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원하는 대로 살려주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화색을 보이는 부길드장 이찬호.
사실 저자가 오성의 부길드장으로 있는 건, 길드장인 백택수에게 빚이 있어서다.
초반부터 길드장과 함께한 데다가, 생명을 빚지기까지 하였기 때문이다. 초기부터 이뤄진 인연 덕이라 이거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찬호는 백택수를 대신해서 오성 길드장을 할 만한 재목이다.
가진 능력도 출중하거니와, 리더십도 나쁘지 않은 편이니까.
‘어쩌다 만난 게 이찬호였으니, 이건 백택수가 복 받은 거지.’
실제 오성의 길드원 중 다수는 길드장인 백택수보다도, 이찬호를 따르는 자가 더 많을 정도다.
그 특유의 리더십 덕분이다.
거기다 인품도 나쁘지 않다.
목숨의 구함을 받긴 했다만.
그걸 이찬호만 받았겠는가.
사냥을 하다 보면 서로 목숨을 구해주는 일들 따위, 비일비재하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나만 해도 팀원들 목숨 몇 번은 구해주지 않았나.
뭐, 누가 나를 구해준 적은 없는 거 같기는 한데. 그건 상황이 그래서 그런거고.
어쨌거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백택수가 그를 구한만큼, 이찬호도 백택수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줬을 거라는 거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베푼 거보다 받은 걸 생각하는 편이었고.
때문에 길드장이 아닌 부길드장으로 있는 것이다.
몇 년 후에 있을 모종의 사건.
광신도들의 암살 시도로 인해서, 백택수가 죽고.
그때가 돼서야 이찬호는 오성의 길드장으로 나섰었다.
백택수가 죽지 않았더라면, 그는 결코 길드장으로 나설 생각이 없었을 거다.
그거만 봐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 인품을 가지고 말할 게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나는 살려 준다고 말하면서 조건 하나를 걸려 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길드장님이 도움을 받은 뒤에 모른 척하실 분이 아닙니다. 거기다…… 여기 많은 분들이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알죠.”
그에 당연하다는 듯이 이찬호가 받아들이기야 한다만.
‘과연 백택수가 일어나고 나서 제대로 값을 치를까? 뭐, 치르지 않아도 좋긴 하다만. 내가 얻으려는 건 백택수가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백택수의 목숨값은 목숨값이고.
나는 받아야 할 게 하나 더 있었다.
“그러나, 그건 백택수 길드장님이 제게 치러야 할 문제기도 하고. 이 일 자체가 왜 일어났는지 잊은 건 아니겠죠?”
“그건…….”
이유나 명분이 어찌 됐든 상관없다.
백택수가 왜 쓰러졌고, 영혼이 상처를 입었는가.
그 원인은 단 하나다.
감히 내 것을 탐한 거.
내가 목숨을 살려주고 목숨값을 받아내는 거와 별개로, 그는 내 것을 탐한 죗값이 있다.
뭐, 나야 일이 이렇게 될 걸 이미 알고 내준 거기는 하지만.
‘이왕 일이 벌어진 김에 최고 이득을 뽑아내는 건 당연한 이야기잖아?’
저들 입장은 저들 입장이고, 내 입장은 내 입장이다.
저들이 뭐라든, 내게 있어 최고 이득을 뽑아내는 거.
그게 당연한 일이잖나.
“그 값을 먼저 치러줘야겠습니다.”
“그 또한 길드장님이…….”
“아뇨. 이건, 길드장님이 아니라 부 길드장님이 치러 주실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안 그래도 평소 백택수 길드장님에게 목숨값을 갚는다고 하시는 분이니…… 충분히 치러 주실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요.”
“……그게 뭡니까?”
나는 대답 대신 이찬호를 빤히 바라봤다.
“설마…… 저입니까? 여기 모든 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저를 스카웃 하겠다는 말씀이 맞는 겁니까?”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허…….
그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잘못은 백택수가 했는데, 자신을 내달라고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
그러나 평소 백택수의 은혜를 갚을 수 있으면 뭐든 해서 갚겠다 공언하는 이찬호였다.
