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스무날 가까이 우리가 죽인 바실락 새끼의 수는 이만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이제 갓 깨어난 새끼들을 처단한 것까지 수를 세면 3만은 훌쩍 넘었을 거였다. 성장하기 전에 죽였기에 따로 수를 세지 않았을 뿐이다.
이때부터 작전도 변화를 줬다.
정글은 여전히 거대한데, 거미들의 수는 줄어든 상황.
달리 이야기하면 거미들의 밀집도가 전보다 낮아졌다는 소리였다.
그건 좀 더 소란스럽게 사냥을 진행해도 무방하다는 의미였다.
그러기에 더 크게 일을 벌일 수 있었다.
[당신은 기술 : 영혼 병사를 사용했다.]
[당신은 영력을 끌어 올려 대규모의 영혼들을 소환해냈다.]
[당신의 가호 : 영력을 통해 힘을 받은 영혼들이 물리력을 부여받는다.]
[당신의 동료가…….]
병사들을 소환해서 여기저기 흩뿌려댔다.
그걸 보고 새끼들이 신나서 달려오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먹을 것도 없는 영혼 병사들을 잡아먹겠다고 달려오는 거니까.
그렇게 소환된 영혼 병사들이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는 사이.
조금이라도 밀리는 곳이 있다 싶으면, 영혼들이 투입됐다.
보통 영혼들이 아니었다.
내가 부여한 물리력을 사용하는 건 당연하거니와, 이사야가 손수 개조까지 취해 줬으니까.
강력한 언데드 중 하나인 레이스.
그것보다도 더 강력한 개체가 된 영혼들이었다.
그런 수십, 수백 개의 영혼을 던져댔다.
버틸 수 있겠는가.
[당신은 적성 개체 : 바실락의 새끼를 사살하였다.]
[당신은 적성 개체 : 바실락의…….]
곳곳에서 적을 사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작전에 힘입어 사냥 속도도 더욱 빨라져 갔다.
아주 좋은 상태였다.
그리하여 점차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이 정도면 예정보다 더 빨리 사냥을 할 수 있게 됐으니, 시간을 벌었다고 여겼으니까.
벌어들인 시간으로 여왕에 대한 탐색전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설사 탐색전을 벌이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적의 수가 줄어든 만큼, 여왕을 도울 수 있는 새끼들의 수도 줄어든 것이니까.
갈수록 전투가 수월해질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거.
당연한 일이었다.
적의 수가 줄어들면, 그만큼 우리가 상대적으로 강해지게 돼 있으니까.
그런데 저게 뭔가.
“저거 고치에서 나오는 거지……?”
“맞는 거 같습니다.”
검은색의 단단한 고치.
알처럼 생긴 그 안에서 스멀스멀 나오는 것들이 있었다.
* * *
그것은 변화였다.
환경이 변화하면 그에 발맞춰 진화하는 것이 생물이 가진 본능이라더니.
그보다 더 극적으로 변화하는 몬스터들은 고작 20일 만에 변태를 꾀하였다.
“저것들 새끼라고 하기에는…….”
“거대해졌다.”
“능력도 달라진 거 같은데요!?”
“……하.”
몇몇 거미 새끼들이 이상징후를 보였다.
애벌레도 아닌 주제에 고치에 똬리를 틀 줄이야.
그러곤 다시 나온 거미들은 전보다 더 거대해져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그 전력이 몇 배는 강력해진 듯 보였다.
‘시험해 볼 필요도 없이 강해졌겠지.’
그러한 고치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놈들이 실시간 진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고치를 뚫고 나오는 것들을 보자마자, 우리는 다시 탐색을 시작했다.
곳곳에 영혼을 흩뿌렸다.
고치에 있는 동안만큼은, 기척을 숨기지 못했기에 탐색은 빠르게 이어졌다.
수 많은 고치를 찾을 수 있었다.
찾아낸 고치들은 곧바로 파괴를 시도했다.
“터트려 봐!”
“안 되는데요…… 큿.”
따아앙-! 따앙!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이진성의 화염에도 고치는 벌겋게 달아오를 뿐이었다.
김민아의 화살로도 껍질을 조금 꿰뚫을 수 있을 뿐이었다. 안에 있는 것을 사살하지 못하고, 껍질에 걸려 도중에 멈출 뿐이었다.
