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화
둥지를 향한 지 얼마나 됐을까.
우리 앞을 막아서는 건, 러시아에 어울리지 않는 푸른 정글이었다.
‘추위’하면 러시아 아닌가.
일 년 내내 얼지 않는다는 부동항.
그러한 부동항이 존재하는 러시아 남부라지만, 그 추위는 어마어마하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이 더 춥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만.
평균적인 기온을 생각해 보면, 더 추운 곳은 분명 러시아였다.
그런데도 떡하니 정글이 존재하다니.
“개변이 완료된 거 같은데…….”
“기간이 길었으니까요.”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며 퍼져나가는 기운.
그 기운은 몬스터뿐만 아니라 그 일대를 뒤바꾼 게 분명하다.
던전과 같은 형태로 지형 자체를 뒤바꾸고, 환경까지 그에 걸맞게 변형시킨다.
이는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하고도 유효하다.
한 마디로 갖은 노력을 다해 복구시켜야 한단 이야기.
걸음을 디딜 때마다 간간이 보이는 도시의 폐허들.
간간이 밟히는 유리 조각 따위들.
그것들이 이곳에 도시가 있었다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이래서야 생존자가 있을까 싶었다.
‘도시에 있는 자들은 다 죽었을지도 모르겠어. 안 좋은데.’
아니, 다 잡아 먹혔을지도 모른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고.
그 뒤에 일어나는 일은 말 그대로 살육극이니까.
그렇다 해도 던전 브레이크는 처리해야만 했다.
그대로 두게 되면.
스르르르-
지금처럼 저 기이한 환경이 바깥으로 계속해 뻗어 나가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도시 하나가 아니라, 국가가 잡아 먹힐 수 있었다.
그러니 멈추기 위해선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야 했다.
이왕이면 그 환경도 복구시키는 게 최선이다.
환경을 그대로 두면 브레이크가 다시 일어날 수 있으니.
“여기를 복구하려면 일이겠네?”
“얼마를 들여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니 이대로 복구를 안 할 지도요.”
그런데 나헤나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왜?”
“본래 여기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위성도시쯤 되었거든요. 던전 사태가 일어나고 새로 만들어진 곳인데…… 보다시피 이 꼴이어서는 이득도 안 나겠죠?”
“뭐, 이해는 가긴 하네.”
“진행하더라도 최소만 진행하게 될 거예요. 그게 최선이니까요.”
“최선이라…… 뭐, 대응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른 법이니까. 이해해.”
이른바 가성비를 따지는 느낌이다.
도시 단위에 가성비를 따지는 게 우스운 노릇이긴 하다만.
‘어쩔 수 없겠지.’
땅이 넓은 게 곧 국력이 아닌 시대다.
지킬 것이 많아지기에, 되려 소모되는 국력이 많아진다.
그러니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딜 지키고 살릴지.
혹은 어디를 버릴지를.
이곳 위성 도시는 버려지는 걸 선택당한 거다.
문제는 마냥 버리면 안 된다는 거다.
우리가 상대하는 건 인간보다도 더 집요한 존재들이니까.
“그런데 말 그대로 최선만 하면 큰일 날 거야.”
“왜요?”
숨길 게 있나.
나는 가감 없이 말해 주었다.
“나헤나, 당신 말대로면 여기가 재앙의 바람이 일어난 첫 근원지니까. 그런 근원지는 그대로 두면 던전 브레이크 이상의 게 터지거든.”
“어떤 거요?”
“또다시 쉽게 바람이 불겠지. 혹은 더러운 악마가 재침공하든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거든.”
“……후.”
그 결과 나헤나는 몇 번의 욕설을 꽤 길게 날려댔다.
해석 아티팩트가 해석하지 않는 욕설들이라니.
나조차도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욕설의 향연들이었다.
하기사.
이제 이 남부는 나헤나의 것이나 마찬가지.
제 영지에 원치 않은 침략자의 통로가 만들어진 셈이지 않은가.
이 정도 욕설을 날리는 게 차라리 신사적인 걸지도.
그런데, 아무래도.
