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지한휘를 비롯한 그의 길드원들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종착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본래 있던 공항은 망가졌고, 그 위에 임시로 마련된 비행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폐허가 된 곳을 향하는 길드원들이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가진 자는 없었다. 하물며 불안에 떠는 자도 없었다.
이곳에 있는 길드원들 모두 그의 수련장에서 수련을 행한 자들이었으니까.
자신이 지닌 강함을 믿고 있을뿐더러.
지한휘가 보였던 그 강함을 더 크게 믿고 있었다.
그러니 불안이나 불만 따위 가질 이유가 없었다.
되려 이번은 또 무슨 보상이 있을까 기대하며 나아갈 뿐이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안고 러시아행 비행기가 속도를 내고 있는 사이.
온갖 파괴적인 것들도 같이 속도를 내고 있었다.
가장 먼저 파괴적인 것의 파편을 맞이한 곳은 일본이었다.
-저것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한국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난 게 아닙니까.
-일한 관계를 해칠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일한 관계와 파편에 대한 주장을 앞세워, 한국에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 자들.
소위 일본의 정치 세력은 재편된 지 오래였다.
정치 세력이 아니라 길드 세력으로 말이다.
이전처럼 쇼군이니 하는 행위들은 만들어지지 않긴 했다만.
길게 이어진 일본의 지형 특성 때문인지, 곳곳에서 세력이 만들었다.
지역마다 호족 세력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중 가장 거대한 세력을 지닌 건 역시 도쿄 쪽의 세력이었고.
후쿠시마나 아오모리 쪽이 크게 힘을 합하여 두 번째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을 합하여 북부 세력이라 말했다.
-그게 책임을 묻는다고 물어지겠습니까?
-뭐라고요?
-재앙 아닙니까. 재앙.
-허…… 남부는 지금, 곧바로 바람이 들이닥치지 않아서 여유롭다 이겁니까?
-누가 또 그런 말을 했답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걸 이야기 한 거지.
-허어…….
변방이랄 수 있는 오키나와는 이번에도 크게 힘을 쓰진 못하였으나, 다른 남은 세력들과 결탁하여 나름 소득은 올릴 수 있었다.
이른바 중립 세력이란 걸 만들어 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러한 세력도 결국 이합집산을 달리해가며 뭉치는 이득 집단일 뿐이었다.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지 않나?
-왜요? 중부도 문제가 생길까 봐 그럽니까?
-자꾸 이럴 겁니까?
-허 참. 오키나와 쪽에 그 녀석이 나올 때는 말도 하지 않던 자들이…… 이럴 때만 한마음인가 봅니다?
-그때의 일은!
-……됐소이다. 그때 잃은 것들을 생각하면…….
-크흠. 내 참. 사정이 있었다잖소. 사정이.
어느 날은 북부 세력이 되어 있다가도, 또 어느 날은 도쿄에 속해있기도 했다.
때로 이러한 이합집산을 해나가다가, 순식간에 세력이 사라지고 하는 게 일본이었다.
세 개의 축이 마련되곤 그러한 일이 많이 줄었긴 하다만.
그렇다 해도, 최강이랄 수 있는 강자는 없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한계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 한국에 책임을 지게는 해야 하오!
-어떻게?
-배상이라도 해달라 말해야 하지 않겠소!
-하…… 그들이 잘도 해주겠습니다.
-남부는 대체 누구의 편이요?
-여기서 네편 내편이 있습니까? 안 되는 걸 안 된다고 할 뿐이지!
-중부도 동의하는 겁니까?
-흐음…… 현실적으로 힘들긴 하지 않소. 그 한국은 어떻든 간에 일을 해결하고 있으니…… 우린 아직 도쿄 임프 사태도 제대로 해결 못 했소이다.
-허…….
-생각해 보니 그때도 북부는 힘을 거의 안 쓰지 않았소?
큰일이 터짐에도 힘을 합하기는커녕, 서로 견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책임을 지기보다는 미루는 게 서로에게 좋은 편이었으니까.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면 나쁜 판단은 아니었다.
