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당신은 가호 : 매혹의 조종자의 공격을 받고 있다.]
[굉장히 강력한 매혹에 노출되었다.]
이 자식 보게?
악수를 건네는 표정이 심상치 않더라니.
“으음…… 시작하자마자 장난질인가.”
“어머? 무슨 말씀을…….”
이전에 비해서 꽤 강력한 매혹을 걸어온다.
과연 러시아를 먹으면서 성장했다는 건가.
“비우더니 차오르는 것도 있더라고요. 이건 당신이 있는 동양사상과 비슷한 맥락일지도요?”
“개소리만 는 거 같은데……?”
우리가 말하는 그사이에도, 내가 가지고 있는 가호들은 나를 보호하고자 움직였다.
[당신이 지닌 가호 : 상급 저항이 매혹을 저항하고 있다.]
[당신이 지닌 기술 : 신의 육체가 육체에 깃드는 매혹을 분석하고 있다.]
나로서도 예상치 못한 움직임도 있었다.
‘……어쭈?’
상급 저항이 매혹을 이겨내고자 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
이전에도 이미 겪어 본 바가 있었기에 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재밌는 건 신의 육체였다.
단지 기술이라 여긴 신의 육체.
이름이 거창하기까지 한 이 기술은 항시 작용하고 있는 패시브 기술이었다.
내 육체를 강화시키는 게 주력의 능력.
영력을 사용하면서 가해지는 과부하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녀석이 이 신의 육체란 기술이었다.
근데 이게 매혹을 분석한다고 나설 줄이야.
하기사.
매혹이 꼭 정신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정신적인 매혹도 있다면…… 육체적인 매혹이 분명 있을 법도 하지. 나헤나 녀석이 매혹의 조종자 정도 되는 칭호를 들을 정도라면. 이건 이상하지 않아.’
육체적 매혹도 매혹이다.
다만, 정신적 매혹에 비해서 하급으로 칭해진 것일 뿐이다.
그러한 매혹을 나헤나가 사용하는 거.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자연스러운 건, 그러한 매혹을 이겨낸답시고 신의 육체까지 움직인다는 건데.
이건 예상치도 못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은 또한, 기상천외한 방식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결과는 꽤 놀라웠다.
[기술 : 신의 육체가 당신에게 전해지는 매혹의 분석을 완료하였다.]
[기술 : 신의 육체가 당신에게 전해지는 매혹을 수련의 도구로 삼는다.]
[기술 : 신의 육체가 매혹을 연료 삼아 당신을 단련시킨다.]
[당신의 종합적인 저항 능력이 대폭 상승하였다.]
[기술 : 신의 육체가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다.]
‘……미친.’
과연 신의 육체라 이름짓기에 걸맞은 기술인 건가.
자신에게 주어지는 과부하의 범위 자체가 달랐다.
근력을 키우기 위한 무게나, 체력을 키우기 위한 지속적인 자극 따위로 육체를 강화하는 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종류를 안 가리는 게 분명해.’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육체를 건드리는 것이기만 하면.
그것을 연료로 삼아서 제 몸을 강화시키는 거.
그게 ‘기술 : 신의 육체’가 지닌 진짜 힘 중 하나였던 거다.
아무리 나라도 생각지 못한 결과. 또한 새로운 수련 방향이었다.
그러니 놀라울 수밖에.
물론 이 놀람이라는 건 내가 아닌 다른 자에게도 새롭게 하나 생겨나 있었다.
“……너무 쉽게 이기는 거 아니에요?”
“글쎄?”
“하, 정말…… 대체 무슨 괴물들인 건지.”
나헤나도 놀라 있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매혹을 건 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자도 포함돼 있었다.
내 왼편과 오른편에 자리한 이사야와 마리.
그 둘에게도 나헤나의 매혹이 함께 쏘아졌다.
재밌는 건, 이 둘 다 그 매혹을 이겨냈다는 거.
“재밌는 장난감이네. 연구해 볼거리가 넘치겠어.”
이사야는 그녀가 쏘아 온 매혹의 기운을 제 지팡이에 끌어모았다. 그러더니 그것을 그대로 보관했다.
주인인 나헤나가 있는데도 기운을 똑 떼어서 제 것으로 삼은 거다.
