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화
쉘터의 안으로 들어갔다.
‘일반적이네. 악의적이기도 하고.’
일반인들이 머무르는 숙소는 바깥에 있었다.
지슨이 머무르는 곳은 그보다 한참 안쪽에 있는 듯,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기에 악의적이라 말하고 있었다.
일반인이 바깥에 머무르고, 능력자가 안쪽이라.
명분이야 있을 거다.
-바깥에 경비대가 적을 막는 동안, 바깥에 있는 일반인들은 곧바로 도망쳐라.
꽤 그럴싸하지 않은가.
저들이 적을 막을 동안, 일반인들은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건 빌어먹을 거짓 중 하나다.
몬스터가 쳐들어왔을 때.
일반인들은 도망친다고 해봐야, 적들의 먹잇감밖에 되지 않는다.
기척을 숨길 줄 아는 헌터도 몬스터로부터 도망치는 게 힘든데, 일반인들이 그게 될 리가 있나.
결국 그들은 도망칠 수 없다.
이곳 쉘터를 부수자고 달려드는 몬스터들의 시선을 교란하는 먹음직스러운 먹이밖에 되지 않는다.
차라리 안이 안전했다.
바깥으로 가면 무조건 죽지만. 안에서 버티고 있으면, 어떻게든 살 방도가 나오게 되니까.
“쯧.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군. 살 사람 살고. 죽을 사람 죽고 하는 게 말이야.”
“……하핫.”
뼈가 들어 있는 내 말에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대놓고 말했다.
“바깥에선 사람 좋은 척을 다 하고는…… 구조가 영 마음에 안 드네?”
“대의를 위한 겁니다.”
“대의라…… 빌어먹을 대의. 언제나 그런 말들이 사람을 혹하게 한다니까. 미치게 만들기도 하고. 그 대의의 필요에 따라 자기들도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데 말이야.”
“휘. 무언가 오해가 있는 거 같습니다만은…….”
지슨은 그런 날 두고 설득하려 한다만.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하였다.
결국 지슨의 일행 중 하나가 나선다.
“……말을 삼가시죠.”
“이곳은 저희가 겨우 꾸린 벙커입니다. 이걸 어떻게 마련한 줄 알고 그런 소릴 하십니까?”
쉽게 말해 내게 닥치란 의미들이었다.
뭐.
져주고 살 생각은 없긴 하다만.
이쪽도 우선은 안에 들어가야 할 참이지 않은가.
해서 가만 닥쳐주려는데.
지슨이 알아서 분위기를 환기시켜 준다.
“라브. 말이 너무 심하잖아. 어서 휘에게 사과해.”
“……아니, 그래도! 우리가 일부러 그러는…….”
“……라브.”
“죄송합니다.”
적당히 내가 물러날 만한 각을 만들어 준달까.
‘역시나.’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는 있다만.
이 안에서 누가 무리의 대장인지 명백히 보일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라브도 사과했으니 여기까지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자고.”
나는 그런 라브란 자는 무시한 채로.
대신 지슨의 안내를 받아 더 안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나가거나, 꺼림칙하니 다 부수고 싶은데 말이야.’
나로선 계속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수상한 낌새가 느껴지는 벙커.
그 안에 들어갈수록 짙은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어떤 몬스터라도 이 안의 기운을 느끼기만 하면 미친 듯 달려들 거다.
나로선 생명의 기운이라 하는 게, 생명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힘 중 하나였으니까.
기운을 포식하고 성장하는 건 몬스터의 기본 아닌가.
그런 기운이 이리 많다는 건.
쉽게 말해 몬스터가 성장할 여지를 줄 만한 기운들이 넘쳐난다는 거다.
해서 들어가고 있는 거였다.
대체 뭐가 이 안에서 생명의 기운을 뿌리는지 알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여기가 저희가 처음 모였던 곳입니다.”
우리는 쉘터의 중심. 그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나로서도 예상치 못한 것들이 있었다.
* * *
쉘터의 중심이란 곳. 사방이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있는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이었다.
“……던전 감옥.”
“맙소사!”
