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우리는 재앙의 바람을 막을 참이다.
“한휘, 이미 알겠지만 조금의 흐름도 방해가 있어선 안 돼요.”
“나도 알지. 마리야 경험이 있지만…… 이번만큼은 이사야는 경험이 없기도 하고.”
마리의 말처럼.
재앙의 바람을 막기 위해선 조금의 방해도 없어야 한다.
거대한 그 바람은 조금의 변수라도 포함되는 순간, 막을 수 있기는커녕 더 크게 불어날 테니까.
나나 마리는 전생 경험이 있어 다행히 이걸 기억하는데.
문제는 이사야는 그런 경험이 없단 거다.
타고난 천재이니만큼 이론은 이미 빠삭해서 날 도울 수야 있긴 한데.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한다고, 연애가 되는 건 아닌 거처럼.
알다시피 모든 게 이론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잖은가.
때문인지, 이사야는 열이 바싹 올라 있었다.
“헹…… 둘 다 경험이 많아서 좋겠네요. 아주 닳고 닳아 가지고는, 어? 경험 없는 나는 서러워서 살겠어?”
“오우. 삐뚤어진 녀석. 우리가 너 기분 나쁘라고 한 소리는 아니잖아?”
“헹이다! 다 죽게 둘까보다 정말.”
아무래도 자기만 경험이 없는 부분이 마음에 안 드는 거다.
불만이 있는 건지 입술을 삐죽이는 게 제법 귀엽긴 하다만.
“……그럼 제가 살릴 건데요?”
“쳇.”
어째, 여기서 평소라면 져 줄 마리가 한 치도 밀리질 않는다.
죽이면 살릴 거라니.
사령술사를 앞에 두고 대단한 도발인데?
뭐, 상관없나.
‘둘 모두 친해지긴 했으니까.’
전생을 놓고 보면 마리와 이사야는 견원지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성녀와 사령술사인 걸 떠나서 성격 자체가 안 맞았다.
보다시피 마리가 아니라 이사야가 삐뚤어져서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현재의 이사야는 이미 삐뚤어지긴 했다만, 완전히 돌아버리진 않았다.
즉, 전보다는 낫다는 이야기.
덕분인지 둘이서 쉬지 않고 티격태격하긴 한다만은. 전생의 견원지간처럼 굴 때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의식을 위한 준비였다.
“자자, 진정들하고. 중요한 건 재앙의 바람을 비틀려면, 미리 주변을 청소해야 한다 이거라고. 이게 문제야.”
“그냥 다 처리하면 되는 거 아닌가?”
“결론은 그건데. 문제는 날뛰는 게 너무 많다는 거지.”
던전이 뻥뻥 터져나가지 않았는가.
덕분에 적당히 영역을 갖고 살던 몬스터들도 같이 날뛰기 시작했다.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나고 영역 다툼을 하지를 않나.
서로 힘을 합쳐서 민가를 털겠다고 나서는 것들도 늘어났다.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류가 특히 그런 식으로 힘을 합쳐 날뛰었다.
여기에 포식자 녀석들도 합세했다.
몬스터도 피식자가 있으면, 포식자가 있는 법이고. 이러한 포식자들은 피식자들이 날뛰면 그에 흥분해서 더 날뛰었다.
평소엔 둥지에만 있는 녀석들이 잔뜩 나댄다 이 말이다.
의식을 위해선 이걸 다 처리해야 했다.
문제는.
“한 방에 다 몰아서 처리해 줘야 해요. 안 그러면, 하나를 처리하면 다른 하나가 그 빈자리를 채울 거니까요.”
“그래. 그게 문제지.”
주변 청소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 거다.
청소를 다 해냈다가 의식을 치르는 사이에, 자칫 몬스터 하나가 들어 온다?
‘마력 흐름 다 깨지는 거지.’
그렇게 되면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 만들었던 흐름이 다 망가질 수 있었다.
그 뒤 결과는 뻔하다.
의식은 실패.
재앙의 바람은 더 부풀고 커진다.
그걸 위해 청소를 해야 하는데, 그걸 한 방에 어떻게 하느냐고?
“이찬호 씨. 대충 들었죠?”
“의식 말입니까? 그걸 위해서는 몬스터 청소가 한 방에 필요하고요.”
