명체를 품고. 그 생명력을 갈취해가며 크기를 키운 저 존재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고는,
스스스스-!
나를 향한 탐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다.
나를 잡아먹겠다는 탐욕.
내게는 그 탐욕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놈의 영혼.
그 영혼의 울림이 나는 느껴졌으니까.
그 탐욕만큼은 과연 알아줄 만한 녀석이었다.
‘하기야 그런 탐욕이 있지 않고선…… 이 정도 수준은 불가능했겠지. 아무리 재앙의 바람이 도와줬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이 거대한 생명 자체가 녀석이 지닌 탐욕의 결과다.
거대한 결과물.
그 어떤 슬라임이라도 이 녀석만 한 결과물을 내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놈은 만족하지 못한 게 분명하다.
더더더.
크게 크기를 키우고 싶었겠지.
그러니 분신을 만든 거다.
그 분신을 이용해서 다른 종족, 즉 사람의 형태를 취한 거다.
그렇게 만들어진 분신들.
그들은 녀석이 만들어 낸 미끼다.
같은 사람과 사람을 노리는 몬스터를 끌어들이게 하는 살아 있는 미끼!
그 미끼를 이용하여 놈은 계속해서 덩치를 키운 거다.
어마어마한 욕망이다.
그러나 그 욕망도 부릴 수 있을 만큼을 부렸어야 했다.
“저거…… 저 안에 있는 사람들 아직도 녹고 있는 겁니까?”
“그런 거지. 소화도 다 시키지 못한 거야.”
현재도 나를 미칠 듯이 탐욕 내고 있다만.
그뿐이었다.
놈의 욕망은 지금에 와선 아무 상관 없었다.
놈의 욕망은 나조차 감탄할 만큼 거대했으나. 놈은 더 이상 나를 잡아먹을 수단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소화도 시키지 못할 거면서 멍청한 녀석…… 차라리 더 안으로 몸을 숨겼어야지.”
“……미친놈이네요.”
“그래. 제 탐욕에 잡아먹힌 미친놈이지.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녀석이야.”
비대해진 놈.
축구장보다 더 거대한 육체를 뽐내고 있고. 분신들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그뿐이다.
‘차라리 욕심을 덜 부렸어야지.’
놈은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하나 했다.
첫째로,
제 능력의 한계를 제대로 알지 못한 것.
놈은 소화시킬 수 있을 만큼만 먹었어야 했다.
둘째로,
채 소화해내지 못하고도, 다른 것들을 탐하고자 미끼를 풀어 놓은 것이다.
이리저리 미끼를 던지지 않았더라면 놈은 내게 걸릴 일도 없었다.
놈이 나헤나 행세를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여기에 올 일은 결단코 없을 테니까.
‘아마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나헤나를 찾아다녔겠지…….’
차라리 몸을 숨겼더라면.
그러고 숨을 죽이고 제대로 소화를 했더라면?
그때 가서는 제아무리 회귀한 나라도 상대하기 힘든 존재가 되어 나타났을 것인데.
제 한계도.
수준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이런 식으로 내게 걸려버린 거다.
꾸르륵- 꾸륵-
“우, 움직입니다.”
“냅둬. 그래봐야, 더 도망갈 곳도 없는 녀석이니까.”
자신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나.
그걸 보고 놈은 뒤늦게나마 제 처지를 알아챈 거 같다만.
이미 늦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
지금까지야, 잘도 우리를 농락했다만.
이제 그 농락의 대가를 받을 때였다.
내가 러시아를 향해 던져 놓은 미끼.
나헤나.
감히 그녀를 잡아먹은 대가는 커도 너무 컸다.
바로, 당장 놈을 죽여야 할 정도로!
그리고 나는 그 대가를.
“당장 죽여 주지.”
바로 지금 받아낼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