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처음 장로는 내가 아는 것부터 이야기했다.
[핵이 부서지면 우리는 남아 있을지라도, 여기 이 공간에 있는 폐허 다수는 사라질 거요. 더는 영위하지 못할 부스러기 취급을 받는 거지.]
“그러겠죠. 모든 던전은 정복되고 나면, 남은 것들은 전부 바깥으로 나오게 돼 있으니까. 우린 그걸 부산물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그게 무슨 문제인지?”
덕분에 한껏 비꼬아주었는데.
[큼…… 농담을 섞을 여유가 있어 좋구려.]
“……거 딱히 농담은 아닌데.”
-크크큭. 너도 여와 같은 기분을 드디어 느껴 보는구나.
로봇이어서 그런가.
그는 비꼼을 유머로 받더라.
덕분에 마왕의 웃음이 더 터져서 마음에 들지 않은 상황.
여기서 진짜 본론이 나왔다.
[우리는 저걸 활용할 수 있소. 부스러기 취급도 받지 않게. 되려 이곳의 부속품이 될 수 있게 말이요.]
“뭐?”
던전 부스러기는 무조건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걸 활용한다고?
이건 회귀 전에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설명은 놀라우리만큼 단순하면서도.
‘미친 꼼수네?’
저들 생존자가 아니면 절대 하지 못할 일이었다.
[이건 우리의 특징을 이용하는 일이요. 본래는 해 주지 않겠으나…… 은혜를 받은 처지에 이 정도는 하는 게 낫겠지 생각해서 말하는 것이오. 해서 이 방법은…….]
이들은 생물체이며 동시에 로봇이지 않은가.
그 어떤 신화 속에서도 찾을 수 없는 이들의 특징은, 기계 부품이라면 제 것처럼 흡수할 수 있다는 거.
이 생존자들은 그걸 꼼수로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수많은 기계 부품들을 흡수.
흡수한 부품을 우리를 위한 시설들로 이용하게 만들어 준단다.
제약도 거의 없었다.
본래라면 그 거대한 몸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버거울 것이나.
[당신이 우리를 승화자로 만들어 준 덕분에 가능한 일이지.]
내 한 번의 변덕이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승화자가 하나 있으면 생존자 수십, 수백을 조율하는 게 된단다.
말 그대로 후유증 없이 합체가 된다는 소리!
그리 합체를 시킨 상태로, 이들의 마력원을 동력원 삼아 시설들을 돌릴 수 있단다.
그건, 저들에게 나쁜 일도 아니었다.
[마력을 느끼고, 구동시키는 건 우리 수련의 일부. 성장하는 데 이만큼 도움이 되는 건 또 없소.]
비대한 몸을 이끌고 돌리는 거.
그 자체로 구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에게는 성장의 밑거름이 되니까.
한마디로 서로 윈-윈이라 이 말씀.
이야.
난 변덕 한 번 부렸을 뿐인데. 이런 식으로 이득이 될 줄이야.
‘앞으로 변덕 생길 일 있으면 미친 듯이 부려야겠네.’
-……미친 소리 그만하거라.
‘헹이다.’
내가 더더욱 변덕을 부리기 위해 노력하자고 다짐하는 사이.
저들의 설명은 꽤 다채롭게 이어졌다.
어떠한 시설을 지을 수 있는지.
그 시설을 활용하면 어떠한 것들이 되는지에 관한 거였다.
그리고 그건.
‘꽤 쓸모 있다 수준이 아니라 대단하잖아?’
안 그래도 이곳을 대피소이자, 다른 한 가지 ‘용도’로 사용하려고 했던 나로선, 생각도 못 한 로또였다.
그것도 당첨이라고 떡하니 적혀져 있는 로또!
“그러니까 정말 내 방식대로 꾸미는 게 된다고?”
[그렇소. 적어도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은 유지시켜 줄 생각이오. 그게 계약에 대한 대가라 생각하니까.]
“호오. 그렇단 말이지.”
이걸 어떻게 써먹는다?
머릿속에 온갖 창의적인 생각이 가득 떠올랐다.
너무 많은 것이 떠올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 어떤 식으로 꾸밀 것이오?]
“그러면…….”
크…….
생각만 해도 늘 짜릿한 게 가득 생각나는 가운데, 나는 재촉해 오는 장로의 물음에 답했다.
