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나와 보니, 보이는 건 다급한 얼굴을 한 김필서였다.
‘한시영 매니저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네?’
고개를 돌려보아도 우리 팀 매니저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급한 일로 나간 게 분명하다.
한시영이 지닌 능력은 일종의 탐지. 던전에 있는 정보를 숫자로 알 수 있는 게 그녀가 지닌 능력 중 하나였다.
그런 그녀의 능력을 사용할 만한 일이 있어 간 게 분명하다.
그러니 그녀가 나오지 않은 건 이해 가는데.
굳이 나온 게 김필서라. 이건 이상하다.
“다행히 나오셨군요. 성공은 할 줄 알았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성공하지 못할 곳은 안 가니까. 그런데 웬일로 이리 온 거야? 날 보는 거보다는 실장님 옆이 더 나은 거 아녔나?”
“……큼. 맞죠.”
“오. 이젠 아니라고 안 하네.”
한 단계 더 나간 건가.
내가 없는 사이 무슨 썸이라도 있던 걸까?
‘김필서와 불퇴권사 김시연의 썸이라. 어떤 방식일지 도무지 예측이 안 가긴 하는데.’
아쉽게도 그 둘의 썸에 대해 내가 더 상상할 시간은 없었다.
그는 평소보다 더 다급해 보였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리 다급하게 온 거 보면, 확실히 그건 알지. 던전 나온 헌터한테 이렇게 오는 거 자체가 드물기도 한 일이고.”
실제 일이 커진 건 맞았다.
“……후. 그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재 사건이 좀 커지고 있어서요. 도움을 요청드립니다.”
“뭔데?”
그리고 그 일은 나로선 전혀 예상치 못한 재앙 중 하나였다.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뭐? 다시 말해 봐.”
“러시아 쪽에서 내려 온 바람이, 브레이크들을 일으키고 있다. 이 말입니다.”
“하…….”
-그게 터진 거 같구나. 악마들이 움직였어.
* * *
사실 이상하지 않나.
시간이 지날수록 헌터들은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낙오자가 있다 하더라도, 낙오하지 않은 자들은 계속해 강해진다.
낙오한 자보다 낙오하지 않은 자가 몇 배, 몇십 배 강해지는 건 당연한 이야기.
그런데도 우리는 결국 패배한다.
공허에 잡아 먹히는 미래밖에 없었다.
아니, 굳이 공허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그 전 단계에서 이미 인류의 문명은 망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최전방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 나만 해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었다.
몇 년간 배양식을 먹는 게 일상이었다.
나중에 가서는 배양식조차도 호사였다.
보통은 몬스터를 조리해 먹는 경우도 수두룩했으니까.
그때 얻은 조리법들을 모으면 책으로도 낼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고됐고, 살아남기 힘든 시기였다.
여기서 이상하지 않은가.
인간 전체의 전력은 분명 강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문명이 망해 버린다는 것이?
최후의 칠 인을 이야기하고.
그 이전에도 분명 최강자들이 있었을 것인데도.
인류는 대피소나 찾아 떠돌아다니고, 교류는 거의 불가능해지는 현실이 이상하지 않으냐 이거다.
설사 인류가 강해지는 속도는 느리고, 적들이 강해지는 속도는 빨라졌다 하더라도 너무 급격하지 않은가.
어차피 던전 안의 몬스터는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던전에 있을 뿐이고.
그 안에 있는 한은 인류 문명을 파괴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말이다.
그 답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분명 보통 바람이 아닙니다. 바람이라면 한번 불고 사라져야 할 것인데, 이것은 특정 지역에 잠시 동안 머무릅니다. 바람인 데도요.”
“그 바람이 머무르는 곳은 여지없이 던전 브레이크가 터져 나가고?”
“예. 그렇습니다.”
“그거, 재앙의 바람이야.”
재앙의 바람.
그 바람이 불어오게 되면, 주변에 있는 던전은 변화한다.
본래 예정되어 있던 던전 브레이크 시간이 수배, 수십 배 빨라진다.
그 결과 던전은 얼마 가지 않아 터져 나간다.
그것이 재앙의 바람이 가져온 효과다.
