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당신은 신기 : 죽음을 부르는 사슬낫에 종속된 영혼을 부릴 수 있다.]
여기서 종속된 영혼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신기가 건네주는 기술을 익히고.
그에 따라 건너오는 기운들에 점차 익숙해지는 순간, 이 안에 담긴 종속된 영혼이 뭔지 알았다.
-으으으…….
계속해 떨고 있는 존재.
본래 영혼의 군집체였으나, 이제는 군집을 잃어버리고 영원히 신기에 종속되어버린 존재가 있었다.
그자는 바로 볼프였다.
나는 심력을 돋워 물었다.
‘네가 왜 여기 있냐? 빠져나가지 않고?’
-으으…… 빠져나가려고 했느니라. 아니…… 큭…… 했습니다.
‘그런데?’
-빠져나갈 틈을 안 주더군요. 저기 저자가요!
사슬 안에서 손을 들어 보이는 볼프.
그가 가리키는 건 학동이었다.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됐다.
‘왜 학동이가 망치질을 하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한 지 알겠네.’
현재의 볼프.
그의 태생은 악마였을지 모르나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에 이르러서 그는 그 영혼 자체가 사슬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었다.
그걸 누가 해냈는지는 뻔하다.
그가 가리키는 학동이다.
그의 망치가 볼프의 영혼을 벼렸다.
‘영혼을 다루는 대장장이라…… 대단하네.’
이제야 이해가 갔다.
영혼을 벼리는 것.
보통 영혼도 아닌 악마의 영혼을 벼려서 사슬에 박아 넣는 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동은 그것을 해냈고, 그럼으로써 이 사슬낫은 보통 신기가 아니게 됐다.
왜 어지간한 신기들은 흉내도 내지 못할 기술들이 이 안에 박혀 있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이거라면…….’
그리고 이 안에 담긴 이것이라면, 여태까지 있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 * *
그 해결의 첫째.
그것은 제 주제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해결이었다.
무슨 말이고 하니.
내가 잠시 신기를 얻고, 그에 따라 얻은 기술을 정리하고자 잠시 정신을 놓고 있던 그 짧은 사이.
부지런하게도 여러 말이 오고 간 듯했다.
탐욕스러운 눈.
그러며 말도 안 되는 개소리로 왈왈 짖어댄다.
“흠흠…… 신기의 주인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해도, 더 잘 쓰는 자가 있지 않겠는가?”
“큼. 이런 보물을 그냥 얻는 건 좀…… 이상한 일이라고 보네.”
“맞소이다!”
어울리지도 않는 말투를 쓰지를 않나.
그 내용은 더 가관이다.
신기조차 나를 인정하고, 그를 체계가 공언을 해 주었는데도 이딴 소리가 나오다니.
한국에 신기 자체가 많이 퍼지지 않았고.
그조차도 숨기고 사용하느라,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건 알고 있긴 하다.
그렇다 해도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재밌네.’
어이가 없다.
이쯤 되면 분노와 짜증이 일기보다는 실소가 터져 나올 정도다.
신기가 내 것이 된 순간부터 이것은 해결하기 쉽다.
“뭐, 원하신다면야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보시지요.”
투웅.
나는 내 손에 쥐여 있던 사슬낫으로부터 손을 뗐다.
내 손에서 떨어졌음에도 사슬낫의 본체는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고오오-!
그 뒤 나와 떨어진 것에 성이라도 난 건가.
이전처럼 다시 기운을 주변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음…….”
“커흠.”
강력한 기운에 죄다 움찔거린다.
‘역시나. 기운도 제대로 못 버티는 주제에 욕심이나 내고 말이야.’
우스운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탐욕에 눈이 멀어 욕심을 내는 자는 언제나 나오는 법이었다.
“다들 원하질 않는 거 같으니 내가…… 한번 해 보겠네. 나라면 자격이 부족하지는 않지 않겠는가?”
오성 길드장 백택수.
그가 주변을 쓱- 쓸어보더니, 가장 먼저 나섰다.
시기적절한 타이밍.
눈치 하나는 좋다.
아무도 말리지 않자, 그는 곧바로 사슬낫을 향해 나섰다.