그리고 그 답을 들은 자들은 전부, 반응이 색달랐다.
-……미쳤느냐?
“팀장이 또 미쳤어! 미쳤다고! 이번도 팀장 편들 거야?”
“…….”
“……한휘? 그게 크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거야?”
“여전하네요, 정말…….”
어째 내 예상과 다른 반응들을 보이고 있었다.
‘뭐지? 진짜 완성되면 좋을 건데?’
하물며, 차원과 문화까지 다른 장로까지도 그 반응의 결이 저들과 비슷했다.
[……진심이오? 우리 구도자들도 그리는 안 하는데.]
“아오? 다들 왜 그래. 진심이라니까. 혹시라도 바꾸라고 하지 마. 안 바꿔 줘. 돌아가. 그대로 가.”
[……그대의 의지가 그렇다면야.]
내 번뜩 떠오른 신박한 생각을 다들 이리 질색할 줄이야.
이러면 일부 수정도 없이.
못 먹어도 고다.
더 들을 이유도 없었다.
“그럼 된 거지?”
나는 저들이 부품들을 챙길 만한 약간의 시간을 할애해 준 뒤에.
푸우욱-!
던전의 핵을 향해 공격을 집어넣었다.
* * *
익숙해진 공간 안에 떠오르는 글귀들.
그러나 그 뒤에 떠오르는 글귀 중 일부는 전혀 익숙지 않은 것들이었다.
[당신은 미궁의 답파를 완료했다.]
[당신의 행동 결과에 따라서 보상이 정산됐다.]
[당신은 최초로 미궁의 완전 답파를 완료했다.]
[당신은 숨겨져 있는 공략 방식으로 던전을 완전 공략하였다.]
숨겨져 있는 공략 방식이라.
이전엔 이곳을 공략하고도 보지 못한 말이었다.
사실, 저런 문구 자체가 처음이었다.
회귀 전 그 어느 때도 숨겨진 방식으로 공략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최초네.’
망겜이라 칭하는 체계다만.
언제나 최초, 최고의 것엔 그만한 보상을 주는 게 체계였다.
그 뒤가 기대되는 바였다.
[최초의 공략 방식!]
[당신의 업적이 당신의 보상에 추가된다.]
역시 보상이 추가되었다.
추가되는 건 더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게 꽤 많은 기쁨과 동시에, 의문도 안겨다 주었다.
[당신은 미궁 답파 와중에 5등급이 올랐다.]
[당신은 최초로 생물체를 빚어내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인간 중 최초로 혼돈의 기운을 다루는 데 성공했다.]
[당신이 빚어낸 최초의 생물이 수많은 신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당신에게 끔찍한 혼종에 대한 거래를 제시하는 외신들이 셋 있다.]
[당신이 만들어 낸 업적에 신좌 중 일부가 특별한 보상을 내리었다.]
답파 와중 등급이 오르고, 끔찍한 혼종이 신에게 주목을 받는 건 익히 아는 바였다.
지금은 쓸모가 있어서 그대로 두고 있다만.
내가 사용하는 거보다 거래를 하는 게 가치가 있다면, 언제고 팔아넘길지도 몰랐다.
어쨌건 도구로서 빚어낸 것이니까.
놀라운 건 다른 거에 있었다.
“혼돈의 기운이라.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런 걸 다루었다고? 으음…….”
혼돈의 기운.
이건 전에도 보지 못한 거였다.
혼돈이라니.
그런 걸 내가 다룰 줄 알았더라면, 진작 다루지 않았겠는가.
힘의 종류가 무엇이든 공허를 이겨내는 데 도움만 된다면 쓸 생각이 가득한 나니까.
그런 걸 나도 모르는 사이 썼단다.
정체도 모르는 기운을 쓰다니.
웃기는 노릇이다.
근데 더 웃기는 건, 그 기운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겠다는 거다.
“끔찍한 혼종을 빚었을 때…… 아니 그 뒤다.”
신성력과 사마력.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에 중심을 다른 기운으로 잡았다.
영력.
내 근본.
그것을 이용해 셋을 섞는 데 성공했고.
이 뒤에 한 가지 기운을 더 넣어 점칠시켰다.
그게 그림자였다.
딱 여기까지 네 가지 기운을 한 손에 두고 휘둘렀다.
‘다루긴 힘들었다만…… 이미 몇 번 경험해 본 거기도 해.’