“재앙의 바람이라…… 여러 이름이 있는데, 딱 어울리는 이름이긴 하군요. 말 그대롭니다. 바람이 불면 재앙이 찾아옵니다. 이건 분명 누군가의 손길이 들어간 겁니다.”
“손길이라…… 있긴 하겠지.”
“어딘지 아십니까?”
“흠…….”
“……말하기 힘드신 거군요.”
상황을 걱정하는 김필서. 차량을 몰면서도 연신 이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오는 그. 그런 그에게 나는 이 재앙의 바람이 누가 불러일으키는 건지를 말할 수 없었다.
‘아직은 알려 줄 때가 아냐. 알려 주더라도 적어도 김시연 정도는 되어야 알려 줄 만하겠지.’
재앙의 바람을 일으키는 건 악마.
정확히는 있는 던전을 이용하고 변질시킬 수만 있을 뿐.
제 스스로 게이트를 일으킬 줄은 모르는 악마들이 지닌 최고의 무기 중 하나다.
여러 개의 던전 게이트를 변형.
일종의 마법 진화를 시키고.
그 마법의 결과물로서 재앙의 바람을 일으킨다.
바람에 실린 마력이 사라질 때까지 이리저리 휘돌며, 던전 브레이크를 인위적으로 일으켜 버린다.
시간이 지나면, 재앙의 바람은 지닌 마력을 전부 소모하고 사라져 버린다만.
그사이에 만들어진 던전 브레이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 뒤는 그야말로 파괴적인 결과밖에 없다.
이를 통해 악마들이 얻는 거?
거의 없다.
-고작해야 계약자들 몇이 느는 게 다일 거다. 실제 얻는 건 많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데도 이들은 다른 차원에 이러한 바람을 자주 불러일으키곤 하지.
‘후…….’
벨린카서스의 말처럼.
그들은 고작해야 계약자 몇을 얻는다.
그러한 계약자 중 고르고 고른 몇을 강화시킬 수 있기는 하다.
그래봤자 딱 그 정도다.
커다란 파괴행위를 일으키고, 그 결과 얻어내는 이득이라고 보기엔 남은 게 없다.
고작해야 남는 거라곤 거대한 파괴행위를 일으켰다는 만족감 정도일까.
혹은.
‘악마는 마족과 다르니까 더 얻는 게 있지 않아?’
-음차원이 강화되긴 하겠지. 큰 파괴를 일으켰으니, 공허로부터 멀어질 것이기도 할 거다. 악마들이 사는 음차원은 파괴를 일으키면 일으킬수록 공허와 멀어지긴 하니까.
‘결국 문제는 공허였나…….’
공허로부터 도피가 가능은 하다는 건데.
-……맞는 말이긴 하다만. 웃긴 건 그래봐야 저런 무분별한 파괴로는 공허로부터 그리 멀어질 수도 없다는 거다. 네 말을 빌리자면 가성비가 없다.
‘그런데도 한다라…….’
-그러니 악마들이 쓰레기이니라.
그나마도 대단한 이득으로 남지 않는단다.
결국 악마들이 이리 재앙의 바람을 일으키는 건 그야말로 고약한 파괴행위밖에 되지 못한다.
문제는 그것에 내가 휩쓸리고 있다는 거.
그리고.
진심으로 큰 문제는.
“이런 식으로는 처음 뵙는군요. 이한철이라고 합니다.”
“지한휘입니다.”
“자, 안으로 들어가시죠. 재앙을 막는 방안을 같이 모색해 보아야 할 거 같으니.”
“……후. 그러죠.”
이 재앙의 바람을 막자고 모인 헌터들.
그런 그들이 재앙의 바람을 막을 방법 자체를 제대로 모른다는 거다.
* * *
바람을 막기 위해서는 바람길을 내어줘야 했다.
그 길은 물리적인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마력을 활용한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일 수도 있었다.
과거 나는 그러한 바람길을 거대한 영력을 이용해 만들어 냈었다.
정확히 길이라기보다는 대피소를 향해 다가오는, 재앙의 바람의 경로를 겨우겨우 틀었을 뿐이다.