그와 낫의 거리는 금방 가까워졌다.
투명한 사슬낫의 날 사이로 그의 탐욕스러운 눈빛이 비쳐온다.
잠시 망설이던 그.
“후…….”
3초 정도 심호흡을 하던 그는, 더 망설이지 않겠다는 듯 낫의 본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 순간.
[신기 : 죽음을 부르는 사슬낫이 주인이 아닌 자를 거부합니다.]
화르르륵-!
마력 파동이 있었다.
이어서 온몸이 타는 소리가 났다. 불길이 피어오르는 소리였다.
“뭐야?”
“어?”
소리는 났으나, 눈에 보이는 건 없었다.
그래.
신기가 만들어 낸 불꽃. 그것은 물리적으로 타오르는 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저것은.
‘영혼을 태우는 거로구만.’
영적으로 타오르는 불이었다.
때로 성화라고도 불리는 저것은 순식간에 백택수를 휘감기 시작했다.
뱀처럼 피어오른 불은 집요하게 그의 온몸을 노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게 나의 눈엔 또렷이 보여왔다.
샤아아아-!
그 불이 그를 완전히 뒤덮고, 내부까지 쳐버리는 그 순간!
“끄륵…….”
백택수는 온몸을 덜덜 떨더니, 신음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그대로 손에서 힘을 잃었고.
쿠우웅-!
이어서 서 있던 그곳에서 큰 소리를 내며 쓰려졌다.
쓰러진 그의 눈은 까뒤집어져 있었고, 입에서는 연신 흰 거품이 일었다.
누가 보더라도 내상을 입은 게 분명한 상황이었다.
다들 영문을 몰라 당황했다.
그런 가운데, 모두 머저리처럼 두고만 보고 있진 않았다.
어쨌거나 이곳에 있는 헌터들 모두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경험을 쌓은 자들이지 않은가.
현상에 대한 이해에 상관없이, 문제가 생기는 결과가 벌어지면 그에 따라 대응하는 거 정도는 할 줄 안단 의미다.
가장 먼저 그의 길드원들이 나섰다.
“길드장님!”
“어서 치료해!”
“치유의 힘을!”
화아아악-!
치유의 힘을 가진 자들이 나서서, 기운을 불어 넣었다. 그로도 부족하다고 여긴 건지.
“도와주시죠! 도와주시면 사례하겠습니다. 치유계 분들 몇 분 더 계시지 않습니까?”
“……내 도와주지!”
“나도 도와준다는 걸 잊지 말게나!”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백택수를 둘러쌌다.
화아아악-!
그대로 온갖 치유의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기운들이 그를 향했다.
본디, 치유의 기운은 종류에 상관없이 서로 상생하는 편이었다.
치유의 힘을 주는 성좌들끼리 사이가 나쁜 정도가 아니라면, 어지간해선 서로 힘을 합해 치유를 도모했다.
내가 팀원으로 들인 한이수. 죽어버린 그를 위해서 치유계 헌터가 스무 명이 동원됐던 것도 같은 이유다.
하나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스물이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더 돼서다.
물론, 한계치는 있다.
치유계 헌터 각각이 지닌 힘이 5.
스물이면 총합이 100이 되어야 옳다.
그러나 이 스물의 힘이 모두 모여 같은 치유계 주문을 외운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의 총량이 100이 되지는 않는다.
서로 상생한다고는 해도, 상승 작용까지는 잘 일어나지 않아서다.
때문에 총합의 수치가 100이라도, 70 정도의 효과가 나오면 다행이었다.
‘효과는 꽤 있네?’
그래도, 백택수에게 다행이라면 여기 있는 헌터들이 다 제 쓸모는 할 줄 아는 자들이란 거다.
얼마 가지 않아, 그가 입에 물고 있던 흰 거품은 사라졌다.
보기 안 좋게 까뒤집고 있던 눈도 정상으로 돌아옴과 동시, 자동으로 감겼다.
“전부 치료되었습니다!”
치료 완료다.
“물리적인 상처는 완료되었습니다. 문제는 정신인 거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
문제는 그게 물리적인 상처 치료에 국한되었다는 거다.