그러한 욕지거리를 날리는 여유도 그리 길게 가질 일은 아닌 듯싶었다.
“……다들 피해!”
쒜에에에엑-!
공격이 날아들고 있었으니까.
* * *
‘기습!’
가까이 올 때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신의 육체를 가진 지금.
어지간히 기척을 죽여선, 내 감각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런데도 내 감각을 피해 들어 왔다라.
‘가호야.’
어떠한 가호를 지닌 게 분명하다.
몬스터라 할지라도 특수한 개체는 가호를 사용하곤 하니까.
특수능력이니, 변종이니 하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있긴 하다만.
지금은 그딴 명칭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콰아아앙-! 콰앙-!
다가오는 공격부터 막아 내야 했다.
놈은 재빠르기까지 했다.
“뭡니까! 뭐예요!”
“잘 집중해서 봐! 아니 느끼도록 해!”
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이동을 구사했다.
검은 무언가가 슥- 움직이나 싶으면, 어느새 공격이 다가와 있었다.
이런 공격을 처음 당하는 건 아니었다.
‘리바이……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네.’
후보자가 되어서 왔던 리바이. 검은 기운을 둘러쓰고 왔던 그의 공격이 이러한 방식이었다.
그러기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터어엉-! 텅!
박동길은 그걸 막아 내는 데 성공하기까지 했다.
“우선 뿌리고 봅니다. 다들 뒤로요!”
화르르륵-!
이에 질세라, 이진성은 푸른 화염을 내뿜어냈다. 광범위 공격으로 적을 막아 낼 요량인 게 분명하다.
그도 아니라면.
“정체를 드러내라고! 새끼야!”
불에 그을리며 나타날 적을 찾아내는 거거나.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은 센스다.
모습을 드러내기만 한다면, 지금 막 암흑의 화살을 손에 쥐고 있는 김민하의 강력한 한 방이 쏘아질 테니까.
완벽한 준비였다.
그사이 생각했다.
‘여왕이 이리 바로 나오나……?’
이 정도 개체라면 여왕이 아닐까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도시가 잡아 먹힌 지 한 달이 넘었다.
그 사이 여왕은 분명 강화가 됐을 거다. 그게 어떠한 방식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만.
‘차라리 잘 됐다.’
지금 이 기습을 가한 게 만약 여왕이라면?
녀석은 대단한 능력을 얻지 못한 게 된다.
기껏해야 개체 강화 정도나 되었다는 이야기다.
혹은 기척을 숨기는 어떠한 가호를 받았을 거다.
그러니 잘 되었다 하는 거다.
‘육체 강화 계열은 까다롭진 않지.’
상대가 빨라졌다면, 더 빠르게 움직이면 될 일이고.
힘이 강해졌다면 그 힘에 맞추어 이쪽도 버프를 넣으면 될 일이다.
까다로운 특수 계통이 아닌 한은, 이쪽에선 대응해 낼 수 있었다.
그걸 알기에 나는 곧바로 외쳤고.
“마리!”
“강화해 드릴게요! 당신을 밝게 하는 눈을!”
마리는 그것을 바로 알아들었다.
[당신은 동료로부터 기도 : 시야의 강화를 받았다.]
[당신은 동료로부터…….]
지금 필요로 한 모든 버프가 파티원들에게 스몄다.
강화된 육체를 기반으로 파티원 전부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키이이……!
얼마 가지 않아 성과가 드러났다.
적이 확실히 보였다.
거대한 육체를 지닌 거미.
8개의 다리에 칼날처럼 삐쭉삐쭉한 잔털들이 나 있고. 그 두 눈은 시퍼런 거미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시퍼런 눈은 수백 개나 돼서 환 공포증을 일으킬 만큼 징그러웠고.
갑각이어야 할 껍질은 어쩐 일인지 사람 피부를 길게 늘려 놓은 듯했다. 그 위에 염증으로 보이는 무언가까지!
흉악한 모습이었다.
이에 파티원들은 질색했다.
“미친 거미 새끼! 징그럽다고!”
“으아아아! 흉물스러워! 그때 개미들보다도 더!”
