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처음 거미를 상대했을 땐 신이 났다.
초장부터 보스를 잡을 줄 알았으니까.
그리되면 뒤는 쉬워질 거였다.
‘둥지는 여왕의 것이니까.’
무려 여왕의 이름을 붙여서 만들어진 둥지다.
그만큼 여왕의 영향력이 크다는 이야기.
개미굴에서처럼 여왕이 잡아먹히거나 하는 참사만 없다면, 이 뒤는 수월해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자신들을 지배하던 여왕이 사라지면 우왕좌왕하는 건 기본이었고.
시간이 지나 먹잇감이 떨어지면 서로를 공격하기까지 하곤 했으니까.
해서 신이 났었는데.
“왜 그래요?”
“이것들 여왕이 아냐.”
“당연히 아니겠죠. 이렇게 여왕이 많을 리가 없으니까요.”
“여왕이 아니라서 문제인 거야.”
“왜요?”
“하나, 하나가 여왕급으로 강해. 전체가 강해질 만큼의 힘을 여왕이 갖췄다는 건데 말이야…… 그럼 여왕은 얼마나 강할까?”
“……아.”
“뭐…… 알고 보니 여왕이 자기가 낳은 개체만 강화시키는 계열의 힘을 얻은 거면 다행이긴 한데…… 여왕 자체가 강해져서 그 아래도 같이 강해진 경우라면…… 그 뒤는 알겠지?”
그제야 모두 현실을 깨닫는다.
최악일 수 있는 상황을.
모두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나와 같이 현실을 깨달은 거다.
가장 심각해진 이진성이 물어왔다.
“하…… 이거 깰 수는 있는 거랍니까?”
과연 이곳을 깨는 것이 가능하냐고.
그에 대한 내 답.
“……모르겠네.”
확신이 없었다.
상황이 심각해졌다.
* * *
던전 난도가 높다 느낄 줄이야.
회귀를 하고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절망적이긴 하다.
여왕이라 착각할 정도로 강력한 하나, 하나의 개체. 약점이 있다곤 하더라도 수가 많아지면 그걸 상대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적이 적지도 않았다.
무려 위성 도시 하나를 잡아먹은 던전이니까.
계속해 영역을 늘려가는 던전 브레이크의 특성을 생각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적은 더 늘어만 가겠지.
그러니 절망적이랄 수밖에.
그렇다 해도 마냥 손을 놓고 있을 내가 아니었다.
절망에 잡아 먹힐 리는 더더욱 없고.
“캠프 꾸려.”
“……여기에다가요?”
“일대 있는 놈들을 다 죽여놨으니, 당분간 안전할 거야. 그걸 이용해야지.”
“아. 이해했습니다. 바로 설치할게요.”
다른 방식으로 뚝배기를 깨면 될 일이다.
* * *
캠프를 설치하고. 우린 곧바로 주변 탐색에 나섰다.
적은 우리에게 기습을 가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개체들.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 정찰을 하는 게 쉬울 리 없다.
나와 이진아.
이 둘 정도만 정찰을 나설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 이런 식의 공략도.’
정글을 헤치고 움직였다.
-키이이…….
캠프를 꾸린 구역을 움직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적들이 보였다.
큰 몸을 잔뜩 구겨서 숨기고.
능력을 이용해 기척까지 줄이고 있는 놈들이 보인다.
-…….
[당신은 숨어 있는 적성 개체 : 바실락의 새끼를 발견하였다.]
동면 상태인 게 분명했다.
놈들은 숨소리조차 느리고 옅었다.
초보 헌터라면 이를 보고 건드릴 게 분명했다.
동면에 빠진 적이라니.
그대로 멱만 따버리면, 금방 처리할 수 있을 먹음직한 먹이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저것도 일종의 미끼였다.
괜히 몸을 움츠린 게 아니다.
잘 보면 약점인 눈은 가려져 있었다.
눈만 보호한다면 바로 죽지 않을 테니 한 자세다.
그렇다고 억지로 눈을 드러내게 한다면?
적이 동면을 했으니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만큼 큰 오산은 또 없다.
놈들은 내가 건드린 순간 곧바로 깨어날 거다.
그리곤 덮쳐오겠지.