던전 감옥이었다.
사방을 콘크리트와 특수 철로 보강한 곳은 내가 알기로 던전 감옥을 제외하고 없었다.
안으로 더 들어섰다.
지슨을 포함한 자들의 제지는 없었다.
“형태로 보아하니 여기서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거 같은데?”
“제가 봐도 그래요, 한휘.”
“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쉘터.
생존자들의 피난처 안. 생명력 가득한 이곳에 던전 브레이크의 흔적이 있다고?
이게 말이 되는가?
이 거친 생명력이라면, 어떤 몬스터라도 홀릴 텐데?
다른 곳을 잡아먹기 전에 이곳에 있는 모든 기운과 생명을 잡아먹는 게 상식 아닌가.
그런데도…… 대체.
안으로 들어가서 본 광경은 더 가관이었다.
우우웅-!
그 안.
붉은색의 게이트가 중심에 있었고. 그 옆으로 온갖 깨진 알들이 즐비해 있었다.
척 봐도 바실락 새끼들이 처음 알을 까고 나온 흔적이었다.
그 흔적의 중앙엔 그 무엇보다 큰 알껍데기 있었다.
우리가 찾던 거였다.
“……여왕이 이미 깨어났었네.”
“하…….”
우리가 그토록 찾던 여왕.
던전 브레이크 이후. 더 강화될 여왕을 잡고자 수색을 지속해왔지 않은가.
그런 여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치가 이미 넓게 벌려져 있었다.
그 안에 있던 여왕이 이미 변태에 성공했다는 의미!
뭘까.
그럼 여왕은 이미 변태에 성공했고.
꽤 강하게 성장했을 건데.
그런데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건. 대체…….
‘이미 죽은 걸까? 그럼 브레이크가 끝났을 건데?’
의문이 커져만 간다.
이 생명력이 그득 찬 고치를 두고 간 이유가 대체…….
묘한 기시감과 불안감.
이 안에 들어서면서 지속되기만 하던, 그 불길한 기운들이 나를 강하게 휩싸는 듯했다.
짙은 불길처럼 나를 휘감던 기운들.
그 기운들을 한참 생각하던 나는, 이윽고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곳에 내가 오게 된 거 자체가 어떠한 설계…….
“아…… 이거 설마…….”
“한휘!”
“크윽…….”
생각이 더 이어지기 전.
강력한 타격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 * *
[당신은 육체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당신이 지닌 가호 : 상급 저항이 타격을 상쇄를 시도했다.]
[당신이 지닌 가호 : 상급 저항이 타격의 일부 상쇄에 성공했다.]
[당신이 지닌 기술 : 신의 육체가 남은 타격을 받아들였다.]
[당신이 지닌…….]
체계가 지X맞도록 울린다.
어지간한 타격으로는 울리지 않는 게 체계였다.
이런 식으로 울려대는 거 자체가 그 타격이 어마어마하다는 이야기.
타격은 단지 물리적인 것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온몸이 욱신거리게 함은 물론이고.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으니까.
무언가.
그 무언가가 내 정신 전체를 잡아먹으려 들었다.
뒤늦게 발동한 상급 저항과 영력, 여러 가호가 보조해 주지 않았더라면 잡아먹혔을 거였다.
그만큼 강력한 공격이란 건데.
문젠 그 공격의 종류가 내게 익숙하단 거다.
“……나헤나?”
나헤나. 바로 그녀가 지닌 매혹의 힘이 내 정신을 타격하였으니까.
몸을 짓치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깝네요.”
“하…….”
다시 바라본 그녀의 눈은 변해 있었다.
뱀처럼 요사스러웠다.
그 외에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기이한 눈이었다.
마치 무감각한 곤충 같으면서도.
무언가를 잡아먹길 갈구하는 탐욕스러움이 느껴졌다.
그제야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네가 여왕…… 아니, 여왕을 잡아먹은 무언가구나? 그치?”
“거기까지 알아채다니. 역시 당신은 위험해. 그렇다면 잡아먹는 게 아니라, 죽어.”
그리고 그러기가 무섭게.
쒜에엑-!