말뿐만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 백택수가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그를 모셨던 자다.
해서 나는 말하는 거다.
백택수가 갚을 건 갚을 거고.
그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내게 진 나머지 빚은 이찬호가 대신 갚아달라고.
그래.
이거 말도 안 되는 억지다.
그런데 어쩌라고?
상대가 당황스러워하든 말든. 이 상황을 이용하는 나를 뻔뻔스러운 사람으로 보든 말든 상관없다.
“뭐, 오성 길드를 두고 평생 있어 달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임대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예. 임대. 길드끼리 상황에 따라 헌터를 임대하는 거.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부길드장을 임대하는 경우는 없었죠.”
“이제 그런 경우가 생기겠네요.”
“후…….”
자 어찌 대답할 것이냐.
평생도 아니다.
고작해야 5년이다.
잘 늙지도 않는 헌터에게 5년이란 기간은 그리 긴 거도 아니다.
물론, 겉으로만.
‘5년이면 다 해결되겠지.’
재앙의 바람이 불어오는 지금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악마들은 급한 불이라도 피어오른 거처럼 다급하게 행동하고 있다.
이에 마족들이라고 해서 가만있을까.
게이트 침식을 위해서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할 거다.
결국, 이게 의미하는 건 하나다.
공허를 막기 위해서 회귀를 한 나.
그런 내게 주어진 시간은 전보다 더 짧아졌다.
전생보다 파괴의 흐름이 더 빨라지고 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5년?
이 모든 파괴 행위와 공허의 움직임을 막냐 못 막냐를 정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어쩌면…… 그 이하의 기간 내로 끝날 수도 있고.’
즉, 내가 원하는 일을 다 해결하냐 안 하냐는 5년도 되지 않는 시간에 판가름이 난다는 의미.
공허 사태를 막든 막지 못하든 간에, 나는 어떻게든 그 뒤는 푹 쉴 생각이다.
막지 못하면 죽어서 쉴 거고.
막아 내면 은퇴해서 쉬는 게 내 생각이다.
어쨌거나 여기까지 달려 온 걸로 나는 전생의 빚을 다 갚았다고 여기니까.
고로 말이 임대다.
이 사태가 해결되기까지 이찬호를 가져다 쓰겠다는 거다.
대신 오성이 삐걱대긴 할 거다.
백택수가 아니라 이찬호를 따르는 헌터들이 넘치니까.
그게 그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으음…….”
그의 결정에 따라 오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으니까.
근데 그따위 거……?
내가 답을 내줘야 할 이유가 있나?
몰? 루.
하고 내팽개쳐도 될 일이지.
즉, 나는 이찬호 하나를 얻음으로써 오성의 전력 약화도 해낼 수 있다는 의미.
최소 일석이조다.
때문에 그를 재촉했다.
“빨리 결정해주시죠?”
“저는…….”
그리고 그런 그의 대답은…….
내가 사슬낫을 들고 두 번째 해결을 하러 가기에 딱 알맞은 대답이었다.
“……임대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좋네요.”
이찬호. 꽤 쓸 만한 패를, 장난질 하나로 얻게 됐다.
* * *
이어지는 치유는 쉬웠다.
[당신은 상대의 영혼을 읽어 들였다.]
[흡수하겠는가? Y/N]
‘그럴 리가 있겠냐.’
[당신은 상대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당신은 뒤흔들린 상대의 영혼을 안정화시켰다.]
섞고 흔들고, 안정화시킬 뿐이지.
다만 약간의 심술은 들어갔다.
그대로 안정화만 시키면 될 걸, 한 번 뒤흔들었으니까.
뇌가 흔들려도 그 후유증이 어마어마하다.
영혼이 뒤흔들리면 그 후유증은 어떻겠는가?
못해도 몇 달은 정양해야 할 거다.
제아무리 뛰어난 헌터라도 한 달은 고생하겠지.
-지독하구나.
‘내걸 건드린 죗값은 제대로 치러야 하지 않겠어?’