한두 마리가 아닐 거였다.
‘역시 많아…….’
주변에는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개체가 숨어져 있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개체만 건드려도 수십 마리가 쏟아질 거였다.
그야말로 산 몬스터가 만들어 낸 함정이다.
‘감당 못 할 건 없다만…….’
이 안에 수십을 상대하다간 다시 수백이 오겠지.
그런 식으로 줄이는 것도 혼자라면 즐기겠다만. 지금은 파티원들이 있었다. 아쉬워도 그런 식으로 처리할 일은 아니었다.
나는 그러한 동면 개체들을 피해 슬그머니 움직였다.
‘괜히 건드릴 필요 없지. 우선 위치만 알아놔도 됐어.’
탐색이라는 첫 목적.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적들의 위치를 하나, 둘씩 파악해 나갔다.
* * *
우리는 북과 남으로 둘을 나눠 도시 정찰을 해왔다.
그러고 이틀.
거대한 도시 곳곳을 움직이며, 상황을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북쪽으로 만 마리가 더 넘는 개체가 있는 걸로 추정돼요.”
“흠…… 내가 맡은 남쪽 지역도 그 정도는 돼. 총 수량 이만인가.”
“이 도시에 이만이나 되는 몬스터가 있는 거라고요?”
“이진성, 놀랄 거 없다. 이만도 생각보단 적은 거야.”
“맞아, 동생. 문제는 갈수록 늘어날 거란 거야.”
“……하씨 누가 동생이래. 그나저나 더 늘면 그건 큰일이네.”
적들의 수는 추정하기로 당장은 이만 마리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그 수는 불어날 거였다. 알에서 깨어나는 몬스터들이 있었으니까. 실제로 꽤 많은 거미 몬스터들이 알을 깨고 나오는 걸 봤었다.
수백 마리가 단숨에 알을 깨고 나오는 그 광경이란.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지.’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다행인 건 그 수백 마리의 거미들이 꽤 포악하단 거였다.
바로 깨어난 놈들은 굶주려 있었다.
알에 있는 영양분을 노리기보단, 제 경쟁자라 할 수 있는 형제들을 노렸다.
수백 마리가 깨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서로를 잡아먹는 거였다.
300이 200이 되고.
다시 100이 된 후에야 놈들은 만족스러운 듯 그 자리를 떠났다.
대략 3분의 2 정도가 죽어버리는 셈이었다.
문젠 남은 100마리도 많단 거긴 하다만. 300마리보단 나았다.
어쨌건 적의 수는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갈수록 먹이는 줄어들 테니 수가 늘어나는 건 대략 3만 정도일 거야. 우리가 정찰을 제대로 못 한 곳도 있을 테니 총 수는 3만 5천 마리 정도로 잡아보자고. 그게 안전할 거니까.”
“3만 5천이라…… 너무 많은데요.”
이진성의 말대로 질릴 정도로 많은 수다.
하루에 100마리를 잡아도 1년은 걸릴 수다.
300~400마리를 잡아도 100일이다.
“이걸 다 언제 잡는답니까?”
“그래도 잡아야지.”
“……한 달 만에요? 될 리가 없는데요.”
문제는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대략 한 달 정도라는 거.
이 시간을 넘어가면 적의 영역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늘어날 거였다.
정글이 커진다는 이야기.
그때 가서 또 다른 도시를 이 정글이 잡아먹게 되면?
그땐 3만이 아니라 적이 수십만으로 늘어날 수도 있었다.
인간만큼이나 맛있는 먹잇감은 또 없으니까.
그러니 그 전에 끝내야 했다.
“하루에 천 마리 조금 넘게 사냥하면 돼. 한번 해봤잖아? 수백 마리 정도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어.”
“……미쳤네요.”
그러니 우리가 잡을 건 하루 천 마리가량이다.
질릴 정도의 숫자.
그러나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본래 대다수 파티가 이런 식으로 사냥하잖아. 그간 우리 사냥이 너무 빨랐던 거라고.”
“맞긴 하죠. 맞기는…….”
회귀를 하고 처음으로 정석적인 사냥 방식을 택했을 뿐이다.
팀원들로서는 그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기사.
나를 필두로 하여 움직였던 팀원들이다.