그녀의 강력한 지배력을 보여 주는 일면이다.
마리?
그녀는 더 했다.
“못된 악취미로군요?”
그녀에게 닿는 순간, 나헤나가 보낸 매혹의 기운은 녹아 사라졌다.
말 그대로다.
매혹의 기운은 그녀의 몸에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했다.
‘역시 그 미친 신이야.’
이는 나로선 예상 범위 내의 일이었다.
마리를 지켜주는 성좌.
그게 누군진 몰라도 최상급의 성좌다. 게다가, 그게 무엇이든 그녀는 바른길로만 향하도록 축복을 뿌려주었다.
그 축복은 일종의 개념 그 자체였다.
바른길.
오로지 마리에게만 이득이 되는 길로만 향하게 하는 ‘개념’이었다.
이렇나 개념은 꽤 광범위했다.
행운, 수련, 실전, 우연, 길 찾기…… 등등.
그게 무엇이든 그녀가 향하고자 하는 방향은 언제나 바른길로 인도되게 되어 있었다.
그 인도가 먹히지 않은 예외는 내가 알기로 단 하나뿐이었다.
‘공허.’
모든 것을 잡아먹는 공허.
오로지 그것만을 막지 못했을 뿐이다.
여하튼.
그런 그녀에게 매혹이란 게 그녀를 바른길로 이끌어주는 것이 되겠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녹아버렸을 뿐이다.
내가 보기엔 예정된 일이었다.
그러나 나헤나가 보기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이렇게 힘이 완전히 사라질 줄이야.”
말 그대로 그녀의 힘 그 자체가 사라져버렸으니까.
차라리 나의 경우는 매혹에 실패했더라도, 결국엔 힘이 돌아왔는데.
이번은 그거도 없으니 놀라울 수밖에.
재밌는 건.
“환영 인사 한번 해 주는 거였는데…… 이러면 제가 너무 손해네요.”
“이야. 그걸 환영 인사라고 해준 거야? 너무 거창한데. 두 번 인사했으면, 동맹이 깨질지도 모르겠어?”
“어머, 설마 그러려고요.”
이러한 모든 일을 그녀는 환영 인사라고 퉁쳐 버리자는 건데.
뭐, 본래라면 내게 공격을 한 자는 그게 누구든 용서를 하지 않는다만.
‘한번 두고 볼까?’
러시아를 먹고 남부의 여왕이라 불리는 나헤나 정도라면야.
“이번 러시아행은 제대로 챙겨줘야 할 거야. 안 그러면 수틀릴 거 같거든.”
대가만 제대로 지불해 준다면, 얼마든 용서해 줄 용의가 있었다.
그 대가로는 뭐가 좋을까.
그래.
“얼마면 될까요?”
“러시아 전부.”
“……어머.”
그녀가 가진 전부 정도라면야.
넘어가 줄 수 있겠지.
‘역시 내가 좀 대범하다니까.’
길드장이 된 지금이니, 꽤 여유를 보여주는 거 같은데.
근데 왜.
“……역시 미친 사람이야.”
“와.”
“헌터 아니었으면 대도가 됐을지도……?”
다들 질린 표정이냐.
* * *
공항을 나오고.
우리는 정보국 국장과 함께 미리 마련된 안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말이 안가였다.
그 크기는 김민하의 저택보다도 더 컸다.
안에는 못해도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제각기 바삐 움직이는 걸 보면 무언가 진행하고 있는 건 확실했다.
저들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안가 중앙에 마련되어 있는 상황판들의 수치가 바뀌었다.
그때까지도, 나헤나는 여유롭게 농담을 보내왔다.
“러시아 전부는 아니더라도, 남부는 드릴 수 있겠네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농담을 받을 때가 아니었다.
현실을 직시해야지.
“그런 것 치고는 엉망이잖아?”
“어머. 수치만 보이는데도 그게 파악되세요?”
“안 되는 게 이상하지 않나.”
상황판은 여러 숫자로 이뤄져 있긴 했다.
암호 따위가 섞인 건 아니지만, 한눈에 봐도 상황을 알 정도로 쉬운 방식들은 아니었다.
그래프라던가 사진 화면 등으로 보여 주는 건 꽤 제한적이었으니까.
