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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재앙급 플레이어가 빌런을 다 죽임-157화 (157/206)

제157화

전장에서 지한휘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그의 판단이 자신의 판단보다 옳다고 여긴 지 오래였다.

이는 이진성을 제외한 전부가 같은 심정이었다.

아니 어쩌면 바라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어서 저들을 죽일 수 있는 면벌부(면죄부)를 달라고.

판단을 내려달라고 말이다.

그 판단이 떨어졌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저 그의 판단을 믿을 뿐이다.

“다들 공세로 전환해!”

“이쪽도 공세 전환합니다!”

쿠웅.

탱커진들이 한 발 더 나간다.

탱커들 간의 거리가 벌어진다.

그 사이를 딜러진이 메꾼다.

공격을 위해서다.

뒤에 있던 원거리 공격자들.

드드드득-

그들은 자신이 딛고 서 있던 땅을 위로 높였다.

위로. 길게.

사람 하나가 딛고 설만큼의 작은 땅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 위에 있는 원거리 딜러들.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위태해 보이지만. 떨어질 자들은 없었다.

여기 있는 누구도, 고작해야 이런 위태로움에 무너질 자는 없기 때문.

대신 그들은 발아래의 위태로움보다, 바로 눈앞에 달려들고 있는 적들에 집중했다.

‘조준 완료.’

어디에 찔러넣어야 가장 큰 치명타일지.

어디를 날려버려야 적의 수가 줄어들지를 상상했다.

최대의 살상력을 발휘하기 위한 집중이었다.

그 결과는 금세 드러났다.

콰아앙- 쾅!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포화를 시작했으니까.

미친 듯이 날려대는 원거리 딜러들의 포화.

포격이라 불릴 만큼 거대한 세례가 만들어진다.

그런 포격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아군에 날아드는 파편이 없었다.

그만큼 이들이 자신의 힘을 잘 제어하고 있단 반증이었다.

사실,

자신의 힘을 제어하는 자 중 가장 뛰어난 자는 어쩌면 이들 원거리 딜러가 아니라 전혀 다른 자일지도 몰랐다.

“키킥. 날뛰어보자고.”

그건 바로 광기 어린 웃음을 짓고 있는 이사야.

당장에라도 달려들고 싶은 광기.

전장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적을 살육하고 발골하고 싶은 그 욕망!

그 거친 욕망을 그녀는 기어이 참고 또 참고 있었다.

‘지한휘의 명령이 있을 때까진 안 돼.’

전장에선 그의 판단을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기 때문.

그러기에 그녀는 사령술을 쓸수록 잠겨 드는 광기 안에서도, 자신을 제어하고 또 제어해야 했다.

샤아아아-!

-죽여! 어서 죽이라니까?

-캬캬캬캬. 다 죽이자!

그녀 곁을 지키는 사령들.

그들이 살육전을 벌이자 말함에도, 끝없이 참아야 했다.

숨을 죽였고.

제 몸 어딘가부터 느껴지는 욕망을 걸러내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그의 판단이 떨어졌다.

어서 나서라고!

다 죽이라고!

그럼으로 승리에 취하라 말해주었다.

그 순간, 그녀를 제어하던 모든 사슬이 끊어졌다.

“키힛. 간다아아!”

“엇! 이사야! 너무 나서지는…….”

말 그대로 뛰쳐나가는 그녀. 그녀의 온몸엔 사령술의 저주가 듬뿍 발려져 있었고.

치이이익-

닿는 것만으로 적을 녹이고, 부수었다.

강력한 저주가 그녀의 의지를 대변자이며, 동시에 그녀를 보호하는 보호구였다.

그녀의 무기는 따로 있었다.

-캬캬캬캬!

-킥.

그 옆을 지키는 사령들.

그것들은 그녀가 휘두르는 도끼가 되어주었다.

그녀의 손길이 있음에.

후우웅-!

사령으로 이뤄진 도끼는 크게 휘둘러지며, 주변을 도륙했다.

마리가 걱정하는 게 무색해져 보일 정도의 활약!

‘하여간 어쩔 수가 없다니까요.’

그런 이사야를 보고 마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리치가 되어서 미친 줄 알았는데.

리치가 되지 않고도 그때의 광기를 보이는 이사야라니.

회귀 전의 모습을 알고 있는 그녀기에, 더더욱 그 한숨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생은 조금 다르긴 하다만.

전엔 자신과 안 맞던 동료가, 전에 보였던 모습을 또 보는 느낌.

