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그것은 바람이라고 하기엔 거대했다.
다른 바람들은 지니지 못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픽 따위가 아니라…… 정말로 보이네요?”
“그래. 바람인 주제에 눈에 보이지.”
눈에 보인다.
단순히, 물리적 형태를 이루고 있기에 보이는 게 아니었다.
거대한 마력을 지녔기에 보이는 거였다.
때로, 거대한 마력은 그 자체로 물리력과 같은 효과를 드러내곤 하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기에 강한 헌터일수록 그 마력이 더욱 또렷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지한휘의 눈에서 가장 또렷이 보인다는 의미다.
그의 눈에 또렷이 보이는 재앙의 바람.
그것은 이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아니, 그의 예상이라 봐도 무방했다.
-역대급이로구나.
‘나조차도 생각 못 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바람이니까. 지금 상태에서 누군가 재앙의 바람이 일어나는 걸 견제할 수 있을 리도 없으니…… 제대로 만들어진 거겠지.’
지난 시간 수많은 던전 브레이킹을 일으킨 재앙의 바람이다.
그러한 주제에 재앙의 바람이 지닌 마력 농도는 거대했다.
그만큼 많은 공을 들인 바람이란 의미.
그게 마음에 안 들었을까.
마왕은 불만스레 말했다.
-하여간 악마들이란. 조금만 틈을 보이면 불어나는 바퀴벌레 같은 것들이니라.
‘그런 식으로, 악마에 대한 이미지를 주입하지 말라니까? 안 그래도 이번은 악마들 덕에 바람을 막을 거 같은데 말이야.’
-……칫. 여는 마음에 들지 않느니라.
‘예이. 예이. 그러시겠지요.’
지한휘에게 혼이 사로잡혔다 하더라도 마왕은 마왕.
그런 마왕이 보기에 악마들이 세를 이루는 건 마음에 안 들 수밖에 없겠지.
그 마음을 알아챈 그였지만, 딱히 호응은 해주지 않았다.
‘그놈이 그놈이지.’
옆에 마왕이 있는 덕에 많이 나아지긴 했다만.
여전히 그가 보기엔 마족도 침공군이나 다름없어서다.
그가 보기엔 악마들이 러시아에서 재앙의 바람을 빚는 사이, 마족들도 무언가 빚어내고 있을 게 분명했다.
회귀 전에도 악마들이 날뛰면, 그에 질세라 같이 날뛰는 게 마족들이었으니까.
한마디로, 그가 보기엔 도긴개긴이라 이거다.
해서 그는 마왕의 말을 받아주는 대신에, 다른 하나에 집중하며 말했다.
“이제 일어나야지?”
[당신은 신기 : 죽음을 부르는 사슬낫에 종속된 영혼을 일깨웠다.]
[당신은 상당한 영력을 소모하였다.]
안에 잠재워진 영혼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 * *
-……크히이이익……!
겁에 질린 목소리로 종속된 영혼이 깨어났다.
종속된 영혼의 정체는 악마 볼프!
영혼의 군집체 능력을 지녔으며, 지난 시간 사슬낫을 통해서 자신과 같은 악마를 동족 포식한 괴물이었다.
그러한 괴물은 사슬낫 안에 스며들어 있었다.
거대했던 군집은 전보다 더 쪼그라들어 있었지만, 남은 수만으로도 그 수가 결코 적지 않았다.
그 작은 영혼들이 이성을 잃은 채로 사슬낫 내부에 알알이 박혀 있었다.
마치 알처럼.
다른 자들에겐 결코 보이지 않을 광경.
그러나 사슬낫의 주인이 된 지한휘에게는 무엇보다 또렷이 보일 광경이기도 했다.
샤아아아아-!
그러한 영혼들이 단숨에 일깨워졌다.
영혼들은 풀려났음에 느껴지는 순간적인 자유를 만끽하다가.
-꺄아아아!
-끽!
지한휘의 존재를 눈치채곤, 곧바로 공포에 빠져들어 패닉 상태가 되었다.
그들의 주인!
영원토록 그들을 조종할 자가 누군지 깨달아서였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지한휘는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잘들 쉬었지?”
-끼이이!
-으으. 다시 잠들게 해 주십쇼!
대다수는 그런 지한휘의 웃음에 두려움만 커질 뿐이었다.
볼프의 본체였던, 작은 악마의 영혼.