때문에 다른 자가 나서줘야 했다.
다들 은근한 눈으로 마리를 쳐다봤다.
‘어쭈? 뻔뻔하기도 하네.’
헌터들끼리는 서로 정보에 빠삭할 수밖에 없다.
저들도 마리에 대해선 소문을 들었을 거다.
그녀가 무려 부활 의식을 통해 한이수를 살렸다는 거 말이다.
사실 저들 정도가 아니라 헌터들 전부가 다 알고 있을 사실이기도 했다.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다는 거.
부활이라는 그 자체가 그 어떤 힘보다 매력적인 것이니까.
그런 그들이 보기에 마리는 치유계 헌터 중 최고다. 지금도 앞으로도 최고겠지.
그러기에 은근슬쩍 바라보는 것이다.
그녀의 도움을 바라고.
오성 길드의 부길드장은 아예 본격적으로 나섰다.
“마리 님. 한 손만 거들어 주신다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게 어떻든 백택수 길드장님이 일어나시면 바로 보상을 주실 겁니다.”
큰 대가를 약속했다.
주로 협잡질이나 하는 게 오성이긴 하다만.
그들이 가진 힘은 진짜다.
거기다, 많은 자들이 증인으로 있는 가운데 한 약속이지 않은가.
길드의 체면 때문에라도, 뭐든 보상을 쥐여주기는 할 거다.
꽤 대단한 것이 되겠지.
그러나.
“…….”
정작 치유를 해줘야 할 마리는 묵묵부답이다.
내 눈치를 봐서? 아니다.
그녀는 설사 내가 말린다고 하더라도 치유에 관해선 자기 주관에 따라서 행동한다.
악한 이라도, 자신의 주관에 맞아떨어지는 자라면 그걸 치료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적이라 할지라도, 인류에 도움이 된다면 그녀는 치료를 시도한다.
그녀만의 고집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고집을 회귀 전에도 꺾은 적이 없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꺾을 생각도, 이유도 없었다.
그녀만의 가치관은 존중해야 마땅하니까.
그런데도 그녀가 나서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이건 제가 나서서 치료할 수가 없는 문제예요.”
“부활 의식도 하시는 분이잖습니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십니까.”
자신이 치료할 수 없으니까다.
그 어떤 병도, 정신적인 외상도 그녀는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그녀도 제대로 치유하기 힘든 게 하나 있다.
그건.
“진실이에요. 이분은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타격을 받아 일어나지 못하는 게 아니에요.”
“그렇다는 말씀은…….”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부상을 제외 한 단 하나.
영혼 그 자체에 심대한 피해를 받았을 경우 그녀는 홀로 치유할 수 없다.
영혼을 어루만져 치료하는 일 같은 거.
성좌 정도나 겨우 해내거나, 아니면 특출난 능력을 지닌 영혼술사나 가능할 정도다.
그녀의 말은 그런 의미였다.
그 의미를 알아들을 머리 정도는 있는 건가.
부길드장은 마리의 말에 숨겨진 의미를 용케 알아들었다.
그러곤 나를 바라보며, 깊게 읍을 하며 부탁했다.
“……지한휘, 헌터님. 치료를 부탁드립니다. 말씀드린 대로 그 대가는 무엇이든 드릴 겁니다.”
“치료라…….”
쓸데없는 욕심을 내는 백택수.
지난 북부 토벌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내가 있는 미래 길드를 방해하는 그를 치료해 달란다.
쉽게 가자면 그를 그대로 두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이대로 쓰러져 있는 상태로 두면 반 미래 길드 연합을 형성하고 있는 그를 묶어두는 셈이 되니까.
거절도 어렵지 않다.
내 능력이 닿지 않는다고 하면 될 뿐이다.
현재 나보다 뛰어난 영혼술사는 누구도 없기에, 그런 내 말을 틀렸다 할 수 없는 자도 없다.
그러니 쉽게 가자면 그를 그대로 두는 게 가장 타당하긴 하다.
‘어쩐다……?’
이런 내 고민의 기색을 읽은 걸까.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과연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눈빛으로 다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내 선택은.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