그나마 이사야의 저주는 먹혀들었다.
“안에서부터 녹이면 되는 거지.”
“한번 해 봐.”
“오케이.”
스스스슷-
검은 잉태의 저주를 걸어 안에서부터 녹아들게 하고.
짙은 어둠이란 저주를 뿌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갉아 먹게 했다.
고치 안에 있는 거미.
그 거미를 안팎으로 갉아먹고 녹게 만든 것이다.
문제는 그게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는 거다.
“……반만 성공했네.”
“흠…….”
현재 이사야가 사용하는 저주는 직접적인 공격 마법은 아닌 것들.
전투 시에 실시간으로 효과를 보이는 사령술과는 다른 계열에 있는 저주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진행 속도가 너무 더뎠다.
즉, 죽어 버리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이야기.
저주로 녹아 죽어 버리기 전에, 고치가 먼저 찢어졌다.
성충이 돼서 나오는 거였다.
-키이이이이……!
[당신은 적성 개체 : 바실락의 성충을 발견하였다.]
깨어난 성충은 분명 다른 개체보다는 약했다.
문제는 다른 거였다.
“죽일까요?”
“아니, 저거 좀 다르게 행동하는데?”
무엇보다 본능적인 게 몬스터다.
자기 몸이 망가진 것 정도는 당연히 느낄 거였다.
조그마한 부상으로도 죽임을 당할 수 있는 게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이었으니까.
그래서일까.
저주에 의해 약하게 깨어난 개체.
-키이!
그것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그러더니.
와그작-
곧바로 제 옆에 있던 고치를 삼키기 시작했다.
왜 저러는 것일까.
효과는 바로 드러났다.
“……회복되는데요?”
“양분으로 삼는다 이거군. 새끼 때는 저러지 않더니…… 성체가 되면서 지능도 올라갔다 이건가.”
금세 몸이 회복됐다.
다른 개체들보다 연약하기야 하다만.
-키이이이!!!
새끼일 때보다는 강력한 개체인 게 분명했다.
“……우선 죽여 봐.”
“예.”
그를 시험하기 위해서 우린 곧바로 전투를 벌였다.
이제 막 회복되어 포효를 던지던 저주받은 성체.
그것을 부수기 위해 벌어진 전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무리 강해졌다 하더라도, 우리 또한 수많은 거미를 격살하면서 얻은 경험이란 게 있었으니까.
콰아앙-! 콰즈즉-!
[당신은 적성 개체 : 불완전한 바실락의 성체를 사살하였다.]
쿠우웅.
새끼 때보다 더 거대해진 거체. 오우거만 한 것이 쓰러지자 주변의 땅이 울린다.
우린 그러한 성체를 죽이고 기뻐하기보단, 심각한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약해지긴 했는데…… 고작해야 10에서 20퍼센트 정도야.”
“……으음.”
저주를 당하고 다시 깨어난 불완전한 성체.
여기까진 효과적이었다.
아마 전력이 반 이상으로 급감해 있지 않을까.
문제는 놈들을 둘러싸고 있던 고치다.
진화를 위해 만들어 낸 딱딱하고 검은 고치.
우리는 파괴하기 힘들었던 고치. 그것을 놈들은 쉽게 뜯어먹었다.
‘놈들의 침에 고치가 어떤 화학 작용이라도 하는 거겠지…….’
그러자 바로 이어진 회복.
이 회복이 문제였다.
이득을 챙기기 전에 회복해 버리니까.
“저주가 효과 있다 해도…… 놈들이 얼굴을 틀어박고 고치를 먹기 전에 죽여야 한다는 건데.”
“그러려면 저주를 걸고 기다려야겠죠. 놈들이 깨어날 때까지요. 그렇다고 고치를 부수자니…….”
“그것도 시간이 너무 들지.”
“예. 팀장님 정도나 쉽게 부술 뿐이지. 소모되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예요.”
그렇다고 회복하기 전에 죽이는 것도 문제다.
놈들이 언제 깨어날 줄 알고 대기한단 말인가.
그걸 기다리다가 소모되는 시간이 더 아깝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적을 처리하는 시간은 한없이 늘어지게 된다.
“하 씨…… 어쩐지 잘되어 간다 했습니다.”