그 하나를 제외하곤 모두 의지가 거세당하기라도 한 듯, 비명만 내질렀다.
되려 불만을 표하는 건 마왕이었다만.
-종속했다고 그리 대하는 거 악취미니라.
지한휘는 이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대신 사슬낫을 쥐고 있던 양손 중 오른손 하나를 떼어내며 나지막이 말할 뿐이었다.
“나와라.”
스스스스슥-
떼어지는 그의 손끝에서부터, 사슬에 종속되어 있던 영혼들이 줄줄이 따라 올라왔다.
마치 바닥에 박혀 있던 감자들이 줄기줄기 뽑혀 나오는 거처럼, 영혼들은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질질 끌려 나올 뿐이었다.
-끼이이!
-껙!
[당신은 단번에 천이 넘는 영혼을 조종하고 있다.]
[당신은 단번에 삼천이 넘는 영혼을 조종하고 있다.]
그 영혼의 수는 수천을 넘어 어느새 만에 가까워져 갔다.
그만한 영혼들의 비명조차, 지한휘에겐 아무런 타격도 가하지 못했다. 그에게 완전히 종속되어 있었기에.
그는 그런 그들의 비명을 즐기며.
“으차. 나뉘어야지, 그럼. 흩어져라!”
자신이 미리 준비한 마법진을 향해, 영혼들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 * *
휘오오오오-!
그때가 딱, 거대한 재앙의 바람과 지한휘의 거리가 1km로 줄어드는 시점이었다.
“으읏…….”
“안 딸려 나가게 조심해!”
그 거대한 바람은, 미리부터 대비하고 있던 팀원들이 몸을 움츠리게 하기에 충분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1km.
능력을 지니지 못한 일반인이 뛰어가기엔 상당한 거리지만.
거대한 마력을 머금고 있는 재앙의 바람이 다가오기엔 단 몇 분, 아니 몇 초면 충분한 거리였다.
마침 바람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었다.
샤아아아-!
재앙의 바람도, 지한휘가 무엇인가를 하는 걸 눈치채기라도 한 듯이 그 속도를 높이고 있었으니까.
이성이 아니라, 본능밖에 없는 재앙의 바람이지만.
그 강력한 본능으로, 지한휘가 하는 행위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걸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걸 보고도 지한휘의 미소는 지워질 줄을 몰랐다.
“흐흐.”
마치, 제가 지휘해야 할 악상에 푹 빠져버린 지휘자처럼.
제 손길을 타고 움직이는 만에 가까운 영혼들을 지휘할 뿐이었다.
그에게 있어 비명을 지르는 사슬낫의 영혼들은 그가 지휘하는 악장을 연주하기 위한 베이스였다.
[당신은 자신이 가진 영혼의 근원을 꺼내 들었다.]
“크흐…….”
그가 고통스레 꺼내 들어 오는 영혼의 근원.
한 인간이기에, 그조차도 단 하나밖에 지닐 수 없는 근원은 연주의 중심이 되어 줄 피아노와 같았다.
그 아래.
샤아아아-!
그간 그가 흡수한 영혼들.
천사, 악마, 인간, 마족, 몬스터…….
수많은 종류를 지니고 있는 영혼들은 둘의 협주를 도와줄 조율자들이 되었다.
[당신은 자신이 가진 영혼을 사슬낫에 종속된 영혼들과 결합시키고 있다.]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영혼들을 중심으로, 그에 종속된 사슬낫의 영혼들을 결합시켰다.
순식간에 수가 불어났던 영혼들은 그렇게 여럿이 모여 하나의 조를 짜냈다.
조화롭지 못하던 영혼들의 행렬이, 그의 아래로 모두 모이는 순간이었다.
‘지금이다!’
이때가 한휘가 기다리던 때였다.
그걸 알아서일까.
“한휘, 어서 움직여줘!”
“지금이에요!”
[당신의 동료들이 마법진의 발동을 위한 허락을 원한다.]
[허락하겠는가? Y/N]
그의 거대한 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 내고.
마리가 만들어 내는 신의 화음과 이사야가 만들어 내는 빠른 템포가 빚어져 만들어진 마법진.
그것을 발동시킬 때였다.
재앙의 바람을 막기 위한 그만의 수단이 움직일 때였기에, 애초부터 이에 대해 지한휘가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당연히 허락해야지!”
[당신은 합동 마법진의 시전을 허락했다.]