‘그래도…… 전처럼 전혀 컨트롤이 안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나 최악은 아니었다.

회귀 전을 겪은 마리.

그러기에 그녀는 최악이 아닌 한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다.

이사야가 지닌 그 광기.

그 광기가 지한휘에게 향하는 게 아닌 한은, 그녀는 얼마든 그 광기를 이해해 줄 생각이었다.

아니 그 이해를 넘어서.

“남은 치유는 다들 알아서 해 주시길 바라요! 저도 갈게요! 성광의 갑옷이여! 성광의 철퇴여! 저에게 부여되소서!”

화아아악-!

그녀 자신도 벼려두고, 또 벼려두었던 전장의 광기를 꺼내 들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도 성녀이기 이전 한 명의 광전사.

신의 사랑을 받는 힘을 지닌 존재였으니까.

이사야는 사령술을.

그녀는 신성력을 쓰는 게 다를 뿐이었다.

“죽어요!”

“캭!”

콰즈즈즉-!

아니 어쩌면 더 지독했다.

신의 사랑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녀가 지닌 광기는 어쩌면 더욱 순수하였으니까. 그 무엇보다도, 더 짙은 순수가 있었다.

콰아앙-! 쾅-!

그런 그녀가 가는 길.

그 길에 남는 것은 신성력의 빛바랜 하얀 성스러움이 아니라.

스스스스-

흘러내리는 핏줄기들이었다.

그야말로, 그의 명 하나에 모두가 고삐 풀린 말처럼 달리고 있는 상황!

그러한 장면을 만들어 낸 지한휘라고 해서.

그 고삐를 가만 죄고 있을 리가.

“우선은 끝내보자고, 나헤나.”

“큭…….”

그간 아껴두고 있는 힘들을 그대로 방출하였다.

[당신은 대량의 영력을 사용하고 있다.]

[당신은 기술 : 그림자 발걸음을 최고조로 사용하고 있다.]

[당신의 존재감이 희미해진다.]

[당신이 지닌 기술 : 신의 육체가 최고조로 발휘된다.]

[당신의 육체가 최상의 상태로 돌아온다.]

그간 그도 힘이 없어서 이 상황을 미뤄두고 있는 게 아니었다.

‘상황 판단을 해야 해서 미룬 거지.’

자신의 그릇된 판단으로 인해서 무의미한 희생이 나올까 염려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한이수가 실수로 죽인 적의 흔적을 보고 그는 알게 되었다.

저들은 조종당하고 있는 게 아니라.

만들어졌다는 것을.

‘……기생충 같은, 쓰레기들 같으니라고.’

만들어진 인공적인 것들.

그런 것들을 향해서 힘을 휘두르는 데 망설일 이유가 있겠는가.

빌런도, 광신도도 생명을 지녔겠지만.

눈앞에 이것들은 제대로 된 생명을 지닌 것들도 아닌 인공물일 뿐인데?

그러기에 그는 더 망설이지 않고 힘을 드러냈고.

“너, 너…… 힘을…… 숨기고…….”

“이제 알았냐. 그럼 이만 뒈져 보라고.”

드러낸 그 힘을 적을 격살하기 위하여,

후우우웅-!

한껏 크게 손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한 낫이, 적의 목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 * *

힘을 제한하고 있었기에 밀리는 편이었을 뿐이다.

적들의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지한휘는 이미 그 한계를 뛰어넘은 지가 오래였다.

루브르 박물관 던전.

그 이후로부터 그의 실력은 급성장을 넘어 한 차원 올라섰다고 봐도 무방하였으니까.

그때 전생 수준의 육체를 만들어 냈고.

그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영력을 키워왔다.

재앙의 바람 때가 하이라이트였다.

말 그대로 재앙.

아무리 강력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방향을 틀어내던 게 최선이던 그것.

그것의 뒤를 쫓아 살라먹고, 또 살라먹었던 지한휘였다.

그때 잔뜩 영력을 키웠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악마들의 사념을 받아들여, 관련된 가호나 기술을 크게 키우거나 얻어 낸 그였다.

그런 그가 날뛰었다.

콰즈즈즈즉-

그 어떤 게 견딜까.

나헤나.

아니, 나헤나였던 것이 쓰러지는 것으로.

“후…….”

혼란스러웠던 전장이 막을 내렸다.

언제나.

그 끝을 맺는 건 지한휘였던 터.

그는 열불이라도 치솟는 것처럼, 제 발에 치이는 남은 시체들을 지르밟았다.