“정확하네. 자,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여기서 절 쓰려고 데려오신 거군요.”
“빙고!”
여기서 이번에 데려온 이찬호를 써야 했다.
몬스터를 일망타진하는 데 그만큼 괜찮은 인재는 또 없으니까.
자, 이제 애써 그를 데려온 이유를 깨달아서일까.
이찬호는 단번에 몬스터를 쓸기 위해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몰아와야 한다는 거지. 일명 목숨을 건 몹몰이랄까.’
그로선 쉬운 일은 아닐 거다.
하급부터 상급까지 날뛰는 몬스터들을 몰고 와야 한다는 거니까.
때문인지, 그답지 않게 그의 얼굴엔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후우. 한번 제대로 날뛰어보죠. 대신에, 보호는 확실히 해 주셔야 합니다?”
“당연한 소리를!”
나는 그런 그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자자, 당장 움직이세요.”
몹몰이를 위해 그를 바로 움직이게 했다.
* * *
“크허어어엉-!”
괴성을 내지르며 동시에 기술을 사용했다.
[당신은 기술 : 영혼 부풀리기를 사용하였다.]
-미친 짓 좀 그만해라!
“한휘. 그렇게까지 오버할 필요 없잖아요.”
“꺄하하. 역시 한휘라니까.”
“……역시 미친 사람이야.”
그에 반응하기 시작한 팀원들.
부풀어 오르는 영력에 반응하는 듯 몸을 부르르 떠는 팀원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리도 아닌 것이, 이 영혼 부풀리기는 전에도 몬스터 미끼로 자주 사용했던 기술이다.
몬스터들이 먹이 삼는 인간.
그중에서도 먹음직스러운 인간의 영력을 흉내 냈다.
-끼웨에엑!
-끼릭!?
그 괴성과 영혼의 울림을 느꼈는데 몬스터들이 반응을 안 할 리 없잖은가.
당장에 수백 마리가 넘는 몬스터들이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자자, 다들 잔챙이 처리하러 가.”
“그걸 잔챙이라고 하는 건 팀장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안 갈 거야?”
“갑니다, 가요.”
그걸 처리하고자 남은 팀원들이 나섰다.
박동길, 이진성, 이진아, 김민하, 한이수.
이 다섯.
동길이야 탱커라지만, 나머지는 전부 딜러인 기이한 형태다.
그러나 그런 이들을 보내며 불안한 것은 없었다.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이 정도 밥값은 다들 해줘야지.’
저들 모두 내 밑에서야 일개 팀원으로 있지만. 다른 곳에 가면 파티장이니 팀장이니 하기에 충분한 재목으로 키웠기 때문이다.
“갑시다. 팀장님이 하라는데, 해야죠.”
“예!”
“가요, 그래.”
저들도 그걸 아는지, 긴장도 안 하는 기색으로 달려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콰아아앙-!
쾅!
하늘에서는 화살이 빗발치고.
곳곳에서 화염이 주변을 감싸는 게 보였다.
때로 한이수가 뭔 짓을 했는지, 거대한 검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끄에에에엑!
-끽!
주변에 새로운 영혼들이 피어났다.
그 의미는 뻔하잖나.
몬스터가 죽어서 영혼화 됐단 의미다.
[당신은 적성 개체의 영혼을 흡수했다.]
[당신은 적성 개체의…….]
나는 그러한 영혼들은 쉼 없이 내게 끌어당겼다.
그러며, 바로 다음을 위해 바로 움직이게 했다.
다음 타자는 바로, 이찬호.
“슬슬 분할 더 해야죠?”
“……후.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후.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후.”
나의 한 번의 물음에 그의 대답은 세 번 들려왔다.
쑤우욱-
다시 얼마 가지 않아 그 대답은 여섯으로 늘어났고. 다시 한번 더 지나니 총 열두 번의 대답이 들려왔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게 한계입니까?”
“예.”
“예.”
.
.
이찬호. 그의 능력은 분신술.
그는 능력이 닿는 한 자신의 육체를 계속해 늘릴 수 있다.
말 그대로 분신을 생성하는 게 그의 능력이다.
저건 단순 허깨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분신.
그의 능력을 똑 닮은 것을 그는 분신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분신술이 주력이기에 가진 바 기술이야 얼마 안 된다만.