자신들이 지닌 작은 이권이나마 지켜내는 것이, 이들이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일지도 몰랐으니까.
-우리가 당하면? 그 뒤는 어쩔 거요?
-크흠…….
-음…….
-그 바람이 북부에만 인다고 장담할 수 있소?
-크기가 전보다는 작아졌으니…….
-작은 상태로 계속 불 수도 있는 게 바람이지!
북부 대표의 말도 맞는 말이었다.
재앙의 바람은 어디서나 불 수도 있는 법이었다.
또한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는 법.
-우리의 전력이 그리 쉽게 갉아 먹히면, 그때는 어쩔 거요? 그것들을 막을 수 있겠소?
-우리 남부도 막아 내는데 북부가 안 될 리가 있소?
-허. 우리도 어차피 한계였소. 여기서 더 깎이게 되면 그때는……. 본토 전체가 힘들 거요.
-……흠.
재앙의 바람이 아니더라도, 일본은 막아야 할 것들이 많았다.
당장 도쿄에 있는 임프 사태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
오키나와에 있는 거대한 ‘그것’.
그것은 호시탐탐 오키나와 전체를 노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북부도 문제였다.
사시사철 눈이 녹지 않는 북부의 지역들엔 일본의 오랜 설화나 전설들로 전해지는 요괴들이 똬리를 틀고 있었으니까.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고 나온 그 요괴들은 북부 세력에 있어 숙적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막아 내고자, 북부는 꽤 많은 전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이를 모르는 자는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재앙의 바람이 일게 되고.
그 바람이 요괴들과 어떠한 작용을 하게 되어, 그들의 힘을 강하게 만든다면?
-다들 명심하시오. 우리가 뚫리면, 단지 그 바람 정도는 문제가 아니게 될 거요.
일본 전체의 문제가 될 수도 있음이었다.
그나마 오키나와는 본토와 거리가 멀긴 하다만.
본토가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되면, 견제 세력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그것’이 어찌 움직일지는 아무도 장담치 못했다.
진퇴양난의 상황.
결국 이들은 자신들만의 합의를 봤다.
-……힘을 보태어 주지.
-남부도 해 주겠소. 단!
-또 뭐요?
-이에 대해 소비되는 자원은 북부가 꼭 내주시오. 전에 남부도 그리하였으니! 정 안 되면 당신들 말대로 한국에서 보상이라도 받아오면 되는 거 아니오?
-허…… 알겠소이다!
어찌 되었든 서로의 힘을 합하기로 한 합의였다.
과연, 한국이 그들의 합의 사항인 보상을 더 해 줄지는 모르는 일이긴 하였다.
다른 나라들이 꽤 많은 전력을 깎아 먹는 동안, 되려 한국은 많은 전력을 쌓는 데 성공했으니까.
당장 몇 달 전 북부 토벌만 하더라도, 꽤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았는가.
여기에 중국은 그때의 사태를 아직 제대로 해결치 못해서, 그걸 수습하느라 한국을 견제조차 하지 못했다.
이 상황에 한국의 세력들의 일본의 말을 들어준다라.
어려운, 아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몬스터 사태가 터지고서부터, 각 국가 간 협력보다는 쇄국에 가까운 방식으로 정치가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어쨌건 서로의 동상이몽 속에서.
-그럼 바로 아이들을 보내지.
-우리 쪽도요.
-좋군. 처음부터 이랬어야지!
이번만은 서로가 힘을 합하는 이합집산이 만들어졌다.
과연 그것이 좋은 결과가 나올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할 일.
샤아아아-!
곳곳에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고.
일본을 향해 방향을 바꾼, 재앙의 바람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파괴적인 조각의 이동들이었다.
* * *
“후…… 도착인가.”
그 짧은 사이, 지한휘의 길드원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아래로 내려선 그들 바로 앞에 보이는 건, 폐허나 다름없는 공항의 모습.