나를 노렸던 매서운 공격들이 재차 쏟아져 들어왔다.
* * *
‘얕보였나……?’
정면에서 공격해 오는 나헤나. 아니 나헤나가 덧씌워진 무언가.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의를 드러내고 움직이는 나헤나는 인간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근육과 뼈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기이한 움직임과.
계속해 쏘아지는 정신공격들.
-죽어. 죽어. 죽어.
절로 살의를 일으키게 하고.
-이대로 끝내는 게 어때?
-차라리 쉬어.
의욕을 꺾으며. 때로 아득한 절망이 느껴지게 하는 뇌파와 비슷한 암시들.
저러한 암시를 쏘아낼 수 있는 이능력자는, 내가 알기로는 없었다.
이건 나헤나가 평소에 하던 유혹과는 결이 달랐다.
그것은 가호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지금 날려지는 이것들은 단순히 가호의 힘을 사용하는 게 아닌 좀 더 본질적인 무언가였으니까.
이를테면…….
“큿…….”
“나를 두고 방심하는 건가? 이러면 죽이기가 싫어지는데. 역시 아쉽긴 해.”
내 생각이 더 이어지기를 방해하려는 건가.
갈수록 나헤나의 공격은 매서워졌다.
육체 능력자가 아닌데도 강력했다.
상급 능력자였을 그녀가 제 몸을 아끼지 않고, 소모하듯 던지는 공격이었으니까.
거기다 공격은 그녀만이 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심해라! 뒤도 있다!
“죽었!”
방금 전까지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우릴 안내하던 헌터들.
그보다 더 바깥에서 피난처에 피난민들을 자처하고 있던 일반인들.
어느새부터인가 그들은 우릴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끄으으윽…….”
“죽어 죽어 죽어!”
“헤헤헤. 죽일 놈들이다!”
“…….”
흡사 약에 취한 듯, 좀비처럼 의지를 잃은 채로 달려오는 적들.
저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나와 팀원들에게서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어 내려 했다.
“칫. 또 피했네.”
그 빈틈을 이용해 어떻게든 나를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더럽게 걸렸군.’
아직 이들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다.
내가 아는 나헤나와 같은 형태를 꾸미고 와서 나를 속이는 건지. 아니면 나헤나 그녀 자체가 나를 배신한 건지도 알 수 없다.
혹은 그녀의 의지와 다르게, 누군가 그녀를 조종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니 더럽게 걸렸다 할 수밖에.
손해가 컸고. 입이 썼다.
‘젠장. 나헤나…… 이렇게 될 녀석이 아닌데.’
나헤나.
그녀는 내가 가진 패 중 최상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런 식으로 계속해 공격해 들어오는 이 상황.
결코 좋지 못했다.
거기다 이상하기도 했다.
내 계획 덕분에 그녀는 꽤 많은 권력을 얻었다.
괜히 남부의 여왕이라 불리는 게 아녔으니까.
그런 그녀가 나를 지금 배신하는 거?
무언가 부자연스럽다.
거기다 그녀가 바로 이전 했던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대체 뭐지. 뭐가 나헤나를 이렇게 움직이게 한 거지? 음…….’
그녀를 지금 움직이게 하는 건 어떤 이득 때문이 아닌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득이 아닌 다른 무언가.
아니면 나헤나의 이득에는 상충되지만, 나헤나를 조종하는 그 누군가에겐 내가 죽는 게 이득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란 건데.
대체 어떻게 이득이 되는 걸까.
역시 모르겠다.
머리가 복잡했다.
그러나 복잡한 내 머리와 다르게 상황은 점차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팀원들이 점차 뒤로 내몰리기 시작했다.
“길드장! 아니, 팀장님! 이거 어떻게 합니까!?”
“으으윽……!”
“캭. 뒤지겠어, 진짜. 골이 울린다고!”
대다수의 뇌파는 내가 막아 주고 있다만. 조금 흘러나간 뇌파만으로도 팀원들의 정신을 어지럽히기에 충분했다.
그뿐이랴.
당장 달려드는 적의 공격도 매서웠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