얼핏 보기에 화풀이라도 하는 듯 보이는 장면.

“한휘 죽은 자를 모독…… 아니네요. 죽은 자라고 하기엔…… 이건 죽은 자가 아니죠.”

“내가 쓸데없이 힘 빼는 타입은 아니잖아, 마리?”

“그랬죠. 이해했어요.”

그리 보이는 행위조차도, 실은 그 계산속에 있는 행위였다.

그가 시체를 지르밟아 버리자.

시체라 칭하였던 그것은 묽은 액체처럼 변하였다.

변한 액체들은 일반적인 액체처럼 땅에 스미지 않았다.

마치 목표를 설정한 듯, 하나같이 어디론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역시 저기군.’

그 액체들의 목표.

그곳이 지한휘의 새로운 목표이기도 했다.

그걸 아직 모르는 자들이 있었다.

어느새, 전장을 수습하고 다가오는 길드원들이다.

“길드장, 이제 뭐 합니까?”

“어떻게 하죠? 다 끝난 건가요?”

“이후는…….”

한휘의 명령을 받고 적을 격살한 그들은 아직도 머릿속에 물음표를 그리고 있었다.

우선 그의 명령이 있으니 죽이긴 죽였다.

그러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그들도 아직 잘 몰랐다.

사람이 죽었다고 시체가 액체처럼 변하는 걸 보니, 이들도 몬스터는 몬스터였다.

그런데 이것들이 몬스터라면 그들이 여태 상대했던 나헤나와 같은 자들은 뭐였단 말인가?

그 본체는 어디로 간 것이고?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머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의 종류를 평하자면 궁금증이었다.

그 답을 줄 자는 가장 먼저 판단을 내린 지한휘였으니.

다들 그에게 물어보는 게 자연스러운 장면이기도 했다.

지한휘는 처음엔 대답 대신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뒤를 마리를 포함한 팀원들이 따르기 시작했다.

다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서.

제 온몸에 묻어 있던 피와 살점들을 닦아 냈다.

전투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전투를 통해 얻은 정신적 피로감을 이참에 씻어내기 위한 행위였을지도 몰랐다.

아직 궁금증이 가득한 만큼, 그들의 피로도 여전하였으니까.

지한휘가 판단을 내려줬기에 최악으로 치닫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피로가 너무 무거웠던 걸까.

가만히 뒤를 따르던 이진성이 다른 자들을 대표하듯 물어왔다.

“길드장. 이게 다 뭔 상황인지 이해 좀 시켜주시죠. 다들 궁금해하는 거 같으니…….”

보통 이쯤이면.

‘한 소리 듣겠지. 그래도 말을 해야지…… 어쩌겠어.’

이진성에게 지한휘가 한마디 크게 날렸을 거였다.

놀리든, 혼내든.

어느 쪽이든 이진성이 좋은 소리를 듣기는 어려웠다.

‘뭐…… 이해는 해. 이해는…… 길드장도 입장이란 게 있으니까.’

이진성은 처음 그것에 분노를 해왔다만.

이제 와서는 이해했다.

그런 식으로 한 명이 슬쩍 당해주는 모션을 취하면.

그 뒤에 남은 다른 자들은 긴장이 한결 가시곤 했으니까.

때문에 지한휘가 일부러 그를 괴롭히듯 놀리기도 한 것을, 이제 와서는 이해했다.

‘팀장이 되어 보니 알겠더만…….’

그도 이젠 사람을 이끄는 자가 되어 보니, 알게 된 거랄까.

어쨌거나.

그렇게 한 소리 들을 걸 각오하고 말을 했는데, 의외로 이어지는 지한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설명이라…… 어려운 건 아니지.”

“그…… 예? 바로 설명한다고요?”

그에 당황하던 이진성.

“그럼 뭘 하겠어?”

“이쯤 저를…… 아니, 아닙니다.”

“크큭…….”

지한휘는 그 심정을 알겠다는 듯 피식 웃어줄 뿐이었다.

‘자식. 전이라면 모르겠는데, 이제 성장한 놈을 뭐하러 골려 먹겠냐.’

이진성이 그를 짐작하듯이.

지한휘도 그의 내심을 짐작하니까 나온 웃음.

어쨌거나.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들 파악하고자 하는 진상을 알려 주는 게 중요한 때였다.

그러기에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린 처음부터 타깃을 잘못 잡고 있었던 거야. 우리는 바실락 여왕을 타깃으로 잡아선 안 됐어.”

“예?”

“우린 여왕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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