-이미 인간 하나를 가져오지 않았더냐. 저자는 여의 기억에도 남아있는 자이니라. 최후의 칠 인에는 미치지 못해도 천인대는 들어가고도 남을 자였지. 그러고도 만족 못 하느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하여간…… 대단하구나.
마왕이야 질린 거 같다만.
나로선 이래야 셈이 맞는 느낌이거든.
“크흑…….”
그 사이 백택수는 깨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깨어난 백택수는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악!”
“고친 거 아니었습니까?”
그에 이찬호는 내게 따지듯 물었다.
제대로 치료를 안 했냐 이거겠지.
다소의 오해(?)를 한 거 같긴 하다만.
나로선 당당하다.
“영혼을 치료하는 게 쉬울 리가 있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영혼술사를 데려오든지요?”
“…….”
나 외에 다른 영혼술사도 없는데 누가 따질 건가.
사실 다른 영혼술사가 와도 나만큼 치유가 될 리도 만무하고.
내가 영혼술사로 뜬 덕에, 이제 와 영혼술사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성장을 돕는 자들이 생기기야 했다만.
아마, 지금도 앞으로도 내 수준을 따라 올 자는 없지 않을까?
고로 따질 수 있는 자는 없다.
“크하아아악!”
그 사이 백택수는 계속해 비명을 질러대다가, 정신을 놓았다.
“길드장님!”
그에 놀라 많은 치유사가 다시 들러붙었고.
“……고통에 잠시 정신을 놓은 겁니다. 이제부터는 저희도 치유가 가능할 거 같습니다.”
“후…….”
그래도 이번은 치유가 완료됐다는 소식에 오성 측 인원들은 다들 한시름 놓은 듯했다.
크게 숨을 내쉬는 데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그 뒤는 단순하였다.
백택수가 몇 번의 비명과 함께 꼴까닥 하기를 세 차례.
시간이 1-2시간 정도 흘러갔다.
그 뒤에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회의를 다시 열도록 했다.
혹자들은 그걸 보고 감탄하는 자들이 꽤 됐다만.
내가 보기엔.
‘자기 때문에 재앙의 바람을 제대로 대응 못 한다는 말은 듣기 싫은 거겠지. 체면 챙기려다 수명이 줄겠구만.’
영 어리석은 짓으로 보였다.
이때만큼은 자신 아니라, 다른 자들을 대리자로 두어도 좋았을 건데.
어떻게 보면 미련한 짓거리다.
하기는, 내가 이찬호를 데려갔으니 방법이 없었나?
회의가 끝이 나고.
후에 내가 그를 임대해 간다는 걸 들었는지.
“으아아아! 망할! 망할 놈이! 감히! 우리 오성을 어떻게 보고!”
그날 저녁까지, 막사가 무너져라 소리 지르는 백택수의 비명이 곳곳에 퍼져갔다.
열불이 난 거다.
제 수족 같은 이찬호를 내가 데려갔으니까.
거기다 부길드장급을 팀장급도 아니고, 팀장인 내 밑에 대원으로 넣지 않았나.
그게 더 열불이 났을 거다.
오성 길드의 부 길드장급이 고작해야 미래 팀원 수준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꼴이니까.
그런데 어쩌라고?
“신경 안 쓰입니까? 팀장님?”
“몰루? 그런 거 알게 뭐냐.”
“와, 진짜…… 하여간 신경 굵은 거 하나는 알아줘야겠네요. 그렇죠, 막내님?”
“……큼.”
나로선 새로 들어 온 막내님.
이진성이 조심스레 대하는 이찬호가 아주 마음에 드는데 말이다.
백택수야 어찌하든 간에 나로선 내가 새로 챙긴 패를 챙기고 움직일 뿐이다.
그리고 그 뒤로 두 번째 일을 해결해야 할 때다.
두 번째가 뭐냐고?
말했잖나.
사슬낫을 얻은 덕분으로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다고.
신기를 노리는 백택수 같은 녀석을 처리하는 건, 한순간 장난도 안 되는 첫 번째 해결일 따름이고.
진짜는 두 번째다.
휘오오오오-!
저 멀리서부터 쉼 없이 불고 있는 재앙의 바람.
그것을 처리하러 갈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