이 네 가지를 다뤘다 해서 혼돈의 기운이라 명명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그림자야 처음이긴 하다만.
신성력과 사마력에 영력을 섞는 거.
이미 한번 겪은 바가 있는 나였다.
그때도 합동 기술은 몇 번 사용했으니까.
내가 회귀하기 전 마지막.
그때는 더 막장이었다.
유보라의 마력.
마리의 신성력.
내 영력.
여기에 마왕의 마기까지 섞어서 시간 회귀를 했었더랬다.
그때도 혼돈의 기운이니 뭐니 하는 거 따위.
알지도 못했고. 감도 잡지 못했다.
‘기운을 섞은 경험 자체는 처음이 아니지…….’
좋은 음식 재료도 막 섞다 보면 음식물 쓰레기밖에 되지 않는 거처럼.
아무거나 섞는다고 다 그럴듯한 무언가로 변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결국 뭘 섞는다 해서 혼돈이 되니 뭐니 하는 건 아니다.
이건 확실하다.
그럼 여지껏 내가 사용하지 못한 변수가, 혼돈의 기운을 다루게 했다는 건데.
그런 기운이 마침 하나 있다.
“오러…….”
내 손으로 엮은 끔찍한 혼종을 조종하던 당시.
승화자들이 섞여 만들어 낸 오러를 나는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그 곧고 거대한 검.
그것을 휘둘러 나오는 압도적 파괴력!
회귀 전에도 강력한 검사들이나 가질 만한, 전율할 만한 기운.
간접적으로나마 그것을 휘둘러 본 것은 분명 처음이었다.
또한 그걸 휘두름으로써 하나의 우연이 만들어진 듯했다.
내가 휘두른 검에 실린 기운이 단순한 오러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러를 손에 쥐고 휘두른 순간.
끔찍한 혼종에 있는 내 기운들과 오러가 섞이며, 아주 잠깐이지만 모든 기운이 섞인 게 분명하다.
그게 혼돈의 기운인 듯하다.
그러면 모든 게 이해된다.
내가 잠시나마 혼돈을 다루었다는 이야기도.
그때 보여줬던 전율할 만한 위력도.
‘어쩐지 아무리 오러라도 심하게 위력적이더라니…… 아무리 오러라도 보스가 한 방에 죽는 건 선 넘긴 했지.’
이해가 안 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가능만 하다면 당장 의식적으로 혼돈의 기운을 다루고 싶을 정도다.
문제는, 혼돈으로 가는 열쇠.
오러다.
검술은 익혔을지언정, 오러엔 닿지 못했고.
창도 다뤄봤지만 오러는 닿지 못했다.
전생에도 다루지 못한 게 오러다.
아무리 수많은 경험이 있다지만, 못하는 건 못하는 거였다.
또 혹시 모르긴 하다.
몇 년간 산에 처박혀서 죽을 둥 살 둥, 수련을 하다 보면 툭 하니 가호가 생겨날지도.
그러나 그 확률은 거의 로또 당첨에나 가까운 확률. 아니 어쩌면 그 이하의 확률이기도 했다.
입이 썼다.
“젠장. 처음부터 몰랐다면 모를까. 이건 좀 아쉬운데…….”
아쉬움이 너무 컸으니까.
그런 내 아쉬움이 우습기라도 한 걸까.
나를 가만히 두고 있던 보상의 창이, 내가 흐트러트리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글귀를 새겼다.
[당신의 보상이 정산되었다.]
[당신은 상당한 경험을 쌓아 등급이 단번에 상승되었다.]
[당신은 90등급이 되었다.]
[당신의 가호 : 그림자가 상당한 경험치를 쌓았다.]
[당신의 가호 : 영력이 새로운 길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
[당신은 기술 : 그림자 폭발을 얻었다.]
[당신은 기술 : 그림자 분산을 얻었다.]
[당신은 기술 : 그림자 분해를 얻었다.]
보상은 분명 강력했다.
몸에 힘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고.
얻은 세 개의 기술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게 됐다.
마법과 달리 기술은 직관적이었기에 이 셋을 섞는 건 현재의 나로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이러한 것들은 내게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그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단 두 줄의 글귀가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당신은 가호 : 오러를 알게 되었다.]
[오러를 깨치고 있는 당신에게 신좌…….]