수련이랍시고 억지로 어려움에 처하게 만든 건 여러 번 있긴 하다만.
그래봐야 전투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다.
적응이 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의견이 새로 나왔다.
“……그렇다 해도…… 차라리 피해가 크지 않으려면 여왕을 노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여왕부터 노리자는 거.
이진성의 생각치곤 꽤 괜찮은 생각이다.
어차피 계획에 있었던 것이기도 하기에 난 바로 설명해줬다.
“맞는 말이야. 여왕을 노리긴 해야지.”
“그럼 바로 가는 것도……!”
동시에 진실도 말해줬다.
“못 해.”
“예?”
우리는 바로 여왕을 노릴 수 없단 진실을.
그에 이진성이 당황한다.
“남북으로 그렇게 뒤졌는데도, 둥지를 찾지 못했어.”
“……그게 말이 돼?”
“안 될 건 또 뭐야. 본래부터 바실락은 그래.”
둥지 안, 그 안에 고치를 만들어 내고 똬리를 트는 게 바실락의 특기다.
똬리를 틀고 있을 그때 녀석은 숨죽이고 있는 편이었다.
적이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고치에 있을 때가 가장 약할 때니까.’
그러기에 놈의 고치는 본래부터 찾는 게 힘들다.
나는 그에 대해 설명해줬고.
이진성은 그제야 납득했다.
그게 아닌 경우도 말해주었다.
“똬리를 틀고 있는 게 아니면 또 뭐 있는데요?”
“이미 고치를 뜯고 나왔을 경우.”
“……한마디로 진화를 끝낸 경우라 이거군요.”
“그래. 그 경우면 최악이겠지. 지금만 보더라도 개체들이 저리 강한데, 여왕은 또 어떻겠어.”
“후…….”
여왕이 고치를 뜯은 최악의 경우도 설명해줬다.
그리고 그 설명은, 우리가 계속해 달려야 할 이유가 되어줬다.
고치 안의 여왕을 찾아내기 위해서든, 혹은 이미 고치를 뜯고 나온 여왕이든 간에 상관없이 거미들의 개체 수를 줄여놔야만 전장은 우리에게 유리해진다.
그러니 달릴 수밖에.
“……정말 미친 듯 달려야겠군요.”
“그렇지.”
그 뒤로.
우리는 쉬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1주 차.
처음 구축하였던 기지는 버린 지 오래였다.
처음부터 완벽한 기지를 구축하기엔 부족한 장소였다.
더 좋은 장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 장소를 찾는 사이.
-키이익!
-켁!
“바로 다 죽여. 주변 개체 오기 전어 어서!”
“예!”
[당신은 적성 개체 : 바실락의 새끼를 사살하였다.]
[당신은 적성 개체 : 바실락의 새끼를…….]
수많은 바실락의 새끼들을 처리하였다.
10일 차.
도시 중앙에 제대로 된 기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적의 침입을 살피기 좋은 장소였다.
회귀 후 처음 짓는 거점기지나 다름없는 셈. 그러나 이전의 경험을 살리고 보니 꽤 괜찮은 기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래 만끽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저 빌어먹게 높은 나무들만 아니면 전역이 보였을 텐데, 아쉽네요.”
“뷰 따위를 따지고 있을 때는 아니니까. 자, 바로 다음 사냥 가자고. 교대해 줄 시간이야.”
“읏차. 그래야죠.”
이번 사냥은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했으니까.
교대까지 해 나가며, 지속적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낮엔 마리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로.
밤엔 나와 이사야, 이진아같이 그에 어울리는 자들로 파티를 짰다.
이진성은 의외로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슬슬 광대다워지네.’
전투를 진행해가며 그는 처음 광기에 사로잡혔고.
어느 순간부터 광기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그를 기반으로 더 강해진 그는 막내 정도 수준이 아닌, 한 사람 몫을 충분히 해나갔다.
때아닌 성장이었다.
다시 15일 차.
중앙을 중심으로 점차 적을 쓸어가고 있었다.
성과는 좋았다.
가장 늦게 합류하였던 한이수.
그조차도 성장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그러한 성장들을 기반으로 우리는 사냥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스무날이 지났을까.
“……저건?”
새로운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