[재앙의 바람을 막기 위한 영혼의 마법진이 발동된다.]
그가 허락하고, 체계가 이를 확인한 그 순간이었다.
고오오오오-!
재앙의 바람이 들이밀며 만들어 냈던, 세상의 거대한 흐름.
그 흐름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 * *
없던 거대한 흐름이 만들어졌다.
마법진에 의해 만들어진 흐름이었다.
그 크기는 재앙의 바람과 맞먹는다고 할 정도로 거대하여 보였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속에 숨어져 있는 진짜를 지한휘는 아주 잘 알았다.
‘완전히 비어 있는,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지.’
마법진으로 만들어 낸 비대해 보이기까지 한 마력의 흐름.
그 흐름 안은 채워져 있지 않았다.
저건 일종의 허장성세였다.
본능에 따라 이리저리 떠도는 재앙의 바람의 막기 위한 자기 과시라 이 말이다.
겉으로 보면 경고이기도 했다.
이만한 거대한 흐름을 네가 뚫고 가려면, 그만큼 많은 힘을 소모해야 한다는 경고!
겉으로 보아선 재앙의 바람이 이 흐름을 뚫기 위해선 제 몸의 삼 분의 이 이상의 마력을 버려야 했다.
그리되면 재앙의 바람의 거센 힘은 사라진다.
흐름이 꺾이게 되고, 점차 사그라들어버린다.
말 그대로 태풍이 힘을 잃어 사라지는 형세가 되어 버리는 거다.
그만큼 강력해 보이기만 한 마법진의 흐름이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속이 비어 있기에 실제 뚫으려 시도를 한다면?
-잘해야 30퍼센트 정도 날리는 게 다겠구나.
‘맞아. 딱 그 정도야.’
-여가 보기에도 현시기에 그거만으로도 대단한 거긴 하구나. 그러나 네가 호언장담한 대로 바람의 방향 자체를 꺾는 건 불가능하다.
‘알지. 이미 전생에 몇 번을 경험했는데 모를 리가.’
-저 재앙의 바람이 그대로 닥치면 어찌할 것이냐? 네가 장담한 대로 바람의 방향을 꺾지 못하면 그걸 두고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 거다.
‘그러겠지. 아니, 분명히 그럴 거야.’
그러니 저 재앙의 바람이 제 스스로 멈춰줘야 했다.
이 흐름을 보고 겁을 먹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흐름이 꺾여야 했다.
그게 일차 성공이다.
이 일차 계획부터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던전들이 펑펑 터져나가겠지.’
그 여파로 인해서 결과는 더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게 된다.
작전에 참여한 모두는 이 사실을 알았다.
그러기에 불안한 듯 물어왔다.
“속을까요?”
과연 성공할 것이냐를.
떨리는 음성들이었다.
그에 지한휘는 나지막이 말했다.
“성공할 거야.”
제 희망을 담아서 말하였다.
불안한 속은 숨기고, 겉으로는 당당하게.
불안해하는 동료들의 걱정을 씻어주기 위해서였다.
‘제발……!’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가장 불안한 건 그였다.
성공하기만을 바랐다.
그러다 순간.
스스스슷-!
재앙의 바람이 몸을 틀었다.
자기 앞에 똬리를 틀고 있는, 마법진의 강대한 마력 흐름이 두려워했다.
쉼 없이 전진해 오던 방향을 슬쩍 틀었다.
때로 거대한 것들은 약간의 방향 전환만으로도, 그 결과물은 크게 달라지는 법이었다.
지금이 딱 그러했다!
재앙의 바람이 제 방향을 트는 그 순간!
그 순간에 재앙의 바람을 확 밀어젖혀야 했다.
‘이때 가속을 넣어야 해!’
그리해야 재앙의 바람이 원하는 곳이 아닌, 아주 먼 곳으로 바람을 밀어 보낼 수 있게 된다.
그걸 알기에, 지한휘는 신호했다.
“다시 한번 움직여!”
“네!”
[당신은 동료와 함께 거대한 마법진을 조율했다!]
[당신은 거대한 마법진을 조율하는 데 성공했다!]
휘오오오-!
그 신호에 맞춰, 마력의 흐름이 몸을 트는 재앙의 바람을 향해 쏟아져 나갔고.
재앙의 바람을 밀어젖혔다.
그 순간, 지한휘는 직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