그들이 방금 안착하는 데 성공한 활주로조차도, 가까이서 보니 반쯤 망가진 채였다. 겨우겨우 수습해서 활주로서의 최소의 역할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달까.
‘용케도 착륙했네. 실패했어도, 죽을 녀석은 없긴 하다만…….’
그만큼 그들이 도착한 곳은 꽤 많은 곳이 망가져 있었다.
하기야,
착륙을 하고 난 비행기에서 공항으로 직행하지 못하고, 활주로에 바로 내려와야 할 지경이다.
VIP라 할 수 있는 그들이 이런 식으로 대우를 받는 판국에, 공항이란 곳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내려서고 얼마 가지 않아 일단의 무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흠…… 러시아 정보국을 먹은 건가.”
“정보 국장이네? 오. 저 녀석은 전에 상대했던 마트료시카!”
“크큭. 제대로 했네, 이사야 녀석.”
러시아 정보 국장에다가.
전에 러시아에서 나와 이사야를 애먹였던 마트료시카 능력을 지닌 요원까지.
그들이 나헤나와 함께 오고 있었다.
물론, 그 중심이 나헤나는 아니었다.
그녀는 국장의 오른편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보아하니 대외적으로는 정보 국장의 총애를 받는 요원으로서 포지션을 잡은 거 같다.
그러나 때로는 말이 없어도 진실을 아는 법이지 않은가.
일행 중심엔 정보 국장이 있지만, 다들 나헤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척하면 척이다.
‘과연…… 매료라 이거지. 능력을 제대로 썼다 이건데?’
이들 모두, 나헤나의 매료에 당한 게 분명하다.
여러 계획을 만들어 주고, 그 뒤에 나헤나를 보내기야 했다만. 과연 이 정도까지 해 줄 줄이야. 소름이 돋을 정도다.
“잘 해냈네.”
“이건 잘 해낸 정도가 아닌 거 같은데요.”
나와 마리, 이사야의 짧은 대화 사이.
어느새 정보 국장과 나헤나가 가까이 다가왔다.
“오랜만이야.”
“오랜만이네요.”
“…….”
국장은 침묵하고.
나의 인사를 받아주는 건 나헤나뿐이었다.
‘역시 재밌네.’
모든 게 내 예상대로다.
이 러시아 판. 적어도 블라디보스토크 쪽은 나헤나가 만들어 놓은 체스 판 위에서 굴러가고 있었다.
더 재밌는 것도 있었다.
“목걸이, 아직도 하고 있네? 이제 스스로 뺄 수준은 되는 거 같은데.”
“되죠.”
그녀는 아직도 예속의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예속의 목걸이가 지닌 디자인 자체는 나쁘지 않다. 심미안으로 봐도 꽤 잘 만들어진 디자인이긴 하다.
그렇다 해도 이걸 차고 있기엔 꺼림칙할 텐데.
잘도 차고 있다.
“왜요? 이상해요?”
“당연한 소리 아닌가.”
“후후. 지난 패배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와. 잘도 그런 소리를 본인 앞에서 하네.”
“기본이죠.”
과연, 와신상담(臥薪嘗膽)인가.
그 옛날 고사에서 복수를 위해서 쓸개를 맛보는 독종도 있다더니.
이건 더하지 않은가.
목걸이는 지금도 자신을 끊임없이 예속하려 시도하고 있을 거였다.
그런데 그걸 차고 생글생글 웃고 있는 걸 보면.
‘……얘도 진짜 보통은 아니다.’
-이런 인간들이 있으니 여가 패배한 것도 당연하게 보이는 구나…….
독종 소리를 듣는 나로서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이런 독종이 적어도 이번만큼은 내 편이란 의미이지 않은가.
러시아의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부터가, 여기 러시아 남부를 지배하고 있는 나헤나가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단 증거니까.
해서, 그녀가 내미는 손을 잡으며 악수를 하려는데.
“그래도 정식으로 인사해야죠. 반가워요.”
“반가워…… 음?”
……어째? 이 자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