적당한 훈련을 받아야만 해석할 수 있을 화면이다.
물론 그 훈련이 어려운 건 아니다만.
대다수 헌터들이 이런 거 훈련하고 다니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회귀 전은 필수 요건이었는데.
이게 놀라운 일이었나.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네요, 정말.”
“음? 그런가.”
매혹을 이겨냈을 때보다도, 더 놀란다.
‘내가 이런 거 못 볼 거 같은 관상인가?’
-……평소 하는 행동을 생각하거라.
‘젠장.’
해서 괜히 심술이 나기는 하는데. 당장은 일을 이야기할 시간이었다.
여기서 더 끌어봐야, 사람은 계속 죽어 나갈 테니까.
“예. 전혀 관심 없을 거 같았거든요. 그럼 이야기는 편하겠네요.”
“해봐.”
“흠흠…… 그러니까요.”
잠시 목을 추스른 나헤나.
그녀는 곧바로 설명을 덧붙여줬다.
그리고 그 설명을 듣고 내려진 결론은 하나였다.
“바실락의 둥지군. 최악인데, 이거.”
‘……잘못 걸렸다. 이번은 지한휘 너라도 실패할 수도 있겠구나.’
상황이 좋지 못하였다.
* * *
바실락.
거미 여왕을 부르는 총칭이었다. 어째서 바실락이란 이름으로 불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던전에 들어섰을 때 들리는 음성이 있기에 우리는 바실락이라 칭할 뿐이었다.
언제고 그 거미가 있는 던전에 들어가면,
[당신은 던전 : 바실락의 둥지에 들어섰다.]
체계는 우리에게 바실락이란 이름을 들려주곤 하였으니까.
꽤 많은 바실락이 있었다.
종류도 다양하였다.
바실락의 둥지.
바실락의 사냥터.
바실락의 거미줄.
바실락의 암굴.
내가 직접 돌아본 던전만 넷이었다.
‘어쩌면 하나의 개체가 여러 개의 목숨을 지닌 걸지도 모르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확실한 건 언제나 이 이름이 붙은 던전은 그 끝에 거미 여왕 바실락이 등장한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바실락이란 여왕은 언제나 상대하기 힘들다는 게 또 다른 문제였다.
“난이도가 최악이겠는데.”
“그렇죠. 시간이 지날수록 난도는 상승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여왕 바실락.
이것을 일정 개체 수의 새끼를 낳기까지 무한히 번식한다.
그러고 나서?
수를 채우면 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게 미치는 부분이다.
던전 보스면서도, 보스실에 가만히 있을 줄을 모른다.
던전 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저 돌아다니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놈은 타고난 사냥꾼이었다.
보스인 주제에 기습을 가한다.
새끼를 상대하고 있는 틈을 노리기도 한다.
두꺼운 거미줄을 용케도 숨겨놓고, 함정을 판다. 이중, 삼중으로 되어 있는 최악의 함정을.
때문에 이 던전이 나오면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아주 빠르게!
‘여왕 사냥이니, 왕위찬탈이니 하는 이름들을 붙인 게 그때부터 시작이었지…….’
만약 빠르게 처리하는 것도, 레이드로 제압하는 것도 실패한다면?
던전이 방치되는 기간만큼 여왕은 더 강력해져 간다.
단순히 힘만 강해지는 게 아니다.
“후. 바실락 둥지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가장 먼저 터졌으니까…… 한 달요. 도시 하나를 잡아먹었죠.”
“젠장. 특수 능력도 붙었겠는데.”
“확실히 그렇겠네요. 그게 어떤 능력일지는…… 알 수 없고요.”
“그게 문제지.”
알 수 없는 능력이 랜덤으로 붙어 버린다.
그 능력이 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네 번을 상대하는 동안 두 번 능력이 붙은 걸 보았고.
그 두 번 다 능력이 달랐으니까.
또한 나를 만나기 전 다른 둥지에서 바실락을 상대했던 동료들의 증언을 들어봐도 이는 마찬가지였으니.
‘……최악만 아니길 빌어야겠네.’
제발 최악의 능력을 얻은 게 아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바람을 가진 채로.
“도착이네요. 여기가…… 잡아 먹힌 도시예요.”
“……가자고.”
우리는 곧바로 둥지를 향해 발을 디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