역대급으로 징그러운 적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쪽 파티에 징그럽다고 두려워하는 자는 없었다.
“그러니까 빨리 죽여야지. 공격해!”
“꺄악! 어서 죽여요!”
콰아앙-!
되려 평소보다 더 빠르게 공격을 날려댔다.
전투가 더 치열해지고 있었다.
* * *
빠르게 끝날 거라 생각했던 전투.
그것은 꽤 길게 이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계속해 적 병력이 추가되었으니까.
징그럽기 그지없는 거미들의 행렬은 계속해 이어졌다.
“저기 또 온다!”
“지겨운 새끼들…….”
놈들은 하나 같이 제 기척을 숨길 줄 알았다.
그렇다 해도 버프를 받은 우리의 눈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기습은 우선 보이게 되면 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젠 저들의 약점도 알아낸 상태다.
“눈부터 찔러!”
환공포증을 일으킬 것 같은 수백 개의 눈.
그 눈을 파괴할 때마다 저들의 능력은 급감했다.
화르르륵-!
그러기에 눈부터 태워버리면 됐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하나는 저들 개체 수가 너무 많다는 것.
다른 하나는.
‘종류도 너무 다양해. 이건 개미둥지 때보다 더한 거 같은데?’
그 종류가 많단 거였다.
폭탄이나 거체를 유지한 거미 따위는 없긴 했다만.
작은 거미를 수천 마리 다루는 소환사로 보이는 녀석이라든가. 산성독을 멀리서 뿜어 내는 개체들도 있었다.
또 일부는 징그러운 피부를 지닌 가운데,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한 것도 있었다.
완벽한 인간의 모양은 아니긴 했다.
다리가 여덟 개인 인간은 없으니까.
그렇다 해도 저들이 징그러운 건 당연하거니와 혐오감이 느껴지는 것까진 어쩔 수 없었다.
마치 무언가 실험을 하다가, 망가진 혐오스러운 개체를 보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러나 혐오에 절여져 있을 시간은 더 없었다.
푸화아악-!
전투를 지속해야 했다.
“또 포격 온다!”
“자기들끼리 포격 맞도록 유도해. 눈을 녹아 버리게 하라고! 밀어붙여!”
“옙!”
지속되는 전투 속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게 있다면 하나.
개체 간의 약점이 같다는 정도일까.
-키이이!
-킥!
눈만 파괴하면 저들을 제압하는 건 쉬워졌다.
쿠우웅. 쿵.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르게 적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 속도도 더 빨라져 갔다.
지한휘 만은 못하더라도 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숙련된 전사나 다름없었으니까.
부수고, 또 부수는 데 이들만큼 익숙한 자는 이 세계에 많지 않았다.
* * *
그렇게 얼마나 전투를 수행해 갔을까.
일대의 거미들이 전부 죽어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추가되는 거미들도 더 없었다.
“후우…….”
“끝인가?”
“야야. 그거 클리셰 밟는 거잖아. 그런 말은 말라고!”
되지도 않는 농담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겨났다.
그제야 다들 긴장이 풀렸는지, 그 여유를 한껏 만끽하였다.
적이 어떻든 간에, 이를 상대하여 승리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그래도 들어오자마자 수백의 거미를 격살하였으니.
다들 나쁘지 않은 성과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자축하고 있었다.
보통 이럴 때면, 지한휘가 가장 먼저 나서서 분위기를 더 풀어주곤 했다.
전장 속에서 쓸데없이 긴장만 해대서야 실수가 잦아질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팀장으로서 슬슬 그가 나서주어야 할 때였는데.
지한휘는 전투가 끝난 팀원들을 다독여주기보다는, 적의 시체에 가까이 다가가 무언가 살피고 있었다.
“흐음…… 이거 안 좋은데.”
그는 표정은 전투에 승리한 자답지 않게 심각하였다.
그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 도시에서 앞으로 그려질 일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좋게 그려지지를 않기 때문이었다.
마냥 일이 잘 풀릴 거라 예상하기에, 바로 눈앞에 시체들이 문제였다.
‘……최악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