중요한건 분신으로서 그 능력을 배로 늘릴 수 있다는 거다.
그는 저 능력을 이용해 오성의 부길드장까지 되었었고.
실제 꽤 많은 활약을 해내었다.
그를 똑 닮은 분신. 타고난 전투 센스를 지니고 있는 저것들의 능력은 발군이라 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자신보다 강한 강자를 상대하는 데는 약하긴 하단 거였다.
말 그대로다.
자신보다 약자는 분신을 이용해 학살할 수 있다만.
자신보다 강한 자는 제 아무리 분신이 많다 하더라도 이기기 힘들지 않겠는가.
분신이 열둘이라 해서 그 힘이 열두 배가 되는 거도 아니고.
하나, 하나가 지닌 힘의 총량이야 비슷비슷하니까.
때문에 그는 이 약점을 없애고자 분신을 늘려왔었다.
하나가 안되면 둘로.
둘이 아니면 넷으로.
많은 수를 이용해서, 강자인 적을 상대로 차륜전을 벌이고.
차륜전에 의해서 지쳐버린 적에게 막타를 먹이는 방식으로 약점을 줄여왔다.
해서 꽤 기대를 했는데.
‘아쉽네. 이 시기에 고작 열둘이었나.’
전생에 백팔 명의 분신을 소환했던 걸 봤던 나로선, 열둘의 분신으론 성에 차질 않았다. 그래도 어쩌랴.
“““후…… 어떻습니까?”””
“당장 유인하는 덴 쓸 만하겠네요.”
아쉬운 대로 당장 유인할 정도의 수준은 될 거 같았다.
알다시피 하급 몬스터야 내 기술인 영혼 부풀리기로 유인이 가능한데.
포식자라 할 수 있는 레이드급 상급 몬스터는 쉽게 유인이 불가능했다.
놈들은 기운에 민감하니까.
거기다 눈치도 어마어마하게 빨라서, 단지 영혼 부풀리기로 유인하려 해 봐야 놈들은 절대 유인당하지 않는다.
되려 피하는 경우도 있다.
잘못 달려왔다가, 자신이 당할 수 있는 걸 알아서다.
아무래도 상급 몬스터 정도만 되면 머리 굴리는 게 보통을 넘어서 일어나는 일.
나는 이에 이찬호를 쓰기로 한 거다.
제아무리 영악한 몬스터라 할지라도, 눈앞에 사람이 움직이면 아무래도 눈이 홱 돌아가는 법이거든.
쉽게 말해 영혼 부풀리기로 기운을 흘리는 건 맛집의 냄새만 퍼트리는 건데. 이찬호가 움직이고 다니면 맛집 음식이 나 잡아 먹어주쇼 하고 눈앞에 다니는 원리다.
“““……퍽이나 대단한 칭찬이로군요.”””
“내가 없는 말은 못 해서 말이죠.”
해서 그는 잔뜩 긴장해선, 잡소리나 해댔다.
아무래도 긴장을 느끼면 말이 많아지는 타입인 듯하다.
뭐 어쨌건 상관없다.
“““예. 그렇다 치죠. 이제 바로 가면 됩니까?”””
“아직. 마리. 버프 다발로 던져줘.”
“예!”
“바로 할게요!”
긴장이고 뭐고, 제 몫만 다해주면 되니까.
나의 부탁대로.
마리는 그에게 온갖 버프 다발을 던져줬다.
“오우…….”
육체의 전반적인 향상은 당연하고,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에게 유효하게 작용하는 행운의 축복까지 걸어줬다.
그의 분신 하나하나에 걸어줘서인가.
“햐. 버그네.”
무려 버프가 중첩됐다.
마리로선 분신 하나, 하나에 버프를 걸어줬는데 그 본질은 이찬호 하나지 않은가. 때문인지 버프는 크게 중첩되며 그의 능력을 많이 강화시켜줬다.
덕분인가.
“그럼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그는 전에 있던 긴장을 지우고, 다시 처음의 진지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콰아아앙-!
그러곤 땅을 박차며 열두 방향으로 흩어졌다.
주변에 있는 모든 강력한 몬스터를 모으기 위함!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크허어어엉!
-키이이!
피식자 따위가 아닌, 포식자라 불리기에 충분한 몬스터들이 이쪽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