당연하게도 다른 동료들도 그러한 경로를 트는 게 가능은 했다.
이사야는 사령술로, 마리는 신성력으로 돔을 만들어 냈다.
유보라는 진짜 길을 만들어 냈다.
재앙의 바람이 불어닥치는 시간 자체를 왜곡해버리고.
왜곡된 시간 가운데, 바람 안에 마법진을 심어버렸다.
심어진 마법진은 왜곡된 시간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폭발!
말 그대로 바람을 여러 방향으로 흐트러트릴 수 있었다.
거대한 태풍도 결국 흐트러지면 한 줄기 바람이 되는 법이었다.
유보라는 그러한 원리를 이용해 태풍과도 같은 재앙의 바람을 막아 냈었다.
‘꽤 대단한 묘기였지.’
지금은 그러한 게 불가능했다.
나조차도 영력이 아직 부족했다.
이사야와 마리. 둘과 다시 힘을 합치면 겨우 바람길을 만들어 내는 게 가능할 터였다. 혹은 다른 헌터들의 힘을 나눠서 쓰거나.
결국 합동 기술을 만들어 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그걸 궁리해야 한다는 건데.
정작, 이곳에 모인 헌터라는 자들은 그걸 논의를 하지 않는다.
되려 다른 생각만 하고 있었다.
“강원도 쪽은 우리 오성이 막겠소이다.”
“정부는 경북을 맡도록 하죠. 브레이크가 일어나도 더 퍼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현상 자체를 막으려고 하기보다는.
대응만 하려고 하고 있다.
소위 10대 길드라는 것들이 각자 이권이 걸린 지역들을 제가 막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나마 정부는 가장 어려운 강원도를 맡겠다고 나선 게 위안이 될 정도다.
“그럼 남은 미래와 다른 길드들은 이미 일어난 곳을 막아주셨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뒤처리나 해달라 이거로군요.”
그리고 남은 찌꺼기.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곳들을 우리 미래에 말하고 있다.
보아 하니, 다들 미래 길드 쪽 사람을 압박하고 있는 형세다.
이미 많이 커버렸으니, 그걸 견제라도 하겠다는 건가.
하기는.
미래가 많이 크기는 컸다.
문제는 크긴 컸어도 아직 부족하단 거다.
회귀 전이라면 이들은 압박조차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그만큼 미래가 지닌 세력 자체가 거대했으니까.
지금은 저들이 압박을 넣으면 미래라도 무시하긴 힘든 정도다. 제아무리 내 활약으로 인해서 많은 덕을 봤다지만, 저들 전부를 압도할 정도는 아직 되지 못했으니까.
저들도 그걸 아니 저리 행동하는 것일 거고.
또한 지금 기회가 아니면 미래를 견제할 수 없다는 생각에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겠지.
뻔하다.
‘일이 꼬이네.’
마음 같아선, 죄다 대가리를 깨부수고.
그 뒤엔 내 마음대로 이끌고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안을 아무리 살펴도 광신도 하나 보이지 않을뿐더러, 뭐 하나 책 잡을 만한 게 없었다.
저들도 만반의 준비를 한 게 분명하다.
‘쯧…….’
입맛이 썼다.
어쩐다.
당장 바람길을 나 홀로 막아 낼 수도 없으니, 내가 나서서 해결하겠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저들의 말마따나, 재앙의 바람이 부는 걸 대응만 하다가는.
‘다 망하겠지?’
그건 수동적으로 이 현상에 끌려다니다가, 바람의 마력이 다 사라질 때까지 버티는 꼴밖에 되지 않는데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마력이 다한 재앙의 바람이 사그라들기야 하겠다만.
그러고 남은 결과는 수많은 던전 브레이크와 그에 따른 수많은 피해자의 양산이다.
뭔가 하나가 필요로 했다.
“그럼…… 이렇게 가닥을 잡는 것으로 슬슬 대응 회의는 마무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게 좋은 거 같습니다.”
“저도 찬성합니다.”
이대로 두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걸 막을 큰 한 방을 필요로 하는데.
-……뭔가가 여기로 오고 있다. 뭐지?
‘오…… 이거 설마?’
그 한 방이 내게 알아서 오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