“정석적인 방법이긴 했잖아.”
“그렇죠. 정석적인 방법이죠. 그간 우리가 꿀을 빤 거지. 이게 보통의 사냥 아니겠습니까.”
작전 변경이 필요하다.
자 여기서 어떤 식으로 변경을 해야 할까.
“보통은 이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 팀장님?”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이진성이 진지하게 물어왔다.
어떻게 한다라.
‘가장 쉬운 건 기간을 길게 잡는 거겠지.’
헌터로 이뤄진 대다수의 팀은 기간을 늘리는 걸 선택하곤 했다.
안전을 생각하면, 기간을 길게 잡는 것이 맞았다.
그 사이 정글은 더 커지고, 희생자들이야 늘긴 하겠다만.
팀원들이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일반인이 죽든 말든 최대한 안전하게 가는 거다.
잔인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사람의 목숨에 높고 낮음은 없더라도, 전력적으로 누가 중요하냐는 확실하게 정할 수 있는 법이니까.
평시도 아니고 전시라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이를 욕하는 자도 없었다.
뭐.
생각해 보면 나쁠 건 없긴 하다.
“어차피 블라디보스토크도 여기서부터 거리 꽤 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상황이 이러니 나헤나를 통해서 대피령을 내리고. 우린 이대로 기간을 늘리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흐음…….”
일반적이고, 욕을 먹을 일도 없다.
팀원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이게 최선이다.
그런데 왤까.
그간의 경험이 그건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뭐지……? 뭔가 걸리는데.’
이대로 시간을 끌어서는 안 좋다는 느낌이다.
뭘까.
“팀장님, 의견을 내주시는 게…….”
“…….”
오랜만에 모인 팀원들이 나를 향해 의견을 구하는 와중.
그 와중에서도 나는 골몰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회귀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얻었던 나의 경험들.
그 경험들이 가져다주는 직감이라고 하는 건 결코 무시할 것이 아니니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아!’
그러다 내려진 결론이 번뜩 떠올랐다.
“시간을 늘려선 안 돼. 차라리 시간을 당겨야 해.”
“예? 지금 상황에 어찌 시간을 당깁니까. 애들 처리하는 게 문제…… 설마 애들은 무시하고 바로 퀸을 찾으려고요?”
“어.”
“그건 최악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그랬지. 본래 그건 최악이긴 했어. 잘못하면 여왕을 도우러 온 새끼들한테 우리가 고립당할 수도 있으니까.”
이런 던전 브레이크 상황에서는 함부로 보스부터 상대하는 건 미친 짓이지. 보스룸이라고 할 만한 구분이 없으니 다들 몰려올 수도 있으니까.
라는 말은 생략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팀원들이라면 충분히 알 테니까.
그럼에도.
내가 기어이 여왕부터 사냥해야 한다고 말하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잘 생각해 봐. 새끼들이 저리 진화를 꾀한다는 건 놈들이 우리한테서 위협을 느낀다는 거야.”
“그렇겠죠.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진화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렇지. 그런데도 진화를 하고 있어. 위기감이 들었다는 거겠지. 그런데 이 위기감을 새끼들만 느낀 걸까?”
“……아.”
“여왕도 느꼈겠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래. 여왕도 느꼈을 거야. 안 그래도 뭔 짓을 하는지, 제 몸을 꼭꼭 숨기고 있는 자식이야. 그런 여왕이 위기감까지 들었다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최악이겠죠.”
그저 최악이기만 할까.
아니다.
성체들이 진화하는 방향을 보면, 놈들은 무언가로 ‘진화’해 나가고 있다.
껍질 대신 가죽을 취하는 개체도 있고.
산성용액 대신 페로몬을 풍기는 것들도 태어나고 있다.
덩치를 늘리는 개체가 있는가 하면, 되려 크기를 줄이고 소형화가 되어가는 개체들도 있다.
‘……뭔가를 하려 하고 있어.’
놈들이 그리함으로써 얻으려는 최종 목표.
그게 무엇인지 나로서도 알 수 없다.
나도 모를 악마의 장난질이 이 안에 녹아들어 있을 테니까.
그러나 하나는 확실해졌다.
“우린 여왕부터 죽여야 해.”
“……예.”
작전을 변경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